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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보물사업은 사기? 투자금액과 류승진

 

보물선 돈스코이호에 대한 의혹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돈스코이호에 엄청난 보물이 실려 있다면서 돈스코이호 탐사인양을 홍보해온 신일그룹 사태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돈스코이호는 1905년 러일전쟁 때에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전함으로서, 엄청난 보물을 실려있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돈스코이호에는 무려 150조 가량의 금괴와 보물이 실려있다고 알려졌고, 그래서 과거에 동아건설과 한국해양연구소에서도 이 돈스코이호에 대한 수중 탐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돈스코이호는 1905년 러일전쟁 때에 전쟁의 군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한 금괴상자 5500개가 배안에 실려있었다고 하는 소문이 나돌았던 러시아소속의 전함이다.

일각에서는 돈스코이호에 실려있는 금괴의 가치가 1932년도의 가치로 5300만 달러이며, 지금의 가치로는 150조에 이른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같은 소문이 오래전부터 퍼져 나왔고, 이 때문에 돈스코이호는 졸지에 150조 가치의 보물선이라는 닉네임이 붙게 됐고, 보물에 관심이 있는 호사가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2003년 한국해양탐사연구소에서 울릉도의 저동 앞바다에서 돈스코이호에 대한 수중탐사를 전격 실시했는데, 그곳 수중 430m 해저에서 돈스코이호를 처음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2018717일는 신일그룹은 똑같은 울릉도 저동 앞바다 해저에서 역시 동일한 돈스코이호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신일그룹은 울릉도 앞다의 430m 해저에서 유인잠수정을 내려보내 돈스코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인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고, 카메라로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돈스코이호를 발견한 신일그룹은 자신들이 진짜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발견해내었고, 돈스코이호에 150조에 해당하는 금괴가 실려있다고 언론에 크게 홍보했다.

 

돈스코이호 발견을 주장한 신일그룹은 자신들이 돈스코이호를 처음 발견했기 때문에, 돈스코이호에 대한 소유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곧 돈스코이호에 대한 인양작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보물선 돈스코이호 발견을 주장한 신일그룹에게 몇가지 커다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신일그룹이 울릉도 앞바다에서 발견한 돈스코이호에 정말로 150조에 달하는 금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확신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돈스코이호에 금괴가 있다는 것은 1932년도에 미국신문 기사에서 추측보도한 것일 뿐이며, 돈스코이호에 금괴가 있는 것을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신일그룹에서 717일 유인잠수정을 울릉도 앞바다 해저속으로 내려보내어 탐사를 실시했었다.

신일그룹의 새로운 대표로 부임한 최용석대표는 돈스코이호 탐사 당시에, 유인잠수정의 조종사가 돈스코이호 속에서 밧줄로 묶여있는 여러개의 나무상자들을 발견했었다고 발표했다.

 

신일그룹의 새로운 대표가 된 최용석대표는 탐사 당시, 잠수정 조종사가 분명히 돈스코이호에서 여러개의 나무상자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이 나무상자들이 금괴가 들어있는 보물상자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잠수정을 타고 돈스코이호 탐사를 했던 잠수정조종사 더글러스 비숍은 최대표의 말과는 달리, 돈스코이호에서 전혀 나무상자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즉 신일그룹의 최용석대표가 돈스코이호에서 나무상자를 발견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돈스코이호에 대한 의혹들이 크게 부풀어 오르자, 신일그룹의 최대표는 한발 물러서는 듯한 입장을 내놓았는데,

726일 최대표는 돈스코이호에 보물이나 금괴가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후퇴하는 듯한 발표를 했다.

 

그러니까, 신일그룹에서는 처음에는 돈스코이호에 150조 상당의 금괴가 실려있다고 주장했다가, 다시 정정발표를 해서 돈스코이호에 금괴가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파악할 수 없다고 오락가락하는 발표를 한 것이다.

 

신일그룹이 종전의 150조 금괴설을 흘린 후에, 26일날 다시 금괴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정정발표함으로써, 돈스코이호에 투자를 했던 많은 투자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그리고 신일그룹은 7월 하순에 회사명을 신일그룹에서 신일해양기술로 이름을 바꾸어버렸다.

 

돈스코이호 인양사업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점들이 노출되면서, 신일그룹이 골드코인 수익과 시세차익을 올리기 위해서, 사기를 벌인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에 상당한 재산적 가치를 가진 무언가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아직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돈스코이호에 대한 결론을 내리자면, 돈스코이호에 보물이나 금괴가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돈스코이호에 그러한 금괴나 재산적 가치가 있는지는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돈스코이호에 그러한 엄청난 금괴가 있는지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이처럼 신일그룹은 금괴나 보물이 있는지 정확히 확인하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막대한 금괴가 있는 것처럼 홍보해서, 막대한 투자금을 끌어 모았다는 것 자체가 사기가 아닐까 한다.

 

돈스코이호에 엄청난 금괴가 실려있는 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확인작업을 하지 않고서, 왜 신일그룹은 150조 금괴설을 흘렸던 것일까?

 

사실 돈스코이호에 금괴 200톤 즉, 150조 금괴가 있다는 이야기는 울릉도지역에서 일부사람들에 의해서 퍼져나왔던 루머였다.

 

 

돈스코이호에 엄청난 금괴가 있다는 것은 그냥 루머일 뿐이며, 정확한 근거가 있는 팩트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울릉도 섬 일부지역에서 흘러나오는 루머 같은 금괴이야기를 갖고 신일그룹의 관계자들이 사실인 것처럼 크게 부풀려서 발표했던 것이다.

 

그렇게 신일그룹이 자신들이 발견한 돈스코이호에 엄청난 금괴가 있다고 홍보해야만 막대한 투자금을 모으기가 쉽고, 또한 주식투자에 대한 막대한 시세차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 탐사인양사업을 위해서, 엄청난 양의 골드코인을 발행해서, 막대한 투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신일그룹은 제일제강이라는 상장회사를 인수하기 위해서, 인수계약을 체결했는데, 그 후 신일그룹이 보물선 돈스코이호 인양사업을 발표하고 나서, 제일제강의 주가 1,840원이 5,400원으로 크게 뛰어올랐다.

신일그룹이나 그 관계자가 이 제일제강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고 한다면,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신일그룹이 확인되지도 않은 돈스코이호의 150조 금괴설을 홍보한 것은,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하고, 커다란 시세차익을 얻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신일그룹의 실질적 대표 유지범(류승진)은 해외로 도피

 

지금 신일그룹의 두 번째 문제점은 신일그룹의 실질적인 대표인 유지범이 엄청난 금액의 투자금을 빼돌리고 잠적했다는 점이다.

 

 

신일그룹의 본회사는 원래 싱가포르에 있는 신일그룹이라고 하며, 그 신일그룹의 회장은 유지범이라고 한다.

이 유지범이라는 사람이 신일그룹의 실질적인 대표인데, 유지범회장이 돈스코이호 금괴사업을 기획하고 각본을 짜서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신일그룹의 실질적인 대표인 유지범도 사실은 가명이며, 유지범의 진짜이름은 류승진인데, 류승진은 신일그룹의 골드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만들어 판매해서,

상당한 금액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는 현재 해외로 도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설에는 신일그룹의 실질적인 대표 유지범(류승진)이 베트남에 있다고도 하며, 라오스에 있다는 설도 있다.

 

이 유지범(류승진)이 개인투자자들에게 받았던 투자자금의 상당액을 착복해서 해외로 도피중에 있기 때문에, 신일그룹 돈스코이호사업에 투자했던 많은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신일그룹의 실질적인 오너인 유지범(류승진)은 돈스코이호의 보물선탐사사업과 골드코인사업을 주도했던 장본인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신일그룹이 진행하는 골드코인 사업과 돈스코이호 인양사업이 사기성이 짙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직 사기가 확실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가지 정황들을 살표보면,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인양사업은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국 이러한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인양 사기를 주도한 장본인은 실질적인 오너인 유지범(류승진)인 것이다.

 

그는 돈스코이호 보물선 탐사인양사업을 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해서,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모았고, 많은 투자자들로부터 엄청난 금액의 골드코인을 판매해서, 막대한 자금을 얻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골드코인 판매대금의 상당액이 유지범(류승진)의 개인계좌로 입금되었고, 이렇게 골든코인 투자금의 상당액을 착복한 유지범(류승진)은 현재 해외로 도피중에 있는 상태다.

 

만약에 유지범(류승진)이 돈스코이호 인양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해나갈 계획이라면, 그리고 그가 주장했던 데로 돈스코이호에 상당한 금괴가 실려있다면, 그가 해외로 도망다닐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신일그룹의 실질적인 대표인 유지범(류승진)이 해외로 도피중에 있다는 것은, 그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돈스코이호 인양사업이 진정성이 없다는 것(사기)을 스스로 자인하는 셈인 것이다.

 

돈스코이호 탐사 및 인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신일그룹은 유지범(류승진)이 금년 61일에 새롭게 신설했던 회사였다.

그리고 717일날에 수중탐사를 벌여서 돈스코이호를 발견했고, 150조 금괴가 실린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그런데 사실확인을 한 결과, 대표인 유지범(류승진)은 신일그룹이 설립되기 훨씬 전, 돈스코이호를 발견하기 훨씬 전인 2017년 중순부터 이미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고 한다.

 

, 대표인 유지범(류승진)은 돈스코이호를 발견하기 1년 전부터, 미리 보물선을 인양한다는 홍보를 헤사,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모아 투자금을 유치해왔다고 한다.

 

유지범이 돈스코이호를 탐사하기도 전에, 확인되지도 않은 금괴설을 퍼뜨리면서, 미리 투자금을 모았다는 점에서 사기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돈스코이호에 막대한 보물이 있는지도 탐사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투자금부터 끌어모았다는 것인데, 이것은 거짓된 홍보를 했다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유지범(류승진)2003년도에 먼저 돈스코이호 탐사를 시도했던 동아건설의 탐사관계자 진씨등에게 돈을 주고, 돈스코이호의 위치정보 자료를 입수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돈스코이호의 위치좌표 정보를 입수한 그는 신일그룹을 설립하고, 150조 금괴가 실려있는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인양한다는 미끼로 수많은 투자자들을 모아서,

다단계수법을 통해서 막대한 양의 골드코인(가상화폐)을 판매해서 엄청난 판매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신일그룹이 이처럼 엄청난 골드코인 판매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돈스코이호에 150조 금괴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신일그룹이 홍보했던 것처럼, 돈스코이호에 150조 금괴가 실려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에 막대한 금괴가 있는지 확인해보지도 않고서, 150조 금괴설을 일방적으로 흘려보낸 것이다.

 

그리고 신일그룹이 자신들의 주장대로, 돈스코이호를 인양할 수 있는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별로 없어 보인다.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를 인양하려면, 해양수산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까지 신일그룹은 채양수산청으로부터 돈스코이호 발굴허가를 받지못한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신일그룹의 실질적인 대표 유지범(류승진)은 과거에 사기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었다고 하며, 현재도 사기혐의로 수배를 받아왔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지범(류승진)은 몇 년 전부터 해와로 도피하고 있는 상태인데, 신일그룹을 설립할 때에도 수배중이었기 때문에, 유지범(류승진)은 국내가 아닌 필리핀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유지범(류승진)은 베트남이나 라오스에 체류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뭏튼 돈스코이호 발굴인양사업과 골드코인사업은 여러가지 정황들을 종합해보았을 때, 사기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로써는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인양사업이 무조건 사기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만약 앞으로 신일그룹이 자신들이 약속한 대로 해양수산청의 허가를 받아서, 실제로 돈스코이호를 인양해낸다면, 그리고 인양된 돈스코이호로부터 엄청난 금괴를 발굴해낸다면,

신일그룹(신일해양기술)의 돈스코이호 인양사업은 사기가 아니라 진짜 사업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일그룹의 대표 유지범(류승진)이 해외로 도피하고 있는 점, 유지범(류승진)이 투자금의 상당액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점,

그리고 돈스코이호에 막대한 금괴가 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 등 여러가지 정황들로 미루어 보면,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인양사업이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탐사인양사업은 많은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실망과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리고 진짜로 사기인 것이 밝혀지면, 많은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안겨주게 되는 것이다.

 

현재 경찰은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사업과 관련해서 사기혐의를 포착하고, 신일그룹의 최용석대표 등 관계자들을 소환해서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신일그룹의 관계자들은 현재 출국금지를 당한 상태라고 한다.

 

 

신일그룹은 애초에 투자금을 모을 때에, 자신들이 인양하려는 돈스코이호에 150조에 해당하는 금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양한 후에 15조원을 투자자들에게 분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투자금을 모았다고 한다.

 

이것은 150조라는 전혀 확인되지 않은 금괴를 미끼로 해서 막대한 투자금을 모은 것이므로, 법적으로도 사기혐의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부경찰서에서 수사에 착수했으며, 신일그룹 관계자들을 소환해서 조사를 벌여나가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경찰의 수사결과를 더 지켜보아야, 신일그룹이 정말로 사기를 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일그룹의 실질적인 리더인 유지범(류승진)에 대해서 경찰은 현재 인터폴에 수배요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신일그룹의 경찰수사와는 별개로, 그동안 신일그룹의 보물선 인양사업을 철석같이 믿고서, 막대한 돈을 투자한 투자자들의 경제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가 있을까?

 

신일그룹이 진짜로 돈스코이호의 인양을 실행해서, 돈스코이호를 인양해내고 그 돈스코이호 안에서 정말로 홍보했던 만큼의 엄청난 금괴를 건져 올린다면,

리고 약속했던 데로 투자자들에게 수익분배를 해준다면, 투자자들은 피해를 입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여러가지 정황들을 고려해보면,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를 인양할 수 있는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돈스코이호를 인양한다고 하더라도, 인양한 돈스코이호에 정말로 150조원대의 금괴가 실려있을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돈스코이호의 보물 인양사업을 믿고서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일부 투자자들은 신일그룹을 상대로 집단민사소송을 전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신일그룹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이 받은 피해액을 돌려받는다는 보장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민사소송에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패소한 회사에서 지급할 돈이 없으면, 돈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은 미리 그 회사의 재산들을 미리 가압류를 해놓고,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일그룹은 신고한 자본금이 1억밖에 안되고, 그리고 투자자들에게서 끌어모은 투자금들은 이미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빼돌렸을 것이다.

 

정말 돈스코이호 사업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입게될 경제적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어떤 획기적인 조치를 취해주어야만 한다고 본다.

 

돈을 벌려고 피땀 흘려서 모은 돈을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악랄한 사기꾼들에게 이처럼 막대한 피해를 당한 착한 투자자들을 보호해주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자 임무라고 본다.

 

이번 돈스코이호 사건만큼은 정부에서 발벗고 나서서, 엄청난 피해를 본 투자자들에게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그들이 입은 피해를 정부차원에서 보상을 받게끔 보증을 해줬으면 한다.

 

국가에서 돈스코이호 피해자들에게 먼저 피해보상을 해주고, 그 후에 국가가 신일그룹의 자금을 추적해서 그들의 숨겨놓은 재산이나 빼돌린 돈을 찾아내서 구상을 하는 것이 좋지않을까 판단된다.

 

   

이번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사업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의 투자금은 얼마나 될까?

유지범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2000명에게 87억원을 받았고, 그 중 80억원을 썼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동아건설 임원 홍건표는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투자자는 20만명에 투자금은 1000억원 정도 된다고 밝혔으며, 유지범일행이 그 중 500억원을 갈취했다고 말했다.

 

홍건표는 전동아건설 임원출신으로서, 초기에 유지범과 돈스코이호사업을 함께 시작했다가, 나중에 의혹점이 생기자, 유지범과의 협력을 중단하고 유지범을 고발했던 인물이다.

 

만일 홍건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피해자 20만명에 피해액 1000억원이라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정말 엄청난 피해금액이 아닐 수가 없다.

 

아뭏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으니,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사업의 진실이 곧 밝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해외로 도피중인 유지범을 하루빨리 소환해서, 그가 빼돌린 돈과 숨겨놓은 돈을 찾아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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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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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핑크의 타이틀곡 ‘1도 없어뮤직뱅크 1위 달성, 노래듣기

 

인기아이돌 걸그룹 에이핑크가 신곡으로 발표한 ‘1도 없어가 드디어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답니다.

 

에이핑크는 작년 6월에 신곡 파이브를 발표한 후, 11개월만에 새로운 제 7집 미니앨범 원앤 식스를 발표했답니다. 그리고 727집 미니앨범의 타이틀곡인 ‘1도 없어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습니다.

 

그렇게 신곡 ‘1도 없어를 발표하면서 에이핑크는 활발한 방송활동을 벌여나갔답니다.

그리고 신곡을 발표한 지 1주일만에 더쇼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답니다.

 

이번 신곡 ‘1도 없어는 기존의 에이핑크의 노래와는 컨셉이 많이 다른 노래입니다. 처음에 이번 타이틀곡 ‘1도 없어를 들었을 때, 좀 어색한 느낌이 들었고, 놀라왔습니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에이핑크가 보여줬던 모습은 청순하고 발랄한 컨셉의 노래가 대부분이었지요.

그런데 이번의 신곡 ‘1도 없어는 에이핑크 본연의 청순미와 발랄한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고, 매우 도발적이고 강렬하면서 걸크레쉬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인데요.

 

과연 이렇게 강렬한 비트의 노래가 에이핑크에게 맞을까 하고 처음에는 내심 우려가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에이핑크의 ‘1도 없어를 들으면 들을수록, 매우 강렬하게 빠져드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보통 이러한 스타일의 노래를 후크송이라고도 하는데, 에이핑크의 이번 신곡이 매우 강력하게 사람의 감정을 끌어당기는 후크의 마력을 갖고있었고, 한번 들으면 또다시 듣지않고 못배길 정도의 강렬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번 에이핑크의 신곡 ‘1도 없어는 치명적일 만큼 매력적이고. 중독성이 강한 노래로, 에이핑크 노래 중 개성이 강하고 가장 걸크레쉬한 노래라고 정의할 수 있지요.

 

여태까지 에이핑크가 발표한 노래들처럼 상큼하고 발랄한 느낌은 없지만, 매우 강력한 흡입력과 강력한 중독성으로 인해 사람의 감정을 온통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마력이 강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느꼈던 좀 어색한 느낌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완전히 이 노래에 압도되어 버렸고, 나도 모르게 하루종일 ‘1도 없어를 흥얼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 모습이 신기할 정도랍니다.

 

 

그만큼 이번에 나온 에이핑크의 ‘1도 없어는 흡입력과 중독성이 강한 노래로, 아주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을 것 같습니다.

 

에이핑크가 몇 년 동안 새로운 신곡을 발표했지만, 에이핑크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성적이 다소 부진했던 것이 사실이랍니다.

2016년도에 발표한 내가 설렐 수 있게는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1위에 한번도 오르지 못했답니다.

 

그리고 작년에 발표한 파이브1위에 오르긴 했지만, ‘무직뱅크같은 지상파방송에서는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답니다.

 

2014년에 발표된 러브4주 연속 올킬을 달성하면서, 우리나라 최정상급 걸그룹의 면모를 과시했던 에이핑크가 지난 2년 동안은 러브때의 영광을 다시 구현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고 아쉬움이 매우 컸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11개월 만에 야심차게 발표한 에이핑크의 신곡 ‘1도 없어가 종전의 에이핑크의 이미지를 완전 뒤엎고, 파격적인 무대의상과 강렬하고 걸크러쉬한 컨셉으로 대중들의 눈과 귀를 완전히 압도함으로써

폭풍같은 인기를 얻고 대망의 1위 행진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이번 ‘1도 없어2014년의 러브의 영광을 다시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답니다.

 

2014년도에 발표한 러브가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가 하면, 5개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4주 연속 올킬을 달성하였고, 그 중에서 몇 개의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는 5주 연속 올킬을 달성하기도 했답니다.

 

이번에 발표한 ‘1도 없어가 너무 파격적이고강렬하면서도 멜로디 자체는 너무 아름답고 인상적이어서, ‘러브못지않은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가 크답니다.

 

에이핑크가 이번 신곡 ‘1도 없어를 발표한 지 2주가 지난 현재 시점에서 성적을 살펴보겠는데요.

 

 

‘1도 없어가 현재까지 4개의 가요순위 프로에서 1위를 차지했답니다. ‘더쇼쇼챔피언’, 그리고 대망의 뮤직뱅크인기가요이렇게 2주만에 4개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답니다.

 

지난 2년간의 성과와 비교해본다면, 정말 대단한 성적을 올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3주째가 되는 이번주에도 에이핑크의 ‘1도 없어가 좋은 성적을 올릴 것을 의심치 않는답니다.

 

에이핑크가 컴백한 7월달은 정말 걸그룹 대전이라고 말할 정도로 경쟁이 매우 치열한 한달이랍니다.

 

이미 글로벌스타로 우뚝 솟아오른 블랙핑크, 그리고 정상급 걸그룹인 마마무, 볼빨간사춘기, 거기다가 이번에 컴백한 투와이스까지 우리나라 가요계 정상을 주름잡는 아이돌그룹들이 대거 출전해서, 우승을 다투고 있는 매우 치열한 경쟁상황이랍니다.

 

그런데 벌써 8년차 걸그룹인 에이핑크가 이런 쟁쟁한 아이돌스타들을 물리치고 네 번씩이나 정상을 차지했으니, 정말 대단하고 대견스럽기까지 합니다.

 

 

에이핑크의 이번 타이틀곡 ‘1도 없어는 블랙아이드필승이 작곡한 노래로, 과거에는 사랑했던 남자이지만, 이제는 그남자를 이미 마음에서 떠나버린 여자의 회한과 감정을 그린 노래로, 트로피컬한 느낌의 마이너 팝 댄스곡입니다.

 

에이핑크 한테는 좀 생소한 매우 강렬한 비트의 노래지만, 이번 노래가 크게 히트하고 있고, 대박을 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에이핑크가 그동안 고수해왔던 청순미와 상큼함 대신 요염하면서도 성숙한 멋을 보여주는 신곡 ‘1도 없어는 들으면 들을수록 아주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라는 느낌이 든답니다.

 

이젠 에이핑크가 데뷔한 지 7년이 지났고, 멤버들이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숙해져가는 그녀들의 현재의 모습을 많이 반영한 노래라고 느껴집니다.

 

 

이번 신곡 ‘1도 없어는 에이핑크가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아를 찾아가는 그런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 합니다. 에이핑크도 나이와 연륜에 맞게 그 모습과 스타일도 점점 변해가고 있습니다.


에이핑크멤버들도 이제 20대 중후반인데, 언제까지 소녀처럼 상큼발랄한 노래만 부를 수는 없지요!

 

에이핑크도 점점 연륜이 쌓이면서 컨셉의 변화를 주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일이지만, 그녀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라고 할 수 있답니다.

그럼 에이핑크의 ‘1도 없어를 들으면서, 보다 요염해지고 성숙해진 에이핑크의 매력속으로 푹 빠져들어가 보도록 합시다!

 

에이핑크의 ‘1도 없어뮤직비디오 노래 동영상






 

에이핑크의 ‘1도 없어’ 노래 동영상

 




 

 

 


 

 

  

 

 

에이핑크의 1도 없어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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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회장 사망의 미스터리, 생존설과 타살설

 

세월호침몰사건이 일어나고 유병언시신이 발견된 지도 벌써 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전 세모그룹회장 유병언이 생존해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과연 경찰당국의 주장대로 유병언은 정말 죽었을까, 아니면 유병언은 죽지않고 생존해있는 것일까?

 

최근 방송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유병언 사망에 대한 미스테리를 다루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2014612일날, 한 농부에 의해 전남 순천의 매실밭에서 유병언회장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경찰은 발표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그 시신이 유병언의 시신이 아니라는 강한 의혹이 제기되어왔다.

 

유병언회장은 5월 중순경에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어지고, 여론이 안좋게 흘러가자, 순천에 있는 한 별장에 숨어들었고, 그곳에서 피신해있었다.

 

세상사람들 그 누구도 모르는 비밀가옥인 순천의 한 별장으로 피신해있었던 유병언회장은 여비서 신씨, 운전사 양씨 등 3사람만이 그 별장에 은거해있었고, 가끔씩 금수원의 김엄마가 서울에서 식량을 공수해주고 있었다.

 

세상에서는 세월호침몰사건이 일어나게 만든 배후로 유병언회장을 지목하고 있었고, 유병언회장은 세월호침몰사건으로 점점 수배망이 자신에게로 좁혀오게 되자, 금수원에 있다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은신처인 순천의 별장으로 피신해버렸다.

 

 

그렇게 유병언회장은 여비서 신씨와 운전사 양씨와 함께 세상모르게 순천 별장에서 한가로운 은거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525일날 갑자기 경찰이 그 순천 별장을 급습해 들어갔다.

 

그 당시 경찰이 급습해올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유병언회장과 여비서 신씨는 그 별장에서 탈출할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경찰에 붙잡힌 여비서와는 달리 유병언은 2층에 있는 비밀은신처로 몸을 피신해 경찰에 체포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순천 별장을 급습했던 경찰은 여비서 신씨는 붙잡을 수 있었지만, 2층 비밀공간에 숨은 유병언회장은 찾지못했고, 경찰이 잠시 별장을 비운 사이에, 유병언은 잽싸게 그 별장을 탈출해 달아날 수 있었다.

 

이때가 대략 526일 전후로, 이때부터 유병언회장은 순천 별장 뒷산쪽으로 탈출해서 산속을 배회하면서 피신을 이어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로부터 18일이 지난 612일날, 순천에서 농사를 짓는 박씨가 자신의 매실밭에서 시신 한구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농부 박씨가 자신의 매실밭에서 몸이 전부 부패되고 뼈만 남은 백골상태의 시신을 발견했던 것이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그리고 경찰과 국과수는 이 시신을 정밀부검한 결과, 이 시신의 주인공이 유병언회장이라고 발표했다.

 

세월호 침몰사건의 배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병언회장이 도피생활을 계속 이어가던 도중에, 순천의 한 야산 매실밭에서 백골시신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병언시신이 발견된 후부터, 그것의 진위여부를 놓고 많은 의혹과 음모론이 제기되고 왔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유병언회장의 시신이 가짜라는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중이다.

 

 

유병언시신이 가짜라는 음모론

 

유병언회장의 시신이 가짜라는 주장은 유병언이 주도했던 구원파의 본산인 금수원측과 시신이 발견된 순천 매실밭 부근의 주민들에 의해서 제기되어 왔다.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었을 당시에, 그 시신 외에도 주변에는 소주병과 육포등이 함께 놓여있었다.

 

금수원 신도들은 유병언회장에 건강관리에 철저하고 술을 전혀 마시지않는 분이신데, 유병언 시신 곁에 소주병이 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매실밭에서 발견했던 그 시신은 유병언회장의 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금수원측은 그렇게도 정신력이 강했던 유병언회장이 그렇게 손쉽게 죽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뭔가 음모론이 있다고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그 시신이 발견되었던 순천의 매실밭 주인과 마을주민들도 그 시신이 유병언회장이 아닐 수 있다며 강한 의혹을 드러내고 있다.

 

그 시신이 발견된 매실밭 지역의 주민들이 유병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그 마을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경찰에서는 매실밭 주인이 그 시신을 612일날 발견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그 시신이 발견되었던 시점은 612일보다 훨씬 이전이라고 한다.

 

, 그 시신이 발견된 시점은 세월호 침몰사건이 발생한 날보다도 훨씬 이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일부 마을주민들의 주장은 순천 매실밭에서 발견된 그 시신은 결코 유병언 시신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강동원의원은 매실밭주인이 발견한 시신은 유병언의 시신은 아니며,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기 훨씬 이전에 발견된 노숙자의 시인데, 이것을 갖고 유병언시신이라고 짜맞추기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알고싶다의 취재진이 그 당시 유병언시신을 발견했던 목격자 박씨에 대해 직접 취재를 시도하였고, 목격자 박씨로부터 다음과 같은 목격담을 전해 들었는데, 박씨의 주장이 매우 이채로왔다.

 

그런데 취재결과, 최초의 목격자는 자신이 그 시신을 처음 목격한 것은 4월달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은 그 시신은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난 이후인 612일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는데, 목격자가 그 시신을 본 시점과 엄청난 시간차가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세월호 침몰사건은 416일날 발생했었다.

 

, 그 최초목격자는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 시신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그 시신을 유병언의 시신으로 둔갑시키기 위해서, 그 시신을 본 시점을 가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병언의 시신이라고 추정되는 그 시신은 목격자의 증언과 경찰의 발표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처럼 목격자 박씨와 마을주민들은 그 시신이 유병언의 시신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경찰이 유병언의 시신이라고 억지로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취재결과, 그 시신이 발견된 지역의 목격자와 마을주민들은 그 시신이 유병언의 시신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한 후에도, 유병언을 보았다는 목격담들이 계속 퍼져나왔고, 유병언을 한 강연회에서 보았다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유병언은 경찰의 발표 대로 정말 죽어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일까, 아니면 일부 사람들의 주장대로 유병언은 죽지않고 생존해있는 것일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722일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그 시신을 정밀부검한 결과, 그 시신이 유병언의 유전자DNA와 일치한다는 검사결과를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국과수에서 그 시신을 치밀하게 부검조사한 결과, 그 시신이 유병언회장이 맞다는 최종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그때 발견된 시신은 유병헌의 유전자와 일치하므로, 유병언회장의 시신이 맞다는 것이다.

 

 

설마 국과수에서 거짓된 발표를 할 수가 있을까? 국과수의 이런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도 일각에서는 그 시신이 유병언회장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정부, 자신들의 책임면피용으로 유병언을 희생양으로 삼아

 

이처럼 대중들이 정부와 경찰의 발표를 믿지못하는 이유는, 그 당시 박근혜정부가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인한 자신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유병언회장을 그 희생양으로 삼고서 공작을 벌였다는 불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박근혜정부에서 세월호 침몰사건 당시, 제대로 된 대응조치를 취하지못하고 골든타임을 놓치는 바람에, 세월호의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고 많은 대중들은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세월호 침몰사건당시 정부의 신속한 구조작업이 이뤄지지 않아서 더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정부의 책임론 때문에, 정부가 크게 비판을 받고 곤경에 처하게 되자,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침몰사건의 배후로 유병언쪽으로 그 책임을 몰아가기 위해서,

유병언 관련 사실을 조작하고 있는 불신감 때문에. 유병언 음모론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박근혜정부가 세월호침몰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책음을 회피하게 위해서, 그리고 유병헌회장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키기 위해서, 무리한 공작을 벌이는 과정에서 가짜 유병언시신 음모론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정부가 대중들에게 신뢰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불신감이 생겼고, 유병언시신 가짜론이 양산되었다는 것이다.

 

아뭏튼 유병언시신의 발견시점도 이렇게 차이가 나고, 유병언시신의 국과수 감식결과도 믿지못하는 매우 이례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병언회장은 검찰의 순천 별장을 급습한 그 다음날인 526일경에 별장을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612일날 시신으로 발견된 유병언회장은 과학적인 조사결과, 대략 531일 전후한 날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추정에 의하면, 유병언회장은 별장을 탈출한 후, 4~5일 동안 별장 뒤쪽에 있는 산속을 배회하다가 531일경에 사망한 후, 12일이 지난 후에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유병언회장이 사망한 지 12일만에 이렇게 백골상태가 될 정도로 완전 부패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과연 사람의 시신이 죽은지 12일만에 백골만 남은 상태로 완전 부패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실제 실험을 실시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것이 알고싶다취재진은 돼지시체를 갖다놓고 동일한 조건과 동일한 날짜를 맞추어서 법의학 전문가들 주재로 실제 실험을 실시했다.

 

실제로 돼지가 숨지고 난 후, 야생의 숲속에다 방치된 상태로 10일 동안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실험이 실시되었는데, 10일이 경과한 후 그 돼지 시체는 정말 몰라볼 정도로 엄청나게 부패가 진행되었다.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된 모습과 비슷한 형태로 그 돼지사체는 엄청나게 부패된 상태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4월말에서 5월초에 유병언회장이 사망했을 것이고, 그리고 유병언의 시신은 10일에서 12일만에 완전 부패되어 버리고, 백골상태가 된 것이 실험결과 맞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유병언의 최후 5일간의 행적

 

취재진의 과학적 실험결과를 토대로 해서, 유병언의 최후의 5일간의 행적을 추정해보았다.

 

경찰이 순천의 별장을 급습했다가 돌아간 425일날 저녁이나 그 다음날인 26일날 새벽에, 유병언은 몰래 그 별장에서 탈출해 나갔으며, 그 후 그는 그 별장 인근의 산속에서 5일 동안 생존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유병언회장은 별장을 빠져나갈 때에 고기육포를 갖고 나갔는데, 그의 시신옆에서 발견된 소주병은 유병언회장이 산속 약수터부근에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유병언시신 옆에서 발견된 소주병은 술을 못하는 유병언이 술을 마시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물을 담기위해서 갖고 다녔다고 볼 수 있다.

 

유병언회장은 그 소주병에다 물을 받아서 음료로 사용했을 것이고, 또한 가지고 갔던 육포를 먹으면서 5일 동안을 산속에서 버텨냈을 것이다.

 

그리고 산속에서 5일 동안을 버텨냈지만, 그 사이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으며, 산속에서 예상치못하게 갑자기 큰 비에 맞은 유병언회장이 저체온증이나 급성폐렴 등으로 갑자기 사망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유병언회장의 죽음의 원인은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그가 왜 갑자기 사망했는지, 그리고 그가 자연사했는지, 자살했는지, 아니면 타살되었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병언회장이 죽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며, 순천의 매실밭에서 발견된 그 시신이 유병언의 시신이 맞다는 것도 사실이라는 점이다.

 

국과수의 발표와 여러가지 정황근거들을 토대로 판단해본다면, 결론적으로 유병언은 531~62일 사이에 죽었을 것이고, 그의 시신은 더위와 빗물 때문에 심한 부패가 일어나서, 12일만에 그 시신이 백골상태로 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유병언회장이 죽은 것은 맞지만, 그가 타살되었는지 여부가 큰 의혹사항이다.

 

경찰과 국과수에서는 유병언이 자연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유병언이 타살되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유병언은 박근혜정부의 고위층과의 연루설이 제기되어 왔고, 유병언이 정부 고위층과 연루되었었다는 여러가지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 ‘세월호 침몰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박근혜정부로부터 유병언회장의 계열사에 창조경제 자금이 지원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 유병언회장은 세월호사건 전에 박근혜정부의 고위층에게 대규모의 로비를 벌였었고, 그 로비결과 창조경제 지원자금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세월호 침몰사건의 배후인 유병언회장은 박근혜정부의 고위층과 연류되어 있었는데, 그 사실이 밝혀진다면 박근혜정부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박근혜정부의 비밀공작에 의해서 유병언회장이 타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만일 유병언회장이 죽지않고 살아서 체포되었다고 하면, 그의 입에서 엄청난 진실이 터져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로부터 뇌물을 받은 박근혜정부의 고위층인사는 엄청난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비밀리에 유병언회장을 타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과수에서 유병언회장이 산속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세상에, 5월말에서 6월초의 무더운 날씨에 아무리 비를 맞는다고 하더라도 초여름날에 저체온증에 걸려 죽는다는 것은 결코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더욱이 산속에서는 비를 피할 곳이 엄청나게 많은데, 커다란 나무 밑에서 있으면, 전혀 비를 맞지 않는다.

 

그리고 유병언회장은 평소에 지속적으로 유도와 운동을 해서 몸상태도 매우 건강하며, 청년 못지않은 상당히 단련된 몸을 갖고 있는데, 그런 그가 비를 조금 맞는다고 해서, 초여름의 날에 저체온증으로 죽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뭔가 유병언의 죽음은 석연치않은 점이 많고, 그의 죽음은 아직도 의혹투성이인데, 자연사나 자살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며, 누군가에 의해 타살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인다.

 

평소에 그는 금수원에서 신도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할 때에, 자살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바가 있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위기에 몰린 박근혜정부와의 연루설과 창조자금 지원금 등의 사실애 대한 입막음을 하기 위해서, 유병언회장은 타살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현재 유병언회장의 시신은 금수원의 뒷마당에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검찰과 경찰이 의지만 있다면, 유병언사망에 대해서 다시 조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수원에 묻혀있는 유병언회장의 시신에 대해서 다시 유전자검사를 실시해보면, 그 시신이 진짜 유병언회장이 맞는지를 곧바로 확인할 수가 있다.

 

전국민들의 큰 관심사인 유병언회장 사망에 대해서 뒤늦은 감은 있지만, 검찰과 경찰이 큰 의지와 사명감을 갖고 재수사를 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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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이웃위젯 설치법, 티스토리블로그에 이웃만들기

 

블로거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요.

그냥 취미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마케팅의 목적이나 사업홍보의 목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도 있으며, 블로그를 수익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운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블로거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통목적이 있는데, 바로 내 블로그에 방문자수가 많아지는 것 바로 그것이죠!

 

내 블로그의 방문자수를 늘리는 전형적인 방법은 품질 높은 게시글을 써서 네티즌에게 유익하고 필요한 정보를 많이 주는 것이지요.

품질이 높은 글, 유익한 글을 써서 네티즌에게 감동을 준다면, 내 블로그의 지수가 상승하고 방문자수는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방문자수를 높일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이 있지요. 바로 이웃맺기를 통해서 다른 블로거들과 교류를 하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네이버블로그에는 이웃맺기 기능이 있지만, 티스토리블로그에는 이웃맺기 기능이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네이버블로그처럼 많은 이웃들을 확보해두면, 내 블로그의 방문자수를 증가시키는 데에 분명히 도움이 된답니다.

네이버블로그의 방문자수가 티스토리블로그의 방문자수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티스토리블로그에도 네이버블로그처럼 이웃맺기기능을 설치할 수가 있습니다.

 

티스토리블로그에 이웃맺기기능을 설치하면, 네이버블로그처럼 많은 블로거들을 이웃으로 맺는 것이 가능하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웃맺기기능을 적극 활용한다면, 내 블로그가 더욱 활성화되고, 방문자수 증가에도 적지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티스토리블로그에 이웃맺기기능을 추가하는 방법을 소개해드리겠어요!

 

티스토리 블로그에 이웃위젯 설치하기

 

1. 먼저 네이버의 이웃커넥트 페이지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네이버의 이웃커넥트 페이지에 있는 이웃커넥트 설치하는 항목마다 체크하면 되는데요.

 

http://section.blog.naver.com/sub/InstallConnectWidget.nhn

 

2. 맨 위에 있는 항목에서 다른 블로그로 퍼가기를 체크해줍니다. 네이버의 이웃커넥트는 티스토리블로그나 이글루스에도 설치할 수 있지요.

 

3, 그리고 이웃위젯을 사용할 자신의 블로그 주소를 기입해줍니다.

 

 

4. 그리고 아래 이미지처럼 순서대로 모든 항목에 체크를 해주면 되고, 맨 하단에 있는 퍼가기를 클릭하면 이웃위젯 코드가 출력이 됩니다. 그 출력된 이웃위젯 코드를 복사해 둡니다.

 

 

5. 그리고 내 블로그로 와서 관리자페이지로 들어가서, ‘플러그인을 클릭해 들어가서 태그입력기를 클릭해 사용중으로 만듭니다.

 

 

6. 관리자페이지의 왼편의 꾸미기에 있는 사이드바를 클릭해 들어갑니다.

 

   

7. 그리고 사이드바페이지에서 기본모듈에 있는 태그입력기의 오른쪽 +를 클릭하면, 오른쪽에 있는 사이드바1’에서 태그입력기가 생성됩니다.

태그입력기의 왼쪽부분을 클릭해 드래그하면, 자신이 원하는 위치로 옮겨놓을 수 있습니다.

 

 

8 ‘사이드바1’에 새로 생성된 그 태그입력기편집을 클릭해서, 나타나는 대화상자에서, ‘이름에 적당한 이름을 적어주고, ‘치환자에 아까 복사해두었던 이웃위젯 코드를 붙여넣기 해주고 확인을 클릭해줍니다.

 

 

9, 그리고 하단에 있는 변경사항 저장을 클릭합니다.

이렇게 하면, ‘이웃위젯이 내 티스토리블로그에 설치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내 블로그로 가서 확인해보면, 아래처럼 내 블로그 사이드바 부분에 이웃맺기위젯이 설치된 것이 보인답니다.

 

 

내 티스토리블로그에 설치된 이 이웃위젯을 방문자들이 많이 볼 것이고, 방문자들이 이웃위젯에 있는 이웃으로 추가를 클릭한다면, 내 이웃이 많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블로그를 방문해서 이웃맺기위젯이 설치되어 있을 경우에, ‘이웃으로 추가를 많이 클릭하면, 내 이웃들이 많이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내 블로그의 이웃을 많이 확보한 후에, 이웃들 관리를 잘 해주어야 합니다.

수시로 이웃들의 블로그에 방문해서 댓글을 달거나 공감을 표시해주면 이웃들도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내 블로그를 방문해서 댓글을 다는 등 호응을 해온답니다.

 

이렇게 이웃커넥트를 적극 활용해서 이웃들을 많이 확보하고 댓글쓰기 등 이웃과 적극적으로 소통해나간다면, 내 블로그의 방문자수도 점차로 증가시킬 수 있답니다.

 

그렇지만 이웃위젯을 설치만 해놓고, 이웃확보나 이웃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내블로그의 방문자수 증가에 별 도움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수시로 이웃블로그를 방문해서 공감과 댓글을 다는 등 적극적으로 이웃들과 소통하는 등 관리를 해나간다면, 방문자수 증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내 블로그지수도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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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 이웃위젯을 적극 활용해서, 블로그지수 상승과 방문자수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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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리의 영화 괴인드라큘라’, 공포영화의 정수


드라큐라의 공포 (괴인 드라큐라) 58년작

1958년작 출연자 - 크리스토퍼 리, 피터 커싱, 케롤 마르쉬

 

여름만 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영화 괴기스러운 호러영화 드라큘라.

찜통더위가 온몸을 뜨끈뜨끈하게 데우는 한여름이 되면, 소름이 오싹 끼치는 드라큐라영화만큼 좋은 피서거리는 없을 것이다.

 

영화 드라큐라는 원래 브람 스토커가 쓴 드라큘라라는 책을 영화화해서 만든 작품이다. 소설 내용이 소름이 오싹 끼치는 괴기스러운 내용이라서,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드라큐라20세기 전반에 영화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브람 스토커가 1897년 쓴 소설 드라큘라를 원작으로 해서, 드라큘라를 소재로한 영화가 만들어져 상영되어왔는데, 최초의 드라큐라영화는 1922년도에 제작된 노스페라투였고, 그리고 1931년도에 두 번째 드라큐라영화 드라큘라가 제작 상영되었다.

 

그리고 1958년도에 제작된 크리스토퍼 리 주연의 영화 드라큘라의 공포가 영국의 해머스튜디오에서 제작되어 상영되었는데, 그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들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고 괴기스러운 내용과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으로 인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사실 크리스토퍼 리가 나오기 이전의 드라큘라들은 무섭다기 보다는 매우 허접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는데, 괴기영화라기 보다는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영화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리가 출연하면서 드라큘라영화의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제대로 갖추어졌고, 날카롭고 매서운 외모에다 카리스마 넘치고 강렬한 연기를 구사하는 크리스토퍼 리의 선굵은 연기력에 힘입어서, 그가 열연을 펼친 영화 드라큘라의 공포가 크게 히트한 것이다.

 

많은 영화평론가들이 58년도에 만들어져 상영된 크리스토퍼 리 주연의 공포의 드라큘라를 가장 완성도가 높은 드라큐라영화로 평가하고 있다.

 

이 영화는 그 이전의 영화들에 비해서 분위기가 훨씬 더 음산하고 으스스하며, 공포감과 긴장감이 훨씬 더 컸고, 특히 드라큘라백작으로 분한 크리스토퍼 리의 강렬하고도 카리스카 넘치는 연기력으로 인해서 그 당시 최고의 드라큘라영화라고 큰 호평을 받았다.

 

신세대들은 92년도에 만들어진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영화나, 2014년도에 만들어진 ‘2014년 드라큐라 전설의 시작등의 영화에 더 익숙해있지만, 진정한 드라큘라영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코퍼 리의 드라큘라의 공포가 원작에 훨씬 더 가까울 뿐만아니라, 등꼴이 오싹할 정도로 무섭고 괴기스러운 흡혈귀영화의 정수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리는 키가 196cm의 거구로서, 얼굴생김새 자체가 선이 굵고 냉혈한처럼 생겨서 외모에서 오는 위압감도 상당한데, 그가 검은 망토를 휘날리면서 걸어오면서 노려보는 모습만 보더라도,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역대 드라큘라 연기자 중에서 최고로 무섭고 강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리는 드라큘라 외에도. ‘반지의 제왕시리즈에 출연해서 사루만이라는 악역을 맡아서 눈부신 연기력을 선보였다.

 

얼굴인상도 매섭고 카리스마도 넘치고 또한 연기력도 출중한 크리스토퍼 리 주연의 드라큘라의 공포영화가 역대 드라큘라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수작으로 평가할 만 하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는 괴인 드라큘라라는 이름으로 상영되었다.

 

크리스토퍼 리는 드라큘라의 공포외에도 1976년도 드라큘라영화까지 총 12편의 드라큘라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드라큘라백작의 전형적인 배우로 각인되었다.

 

크리스토퍼 리는 7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재원이었으며, 198편의 영화에 출연할 정도로 왕성한 연기활동을 펼쳤던 영국이 자랑하는 국민배우이다.

 

 

  크리스토퍼 리는 평소에는 매우 신사적이며 점잖은 성격을 갖고 있어서 대인관계도 아주 좋았다고 하며, 덴마크의 모델 겸 영화배우 출신의 부인 비어기트 크룅게와 1961년도에 결혼해서 이혼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54년을 함께 해로하는 등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였다.

 

크리스토퍼 리는 영국여왕으로부터 훈장과 기사작위까지 수여받았는데, 20156월에 심부전증이 악화되어 만 9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실 근래에 나온 드라큘라영화들은 공포영화라기 보다는 오락영화 내지는 전투영화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크리스토퍼 리가 나온 드라큘라영화야말로 진정한 공포영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드라큘라의 공포의 줄거리

 

드라큐라백작 - 크리스토퍼 리

반헬싱 - 피터 커싱

 

클라우젠버그에 있는 드라큘라 성에 조나단이 드라큘라의 사서일을 하기 위해서 찾아오게 된다.

드라큘라 성에 도착한 조나단은 드라큘라백작을 만났고, 자신이 묵게될 객실로 들어가서 여장을 풀었다.

 

그런데 드라큘라성을 찾아온 조나단은 드라큘라가 흡혈귀라는 사실을 알고, 흡혈귀무리를 없애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 조나단은 일종의 흡협귀 사냥꾼인 것이다.

그런데 드라큘라성의 도착한 첫날밤, 조나단은 드라큘라성에서 의문의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로부터 자신의 탈출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허지만 여자흡혈귀였던 그 여인은 조나단을 흡혈하기 위해서 연약한 여자인 척 연기한 것이다.

흐느껴 울면서 조나단의 품속에 안겼던 그 여인은 갑자기 조나단의 목을 물었다.

 

그러자, 마침 그 때 밖에 외출했다가 돌아온 드라큘라백작에게 발각되었고, 드라큘라백작에게 얻어맞는 그 여인을 구해주려는 조나단과 드라큘라간의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 조나단은 드라큘라의 괴력에 의해 내동댕이쳐져서 기절하고 만다.

 

다시 자기숙소로 돌아온 조나단은 그 여자흡혈귀에게 흡혈을 당한 자산의 몸속에 흡혈귀의 피가 들어와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흡혈귀가 된 것을 깨닫게 된다.

 

흡혈귀일당을 없애려고 이 성에 들어온 조나단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안타깝게도 흡협귀가 되어버렸고, 결국 드라큘라백작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영국에 있는 반헬싱은 그의 친구 조나단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데, 자신이 드라큘라성에서 흡혈귀의 마수에 걸려서 흡혈귀가 되어버렸다는 조나단의 편지를 읽은 반헬싱은 곧바로 드라큘라성으로 찾아간다.

 

 

반헬싱은 마침 드라큘라백작이 외출하고 없는 사이에, 드라큘라성의 지하실에서 관속에 누워있는 조나단을 발견하고는 조나단의 가슴에 말뚝을 박아 흡혈귀가 되어버린 그를 죽인다.

 

한편 조나단의 약혼녀인 루시는 한밤 중에 뜻밖에 찾아온 드라큘라의 마수에 걸려서 흡혈을 당하고 앓아눕게 된다.

조나단의 사진을 보고서 루시에게 반한 드라큘라백작이 조나단의 약혼녀 루시의 집을 찾아가서, 그녀의 목을 물어 그녀를 흡협귀로 만든 것이다.

 

루시가 매일 심한 빈혈로 시달리면서 날로 몸이 쇠약해져가자, 루시의 오빠 홈우드와 그의 아내 미나는 의사를 불러서 치료를 받게 하지만, 의사는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루시의 빈혈증상을 계속 심해져만 간다.

 

루시가 빈혈증세를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반헬싱은 루시의 오빠 홈우드를 찾아가서, 드라큘라가 침입할 수도 있으니, 마늘과 십자가를 창문에 놓고 경계할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

 

드라큘라의 의해서 이미 흡혈귀가 되어버린 루시는 어린 소녀와 심지어 자신의 친오빠 홈우드에게 접근해서, 목을 물려고 시도하지만, 그 때에 반헬싱이 나타나서 그녀를 쫒아버린다.

 

 

반헬싱의 슬기로운 대처로 루시의 오빠 홈우드는 화를 면했는데, 자신의 여동생 루시가 흡협귀로 전락한 사실을 알고 매우 슬퍼한다. 여동생 루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 버렸다.

 

반헬싱은 홈우드가 지켜보는 앞에서 관속에 누워있는 루시의 가슴에 말뚝을 박아서, 루시의 목숨을 끊어버린다.

루시가 죽고난 후, 드라큘라백작은 홈우드의 부인 미나를 표적으로 삼고 그녀를 공략할 기회를 엿본다.

드라큘라백작은 소년에게 심부름을 시켜서 남편이 부른다는 거짓전갈을 보내어 미나를 외진 폐가의 지하실로 불러낸 뒤, 그녀의 목을 물어서 그녀를 흡혈귀의 하수인으로 만든다.

 

결국 홈우드의 부인마저도 드라큘라백작에게 흡혈되어서 빈혈증세가  나타나자, 반헬싱과 홈우드는 드라큘라백작을 완전히 멸종시키기 위한 결전을 다지고, 두 사람이 함께 드라큘라성으로 찾아간다.

 

 

드라큘라성으로 찾아간 두사람은 홈우드가 드라큘라와의 싸움에서 부상을 당한 뒤, 반헬싱 혼자서 드라큘라의 비밀거처로 찾아 들어간다.

 

드라큘라의 비밀방에서 만난 두사람은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데, 괴력이 엄청 쎈 드라큘라가 반헬싱을 집어던지는 등 힘으로 완전 제압해버리고, 드라큘라에게 계속 얻어맞던 반헬싱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한다.

 

드라큘라는 원래 빛을 정면으로 맞으면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에, 낮에는 관속에서 잠을 자고, 밤에만 관속에서 나와서 활동하는 어둠의 존재다.

 

그런데, 이렇게 두사람이 싸우는 사이에 날이 밝았고, 창문틈으로 한줄기빛이 새여들어오는 것을 발견한 반헬싱은 간신히 일어나서 창문쪽으로 가서 커텐을 열어제꼈다.

 

 

그러자 밖으로부터 환한 빛이 방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빛을 전면에 맞은 드라큘라는 그 자리에서 마비된 채, 그의 몸은 산산조각으로 부쉬지면서 결국 젯더미로 변해버렸다.

 

 

조나단과 그의 애인을 흡혈귀로 만들고 미나마저도 죽이려고 했던 어둠의 제왕 드라큘라백작은 결국 반헬싱의 계략에 말려들어서, 몸전체가 젯더미로 변해서 소멸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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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 남편 청부살인사건, 범인은 아내와 채무자

 

지난 72일 부산에서 끔찍한 남편 청부살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72일 오후 520분경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에 있는 A씨 집에 갑자기 강도가 침입해서, A씨의 남편을 흉기로 살해하고 강도범행을 저지른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강도범 B씨는 이날 A씨집에 무단으로 침입해서, 남편을 살해하고 난 후 귀가한 A씨의 딸과 A씨를 넥타이로 묶은 후, 현금 240만원을 빼앗아 달아났습니다.

 

, 이날 A씨의 집에서 강도 B씨가 침입해서 70세의 남편을 살해하고 69세의 부인 A씨와 딸은 끈으로 결박한 채, 돈을 빼앗아 달아났던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강도 살해사건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흘만에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현장 CCTVA씨와 B씨의 수상한 행동과 움직임 등이 포착되었고, A씨와 B씨의 전화거래 내역 등에 이상한 대화등이 포착되는 등 수사망이 좁혀져오자, 부인 A씨가 자산이 살인을 청부한 사실을 자수했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외부에서 침입한 단순 강도살해사건으로 보였지만, 이것은 숨진 남편의 69세의 부인과 45세의 지인 B씨가 사전에 공모해서 범행을 저지른 청부살해 사건이었던 겁니다.

 

, 숨진 남편의 부인 A씨가 평소 알고지내던 지인 B씨로 하여금 남편을 살해하도록 청부했고, B씨는 A씨가 문을 열어놓은 틈을 타서 A씨의 집으로 들어가서 남편을 살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강도가 칩입해서 남편을 살해한 것처럼 위장했던 것입니다.

 

부인 A씨가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도록 청부한 이유는, A씨가 지인 B씨에게 남편 몰래 돈 5.000만원을 빌려주었는데, 이를 알게된 남편과 부인 A씨가 다투고 난 후 A씨는 남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부인 A씨는 경찰조사에서 자신의 남편이 오랜세월 동안 자신을 무시하고 폭언을 일삼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혼시절부터 남편이 비누 하나 사는 것 같고도 잔소리를 했다고 부인 A씨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인 A씨의 주장에 모순점이 발견됩니다. 신혼시절부터 1,000~2,000원 밖에 안되는 비누 하나를 가지고도 남편이 간섭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부인이 그렇게 큰 돈 5,000만원을 남편 모르게 지인에게 빌려 줄 수가 있었을까요?

 

 

부인 A씨는 남편이 모든 경제권을 독점해왔다고 주장했는데, 경제권을 모두 가진 남편 모르게 거액의 돈을 남에게 빌려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않습니다.

 

부인 A씨가 자신에 대한 처벌을 경감받기 위해서, 핑계를 댄 것으로 보이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A씨는 지인 B씨에게 돈 5000만원을 빌려준 적이 있는데, B씨에게 자신의 남편을 살해해준다면, 그 빛을 탕감해는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 사업을 할 때에 사업자금까지 대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부인 A씨는 자신과 채무관계에 있는 B씨를 돈을 미끼로 해서 남편을 살해하도록 사주했던 것으로, A씨가 사전에 치밀한 범행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부인 A씨가 남편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부인 A씨와 B씨는 금년 3월경부터 최근까지 2차례 더 남편을 살해하려고 계획을 세웠었는데, 마땅한 범행장소를 찾지 못해서 미수에 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세 번째로 세운 남편살해 계획을 성공시켰던 것입니다. 부인 A씨가 남편을 살해하기 위해서 3번씩이나 계획을 세웠다고 하니, 정말 죄질이 너무 안좋은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입니다. 부인은 남편을 죽인 이유로 남편이 오랫동안 경제권을 쥐고서 자신을 무시하고 폭언을 했다고 하는데, 이런 부인의 주장도 거짓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살해를 저지른 살인범들은 경찰에 붙잡히게 되면, 모두 자신들이 받을 처벌을 최대한 경감시키고 위해서 살해할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들을 만들어 제시해서, 최대한 자신들의 처벌을 경감시키는 시도를 한답니다.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인 것처럼 피해자코스프레를 해서 자신이 받을 처벌의 수위를 한껏 낮추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고, 부부간의 관계는 남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이고, 두사람 외에는 부부간의 관계의 정확한 내막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니까, 자신이 최대한 본인에게 유리한 말만 해서 자신의 죄를 줄여나가는 시도를 한답니다.

 

그러니까, 부인 A씨의 말을 전부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40년 함께 살아온 남편을 죽이면서까지 지인 B씨에게 돈 5,000만원을 빌려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을까요? 자신의 딸이 피땀 흘려서 번 돈으로 ~

그렇기 때문에, 부인 A씨와 그녀가 돈을 빌려준 B씨와의 관계, 즉 두사람이 혹시 내연관계가 아닌지에 대해서도 경찰을 치밀한 수사를 해야합니다.

 

뭔가 안좋은 냄새가 난답니다. 대부분 남편을 청부살해한 사건들에서는 그 청부살해를 실행한 사람은 그 부인의 정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잔혹한 살인사건이 아닐 수 없답니다. 두 부부는 결혼한 후 40년을 함께 동거동락을 해오면서 같이 부부로 살아왔는데,

돈 문제로 다투었다는 이유 때문에, 40년을 함께 산 남편을 이렇게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다니, 정말 끔찍하고 소름이 돋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들이 이 사건을 접한다면, 무서워서 결혼할 생각을 하지못할 것 같습니다.

부부가 서로 함께 살다보면, 때로는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기도 하고, 때로는 돈 문제로 다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부는 함께 살아오면서 사랑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더욱 부부의 정을 쌓아가는 것이랍니다.

 

분명한 것은 부인 A씨가 남편 모르게 거액의 돈을 지인에게 빌려준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더욱이 빌려준 그 돈 5.000만원은 딸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차곡차곡 모아둔 돈이라고 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딸이 나중에 결혼할 때를 대비해서 모아둔 결혼준비자금이라고 하는데, A씨가 이 소중한 돈을 남편과 딸 모르게 남에게 함부로 빌려줬으니, 남편의 입장에서는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부인 A씨는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했는데, 그것을 추궁하는 남편에게 화가 치밀어서 40년을 함께 동거동락해왔던 남편을 살해하도록 사주했다니, 너무 참혹하고 잔인한 패륜범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살인범들에게 98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한번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가 더욱 흉폭화되고 살인사건들이 더 많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20명이나 죽인 연쇄살인범 유영철이나 강호순에게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그들은 편안하고 아늑한 교도소에서 지금도 33끼 다 먹으면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끔찍한 살인범들에게 너무 관대하게 처벌하니까, 잔혹한 살인사건이 더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살인범들에게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모두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더 이상 부부간, 부모자식간 서로 살해하는 끔찍한 흉악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사회에 만연해있는 잔혹한 묻지마 살해사건을 예방하고 위해서라도 살인범들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반드시 사형시켜야 한답니다.

 

처벌이 너무 약하고 범인들에게 너무 관대하니까, 이와같은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이 더이상 끔찍하게 죽는 일이 없도록 흉악한 범죄자들은 반드시 사형을 시켜서 우리사회에 정의를 바로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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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가 환생한 캐나다 여가수 셰리 레아 레어드로

 

마릴린 먼로 (192661~ 196285) 166cm

 

마릴린 먼로는 50~60년대를 풍미했던 허리우드 최고의 여배우이자, 미국 최고의 색시심볼이지요.

 

고혹적인 눈빛과 풍만하면서도 날씬한 완벽한 볼륨몸매, 신들린 듯한 매혹적인 몸짓과 연기력 등 스타로서 갖추어야될 최상의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마릴린 먼로는 50~60년대에 완벽한 여배우였고, 전세계의 수많은 남성팬들을 매료시켰던 글래머스타였답니다.

 

마릴린 먼로는 나이아가라’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7년만의 외출’ ‘뜨거운 것이 좋아등 그녀가 출연한 수많은 영화들이 대히트를 치면서, 50, 60년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글래머 여배우였답니다.

 

이 시기에 마릴린 먼로를 빼놓고는 미국 허리우드영화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미국 영화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많이 끌었던 대표적인 글래머 여배우였고,

영화전문매체에 의해서 미국 역사상 가장 섹시한 여배우 1위에 가장 많이 올랐을 정도로, 역대 최고의 섹시배우로도 명성이 높았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마릴린 몬로는 19628월 자신의 자택에서 석연치않은 이유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한창 인기절정의 시기에, 앞으로 많은 활동이 기대가 되었던 마릴린 먼로는 만 35세의 젊은 나이에 그만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고 말았지요.

 

 

그런데 마릴린 먼로는 죽기 전까지, 케네디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스캔들에 휩쌓여있었고, 이러한 케네디대통령과의 스캔들 때문에, 그녀의 이미지는 많이 훼손되기도 했었답니다.

 

이러한 케네디대통령과의 스캔들이 한참 퍼지고 있던 와중에, 마릴린 먼로가 갑작스럽게 사망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녀의 죽음이 약물과다 복용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서 암살당했다는 소문도 퍼지기도 했습니다.

, 케네디대통령과의 스캔들을 덮기 위해서, 정치적인 음모로 살해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그런데 마릴린 먼로는 존 F 케네디대통령 뿐만아니라, 그 동생이자 상원의원이었던 로버트 케네디와도 교제를 하고 있는 등 한마디로 말해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마릴린 먼로는 60년대 들어 사생활이 다소 문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는데, 로버트 케네디가 정치적인 이유로 그녀를 죽이도록 한 의사에게 사주를 하였고,

그 의사는 그녀에게 독극물을 주입해서 살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마릴린 먼로의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수면제 과다복용설과 암살설 등 몇가지 사망이야기가 나돌고 있는데, 분명한 것은 그녀가 62년도에 35세의 젊은나이에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릴린 먼로가 죽고 난 후, 수십년이 지난 시기에 캐나다의 한 여가수가 자신이 마릴린 먼로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졌답니다.

 

캐나다의 여가수 셰리 레아 레어드, 자신은 마릴린 먼로의 환생

 

셰리 레아 레어드라는 이름의 캐나다 여가수가 난데없이 자신이 마릴린 먼로의 환생이라는 주장을 펼쳤는데요.

 

 

셰리 레아 레어드가 마릴린 먼로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셰리 레아 레어드는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한 후 캐나다로 이주했는데, 캐나다에서 그룹 서크의 멤버로 가수활동을 활발하게 벌여왔던 인기가수랍니다.

 

그녀는 불렀던 노 오디너리 러브는 유럽권에서 앨범차트 1위에 올랐을 정도로, 셰리 레아 레어드는 캐나다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유명가수였답니다.

 

이렇게 혼성그룹의 리드싱어로서 캐나다에서 왕성한 가수활동을 해왔던 셰리 레아 레어드는 어느날부터 갑자기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녀의 가슴통증은 쉽게 가라 앉지않고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다고 하는데, 그녀는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고 치료도 많이 받아보았지만, 그녀의 가슴통증은 쉽게 낳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셰리 레아 레어드는 어느날 아주 특별한 경험을 겪게 되는데요. 그녀는 갑자기 마릴린 먼로의 환영이 보이기 시작했고, 마릴린 먼로가 죽기 마지막날의 그 모습이 그대로 그녀의 눈앞에 선명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마릴린 먼로가 자신의 집 침대위에 쓰러져서,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 죽어가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마릴린 먼로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레어드 자신도 마릴린 먼로와 똑같이 죽음의 고통을 느꼈다고 합니다.

 

 

마릴린 먼로의 고통이 남의 고통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겪는 고통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또한 레아 레어드는 TV에 나오는 케네디대통령의 모습을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TV나 잡지에서 케네디 전대통령의 모습을 한번이라고 보기라고 하면, 엄청난 슬픔을 느끼면서, 아쉬움에 사무쳐서, 눈물이 눈을 가릴 정도로 엄청나게 흘러내렸다고 합니다.

 

원래 죽기 전에 마릴린 먼로는 케네디 전대통령과 서로 끈끈한 연인관계로 지내왔습니다.

 

레아 레어드가 TV에서 케네디대통령을 보았을 때에, 케네디대통령이 마릴린 먼로를 떠났을 때의 그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고 하며, 레아 레어드는 마치 자신이 케네디대통령에게 버림을 받은 것처럼 한없는 슬픔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 케네디대통령에게 버림을 받았을 때에, 레아 레어드는 마릴린 먼로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슬픔은 자신도 느꼈다고 합니다.

 

셰리 레아 레어드가 느꼈던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그녀는 마릴린 먼로가 아주 어렸을 때에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일들, 그리고 어머니와 헤어졌던 일들, 그리고 마릴린 먼로가 성인이 되어서 결혼을 하고, 영화배우로 활동했던 여러가지 일들이 모두 머릿속으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이처럼 셰리 레아 레어드는 마릴린 먼로가 경험했던 여러가지 경험들과 슬픈 일들이 마치 자신이 직접 겪은 일처럼 똑같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셰리 레아 레어드는 마치 자신이 마릴린 몬로의 화신인 것처럼, 마릴린 먼로가 경험한 환영들이 자꾸 떠올랐고, 그녀의 고통을 자신도 똑같이 느끼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셰리 레아 레어드는 수년동안 계속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고, 그녀는 이같은 고통을 멈추고 싶어졌습니다.

 

셰리 레아 레어드는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러병원들을 찾아가서 고통을 호소했지만,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그녀의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고, 그 고통을 치유시키지도 못했답니다.

 

그러다가 셰리 레아 레어드는 1998년도에 캘리포니아주의 유명한 최면치료의 권위자이자, 신경정신과 의사인 아드리안 핀켈슈타인을 찾아가게 되었는데요.

 

아드리안 핀켈슈타인박사는 셰리 레아 레어드를 상대로 최면을 걸어서 그녀가 전생에 겪었던 경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마릴린 먼로는 어렸을 적에 자신의 친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는 등 매우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면요법 통해서 레아 레어드는 마릴린 먼로의 7살 이전에 겪었던 일들을 상세하게 기억해내었으며, 일반사람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마릴린 먼로의 가족과 친척들의 세밀한 부분까지 모두 알아맞혔다고 합니다.

 

, 셰리 레아 레어드가 말했던 전생의 기억들은 마릴린 먼로의 실제의 삶과 그대로 일치했다고 합니다.

 

또한 마릴린 먼로의 필체와 셰리 레아 레어드의 필체는 똑같았으며, 두사람의 말투나 언어 및 단어사용 패턴도 매우 유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사람이 노래를 부를 때의 목소리나 음성패턴도 매우 똑같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마릴린 먼로와 셰리 레아 레어드의 이마와 광대뼈, 턱뼈의 크기나 형태도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아드리안 핀켈슈타인박사는 셰리 레아 레어드에 대해서 98년도부터 2005년도까지 7년 동안 연구분석을 해왔는데, 핀켈슈타인박사가 내린 결론은 셰리 레아 레어드가 마릴린 먼로의 환생이 맞다는 것이었답니다.

 

아드리안 핀켈슈타인박사의 7년 동안의 연구분석 결과, 셰리 레아 레어드는 머릴린 몬로가 환생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발표했답니다.

 

 

그렇지만 이와같은 핀켈슈타인박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레아 레어드가 유명세를 얻기위해서 쇼를 벌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셰리 레아 레어드는 유명메체와의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유명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겪고있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내자신의 삶을 되찾고 싶을 뿐이라고 주장했답니다.

 

마릴린 몬로가 살아있을 때에, 그녀의 친한 친구이자 작가인 태드 조단은 셰리 레아 레어드와 대화를 나눈 결과, 생전의 마릴린 먼로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셰리 레아 레어드의 습성이나 말투가 마릴린 먼로와 거의 똑갔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셰리 레아 레어드 정말로 마릴린 먼로가 환생한 것이 맞을까요?

 

필자의 견해로는 그동안 셰리 레아 레어드가 겪었던 모든 일들을 종합해본다면, 그녀가 마릴린 몬로의 환생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세상에는 명배우 마릴린 먼로에 대해서 알려진 사실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유명한 배우라고 하더라도, 그녀의 가족의 세밀한 부분이나 친척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최면요법을 실시한 결과, 셰리 레아 레어드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마릴린 먼로의 상세한 가족이야기와 친척들의 이야기까지 세밀하게 다 알고 있었지요.

 

그리고 세상에 한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마릴린 먼로가 엄마와 헤어지지 전의 이야기까지 레아 레어드는 상세하게 알고있었답니다.

 

이렇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여배우의 매우 사적인 부분들까지도 상세하게 알고있었다면, 그것은 셰리 레아 레어드가 초능력자이거나, 전생에 마릴린 먼로이었거나 둘 중의 하나인 경우랍니다.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자신의 전생을 기억해내는 아이들이 매우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매우 어린 4~5살의 세상물정 하나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전생을 세밀하게 기억내는 사례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답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는 물론 이집트, 인도 등 전세계의 곳곳에서,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셰리 레아 레어드

 

글자도 읽지못하고 인터넷도 전혀 할 줄 모르는 4~5살의 어린아이들이 오래전에 사망했던 전혀 연고관계가 없는 어떤 특정인의 인적사항을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어린아이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4~5세로 글자를 전혀 읽지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특정인의 정보를 인터넷에서 수집하는 것이 불가능하답니다.

 

그런데도 4~5살밖에 안되는 집에서만 지내던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전생이라고 기억해낸 특정인이 실제로 과거에 살았다고 죽었던 특정인의 삶과 일치했고, 그 아이들이 기억해낸 그 특정인들의 인적사항이 실제의 상황에 100% 맞아떨어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생이나 환생을 대입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현재 세계의 곳곳에서는, 전생을 기억해내고 자신이 환생을 했다고 주장하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랍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루크와 하산의 경우랍니다. 이 아이들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을 검색해보면 자세히 나온답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해내는 특정인들에 대한 기억들이 실제의 상황과 똑같이 들어맞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생과 환생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50, 60년대의 세계적인 글래머스타 마릴린 먼로는 비록 억울하게 절명했지만, 한을 갖고 죽은 그녀는 죽자마자 곧바로 3개월만에 다시 셰리 레아 레어드라는 여성으로 환생했고,

그녀는 원래 갖고있었던 자신의 노래와 예술에 대한 끼를 되살려서, 또다시 가수라는 연예인이 되어서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이랍니다.

 

그렇지만 원래 그녀의 전생인 마릴린 먼로의 삶에서 실연을 당하는 등 큰 상처를 가슴속에 갖고있었던 그녀는 또다른 환생의 삶에서도 그 상처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생의 고통이 계속 이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릴린 먼로에서 셰리 레아 레어드라는 여성으로 환생된 삶을 다시 살게되었지만, 두 여인은 비슷한 외모구조와 목소리, 필체, 습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단 한번의 삶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환생해서 또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전생은 현생의 얼굴이자 보상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전생의 삶은 현생의 삶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친답니다.

 

그렇기에, 다음생인 환생에서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더욱 정직하고 성실하며, 착하고 참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들의 다음생애에 환한 꽃길만이 우리 앞에 놓여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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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을 잡아주고 혈관건강에 좋은 생들기름과 메밀 청혈밥만드는 법

 

현대인들은 염증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데요. 우리의 잘못된 식생활과 공기의 흡입을 통해서, 그리고 각종 세균의 작용으로 인해서 우리몸에 염증이 생기게 된답니다.

 

그런데 우리몸에 염증이 생기게 되면, 그 염증에서 염증물질이 나와 몸전체에 퍼져서 온몸에 염증이 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염증이 많이 생기게 되면, 그 염증들로 인해서 심혈관계질환에 걸릴 수 있고, 염증이 심한 경우에 암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특히 혈관에 염증이 생기면, 이 염증물질이 혈관을 타고 몸전체에 퍼지게 되어, 몸의 이곳저곳에 염증이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혈관벽에 염증이 생긴다면, 이 염증으로 인해서 혈전이 생기게 되고, 혈전으로 인해 혈관이 탁해지고 혈관이 좁아지면서, 혈액이 잘 순환되지 않아서 동맥경화, 뇌경색 같은 심혈관질환에 걸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몸에 염증이 많이 발생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훨씬 더 높아진다고 합니다.

 

남자의 경우, 염증이 자주 발생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34%나 더 높아진다고 하며, 여자의 경우에는 염증이 자주 발생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29%나 더 높아진다고 합니다.

 

 

치주염은 치주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인데, 치주에 있던 염증물질이 혈관을 통해서 뇌로 이동하게 되고, 이것이 뇌로 들어가는 혈관으로 들어가서 또다시 염증을 일으키고, 결국 뇌혈관을 막아서 치매에 걸리게 됩니다.

 

이렇게 치주염에 걸린 사람들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70%나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염증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그 염증물질이 혈관을 타고 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또다른 염증이나 질환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내몸에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이 건강을 위해 중요하답니다.

 

또한 관상동맥에 염증이 생겨서 혈관을 좁게 만들거나, 혈관이 막히게 되면, 돌연사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염증이 발생하는 것을 그냥 방치한다면, 더 큰 질병이 찾아와서 우리의 건강을 크게 위협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몸의 장기나 혈관속에 염증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답니다.

 

 

그런데 암과 심혈관질환을 불러올 수 있는 염증을 없애주고, 혈관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식품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오메가3메밀이 염증제거와 혈관건강에 매우 좋은 식품이라고 합니다.

 

염증제거와 혈관건강에 좋은 메밀과 생들기름

   

메밀은 성질이 차가워서 몸속의 염증을 가라앉혀주는 작용을 하며, 몸속의 독소를 제거해주는 해독작용이 뛰어난 식품입니다.

 

동의보감엑도 메밀1년동안 위와 장에 쌓인 안좋은 것들을 모두 빼내어준다고 기록될 정도로, 메밀은 장속의 독소나 노페물을 빼주는 데 좋은 작용을 한답니다.

 

특히 메밀에는 루틴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루틴이 혈관벽의 염증을 없애주고 혈관벽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동맥경화나 뇌경색 같은 심뇌혈관계질환의 예방에 아주 좋습니다.

 

이처럼 메밀의 루틴성분은 혈관벽을 튼튼하게 만들어주고, 혈압을 내려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고혈압환자가 섭취하면 혈압을 내릴 수 있고, 혈관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들기름에는 오메가 3가 들어있는데, 오메가 3는 혈전을 없애주고, 혈액이 응고되는 것이나 혈전의 생성을 막아주기 때문에, 오메가 3가 들어있는 들기름도 염증제거나 혈관건강에 아주 좋은 식품입니다.

 

그냥 들기름보다는 생들기름이 더욱 효능이 좋다고 합니다.

생들기름은 저온에서 압축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오메가 3의 함량이 그냥 들기름도다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생들기름에는 오메가 3 지방산이 60%나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염증제거나 혈관건강을 고려한다면, 오메가 3가 풍부한 생들기름을 섭취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랍니다.

그리고 참기름에도 오메가 3가 함유되어 있지만, 참기름보다 들기름이 오메가 3의 함량이 무려 50배나 더 많다고 합니다.

 

이처럼 염증을 잡아주고 혈관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두 식품 메밀과 생들기름을 혼합해서, 청혈밥을 만들어 먹으면, 암과 심혈관계질환, 뇌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생들기름과 메밀로 만드는 청혈밥상’ 만들기 

 

메밀과 생들기름 모두 염증배출과 혈관건강에 좋은 식품들이기 때문에, 이 두가지를 혼합한 청혈밥을 만들어 먹는다면, 그 효과는 훨신 더 높아진답니다.

 

그럼 염증을 없애주고 심혈관질환을 예방해주는 메밀 청혈밥상을 만들어보도록 하겠어요!

 

재료 - 쌀과 깐메밀 8:2의 비율, 맛간장 한스푼, 생들기름 한스푼, 물 반큰술, 파 반큰술, 다진 당근 반큰술, 고춧가루 반큰술, 통깨 반큰술

 

1 메밀을 씻을 때에는 동그란 채로 받혀서 흐르는 물에 살짝 먼지를 턴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씻어준다. 메밀을 너무 세게 씻어주면 메밀 속의 좋은 영양성분들이 없어지기 때문에, 살짝 가볍게 씻어주는 것이 좋다.

 

   

2 쌀과 메밀의 비율을 8:2의 비율로 해서, 쌀과 메밀을 섞어서 밥통에 넣고 안쳐준다.

 

 

메밀을 질감이 좀 거칠기 때문에, 거친 질감을 없애주기 위해서는 메밀과 쌀을 8:2의 비율로 커다란 대접에 함께 넣고, 물을 부어서 약 2시간 동안 물에 불린 후에 안쳐주는 것도 좋다.

 

 

메밀에서 약간 텁텁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메밀쌀을 안칠 때에는 청주 한스푼을 넣어서 섞어주면 냄새를 없앨 수 있다.

 

 그런데 매밀밥을 만들 때에는, 매밀밥의 밥맛을 더욱 좋게 하기 위해서, 양념장을 만들어서 비벼먹으면 금상첨화이다.

 

메밀처럼 염증제거와 혈관건강에 좋은 들기름을 사용해서 양념장을 만드는 것이 좋다.

 

3. 그릇을 준비하고, 그릇에 맛간장 한스푼, 생들기름 한스푼을 넣는다.

 

 

4. 그 그릇에 물 반큰술과 파 반큰술을 붓는다.

 

 

5, 그리고 그릇에 다진 당근, 고춧가루 반큰술, 통깨 반큰술을 넣고 잘 섞어주면 양념장이 완성된다.

 

 

메밀밥이 완성되면, 이 메밀밥을 밥그릇에다 넣고 금방 만든 양념장을 두스푼 정도 넣어서 비벼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랍니다.

 

 

그냥 메밀밥만 만들어 먹는 것보다, 이처럼 고소한 양념장을 만들어서 비벼먹으면 맛이 훨씬 좋고 고소해서, 몸에 좋은 메밀 청혈밥을 즐기면서 먹을 수가 있지요.

 

그리고 이 양념장은 메밀밥뿐만 아니라, 나물무칠 때에도 넣어서 먹으면, 감칠맛이 나고 맛과 풍미가 좋습니다.

 

그러나 메밀이 몸에 좋다고 해서 너무 많이 섭취하면, 소화불량이나 설사를 할 수 있답니다.

메밀의 하루 섭취권장량은 200g으로 두컵 정도 먹는 것이 좋고, 들기름의 하루 섭취권장량은 세 큰술입니다.

 

지금까지 메밀과 생들기름으로 재료로 만드는 청혈밥상만드는 법을 소개해드렸습니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청혈밥상을 많이 만들어 드셔서, 염증도 제거하고 심혈관계질환도 예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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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부비만에 좋은 음식, ‘단백질만능 주먹밥만드는 방법, 심혈관계질환 치료법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의하면, 해마다 전세계의 260만명이 비만과 관련된 질병에 걸려서 사망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비만은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비만은 단순한 미관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좀먹는 하나의 질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만 때문에 여러 가지 질병이나 성인병이 유발되기 때문이지요.

 

비만 중에서도 특히 내장비만이 큰 문제가 되는데요. 내장에 지방이 많이 쌓이면, 이 내장지방이 갖가지 염증을 발생시킨답니다.

 

우리가 나쁜 식습관에 의해서 몸속에 지방이 많이 쌓이게 되면, 내장 사이사이에 지방덩어리가 잔뜩 쌓여서 염증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지방에서 사이토카인이라는 염증성 물질이 생성되는데, 이 지방세포에서 계속해서 이 염증성물질을 만들어내고 그 염증성물질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펴져서, 이곳 저곳에서 염증성질환을 일으키게 된답니다.

 

 

그래서 지방은 염증을 만드는 염증공장이라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염증성질환이 계속 심화되면, 각종 성인병에 노출되게 된답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나이가 있는 중년층이나 장년층분들은 비만이 되지 않도록 몸관리를 잘 해야합니다.

만일 비만관리를 하지 않아서, 비만이 심해지면 대사증후군이 발생하게 됩니다.

 

대사증후군은 혈압이 높아지고, 혈당수치가 올라가며, 고지혈의 증상이 생기는 등, 이러한 안좋은 질환들이 함께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 대사증후군은 고혈압과 고혈당, 고지혈 등의 증세가 함께 나타나게 되면서, 대사가 잘 안되는 취약한 몸상태를 말하며, 이런 대사증후군 상태가 심해지면 성인병에 더 쉽게 걸릴 수 있답니다.

 

대사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정상인에 비해서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10배나 높으며, 심혈관질환에 걸릴 확률은 정상인보다 4배나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는 대사증후군을 일으키는 주원인은 바로 복부비만(내장지방)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장지방(복부비만)을 그냥 방치하면, 이것이 대사증후군을 발생시키고, 이 대사증후군이 심해지면,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 등의 각종 성인병에 걸리게 되는 원리입니다.

 

 

대사증후군 자체가 큰 병은 아니지만, 이 대사증후군을 그대로 방치하면, 심각한 성인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대사증후군을 성인병 시한폭탄이라고 부른답니다.

 

이렇게 나중에 심각한 질병을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대사증후군인데,. 우리 국민 중에 30% 정도가 대사증후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 대사증후군은 우리의 잘못된 식습관이나 생활습관 때문에 걸리게 되는 것이어서, ‘생활습관병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내가 대사증후군에 해당하는 지를 알아볼 수 있는 진단법이 있는데, 아래 도표에서 3가지에 해당한다면, 바로 자신이 현재 대사증후군의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당뇨병이나 동맥경화, 뇌졸중 같은 심각한 성인병을 유발시킬 수 있는 대사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장지방 등의 비만을 해소하고, 식습관을 잘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뇨병, 뇌졸중, 심근경색 같은 성인병에 걸리지않기 위해서는 대사증후군의 근본원인이 되는 내장지방(복부비만)을 해소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답니다.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네요1

 

성인병의 시한폭탄인 대사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비만 특히 복부비만을 해소하는 것이 핵심포인트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미관상의 문제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복부비만이 이렇게 심각한 질병들을 불러오는 근본원인이 된다는 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지금부터라도 복부비만이 심각한 질병의 근본원인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복부비만의 해소를 위해서 관리를 잘해야만 합니다.

 

 

복부비만을 해소할 수 있는 식이요법, 단백질만점 주먹밥

 

 

방송 엄지의 제왕에서는 2명의 사례자를 대상으로 2주 동안의 비만정복 프로젝트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49세의 김영철씨는 2년전부터 살이 급격히 찌면서 당뇨병의 진단을 받았는데요.

비만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는 57세의 여성 김미화씨는 살이 많이 찌면서 몸의 곳곳이 아프고, 고혈압, 고지혈증, 고혈당의 증세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 대사증후군의 증세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두사람을 대상으로 2주 동안 비만정복 프로젝트를 실시했는데, 바로 단백질만점 주먹밥을 만들어 섭취하도록 했답니다.

 

2주 동안의 프로젝트 후에, 두사람 모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답니다.

김미화씨는 원래 체중 85.4kg에서 2주간 프로젝트 후에, 82kg으로 3.4kg이 감소되었고, 허리둘레는 110.5cm에서 프로젝트 후에는 98cm12.5cm나 줄어들었답니다.

 

그리고 김영철씨는 체중 103,7kg에서 97.3kg으로 6.4kg이 줄었고, 허리둘레는 118.5cm에서 103cm으로 15cm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외형적인 변화 말고도, 김미화씨는 심했던 변비와 관절통증이 실험 후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김형철씨는 원래 당뇨증세가 있었는데, 원래 공복혈당이 174에서 실험 후에는 73으로 큰폭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체중과 복부비만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은, 두사람이 2주 동안 매일같이 단백질만점 주먹법을 먹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단백질만점 주먹밥은 탄수화물, 지방 같은 칼로리가 높은 식단은 배제하고, 단백질과 채소 위주의 살이 찌지 않는 식단으로 만들어 먹는 프로젝트랍니다.

 

이처럼 복부비만의 해소 뿐만 아니라, 당뇨병, 변비, 관절통증까지 치유되게 만든 단백질만점 주먹밥을 만드는 법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어요.

 

 

단백질만점 주먹밥만들기 레시피

   

재료 - 현미쌀 한컵(종이컵), 삶은 달걀 4, 시금치 3(종이컵), 참기름 한스푼, 깨소금 한스푼, 간장 반스푼 - 하루 분량

   

1. 먼저 현미밥을 만들고, 종이컵으로 한컵 분량의 현미쌀에 해당하는 현미밥을 만들어서 대접에다 넣는다.

여기서 양이 종이컵 한컵 분량의 현미쌀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현미밥으로 만들면 그 양이 훨씬 더 늘어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2. 닮걀 4개를 삶아서, 그 삶은 달걀을 현미밥을 넣은 대접에다 넣어서, 숟가락으로 으깨면서 저어준다.

 

 

3. 그리고 종이컵 3컵에 해당하는 시금치를 먹기좋게 대친 후에, 이 시금치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대접에다 넣고 현미밥과 잘 섞어준다.

 

 

 

4. 참기름, 깨소금 한스푼, 간장 반스푼을 넣고 잘 섞어준다.

 

 

4. 대접안에 있는 재료들을 손으로 동그랗게 뭉쳐서 주먹밥으로 만들어주는데, 주먹밥 3개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주먹밥은 한사람이 하루에 먹는 식사분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먹밥을 3개로 만들어서, 아침, 점심, 저녁 때마다 각각 한 개씩 먹으면 됩니다.

 

이 양이 남자한테는 좀 적다고 느낄 수 있는데, 여기에 삶은 계란 2개 정도를 더 추가해도 괜찮답니다.

 

여기서 시금치 재료 대신, 다른 잎사귀 채소 재료를 사용해도 괜찮아요.

단 상추, 깻잎, 배추 같은 잎사귀 채소를 사용해야 하며, 홍당무 같은 열량이 높은 것은 안된지요.

 

현미밥과 계란, 시금치 3가지재료를 사용해서 이렇게 단백질만점 주먹밥을 만들어 먹는다면, 복부비만도 줄일 수 있고, 대사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당뇨병, 심혈관질환도 완화시키거나 예방할 수 있습니다.

 

 

현미밥과 계란, 시금치의 3가지 재료로만 계속 주먹밥을 만들어먹으면, 나중에 질릴 수도 있기 때문에, 재료를 바꿔서 주먹밥을 만들어먹어도 된답니다.

 

기름기가 적은 돼지고기 앞다리살(60g)과 양배추를 현미밥과 썩어서 주먹밥을 만들어 먹어도 됩니다.

 

위의 주먹밥과 만드는 원리는 동일하답니다.

물론 돼지고기 앞다리살(60g)은 먹기좋게 삶아서 준비하고, 양배추는 먹기좋을 정도로 데쳐서 준비하고, 두재료를 모두 먹기좋은 크기로 잘라서 현미밥과 섞어 버벼서 주먹밥을 만들면 됩니다.

 

뱃살도 빼주고, 대사증후군도 해소해주며, 당뇨병과 심혈관계질환 등의 각종 성인병을 예방해주고, 치유해줄 수 있는 단백질만능 주먹밥많이 만들어 드시고, 건강한 웰빙생활을 즐기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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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황제 측천무후의 악행, 남성편력, 초상화

 

측천무후 624217~ 7051216

 

중국에서 3대 악녀로 일컬어지는 여인들이 있는데, 바로 여후와 서태후, 측천무후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 세명의 여인들은 당대 최고의 권력의 정점에 있었고, 또한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으며, 사리사욕에 사로잡혀서 나라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권력의 여인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권력욕심이 강했던 여인으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측천무후는 정말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손색이 없는 여인이다.

 

이 세상에 자기 친자식까지 죽이면서, 황제의 자리를 빼앗을 여인이 있겠는가?

그런데 여기 친자식을 죽이면서까지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유일무이한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측천무후가 그 주인공이다.

 

여황제의 자리에 올라서 최고의 권력과 전횡을 휘둘렀던 측천무후는 희대의 악녀라는 평가와 함께, 어지러운 시절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나라를 반석위에 올려놓았던 현군이라는 두가지 이미지를 함께 갖고있는 아주 특이한 인물이다.

 

측천무후는 최고의 권력을 얻기위해서 자신의 친딸과 아들까지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고, 여황제에 오르고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무렵에는 수천명의 남성들을 궁궐로 끌여들여서, 후안무치한 쾌락을 벌였던 여황제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진나라의 진시황제 못지않은 엄청난 쾌락과 남색을 즐겼던 측천무후는 음탕한 요부라는 불명예스러운 닉네임을 갖고 있는 여황제로 유명하다.

 

이렇게 측천무후는 음탕한 요부이자, 희대의 악녀라는 안좋은 이미지를 갖고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한 시기에 당나라를 굳건한 반석위에 올려놓았던 여걸이라는 평가도 동시에 갖고있는 등 한마디로 정의내리기가 힘든 이중적인 성향의 인물이다.

 

그럼 측천무후가 어떻게 당나라 황제의 황후의 자리에 올랐으며, 여황제의 자리에 올랐는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측천무후의 원래 이름은 무조인데, 그녀는 14살이었던 636년도의 어느날 궁궐로 입궁해서 궁녀가 되었다.

  무조(측천무후)가 궁녀가 되었을 때는 당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군주였던 당태종이 황제로 군림했던 시절이었다.

 

무조는 원래 야심이 매우 큰 여성으로서 자신이 낮은 직책인 궁녀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고, 그녀의 가슴속에는 항상 권력의 최정상에서 군림하는 황제의 황후가 되고자 하는 원대한 야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당태종이 황후의 죽음 이후에, 몹시 외롭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무조는 한가지 계략을 생각해낸다.

 

  측천무후 초상화

 

당태종이 외국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는 명마 한마리가 있었는데, 그 명마가 몹시 사나와서 길들이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무조는 내시의 추천을 받아서 당태종를 알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그 말은 원래 주변의 조궁국으로부터 선사받았던 명마인데, 어찌나 사나운지 아무도 그 말을 길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당태종의 앞으로 나아갔던 무조(측천무후)는 당태종에게 쇠채찍과 쇠망치, 비수의 세가지만 있으면, 능히 그 사나운 말을 길들일 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당태종이 무조의 말에 흥미를 느끼고 그 연유를 묻자, 무조는 먼저 그 사나운 말에게 쇠채찍을 때려서 말을 들게하고, 그레도 말을 안들으면, 쇠망치로 엉덩이를 힘껏 때린다면, 그 말이 엄청난 통증 때문에 말을 듣게될 겁니다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러자, 당태종이 그러면 비수는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이냐 라고 묻자, 무조는 만약 그 사나운 말이 쇠망치로 때려도 끝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 말은 쓸모없는 말이기 때문에, 비수로 찔러서 죽이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당태종은 무조의 이와같은 당돌하고도 명쾌한 말에 몹시 감탄을 했으며, 이때부터 무조에게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무조는 당태종의 후궁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커다란 금성이 며칠동안 밝은 빛을 비추면서 하늘에 계속 나타나자, 당태종은 별자리를 보고 운세를 점치는 태사령을 불러서 그 이유를 물었다.

 

태사령은 당태종에게 장차 나라에 큰 환란이 일어나게 됨을 미리 알려주는 징조라고 말하면서, 황상의 후궁이 된 무조는 역상을 지니고 있어서, 그녀의 세력들에 의해서 장차 황제의 후손들을 축출하고, 무씨의 천하를 만드는 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간하였다.

 

이같이 무조 때문에 장차 역모가 일어날 수 있다는 태사령의 말을 들은 당태종은 이 때부터 무조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조(측천무후)의 미모는 당시 상당히 예뻤다고 하는데, 궁녀시절 무조는 자신의 이름보다도 무미랑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고 한다.

 

측천무후의 궁녀시절 별명인 무미랑은 예쁘게 생긴 무씨여인이라는 의미를 갖고있으므로, 젊은 시절에 측천무후는 상당히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정도로 빼어난 미모가 있었으니까, 아버지 태종과 아들 고종의 부자를 모두 사로잡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얼마 후 당태종은 병을 얻어서 앓아눕게 되었는데, 무조는 당태종의 침실에서 병시중을 드는 일을 맡아보고 있었다.

이때 당태종의 병문안을 왔던 아들 이치(훗날 고종)는 당태종의 병시중을 드는 무조를 보고 한눈에 홀딱 반해버렸다고 한다.

  

무조(측천무후)를 보고 그 미모에 홀딱 반했던 이치(고종)는 나중에 태종이 죽은 후에, 무조를 궁궐로 불러들여서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다.

 

원래 황제가 죽으면, 그 황제를 모시던 후궁과 궁녀중에 자녀를 출산하지 못한 후궁들은 모두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는 것이 그 당시의 법도였다.

무조도 당태종이 죽자, 법도에 따라서, 감업사라는 절에 들어가서 비구니가 되었다.

 

그리고 태종의 뒤를 이어 태종의 아들 이치가 당의 황제인 고종으로 즉위하였는데, 고종은 무조를 잊지못하고 종종 절 감업사를 찾아가서 무조(측천무후)와 사통하곤 하였다.

 

당시 궁궐에서는 황후 왕씨와 소숙비 사이에 고종의 총애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과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고종의 황후 왕씨는 고종이 절에 있는 무조와 사통을 즐긴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연적 소숙비를 견제하고 제거하기 위해서, 무조를 궁궐로 불러들여서 고종의 후궁이 될 수 있게 도와줬다.

 

, 황후는 고종이 소숙비에 푹 빠져 있자, 소숙비에 대한 고종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무조(측천무후)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무조가 얼마나 교활한 요부인지를 전혀 몰랐던 황후 왕씨는 스스로 무조를 궁궐로 불러들이는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인데, 이것은 나중에 자신의 목을 옥죄는 엄청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 여우를 치기위해서 호랑이를 불러들인 꼴이 됐다.

 

황후 왕씨의 도움으로 고종의 후궁인 소의로 책봉된 된 무조는 황후 왕씨와 결탁해서 고종과 소숙비 사이를 이간질해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소숙비를 모함해서 그녀를 폐출시켜 버렸다.

 

그리고 무조는 고종과의 사이에서 42녀를 낳으면서 고종의 총애를 독차지해 나갔다.

 

이렇게 고종의 총애를 독차지하게 된 무조는 그 후 황후 왕씨를 타킷으로 삼고, 자신이 황후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녀를 축출할 계획을 세웠다.

 

무조는 자신이 황후가 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인 황후 왕씨를 축출하기 위해서, 매우 사특한 계략을 생각해냈는데, 그것은 자신의 친딸을 죽이고 황후 왕씨에게 그 누명을 씌우는 것이었다.

 

무조는 이때 딸을 낳았는데, 황후가 자신의 딸 출산을 격려하기 위해, 자신의 처소를 찾아온다는 전갈을 전해듣고, 한가지 계략을 세우고는 스스로 자신의 친딸을 목졸라 살해한 후, 이불로 덮어버렸고, 그 방으로 황후를 유인해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처소를 찾은 황후가 죽어있는 자신의 딸을 목격한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무조는 죽어있는 딸과 함께 있는 황후에게 친딸을 죽였다는 누명을 씌워버렸다.

 

이때 실제로 죽은 자신의 딸과 황후가 함께 있는 장면을 많은 궁녀와 나인들도 함께 보았기 때문에, 황후 왕씨는 측천무후가 주장하는 친딸 살해의 누명에 꼼짝없이 걸려들고 말았다.

 

무조(측천무후)는 스스로 몰래 자신의 친딸을 죽이고는 황후가 살해의 누명을 쓸만한 상황을 치밀한 계획하에 연출했던 것이다.

 

결국 죽은 딸과 함께 있는 황후를 수많은 궁녀들과 나인들이 보았고, 또한 무소의(측천무후)는 곧바로 고종을 불러서 이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무소의(측천무후)가 치밀하게 계획한 이와같은 모략에 완전히 걸려든 황후 왕씨는 졸지에 측천무후의 딸 살해범으로 몰리게 되었다.

 

황후 왕씨는 누명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체, 무조(측천무후)의 요구에 따라서 황후에서 폐출되고 말았고, 황후자리는 무조(측천무후)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무조(측천무후) 65530세의 나이로 꿈에도 그리던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원래 야망이 엄청나게 컸던 무조(측천무후)는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온갖 권모술수를 다 부렸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교활한 간교를 부려서 마침내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켜 나갔다.

 

무조(측천무후)는 자신이 황후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친딸을 죽이는 천륜을 저버리는 짓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그녀의 딸은 단지 그녀가 최고의 권력을 얻기 위해서 일회용으로 사용되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황후가 된 무조(측천무후)는 여기서 그치지않고, 폐서인 된 황후와 소숙비에게 곤장 백대를 때리게 한 후, 술항아리에 가둬서 죽게 만들었다.

이것은 최고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얻고자 하는 측천무후가 얼마나 잔인한 여자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측천무후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그녀는 황후의 자리 즉, 2인자의 자리에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황후가 된 측천무후, 여황제가 되기 위해 행한 만행들

 

측천무후는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조정에 자신의 친위세력들을 계속 포섭해나갔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대신들을 모두 다 차례로 제거해나갔다.


 

측천무후는 고종의 외숙부이자 최고의 실세인 승상 장손무기를 모함해서, 수많은 반대파들을 숙청해버렸다.

또한 다음 보위를 이을 황테자인 배다른 자식 이충을 모함해서, 폐위시켜버렸고, 자신이 낳은 장남 이홍을 새로운 황태자로 옹립하였다.

   

그런데 측천무후의 만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는데, 그녀는 놀랍게도 자신이 친아들이 갖고있는 황제자리를 넘보고 있었다.

 

측천무후는 조정에서 자신의 전횡을 고변하거나 반대하는 대신들을 모두 죄를 뒤짚어씌워서 숙청해버렸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낳은 장남 이홍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홍을 식사자리에 초대한 후, 그가 먹는 식사에 독약을 넣어서 마침내 장남이자 황태자인 이홍을 독살시켜 버렸다.

 

이미 권력의 맛에 눈이 먼 측천무후는 자신이 최고의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 자신의 친아들인 이홍을 독살시키는 패륜을 저질렀다.

 

그 후 그녀의 둘째아들인 이현이 새로운 황태자로 책봉되었는데, 두뇌가 똑똑한 이현에게 위기감을 느낀 측천무후는 여색을 밝힌다는 거짓된 모함을 씌워서 황태자 이현을 폐위한 후, 멀리 유배를 보내버렸다.

그 후 측천무후는 유배보낸 자신의 둘째아들 이현에게 자살을 강요해서, 죽게 만들었다.

  

그 후 측천무후는 자신의 셋째 아들 이현(李顯)을 새로운 황태자로 책봉했는데, 683년 고종 이치가 사망하자, 황태자 이현이 황제(중종)의 자리에 올랐다.

 

그렇지만 측천무후는 자신의 셋째아들인 중종을 3개월만에 폐위시켜버리는데, 그 이유는 중종의 부인 위씨와 외척세력들이 권력을 농단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측천무후는 마지막 막내아들인 이단을 새로운 황제(예종)로 옹립했고 자신은 황태후가 되었는데, 이때 이미 조정의 모든 실권은 측천무후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고, 예종은 이름뿐인 황제였으며, 측천무후가 국가의 모든 정사를 독점할 수 있었다.

 

황제로 등극한 측천무후의 정치와 남성편력

 

그리고 690년 그녀는 이름뿐인 황제 예종으로부터 황위를 넘겨받고, 나라 이름을 주나라로 개칭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측천무후는 자신의 딸 한명을 죽였을 뿐만아니라, 또한 아들 두명을 죽이고, 또다른 아들 두명을 폐위시키고서, 자신의 오랜 야망인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67세의 나이였고, 그후 측천무후는 약 15년간 철권통치를 이어나갔다.

 

측천무후는 자신이 황제가 된 후에, 비교적 정사를 올바르게 펼쳐나갔는데, 인재들을 공평하게 등용해서 국정을 효율적으로 수행해갔고, 나라의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최고의 권력을 얻기위해서, 자신의 친자식은 물론 수많은 신하들을 죽이는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지만, 그래도 정치적 식견과 경륜이 뛰어났던 측천무후는 정사만큼은 잘 수행해서 민생을 안정화시켰고, 국가를 안정된 반석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측천무후는 여황제로 등극해있는 동안, 수많은 젊은 남성들을 궁궐로 끌여들여서, 향락과 쾌락을 즐기는 등 매우 음탕한 생활에 빠지기도 했다.

 

측천무후는 여황제가 된 후에, 수많은 젊은 남성들을 모아서 궁궐로 불러들여서 끊임없는 환락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측천무후는 황제가 된 후, 70세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궁궐 깊숙한 곳에 공학부를 설치해놓고, 중국전역에서 젊고 잘생긴 남총들을 수천명이나 뽑아들여서 밤바다 향락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남총으로 뽑혀서 궁궐로 들어간 남성들은 총 3,000명나 된다고 하며, 이 남총들은 낮에는 측천무후의 곁에서 심부름을 하거나 시중을 드는 등 비서역할을 하다가, 밤이 되면 측천무후의 침실로 끌려가서 함께 동침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측천무후는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밤마다 계속해서 남총들과 향락을 즐겼다고 하는데, 그녀는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남성편력을 추구했던 호색가로 명성이 높으며, 가장 음탕한 여황제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력을 갖게 되었다.

 

 

측천무후에 대한 구당서의 기록에도 그녀의 남총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는데, 측천무후의 남총은 나이와 외모, 그리고 건강상태를 보고서 뽑아 들였는데, 이들 남총들의 수는 3,000명에 이르렀고, 이들의 대부분이 측천무후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측천무후가 말년에 너무도 남총들과 환락을 즐기느라 정사를 소홀했기 때문에, 그 틈을 틈나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측천무후는 699년 뒤늦게 자신의 후사를 생각해서인지, 자신이 쫒아냈던 세번째왕자 이현(중종)을 다시 황태자에 복귀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측천무후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남총출신 장역지, 장창종 형제가 측천무후의 후광을 업고, 권력을 농단하고 온갖 전횡을 다 저질렀다.

이처럼 장역지와 정창종형제가 국정을 함부로 농락하고 못된 짓들을 일삼자, 대신들이 크게 반발했고, 민심이 흉흉해졌다.

 

이렇게 장역지, 정창종형제의 농간으로 국정이 혼란스러워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대신들은 두형제의 숙청을 측천무후에게 간언하게 되었고, 측천무후는 이들의 간언을 전혀 듣지 않았다.

 

그리고 705년 그녀가 병에 걸려 드러눕게 되자, 재상 장간지가 친위쿠테타를 일으켜서 그녀의 궁궐로 쳐들어갔고, 측천무후로부터 항복을 받아냈고 그녀를 황제에서 퇴위시켜 버렸다.

 

이로써 측천무후가 세웠던 무주15년 만에 망했고, 다시 당나라로 복위되었으며, 측천무후의 3남이자 황태자인 이현이 황제(중종)로 등극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쿠데타세력들은 폐위된 측천무후를 죽이지는 않았는데, 그녀가 새로운 황제인 중종의 친모친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만일 그녀를 죽였다가는 새로운 황실의 정통성에 관한 시비가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측천무후는 쿠데타가 일어난 그 해 겨울, 82세의 나이로 장안성의 상양궁 선거전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과 딸을 모아놓고, 자신의 묘비에 아무 글자도 새겨 넣지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으며, 자신이 죽은 후에 자신을 황제가 아닌 황후로 칭하라는 유언도 남겼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자신에 의해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던 페황후 왕씨의 일가를 모두 복원시켜달라는 유언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이제 죽을 때가 되니까, 그 때서야 측천무후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일까?

 

자신이 황후가 되기 위해서, 거짓으로 모함해서 살해누명을 씌여서 죽인 왕씨 황후의 일가의 복권을 아들 중종에게 부탁했다고 하니, 정말 그녀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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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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