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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주먹 시라소니의 싸움일화 이야기, 신마적과 대결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싸움꾼은 누구일까? 한국남자들이라면, 한두번쯤 궁금증을 가져볼만한 사항이 바로 싸움꾼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거역사에서 보면, 임꺽정, 장길산, 홍길동 같은 의적집단의 두목들이 힘이 천하장사이고, 도술과 주먹에도 무척 강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들은 조선시대에 이름을 날렸던 최강의 협객이자 주먹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에, 우리나라 경성의 암흑가에서 여러 파벌의 주먹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주먹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주먹들이 모여들었던 곳으로 서울 종로의 뒷골목을 들 수가 있다.

 

가장 큰 경제적 이권이 보장되는 곳인 종로 뒷골목은 내노라하는 주먹들이 모여들어서 자기만의 주먹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는데, 그들은 구마적과 신마적, 김기환, 김후옥, 제비, 뭉치 그리고 김두한 같은 진짜 주먹과 배짱이 강했던 당대의 걸출한 주먹들이었다.

 

이렇게 한반도의 주먹의 모태가 되었던 서울 종로의 뒷골목에서는 그 노른자위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여러 강자들간에 피비린내는 결투가 벌어졌고,

결국 김두한이 구마적과 신마적 등의 걸출한 오야붕들을 물리치고, 종로의 최고의 오야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1936년 고작 19세에 불과했던 청소년주먹 김두한이 전설의 주먹 구마적과 신마적, 뭉치 등의 강자들을 모두 물리치고는 종로 최고의 오야붕으로 등극하였고, 이어서 그는 서울의 전지역의 주먹들을 공략해서, 서울을 대표하는 최고의 주먹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또한 김두한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전국의 각지역마다 자신의 부하들을 진출시켜서 자신의 나와바리를 확대해나갔는데, 부산부터 평양까지의 한반도 거의 대부분의 대도시들을 자신의 나와바리로 편입시키기까지 했다.

 

 

김두한이 나이 20세가 되었을 무렵에는 이미 한반도의 대부분의 지역들을 자기세력권으로 편입시켜 놓았는데, 바야흐로 김두한의 주먹천하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반도에서 최고의 주먹으로 호령했던 김두한도 복속시키지 못한 유일한 지역이 한 곳 있었는데, 바로 한반도 북쪽 끝에 있는 신의주였다.

 

한반도 대도시 중에서 유일하게 신의주만이 김두한의 우미관조직에 복속하지 않았고 끝까지 대항하고 있었다.

 

그 당시 평양의 이화룡조직도 김두한의 우미관에 복속당했지만, 신의주가 끝까지 김두한의 조직에 복속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신의주에 북한 최고의 주먹이라고 불리우는 걸출한 싸움꾼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시라소니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이성순이었다.

 

1936년도 당시의 한반도의 주먹판도를 좀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남한지역의 최고의 주먹은 단연 김두한이었고,

실제로 김두한은 자신과 부하들이 직접 남한의 대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그곳의 토박이 주먹들을 물리치고는, 대부분의 남한지역의 주먹들을 자기휘하에 복속시켰다.

 

반면 같은 시기에 북한에서는 시라소니라는 대단한 싸움꾼이 출현해서 신의주의 뒷골목의 막강한 주먹들을 모두 제압하고, 신의주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했고,

그 후 시라소니는 북한의 여러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내노라하는 강자들을 모두 쓰러뜨리면서, 북한의 최고의 주먹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시라소니가 북한지역의 최고의 싸움꾼으로 불리우게된 계기는, 당시 북한 최강의 주먹이라고 불리웠던 박두성을 일대일 대결에서 KO시켰기 때문이다.

 

 

1936년 고작 나이가 21세에 불과했던 시라소니 이성순은 신의주의 한 술집에서 안주에 북한 최고의 주먹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자존심이 확 상한 나머지, 그 최강의 주먹에게 도전하기 위해서 혈혈단신 혼자서 평안도 안주로 그를 찾아갔다.

 

씨름대회에 출전해서 황소 10마리를 타냈을 정도로 당시 북한지역에서 최고의 씨름꾼으로 명성이 높았던 박두성은 기골이 장대했고 힘과 완력이 쎄기로 당해낼 장사가 없었으며,

뒷골목에서 수많은 강자들을 쓰러뜨리고 최고의 주먹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주먹계의 대단한 강자였다.

 

씨름계에서나, 싸움꾼으로서의 관록으로나 명실공히 최강의 실력자였던 박두성에게 신의주에서 찾아온 신출내기 싸움꾼 시라소니는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느닷없이 안주로 찾아와서 안주에서 가장 쎄다는 박두성이 어디 있소?’라고 말하는 시라소니를 보고는 천하의 주먹 박두성이는 기가 찼고, 어이가 없었다.

 

몸무게 90kg에다 키가 육척장신이며 기골이 장대한 박두성과 65kg의 삐쩍마른 몸을 가진 시라소니의 싸움은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상대가 되지않는 싸움으로 보였던 것이다.

참고로 젊었을 시절의 시라소니는 몸무게가 65kg이고 키는 175cm의 보통 체구를 지녔었다.

 

그렇지만 시라소니는 박두성에게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두 주먹간에 피말리는 치열한 혈전을 벌인 끝에 시라소니는 자신의 공중걸이 박치기로 박두성을 기절시키면서 싸움의 승리를 거두었고, 북한 최강의 주먹을 쓰러뜨렸다는 커다란 수훈을 세우고야 말았다.

 

자신이 질 것이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냉소적인 진술과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시라소니는 특유의 담력과 날렵하게 빠른 몸놀림과 신출귀몰한 싸움기술을 발휘해서, 천하제일의 주먹 박두성을 보기좋게 길바닥에 쓰러뜨렸던 것이다.

 

 

시라소니가 북한최고의 주먹 박두성을 꺾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북한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비야흐로 시라소니의 주먹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남한지역에서는 김두한이 신마적을 꺾고 경성 최고의 오야붕으로 등극했을 당시에, 북한지역에서는 시라소니가 천하의 박두성을 제압하고 함경도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했던 것이다.

 

이렇게 같은 시기에, 남과 북의 두명의 뛰어난 싸움꾼이 남한과 북한의 각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최고의 주먹짱으로 올라섰던 것인데, 이처럼 같은 시기에 이렇게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매우 신기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두사람이 각기 남한과 북한의 최강의 주먹으로 올라섰던 1936년도이기에, 시라소니는 나이가 21살로서, 19살이었던 김두한보다 2살이 더 많았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박두성을 꺾고 북한 최고의 주먹으로 올라서고 난 후, 신의주를 떠나서 중국과 만주일대를 전전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 이유는 시라소니가 조선인들을 못살게 굴던 일본형사를 두들겨팬 것이 이유가 되어, 신의주에서 시라소니 체포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시라소니는 의협심이 강한 인물로서, 약한 조선인들을 괴롭히는 일본형사를 두들겨패주었던 것인데, 그 때문에 일본경찰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어 결국 압록강을 건너서 만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37년 시라소니는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과 만주로 건너간 이후, 해방될 때까지 거의 8년 동안 중국과 만주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국제주먹들과 대결을 펼치면서, 중국에서의 화려한 싸움신화를 이룩해냈다.

 

 

천진에서의 카네미야일당과의 401의 대결, 상해에서의 칼잡이 하야시반장과의 맨손과 칼의 대결, 북경에서의 일본야쿠자두목 구로야마와의 대결, 북경의 쿵푸대가 마오와의 대결, 만주 봉천에서의 이상대 부하들과의 대결 등

중국과 만주의 기라성 같은 주먹들과 목숨을 건 숱한 싸움에서도, 시라소니는 이들을 모두 물리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리면서 중국에서의 놀라운 싸움신화를 이룩해내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를 동양최고의 주먹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시라소니와 신마적의 만남과 대결

 

시라소니가 만주로 진출한 후에, 만주 봉천에서 신마적조직과 만나 싸움을 벌였던 일화가 있어 소개한다.

 

시라소니와 신마적과의 대결에서 그사실이 많이 와전된 부분이 있는데, 시라소니와 신마적이 북경에서 만나서 대결을 펼쳤다고 주장하는 글이 있는데,

이것은 여러 가지 증언과 정황상으로 보면 사실이 아니며, 두사람은 북경이 아닌 만주 봉천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만주 봉천은 오늘날의 심양을 말하며, 이곳은 과거 후금과 만주국의 수도였으며, 만주에서 가장 중요한 대도시지역으로서, 만주의 경제와 행정의 중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1937년 경에 시라소니는 만주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인 봉천지역에 진출했으며, 그 당시 봉천의 유흥가지역인 유조구지역을 신마적의 주먹조직이 지배하고 있었다.

 

신마적은 한때 조선의 경성 종로지역에서 큰 오야붕으로 군림했던 최강의 주먹이었던 엄동욱 그 사람이다.

 

그렇게 경성의 한복판인 종로에서 막강한 주먹으로 호령하면서 활동했던 신마적이 그만 자신보다 한참 후배인 김두한의 도전을 받고 턱뼈와 갈비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고서, 병원에서 3개월간의 입원치료를 받는 비참한 처지로 몰락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김두한에게 패퇴했던 신마적인 그 이듬해 봄경에, 경성에서 1,000km나 멀리 떨어진 만주 봉천의 유흥가지역에서, 부하들 100여명을 거느린 거대한 주먹조직의 오야붕이 되어 있었다. 정말 상전벽해와도 같은 대단한 변화였다.

 

신마적은 종로에서 김두한과의 대결에서 패한 후에, 자신의 직계동생들인 해학기 등 7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곧바로 경성을 떠나서 만주의 봉천지역으로 굴러들왔던 것이다.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김두한에게 패했다는 쓰라림과 상처를 완전히 잊기 위해서, 신마적은 가급적이면 김두한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만주지역으로 이주해왔던 것이다.

 

그 당시 김두한이 한반도 전체지역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두한에게 패한 악몽을 모두 씻어버리기 위해서, 신마적은 동생들을 데리고 한반도를 벗어나서, 만주의 봉천지역으로 이주해왔던 것이다.

 

그렇게 신마적에게는 김두한에게 패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는 가장 끔직한 악몽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주로 굴러들어온 후, 불과 3개월만에 신마적이 어떻게 만주의 커다란 유흥지역에서 자신의 거대한 주먹조직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의문이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당시 만주에서 가장 거대한 주먹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봉천두목 이상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상대는 원래 평양사람으로서, 일본인들의 횡포가 싫어서 조선을 떠나서 만주로 표류해왔던 인물이었다.

 

이상대는 워낙 힘이 장사이고 주먹이 쎌 뿐만아니라, 포용력과 리더쉽을 모두 갖추고 있었던 인물이었는데, 이상대는 만주에서 텃세를 부리던 중국깡패들을 물리쳤을 뿐만아니라, 조선인들을 모아서 거대한 주먹조직을 만들었고,

자신의 조직을 더욱 키워서 30년대 후반에는 만주에서 가장 큰 주먹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고 1937년 이상대조직의 나와바리인 봉천지역으로 이주해온 신마적 엄동욱도 이상대와 같은 고향인 평양이라서, 신마적은 한 지인의 소개로 어렵지않게 같은 고향출신인 이상대를 만날 수가 있었고 두사람은 서로 친말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상대는 한때 경성의 오야붕이었던 신마적을 크게 우대해주었고, 신마적에게 돈과 인력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어서, 신마적이 봉천의 유흥가인 유조구지역에서 주먹조직을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 만주 최고의 주먹조직의 두목인 이상대의 도움과 지원으로, 만주지역으로 거의 쫒겨오다시피 했던 신마적은 수개월 만에 100여명의 부하들을 거느리는 중급 규모의 자신만의 주먹조직을 만들 수가 있었고, 신마적은 봉천 유조구거리에서 제2의 주먹인생을 활기차게 펼쳐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신마적이 만주 봉천에서, 새로운 신흥주먹주직을 만들어 활동을 해나가고 있을 때에, 느닷없이 시라소니 라는 방랑자가 나타났던 것이다.

 

봉천지역의 최고의 유흥가거리인 유조구거리에 시라소니가 나타났는데, 이 지역을 자신의 관활지역으로 삼고 있었던 신마적과는 어떤 형식으로든 한번쯤은 조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라소니가 갑자기 봉천의 유조구에 나타났던 이유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시라소니의 고향친구 김씨가 이 봉천지역에서 포목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신마적의 부하들이 그의 가게를 들이닥쳤고 그에게 무리한 세금을 요구했다.

 

시라소니의 친구 김씨는 하는 수 없이 신마적부하들에게 세금을 냈는데, 그로부터 몇일 만에 또다시 신마적의 부하들이 찾아와서 또다른 세금을 요구했다.

 

신마적부하들이 이렇게 무도하게 계속해서 세금을 요구해오자, 시라소니의 친구는 완강히 거부했고, 그 대가로 그는 신마적 부하들에게 엄청나게 얻어맞았던 것이다.

 

이같이 자신의 친구가 얻어맞았다는 소식을 전해듣었던 시라소니는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서, 신의주에서 며칠 만에 만주 봉천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타국에서 장사를 하면서 간신히 먹고사는 사람을 조직폭력배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돈을 빼앗으려고 두들겨팼다는 이야기를 들은 시라소니는 엄청난 분노감이 치밀어 올랐다.

 

시라소니는 낮설은 타국에서 같은 동포들끼리 서로 도와주고 살지는 못할망정, 돈을 뜯어먹고 죄없는 사람을 두들겨 패다니, 신마적패거리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구만!’이라고 말하면서 손 좀 보기로 결정했다.

 

 

 

시라소니는 만주 봉천의 유조구에 있는 시장에서 포목점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의 가게에서 며칠동안 머무르면서, 신마적부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신마적의 부하들이 또다시 친구의 포목점가게로 들이닥쳤고, 완력을 써가면서 시라소니의 친구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이때 뒷방에 있던 시라소니가 밖으로 나오면서, 신마적의 부하들에게 일갈을 퍼부었다.

어이, 니보게들! 왜 내 틴구를 괴롭히네, 할말이 있으면 나한테 하라우!’

 

보통키에 삐쩍마른 체구를 가진 못생긴 얼굴의 시라소니가 참견을 하자, 신마적 부하들 중 중간보스에 해당하는 곰치가 한마디 쏘아 부쳤다.

 

어디서 굴러먹던 말뼉다귀야! 다치고 싶지 않으면 썩 꺼져버려!’ 라고 곰치는 시라소니에게 소리치면서 씩씩거렸다.

  이에 시라소니는 신마적의 부하들에게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그들을 점포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신마적이 아끼는 중간보스인 어깨가 딱 벌어진 곰치와 그의 별동대부하 7명이 함께 있었고, 8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점포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시라소니는 먼저 재빨리 선제공격을 가했다. 뒤따라 나오는 신마적의 부하들 두명에게 연달아 오른발차기와 왼발차기로 동시에 두명을 쓰러뜨렸다.

 

시라소니의 선제공격으로 두명이 눈깜짝할 순간에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이어서 신마적의 또다른 부하 두명이 동시에 시라소니에게 달려들었다.

 

시라소니는 고개를 숙여서 그들의 주먹을 피하는 동시에, 오른주먹을 날려서 한명의 명치에 꽂았고, 왼손주먹으로 다른 상대방의 턱을 날려서 쓰러뜨렸다.

 

이렇게 시라소니의 두번째 동시공격으로 4명의 신마적의 부하들이 쓰러지고 말았다.

 

이제 시라소니 앞으로 다가온 다음상대는 힘이 천하장사라고 알려진 곰치였다.

 

 

곰치는 신마적 동생 중에서도 힘이 좋기로 소문난 장사꾼이었는데, 그에게 한번 잡히기라도 하면, 팔이나 다리가 부러져서 아예 병신이 된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꺾기기술의 대가였다.

 

시라소니는 곰치에게 간다라고 소리치면서 동시에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시라소니가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태양을 가렸기 때문에, 곰치는 순간 방향감각을 잃고 있었고, 곧이어 시라소니의 박치기가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이마에서 불을 뿜었다.

그리고 ‘으악!’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185cm의 거구 곰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시라소니가 신마적의 막강한 중간보스 곰치를 박치기 단 한방으로 혼절시켜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신마적의 부하는 단 세명이었는데, 시라소니는 오른주먹과 왼발차기로 간단하게 두명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남은 신마적의 부하 한명은 시라소니가 두려워서 더이상 대적하지 못하고, 그대로 쏜살같이 달아나고 말았다.

 

시라소니는 혼자서 신마적의 부하 7명을 모두 쓰러뜨렸고, 이로써 시라소니는 신마적의 부하들과 처음으로 격돌하게 되었다.

 

시라소니는 원래 신의주에 있을 때부터, 신마적이 경성(서울)의 종로에서 오야붕노릇을 한다는 이야기를 일찌기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

 

한때 신마적이 경성의 가장 중심지역에서 가장 쎈 오야붕으로 행세를 하고있다는 소식을 경성에서 신의주로 놀라왔던 건달패거리들한테서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시라소니는 당시 경성에서 명성이 높았던 신마적과 한번 겨뤄보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지금 찾아온 것이고, 시라소니는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짖고 있었다.

 

 

시라소니는 싸움에 대한 자존심이 무척 강한 사람이다. 싸움을 잘한다는 싸움꾼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그를 찾아가서 꺾어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이다.

 

시라소니는 싸움에 있어서 자신이 항상 최강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보다 더 강한 강자가 있다는 사실을 시라소니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강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반드시 찾아가서 그 강자를 무조건 꺾어놓고야 말았으며,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이 항상 최강의 주먹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를 원했다.

 

평안도 최강의 주먹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박두성이를 혼자서 찾아가서, 그에게 도전해서 쓰러뜨렸던 일화도 그의 그러한 성격을 아주 잘 보여주었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시라소니는 도망치는 신마적 부하에게 내레 시라소니야! 네게 볼일이 있으면 신마적이 직접 찾아오라구 전하라우!’라고 소리쳤다.

 

이번에도 시라소니는 신마적이라는 과거 경성 최고의 주먹과 한판 맞대결을 내심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라소니가 그의 부하들을 7명이나 쓰러뜨렸으니, 이제 곧 신마적이 부하들의 보복을 위해서 직접 자신에게 쳐들어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시라소니와 해학기의 대결

 

그런데 이번에 시라소니에게 달려왔던 사람은 신마적이 아니라, 신마적의 오른팔인 해학기였다.

 

해학기는 원래 1932년도까지 종로 YMCA에서 학생운동부의 대표로 있었던 인물로서, 웰터급 극동챔피언까지 지냈던 원펀치의 달인이었다.

 

왠만한 상대는 주먹 한두방으로 KO시킬 정도로 엄청난 펀치의 파괴력이 지녔던 해학기는 자신의 막강한 주먹을 사정없이 휘두르면서, YMCA에서 학생운동부의 패권을 거머쥐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롭게 YMCA에 들어온 신마적에게 덜미가 잡혀서 학생운동부의 대표자리를 신마적에게 빼앗기고, 자신은 2인자로 눌러앉았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웰터급챔피언까지 지냈던 해학기의 주먹은 결코 녹슬지 않았고, 만주 봉천지역 유흥가에서 자주 소동을 피우는 중국건달들 여러명이 그의 강펀치를 맞고 쓰러지거나, 쫒겨가기가 일쑤였다.

 

자신들의 동생들이 시라소니에게 크게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해학기는 피가 거꾸로 솟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해학기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시라소니라는 건달이 자기 동생들 7명을 쓰러뜨렸다는 소식을 듣고서, 곧바로 부하들 10명을 데리고 그 장소로 달려왔다.

 

시라소니와 곰치 일행이 싸웠던 봉천 유조구의 시장앞마당 거리에는 해학기 일행이 달려왔던 그때까지도 곰치를 비롯한 부하들 7명이 쓰러져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이 모습을 목격한 해학기의 눈에서는 불이 번쩍 났고, 그들은 곧바로 시라소니가 머물고 있는 그 포목점가게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포목점 바로 앞에서 해학기일행은 시라소니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항상 갈지자로 고릴라처럼 걸어다니는 시라소니의 특이한 뒷모습만 보아도, 그가 시라소니라는 것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곰치의 부하중 한명이 저놈이 바로 시라소니라는 놈이에요!’라고 소리쳤고, 그 소리와 함께 시라소니가 뒤쪽을 돌아다보았다.

 

신마적조직의 2인자 해학기는 시라소니를 보자마자 이렇게 일갈을 퍼부었다.

네가 시라소니라는 놈이냐, 네놈이 간댕이가 얼마나 부었으면, 감히 우리 동생들을 이토록 처참하게 팰 수가 있는가?’ ‘내가 오늘 너를 아주 끝장을 내주겠어, 각오 단단히 하라구!’

 

그러자 시라소니는 해학기를 싸늘하게 쳐다보더니, ‘, 님자들이 아까 나한테 얻어맞은 똘마니들의 복수를 하러 온 자들이구만, 이보라우! 님자, 낮선 타국에서 같은 동포들끼리 서로 돕구 살아야디, 그렇게 괴롭히고 때리면 되겠음가?’

 

내레 친구를 하두 괴롭힌다고 해서, 똘마니들 몇명을 손 돔 본 것일 뿐인데, 이제 구만 화해하자구라고 말하면서 시라소니는 해학기일행에게 화해의 손짓을 건넸다.

 

 

이렇게 시라소니가 너스레를 떨자, 해학기는 더욱 커다란 분노감이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삐쩍 마르고 왜소해 보이는 못생긴 작자가 어떻게 7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한꺼번에 쓰러뜨렸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시라소니에게 나하고 한판 붙자구! 너를 오늘 아주 죽여버리겠어!’라고 소리치고는 해학기는 앞으로 달려가면서, 그의 커다란 주먹을 사정없이 날렸다.

 

그런데 !’하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어이쿠!’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진 상대는 놀랍게도 시라소니가 아니라, 먼저 주먹을 휘둘렀던 해학기였다.

 

먼저 시라소니에게 솥뚜껑 같은 오른주먹을 날렸던 해학기가 거꾸로 시라소니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서,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버린 것이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 기적처럼 펼쳐진 것이며, 주위에서 구경을 하던 해학기의 동생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경악과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그 때의 찰라의 상황은 이랬다.

 

해학기가 먼저 주먹을 날리기 위해서 시라소니에게 달려들었지만, 싸움의 천재인 시라소니가 한발 먼저 해학기에게 달려갔고, 그대로 공중걸이 박치기로 해학기의 이마를 들이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박치기를 맞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해학기를 시라소니가 왼쪽무릎으로 옆구리를 찍어버렸고, 그 두방의 공격으로 해학기는 그대로 고꾸라졌고, 완전 혼절해버렸던 것이다.

 

시라소니의 이 두방의 연속공격이 너무도 빠르게 동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해학기의 동생들은 왜 해학기가 먼저 쓰러졌는지를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분명하게도 시라소니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공중걸이 박치기와 무릎찍기 공격으로 천하의 해학기는 공격 한번 제대로 하지못하고, 그대로 KO당하고 말았다.

 

시라소니가 신마적의 오른팔 해학기를 KO시키는 데에는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고, 이 짧은 치명적인 공격으로 해학기는 완전 혼절하고 만 것이다.

 

 

그러자, 해학기를 따라왔던 중간보스급 동생인 이씨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주머니속의 권총을 꺼내려하고 있었고, 그러자 이 모습을 본 시라소니는 권총을 사용하는 것은 치사한 짓이야!, 권총은 안돼!’라고 소리쳤다.

 

천하의 싸움꾼 해학기가 단 두방의 공격으로 완전 쓰러지게 되자, 다른 신마적의 부하들은 시라소니가 무서워서 이상 공격을 하지 못했고, 쓰러진 해학기를 등에 업고서 후퇴하고 말았다.

 

시라소니는 혼자서 신마적의 2인자인 해학기와 3인자인 곰치와 싸워 확실하게 쓰러뜨렸고, 신마적의 부하들 7명도 함께 아작을 낸 것이다.

 

신의주를 떠나서 만주 봉천에 온 지 3일만에 시라소니는 봉천의 유흥가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신마적조직의 부하들을 두들겨 팬 이 사건은 뒤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자신의 주먹조직에서 자신의 오른팔과 왼팔 노릇을 하고 있던 해학기와 곰치가 모두 시라소니 한사람에게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신마적은 엄청나게 노발대발하면서 화를 냈다고 한다.

 

총을 든 신마적과 맨손의 시라소니의 대결

 

신마적은 한 때 조선 경성의 최고의 오야붕으로 군림했던 최강의 주먹이었는데, 이젠 만주 봉천으로 건너와서 경성에 있을 때보다 더 큰 100여명의 조직원들을 거느린 거대 주먹조직의 왕초로 군림하고 있었고, 종로 시절보다도 더욱 기세가 등등해져 있었다.

 

그런데 감히 조직도 갖지 못한 일개의 싸움꾼 한사람이 자신의 내노라하는 실력자들을 처참하게 모조리 아작을 낸 것이어서, 신마적은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신마적이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신마적의 위상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신마적의 주먹조직은 와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후 이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신마적은 시라소니에게 복수를 하기로 작정했는데, 그 당시 신마적이 취한 행동은 일반적으로 이해를 할 수 없는 매우 이상한 행동을 취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신마적이 진정한 싸움꾼이었다면, 그가 시라소니에게 당당하게 일대일 맞대결을 신청했어야 하는 것이 옳았다고 본다.

 

자신이 아무리 조직원 100명을 거느린 거대조직의 보스라고 하더라도, 시라소니는 항상 혼자서만 싸웠기 때문에, 신마적이 진정한 협객이라면, 마땅히 혼자서 시라소니에게 도전장을 던졌어야 옳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신마적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자신의 부하 80명을 이끌고 그것도 몇 명의 중간보스들에게는 소총까지 지참시켜서, 시라소니에게 쳐들어 갔던 것이다.

 

만주 봉천에서 이상대조직에 이어서 두 번째로 커다란 조직을 거느렸던 신마적이 자신의 부하들의 복수를 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한사람을 상대로 해서 80명의 부하들을 대동하고 시라소니 한사람에게 처들어갈 수 있었는지, 좀 이해가 가질 않는 부분이다.

 

시라소니가 신출귀몰한 싸움실력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신마적이 시라소니에게 대단히 겁을 집어먹었던 것일까?

   

예전의 경성의 최고의 주먹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신마적은 시라소니에게 겁을 먹었던 탓인지, 진짜 비굴하게도 시라소니 한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서, 부하들 80명을 데리고 시라소니에게 쳐들어갔던 것이다.

 

해학기가 시라소니에게 얻어맞은 지 사흘이 지난 후, 시라소니가 봉천 교외에 있는 야산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첩보를 전해들은 신마적은 부하 80명을 이끌고 그 야산으로 처들어갔으며, 그 곳에서 몇 명의 일행들과 술을 먹고 있던 시라소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때 신마적은 권총을 차고 있었고, 시라소니를 발견하자, 신마적은 시라소니에게 권총을 겨누면서 위협을 가했다고 한다.

 

시라소니를 발견한 신마적 일행이 시라소니를 뺑 둘러서 포위했고, 신마적은 권총을 꺼내어서 시라소니에게 겨누고 네놈이 내 동생들을 처참하게 두들겨 팼다며!, 내가 네놈을 오늘 아주 황천길로 보내버리겠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권총을 시라소니의 얼굴을 향해서 겨누고 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시라소니는 신마적에게 당신이 그 유명한 신마적이로구만, 당신의 부하들이 하도 못된 짓을 많이 하기에 내레 손 좀 보아주었는데, 그것이 못마땅하다면 우리 한번 붙어보자우!’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싸워보자우! 권총은 안돼지비, 권총은 비겁한 겁장이들이나 사용하는 것이지 않갔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 80여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처들어온 신마적일당이 총까지 겨눈 상황에서 시라소니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신마적에게 맞대결을 권했던 것이다.

 

이같은 시라소니의 당돌한 태도에 신마적은 기가 막혔으며 움찔 할 수밖에 없었다.

 

신마적은 자신이 부하들과 함께 그를 포위하고 총까지 겨눠서 위협하면, 시라소니까 무릎을 꿇도 항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시라소니는 자신의 코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혀 겁을 먹지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일대일 맞대결을 신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라소니는 정말 싸움만 잘하는 싸움의 천재일 뿐만 아니라, 배짱 또한 대단했고 담력과 용력이 엄청나게 쎈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총까지 겨누고 있는 신마적에게 전혀 겁을 먹지 않고, 오히려 일대일맞대결을 하자고 제안했으며 신마적의 위세를 누를 만큼 기세등등했다.

   

신마적은 정말 시라소니의 이 대담한 용력과 배짱에 할말을 잃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80명이 포위한 상태에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신마적은 자신이 겨눈 권총의 방아쇠를 당길 긴박한 찰나의 순간에, 시라소니는 목숨이 사라질 절대절명의 위급한 순간이 펼쳐졌다.

 

그때 언덕 아래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이봐, 신마적! 시라소니를 죽이면 안돼!, 그는 진정한 거물급주먹이야!’라고 소리치면서 달려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만주 봉천의 최고의 주먹조직의 보스였던 이상대였다.

 

이상대는 만주지역에서 가장 큰 주먹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던 만주의 진정한 오야붕이었다. 그는 만주 봉천에 본거지를 마련하고,

만주일대에 퍼져있던 조선인들을 모아서 자기조직원으로 만들어서 만주에서 가장 큰 주먹조직을 형성하였는데, 그의 주먹조직의 조직원들은 500이나 될 정도로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만주에서 그의 아성에 도전할 사람이나 세력은 전혀 없었고, 심지어 그의 조직원들은 소총과 권총, 장검까지도 소지하고 있었는데, 떼로 몰려다니면서 도적질을 일삼던 마적때들도 이상대의 조직과 전투를 벌여서 패퇴한 적이 여러번 있을 정도였다.

 

 

만주에서 마적때들도 두려워했을 정도로 가장 거대한 주먹조직을 거느렸던 최고의 보스가 이상대였고, 신마적조직도 이상대의 휘하에 있던 별동조직이나 다름 없었다.

 

만주주먹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이상대가 시라소니와 신마적의 싸움에 개입했고, 그의 화해주선으로 신마적과 시라소니는 더 이상 싸움을 중단하고는 전격적으로 화해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로써 조선 최고의 주먹을 가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날아가 버린 것이며, 끝내 시라소니와 신마적의 싸움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상대의 주선으로 원수지간이나 다름 없었던 신마적과 시라소니는 극적으로 화해를 했고, 그 후 두사람은 호형호제하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봉천의 오야붕 이상대가 두사람간의 화해를 주선한 것은 신마적과 시라소니간의 말도 안되는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대가 시라소니와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주 봉천에서 거대한 주먹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던 이상대도 원래는 평양에서 살았던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일본인들의 횡포에 분노한 그가 일본인들과 일본경찰을 두들겨패고 난 후,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버리고 만주 봉천으로 망명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출중한 싸움실력과 리더쉽을 바탕으로 이상대는 만주에서 생존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주먹조직의 보스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항상 혼자서 협객처럼 싸워나가는 시라소니의 의협심과 당당한 태도에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고, 시라소니가 자신의 부하들을 두들겨팬 후에도 이상대는 시라소니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를 물신양면으로 지원해주었던 그런 관계였다.

 

, 이상대는 시라소니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약자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인간적인 무한한 호감을 느꼈던것이고, 그래서 이상대는 시라소니와 친해졌고, 서로 호형호제하는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시라소니의 성정을 잘 알고 있던 이상대는 시라소니와 신마적조직 간에 전쟁이 벌여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도 시라소니가 의협심이 발동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다급히 이곳을 찾아와서 난처한 입장에 처한 시라소니를 구출해준 것이다.

 

시라소니는 그 후 1945년경 천진에서 40명의 폭력배들에게 붙잡혀 있던 자신의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혈혈단신 혼자서 적진의 아지트로 처들어갔고, 실제로 40 대 일의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적도 있었다.

이것은 시라소니와 카네미야 패거리 40명과의 싸움으로 우리나라 주멱역사에 가장 대단했던 유명한 싸움일화이다.


이 당시 시라소니는 40명 중 20명을 혼자서 쓰러뜨렸고, 나머지 20명은 시라소니의 신출귀몰한 싸움실력에 두려움을 느끼고 물러났으며, 야쿠자두목 카네미야는 시라소니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고 말았다.

 

 

시라소니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처지를 돌보지 않고, 상대방이 몇 명이 있는지도 전혀 따지지 않고, 혼자서 처들여가서 그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마는 그런 대단한 용력과 배짱, 그리고 의협심을 지닌 싸움꾼이다.

 

그런 시라소니의 의협심을 이상대는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아뭏튼 신마적의 비열한 행동으로 끝내 시라소니 대 신마적의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거대한 주먹조직을 거느린 신마적과 항상 혼자서만 행동하는 시라소니의 맞대결싸움은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는 싸움이었다고 본다.

 

만일 두사람간에 진짜 싸움이 벌어져서 신마적이 시라소니에게 패하게 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말기 때문에, 신마적은 어떻게든 시라소니와의 일대일 싸움을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신마적이 시라소니 한사람을 잡기 위해서 80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간 것도, 그리고 비열하게도 총을 사용한 것도, 시라소니와의 정면대결을 어떻게든 피해보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결국 두사람간의 대결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시라소니는 신마적조직의 2인자인 해학기와 3인자인 곰치를 완벽하게 쓰러뜨렸기 때문에, 시라소니가 얼마나 강한 싸움꾼이지는 충분히 증명해보였다고 할 수 있다.

 

김두한은 신마적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했는데, 마찬가지로 시라소니도 신마적과의 맞대결이 이루어졌다면, 김두한과 시라소니간의 간접적인 싸움실력의 비교가 가능했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시라소니와 신마적은 결국 싸우지않았고, 이로써 김두한과 시라소니간에 누구 최고의 싸움꾼인지를 판가름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시라소니가 신마적조직의 실력자 2명을 간단하게 꺾었을 뿐만아니라, 혼자서 신마적부하들 7명을 순식간에 쓰러뜨린 것을 보더라도 시라소니가 얼마나 탁월한 싸움실력이 지닌 뛰어난 싸움꾼인지는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본다.

 

두사람간에는 실제 싸움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시라소니가 신마적을 상대로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고 시라소니에게 승리의 트로피를 주고 싶다.

 

역시 시라소니 이성순은 수십명의 적군에게 포위되고 총으로 협박을 당해도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 대담한 배짱과 의협심을 지닌 진정한 싸움꾼이자, 의로운 협격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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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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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토종 맹수 스라소니 목격담과 복원, 시라소니의 크기와 생태

 

우리 한반도에는 현재 맹수가 하나도 없을까요? 조선시대와 구한말에 그렇게 많았던 호랑이와 표범들이 모두 일제시대 때에 멸종되고 말았지요.

 

조선시대 때에 서울 홍제동에 있는 인왕산에서 호랑이가 종종 나타났다고 하며, 왕이 사는 궁궐에도 가끔씩 호랑이가 출몰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두대간을 따라서 수많은 호랑이와 표범들이 남북을 오고가면서, 한반도를 종횡무진하고 다녔을 만큼, 과거 한반도는 동물들의 천국이었답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 때에, 일본총독부는 유해조수를 박멸한다는 명목으로 한반도에 있는 호랑이와 표범들을 닥치는 데로 잡아다 죽였답니다.

말이 유해조수의 박멸이지, 실제로는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과 뼈를 팔아서 태평영전쟁의 군비로 사용할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9년도에 일본총독부는 일본엽사들을 대거 한반도로 불러들여서 대대적인 호랑이와 표범 소탕작전을 벌였으며, 이시기에 한반도에 있는 호랑이 99마리와 표범 250마리를 살육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 이후에 우리 한반도에는 호랑이와 표범이 완전히 멸종되었고, 우리나라는 맹수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호랑이와 표범 뿐만아니라, 늑대와 반달곰 등도 함께 이시기 전후해서 모두 사라지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호랑이와 표범들이 모두 멸종되고 난 후, 오늘날 한반도에는 호랑이, 표범 같은 상위 포식자들이 사라진 후, 자연생태계에서 심한 교란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랍니다.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져버렸으니, 맹수들의 먹이감이 되어왔던 멧돼지, 고라니 같은 초식동물들의 개체수가 엄청나게 급증하게 되었고, 이같은 초식동물의 급증으로 우리생테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먹이감으로 공격하는 천적이 사라진 멧돼지와 고라니 등은 엄청나게 늘어나서, 이제는 마을로 내려와서 사람들을 공격하고,

농작물을 훼손하는 등 농가에 엄청난 민폐를 끼치는 상황에 이르렀답니다.

 

더욱이 이렇게 농가에 경제적 피해를 끼치는 것에 머물지않고, 심지어 멧돼지들은 떼를 지어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공격해서, 사람을 해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답니다.

 

 

강원도 삼척지방에서 최근 들어 3년 동안 산에서 나물을 캐던 주민들이 멧돼지에 물려서 사망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거대한 멧돼지들이 도심지에까지 쳐들어와서 음식점에 난입해서, 난동을 부리는 등 사람에게 커다란 위협을 주고있는 것이 현실이랍니다.

 

이같은 멧돼지와 고라니 같은 초식동물이 크게 증가하고 사람에게까지 커다란 피해를 주고 있는 이유는 이들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상위포식자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멧돼지와 고라니의 수를 적정한 숫자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들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상위포식자가 있어야 한답니다.

꼭 호랑이와 표범은 아니더라도, 멧돼지와 고라니 같은 중형급 초식동물을 사냥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육식동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최상위 포식자 노릇을 하고있는 동물은 몸무게가 8kg에 불과한 담비라고 합니다.

이렇게 작은 담비 같은 동물이 엄청나게 급증하고 있는 멧돼지나 고라니를 사냥해서 잡아먹을 수가 있을까요?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랍니다.

   

너무 크게 늘어나서 커다란 민페를 끼치고 있는 초식동물의 개체수를 적정한 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담비보다 더 크고 강한 맹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맹수가 바로 스라소니입니다.

다른말로 시라소니라고도 불리우는 스라소니는 현재 한반도에서 거의 멸종단게에 있는 맹수랍니다.

 

남한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스라소니가 멸종되었고, 북한지역에서는 북쪽끝의 양강도와 개마고원 일대에서 극소수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스라소니라는 이름은 매우 반가운 이름이지요. ‘스라소니의 평안도사투리인 시라소니는 우리가 방송으로 보았던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을 무릎 꿇렸던 불세출의 박치기제왕 바로 그 시라소니 이성순을 연상하게 만든답니다.

 

원래 이 동물의 이름은 스라소니가 맞고, ‘시라소니는 스라소니의 평안도 사투리라고 합니다.

 

스라소니는 호랑이나 표범보다는 작지만, 살쾡이보다는 더 큰 중급 크기의 고양이과 동물인데,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산속에서 서식해왔던 한반도 토종의 맹수입니다.

 

스라소니는 수영도 잘하고 나무도 매우 잘 타며, 매우 날렵할 뿐만아니라, 높이뛰기나 달리기도 잘하는 매우 타고난 사냥꾼이랍니다.

 

 

스라소니는 아주 뛰어난 높이뛰기 선수랍니다. 스라소니는 공중에서 날아가는 꿩을 잡기위해서 공중으로 3m까지 도약해서, 그 꿩을 낚아챘던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 스라소니는 동물들 가운데, 가장 높이뛰기를 잘하는 맹수랍니다.

 

스라소니못난 호랑이새끼라고 불릴만큼 호랑이나 표범과 습성이 비슷하며, 야생에서는 매우 뛰어나고 표독스러운 사냥꾼이랍니다.

 

스라소니는 비록 덩치는 호랑이나 표범보다는 작지만, 매우 민첩하고 순발력이 좋으며, 청각과 후각이 예민해서 먼거리에 있는 먹이감도 잘 감지해서 끝까지 추적해서 사냥해 잡아먹는 탁월한 사냥실력을 지니고 있답니다.

 

하지만 스라소니는 살쾡이처럼 작은 동물이 아니랍니다. 스라소니의 몸무게는 암컷이 약 20kg 정도이며, 성체 수컷은 평균 30kg 정도 나가며, 몸길이는 110cm에 이르는 중간크기의 맹수랍니다.

 

그러니까 스라소니는 표범보다는 좀 작지만, 진돗개보다는 약간 더 큰 개체이며, 성질이 표독스럽고 사나우며, 엄청나게 빠르고 민첩한 무서운 야생의 사냥꾼입니다.

 

 

 

스라소니는 보통 토끼나 다람쥐, 노루와 고라니를 사냥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스라소니의 먹이사슬에는 이들 외에도 멧돼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스라소니는 민첩하고 사냥실력이 좋아서 자신보다 4배 이상 더 큰 멧돼지도 충분히 사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스라소니 2마리가 협공한다면, 커다란 멧돼지도 거뜬히 사냥한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최상위 포식자로 알려진 삵이나 담비는 덩치가 큰 고라니와 멧돼지는 결코 사냥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30kg의 스라소니라면, 단독으로도 얼마든지 커다란 고라니와 멧돼지를 사냥해 잡아먹을 수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실제로 아메리카에서는 20~30kg의 스라소니가 자신보다 덩치가 4~5배 더 큰 사슴을 단독으로 사냥해 잡아먹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스라소니는 삵이나 담비가 결코 할 수 없는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유해조수를 적정한 개체수로 조절해줄 수 있는 자연생테계의 조정자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무서운 맹수가 없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사람을 해치고, 농가에 큰 피해를 끼치는 멧돼지나 고라니들의 개체수를 적정한 수로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스라소니같은 중급크기의 맹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더욱이 스라소니는 초식동물에게는 무서운 살육자이지만, 절대로 사람을 해치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스라소니가 많은 유럽과 아메리카대륙에서는 아직까지 스라소니가 사람을 해쳤다는 보고는 없다고 합니다.

 

지금 멧돼지와 고라니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에게는 해가 되지 않는 스라소니같은 상위포식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됩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사람에게 커다란 민폐를 끼치는 멧돼지와 고라니 같은 유해조수를 적정한 수로 조절하기 위해서는 스라소니같은 중급 맹수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스라소니 목격담

 

우리나라에서도 스라소니 목격담이 간간히 전해지고 있는데요.

 

2002년도에 백두산 부근의 양강도에서 북한군인이 암컷 스라소니를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 병사의 보고를 받고 부대원들이 모두 출동해서 양강도 산기슭을 샅샅이 수색한 끝에, 암컷스라소니 한 마리를 생포했다고 합니다.

 

생포된 스라소니는 즉시 평양의 중앙동물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하네요.

이것이 북한지역에서 마지막으로 스라소니를 목격한 것이고, 그 이후에는 별다른 스라소니 목격담이 없답니다.

 

현재 북한지역에서도 스라소니는 거의 멸종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하며, 양강도와 개마고원의 일부지역에서만 극소수의 개체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오래전에 이미 스라소니가 멸종되었다고 알려졌는데요.

 

 

그렇지만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남한지역에서도 가끔씩 스라소니 목격담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1980년도경 전남 고흥지역에서 농부들이 땔감을 구하러 산속으로 들어가던 중 숲속에서 노루 한 마리를 잡아먹던 고양이 비슷한 동물을 발견했으며,

마을 사람들 여러명이 함께 그 동물을 포획했는데, 그 동물은 바로 스라소니였다고 합니다.

 

강원도 철원에 근무했던 한 병사가 스라소니를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는데요.

 

2005년 경 강원도 철원의 산악지대에서 경계근무를 하던 이모병사가 우연히 초소에서 몇십미터 떨어진 들판에서, 고라니 한마리를 목격했다고 합니다.

 

한밤중에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그 이모병사는 야간투시경으로 들판에 있던 고라니를 보고 있었는데, 그 고라니가 갑자기 놀라면서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그 고라니를 뒤쫒아온 고양이보다 더 큰 동물이 잽싸게 고라니를 습격했다고 합니다.

 

눈깜짝할 사이에 고양이보다 큰 맹수가 그 고라니의 목줄을 물러서 죽이고는 깊은 숲속으로 끌고 갔다고 합니다.

 

 

고라니의 목을 물고서 사라지는 그 맹수는 분명 호랑이나 표범은 아니었지만, 고양이보다는 훨씬 덩치가 더 큰 맹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털이 무성하며 다리는 길고 꼬리는 아주 짧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고라니를 순식간에 사냥한 그 뛰어난 사냥꾼은 바로 스라소니였다고 합니다.

 

강원도 지역의 깊은 산속에서는 병사들이 초소근무를 하거나, 수색을 나가는 과정에서, 나무위에 앉아있거나, 걸어가는 스라소니를 목격했다는 목격담들이 가끔씩 전해지고 있습니다.

 

2000년도에는 경상북도 경주에서 차를 몰고가던 부부가 도로변에 앉아있던 커다란 고양이과 동물을 목격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스라소니 어미와 새끼였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90년대와 200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스라소니 목격담이 여러차례 전해지고 있답니다.

 

우리의 동물전문가들은 남한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스라소니가 멸종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산간지방 깊숙한 곳에서는 아직도 극소수의 스라소니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80년대에는 전라남도의 산악지대 마을에서 개들이 잇달아 살해당하는 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고 하네요.

 

 

며칠 간격으로 그 마을의 주민들이 키우던 개들이 무언가 괴상한 맹수에게 목을 물려서 죽는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졌답니다.

 

이렇게 마을의 개들이 연속적으로 살해당하는 일들이 이어지자, 마을주민들은 자신의 마을에 표범 같은 맹수가 출몰한 것으로 생각했었답니다.

 

그리고 또다시 그 마을에서 개가 이상한 동물에게 공격당하는 일이 벌어졌고, 마을주민 한사람이 그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 마을의 개를 물어 죽인 그 개체는 고양이보다 5~6배 가량 더 큰 고양이과 동물이었다고 합니다.

 

그 마을에서 연속적으로 여러마리의 개들을 물어죽였던 그 공포의 동물은 바로 스라소니였다고 합니다.

 

멸종된 것으로 알고있던 스라소니가 전라남도의 한 산악지대의 마을에 나타나서 동네의 개들 여러마리를 물어죽였던 겁니다.

 

이렇게 마을에서 무고한 개들이 계속 죽어나가자, 주민들은 영리하고 용맹한 진돗개를 데려다가 그 마을을 지키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그마을에 나타난 스라소니와 그 진돗개가 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진돗개가 스라소니를 맹렬하게 몰아부친 끝에 쫒아버렸다고 합니다.

 

 

지능이 뛰어나고 우수한 사냥실력과 용맹하기로 소문난 진돗개가 다른 개들과는 달리, 그 스라소니에게 맹공을 퍼부은 끝에, 마침내 그 스라소니를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 문제의 스라소니는 다시는 그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라소니 종 복원사업

 

위의 목격담에서 알 수 있듯이, 스라소니는 우리나라 야생에서 단독으로 고라니나 노루를 사냥하고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멧돼지를 사냥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스라소니랍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산간지역에서 고라니와 멧돼지가 계속 출몰해서, 농가의 농작물을 훼손시키고, 심지어 멧돼지는 산나물을 캐는 주민들을 물어죽이는 일까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3년 동안 강원도 삼척지방에서는 산나물을 캐던 주민들이 연속해서 3명이 멧돼지에게 물려죽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스라소니와 고양이의 크기 비교

 

이같은 현상은 한반도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져버려서, 고라니와 멧돼지 같은 초식동물의 개체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때문이랍니다.

 

더 이상의 농가의 피해나 사람의 생명의 침해를 막기위해서는 우리 생테계에 고라니와 멧돼지를 잡아먹을 수 있는 맹수를 도입하는 것이 절실하답니다.

 

그렇다고 호랑이나 표범 같은 커다란 맹수를 도입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이들 맹수는 사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을 해치지 않고도, 멧돼지와 고라니의 개체수를 조절할 수 있는 적합한 맹수가 바로 스라소니입니다.

 

유해조수인 고라니와 멧돼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스라소니같은 동물을 도입해서, 우리생테계의 교란을 막고, 더욱 건강하게 가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아메리카에서는 스라소니가 사슴을 잡아먹는 일은 흔한 일이다

 

우리나라 종복원센터에서는 최근 스라소니의 번식과 양산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실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북한으로부터 스라소니 암수 한쌍을 들여왔고, 서울동물원에 우리를 만들어 그곳에 풀어놓고, 자연번식을 하도록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이 스라소니는 한국 토종의 스라소니 암수 한쌍으로서, 몇 년 동안 교미에 계속 실패하였지만, 마침내 20168월에 합사에 성공해서 처음으로 예쁜 새끼를 출산했답니다.

 

서울동물원에서는 앞으로 스라소니가 더욱 많이 번식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에서도 스라소니 종복원사업을 적극적으로 실시해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경북 영양군에 멸종위기종 종복원센터를 건립한다고 합니다.

 

 

이 종복원센터에서 우리나라의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스라소니를 비롯한 43종류의 동물들을 복원해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토종의 멋진 스라소니가 다시 종복원이 성공해서, 우리나라의 산야에서 스라소니들이 활발히 사냥도 하고,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빨리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사람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유해조수들의 개체수를 조절해줄 수 있는 적합한 동물은 스라소니밖에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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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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