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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우미관의 오야붕 김두한의 싸움일화, 조선최고의 주먹 신마적 구마적 대결

 

우리나라 최고의 주먹을 논할 때에 항상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김두한이다.

 

일제강점기 때에, 두둑한 담력과 뛰어난 싸움실력으로 종로 뒷골목의 강자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조선 최고의 오야붕으로 명성을 떨쳤던 김두한이 과연 진정한 한국 최고의 주먹인지 다시 한번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최고의 주먹, 최고의 싸움꾼을 꼽자면 김두한과 시라소니 이 두사람으로 좁혀진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김두한은 남한지역에서 거물급 강자들을 제압하고, 우미관최고의 오야붕으로 우뚝 솟아올랐고,

시라소니는 북한지역에서 기라성 같은 주먹들을 쓰러뜨리면서 북한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이처럼 남과 북에서 최고의 오야붕으로서, 최고의 주먹으로서 남과 북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두 거물급 주먹이 김두한과 시라소니인데, 이 두 주먹들이 서로 만나서 싸움을 벌였다는 과연 누가 이겼을까?

 

만일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만나서 서로 자웅을 겨뤘다면, 진정한 조선의 최고의 주먹이 탄생할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두사람은 실제 싸움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반도 최강자를 가릴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 버렸다.

 

 

그렇지만 남한지역의 최고의 주먹과 북한지역의 최고의 주먹은 가려졌다고 본다. 그 주인공들은 바로 김두한과 시라소니인데, 이들이 어떻게 남한과 북한의 최고의 주먹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조명해볼 필요가 있겠다.

 

김두한의 싸움실력, 구마적과 신마적과의 대결

 

김두한이 우미관의 오야붕, 아니 남한 최고의 주먹이 될 수 있었는 것은 구마적과 신마적 같은 거물급 주먹들과 싸워 제압했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과연 십대의 김두한이 종로뒷골목의 최고의 실세였던 구마적과 신마적과 진짜로 싸워 이겼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김두한의 부하들이 지어낸 김두한의 가짜 영웅담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김두한이 종로의 최고의 강자였던 구마적과 신마적과 싸워서 쓰러뜨렸다는 것은 여러가지 정황이나 증언들을 종합해보았을 때에 실화가 맞다고 본다.

 

김두한이 1969년 출연했던 라디오프로그램 노변야화에서, 30년대 당시 자신이 실제로 구마적, 신마적과 싸웠던 싸움이야기를 김두한 자신이 직접 육성으로 구체적으로 진술한 적이 있었다.

 

 

또한 김두한이 신마적과 싸우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목격했던 신마적 부하의 증언도 공개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정황증거와 증언들을 종합해볼 때에, 김두한이 구마적, 신마적 등과 종로에서 패권싸움을 벌였던 것은 사실이 맞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다.

 

또한 김두한이 그당시 종로의 최고의 실력자였던 구마적, 신마적을 쓰러뜨리지 않은 채로, 종로의 최고오야붕으로 등극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 과연 그 때의 진실이 무엇인지, 김두한이 종로의 최고 오야붕이었던 구마적, 신마적과 대결을 펼쳤던 1930년대의 시절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김두한이 종로에 진출한 것은 1930년대 중반이었는데, 그 당시 김두한은 우미관의 뒷골목에서 김기환의 조직의 조직원으로 편입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김기환 주먹조직에 들어갔던 김두한은 출중한 싸움실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김기환조직의 중간보스급으로 올라서게 된다.

 

김두한은 김기환조직에 있을 때에 10대의 청소년기 시절이었지만, 원펀치가 워낙 강해서 뒷골목에서 여러번에 걸친 싸움에서 원펀치 한두방으로 상대를 KO시키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17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보스 김기환에게 인정을 받아서 중간보스급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김두한은 1918년생으로 1935년도에 18세의 나이일 때에 이미 종로뒷골목에서 자신만의 별동대를 갖고 있는 소규모 주먹조직의 오야붕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

 

그 당시 종로의 뒷골목에서는 여러파벌의 주먹조직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가장 큰 주먹조직으로는 구마적과 신마적이었으며, 이들 두사람은 종로통에서 큰오야붕으로 불리면서, 가장 큰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두한이 속해있던 김기환조직이 그 다음가는 세력으로 평가를 받고있었는데, 고작 17세의 김두한이 서서히 자신의 조직을 키워나가고 있었고,

이 시기에 김두한은 자신이 종로 뒷골목의 최고의 오야붕이 되고자하는 야심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아버지인 독립군사령관인 김좌진장군의 핏줄을 이어받아서 그런지, 김두한은 무척 야심이 큰 사람이다.

 

김두한은 이미 십대 후반의 나이에 자신이 종로 최고의 오야붕이 되고자 하는 거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경성(서울) 최고의 주먹을 꿈꾸고 있었는데, 그가 얼마나 야심만만한 사람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렇게 커다란 야망을 갖고있었던 김두한은 자신이 아무리 주먹조직을 크게 키워나간다고 하더라도, 종로 뒷골목의 최고 실력자인 구마적과 신마적을 제압하지 않는다면 결코 종로, 아니 경성의 최고오야붕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게 호시탐탐 종로의 헤게모니를 노리고 있던 김두한에게 우연히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김두한의 동생들이 구마적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김두한은 가방끈을 짧지만 상황판단이 무척 빠른 사람이며, 싸움을 할 때에는 그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주먹계의 대선배인 구마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그와 싸울 만한 마땅한 명분이 필요한데, 마침 자신의 동생들이 구마적에게 두들겨맞는 일이 발생했으니, 구머적에게 도전할 수 있는 커다란 명분이 생긴 것이다.

 

김두한은 자신의 두 동생들이 구마적에게 얻어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구마적에게 찾아가서 따지면서, 도전장을 내밀었다.

 

구마적은 당시 조선극장의 기도부장으로 역임하면서, 우미관일대의 주먹세계를 호령하고 있었다.

당시 극장의 기도부장은 그 일대에서 가장 주먹이 쎈 싸움꾼만이 차지할 수 있는 주먹 최고의 직책이며, 최고의 주먹의 타이틀 같은 자리였다.

 

당시 힘이 천하장사였던 구마적은 종로3가에서부터 주먹을 휘둘러오면서 종로의 많은 주먹들을 제압했고,

의 힘과 저력이 인정을 받아서 종로의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선극장의 기도부장 자리에 올라앉을 수 있었다.

 

그럼 구마적이 진짜로 힘이 천하장사였을까? 이에 대해 꾸며진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두한이 노변야화에서 직접 육성으로 증언한 내용을 인용해보겠다.

구마적은 1930년대에 종로 뒷골목에서 힘이 가장 쎈 장사로 소문이 났는데, 그렇게 소문이 나게된 배경이 있다고 한다.

 

구마적은 한 때 종로3가에 있던 자동차공업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구마적은 자동차의 앞부분을 혼자서 들어올렸다고 한다.

 

 

그 자동차공업소에서 자동차의 바퀴를 갈아주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구마적이 두손으로 그 자동차의 앞부분을 번쩍 들어올 렸고, 그 사이에 다른 공원들이 그 자동차의 바퀴를 갈아 끼웠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그다음에 일어났는데, 구마적은 두 번째 자동차를 한손으로만 번쩍 들었고, 다른손으로는 담배를 물어 피웠다고 한다.

이것은 김두한이 노변야화에서 직접 말했던 내용이며, 이것을 목격한 주먹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구마적은 힘이 천하장사였고, 싸움에서 그에게 한번 붙잡히면 뼈가 부러지고 골절을 당해서 싸움에서 질 뿐만아니라, 병신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김두한은 이렇게 힘이 장사이며 우미관의 실질적인 오야붕인 구마적에게 당당히 도전장을 던졌다.

 

김두한은 구마적에게 직접 찾아가서 고형님, 왜 힘도 없는 내 동생들을 두들겨 팹니까? 싸움은 강자끼리 해야지, 힘도 없고 나이 어린 허약한 동생들을 왜 팹니까? 형님 오늘은 제가 당신을 좀 패겠습니다. 밖으로 나갑시다!’라고 말하면서 도전장을 내밀었다.

 

난데없는 김두한의 도전에 구마적은 좀 놀랐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구마적은 씩씩 대면서 따라나왔고, 조선극장 앞마당에서 두사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김두한은 1935년 당시 나이가 18살인데 반해, 구마적은 김두한보다 8살이 더 많은 26살의 대선배였는데, 당돌하게도 김두한이 구마적에게 먼저 싸움을 건 것이다.

이 당시 김두한이 동생들 운운한 것은 사실 싸움의 명분을 세우기 위한 목적이었고, 실제로는 구마적을 때려눕히고 자신이 종로의 최고 오야붕이 되기 위함이었다.

 

 

조선극장의 넓은 앞마당으로 나가자, 힘이 좋은 구마적이 욕을 하면서 먼저 달려들었다. 그러자 몸이 빠른 김두한이 뒤로 세걸음 물러나면서 피했고, 이어 김두한은 재빨리 앞으로 달려들면서 공중으로 몸을 날려 오른발로 구마적의 턱을 걷어찼다.

 

김두한의 기습적인 공중 앞발차기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구마적은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잠시후에 구마적은 곧바로 다시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김두한의 두번째 발차기공격이 이어졌다.

 

김두한은 구마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구마적이 벌떡 일어나자 앞으로 달려오면서 공중으로 몸을 날려 이단옆차기로 구마적의 면상을 갈겨버렸다.

 

이 김두한의 두번째 공격은 구마적에게는 엄청 치명적이었다. 김두한이 달려오는 탄력을 이용해서 몸전체의 힘을 실어서 두발로 구마적의 인중과 턱을 갈겨버린 것이니, 엄청나게 큰 타격이 가해졌고, 이 두번째 공격을 받은 구마적으로 그대로 쓰러져 실신하고 말았다.

 

정말 김두한의 통쾌한 승리였고, 김두한은 단 두방의 발차기공격으로 그동안 종로 최고의 실력자로 군림해왔던 구마적을 단숨에 KO시킬 수 있었다.

 

힘에 있어서는 구마적이 더 우위에 있었지만, 스피드와 싸움의 기술에 있어서는 한수 위인 김두한이 자신의 민첩한 스피드와 싸움기술을 이용해서, 천하장사인 구마적을 쓰러뜨렸던 것이다.

 

김두한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김두한이 젊었을 때에도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김두한은 젊은 시절에는 몸이 매우 날씬했고 또한 몸동작이 몹시 날렵했다.

 

 

김두한은 몸놀림이나 스피드가 대단히 빨랐으며, 특히 발차기에 아주 능했던 싸움꾼이었다. 그의 발차기기술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대단했다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발차기실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스피드가 몹시 빠르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젊었을 시절의 김두한은 무척 빨랐고 민첩했다.

 

김두한이 발차기를 잘했던 이유는 그가 그 당시 2년간 당수도장에 다니면서 무술을 수련했기 때문이다.

 

십대 시절에 김두한을 돌봐주었던 사람은 종로에서 곰탕집을 운영하던 원노인이었는데, 김두한이 김좌진장군의 아들임을 알았던 원노인은

종로 뒷골목을 돌아다니던 김두한을 데려다가 곰탕과 설렁탕 등 고기를 많이 먹여주면서 김두한의 체력을 높여주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다.

 

독립군의 아들은 체력이 좋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원노인은 매일같이 김두한을 불러서 자신의 음식점에서 풍성한 고기가 담긴 곰탕등을 매일같이 먹였고, 또한 김두한을 종로 3가에 있는 당수도장에 입관시켜서 무술을 배울 수 있게 해줬다.

 

김두한은 원노인의 배려로 당수도장에 다니면서, 당수도장의 옥상에다 샌드백을 달아놓고, 매일같이 발차기연습을 했었다.

 

이렇게 2년 동안 발차기연습과 무술연습을 반복했던 김두한은 나이 17세 때에는 싸움기술이 크게 향상되었고, 발차기기술의 고단자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수년 동안 무술을 연마한 김두한은 싸움에 자신감이 붙었고, 싸울 때마다 자신의 탁월한 발차기기술을 사용해서, 수많은 적들을 쓰러뜨리고 승리할 수 있었다.

 

단 두 번의 발차기공격으로 구마적을 기절시킨 김두한은 당당하게 조선극장에 입성했고, 그곳에 있는 구마적의 부하들을 모두 쫒아버리고 조선극장을 자신의 나와버리로 삼아버렸다.

 

김두한이 천하장사 구마적을 일대일 대결로 쓰러뜨렸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구마적을 쓰러뜨린 후 김두한은 자신의 주먹조직을 서서히 확장시켜 나갔다.

 

김두한이 구마적을 꺾고 난 후, 남은 또다른 종로의 실력자는 바로 신마적이었다  신마적은 구마적과는 좀 다른 주먹으로, 먹물을 많이 먹은 인텔리 주먹이다.

 

신마적은 보성전문(고려대학교 전신)2년 중퇴하고, 일본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유학파 출신의 인텔리주먹이었다.

 

먹물이 줄줄히 흐르는 그가 어떻게 종로통의 오야붕이 될 수 있었는지는 의문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그 이유는 너무도 뻔하다.

 

일제시절에 조선인으로서 아무리 많이 배웠다 하더라도 일본에 아부하지 않는한, 출세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조선인이 일본에게 핍박을 받던 일본강점기 시절에 조선인이 취직하는 것이나, 출세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시대였기 때문에, 특히 일본에 대해 극도로 혐오감을 갖고있었던 신마적도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종로 뒷골목에 발을 내디뎠던 것이다.

 

1932년도경 일본유학에서 돌아온 신마적은 뭐 좀 해볼까 하고 종로로 나왔다가, 종로2가에 있는 YMCA에 그대로 들어가 터주대감이 된 것이다.

 

신마적은 구마적 못지않게 육척장신에다 힘이 아주 셌고,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였다. 더욱이 신마적은 유도의 실력자인데다 씨름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엄청난 괴력을 지닌 신마적은 뛰어난 유도기술을 지니고 있었는데, 싸움에서 그에게 한번 붙잡히게 되면, 절대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며, 그로부터 공중으로 집어던져졌다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면 허리병신이나 다리병신이 되기 일쑤였다.

 

이처럼 엄청난 괴력과 탁월한 유도실력을 가진 신마적은 YMCA로 들어가서, 원래 YMCA의 학생부 오야붕이었던 해학기에게 도전해서, 그를 쓰러뜨리고 YMCA의 새로운 오야붕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이처럼 YMCA를 접수한 신마적은 YMCA의 운동부학생들을 모두 규합해서 자신이 최고의 오야붕으로 등극한 후, 종로 2가의 새로운 실력자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이처럼 종로에 진출한 신마적은 우미관골목의 한 술집에서 우연히 구마적 고희경과 조우했는데, 구마적이 제안한 팔씨름에서 구마적을 극적으로 물리치면서,

고희경으로부터 새로운 마적의 칭호를 부여받을 수 있었고, 동시에 종로의 또다른 실력자로 공인받는 계기가 되었다.

 

구마적과 대결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둔 엄동욱을 사람들은 자를 붙여서 신마적이라고 불렀고, 원래의 마적이었던 고희경은 자를 붙여서 구마적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로써 종로뒷골목은 구마적과 신마적의 2인 쌍두체제로 돌입하게 되었고, 구마적과 신마적은 서로 호형호제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나갔다.

 

 

구마적보다 두 살 정도 어린 신마적은 구마적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대우해주었고, 신마적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던 구마적도 신마적을 종로의 또다른 주먹으로 대우해주면서, 두사람은 종로 뒷골목에서 서로 협력관계를 유지해나갔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이가 한참 어린 김두한이 나타나서, 종로주먹계의 최고의 실력자인 구마적을 박살내버렸으니, 종로 뒷골목에는 적지않은 파장이 일었다.

 

구마적과 호형호제하면서 지냈던 신마적은 김두한이 구마적을 쓰러뜨렸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신마적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녀석이 감히 대선배에게 주먹을 휘두르다니,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겠어!’라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를 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마적은 실제로는 김두한에게는 싸움을 걸지 않았고, 거의 2년 동안 김두한과 아무런 충돌없이 지냈다고 한다.

 

아마도 신마적으로 신성 강자로 급부상한 김두한과 일부러 싸울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괜히 김두한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만에 하나 지기라고 하는 날에는 엄청난 망신거리가 되며, 자신의 오야붕 지위를 잃게되기 때문이다.

   

그러는 중에 김두한은 종로에서 김기환이 일본형사를 두들겨 패는 일로 인해서, 경찰에 체포되어 감방에 들어가게 되자, 종로 뒷골목을 자신이 완전 장악하게 위해서, 더욱 자신의 조직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제 종로에서 자신이 섬겨왔던 유일한 두목인 김기환이 사라졌으니, 김두한은 아예 종로 전체의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할 필요를 느꼈고,

김두한이 종로의 최고 오야붕이 되는 데에, 마지막 걸림돌인 신마적을 제거할 필요성을 느꼈다.

 

1937년 겨울의 어느날 김두한은 마침내 신마적에게 도전할 수 있는 좋은 찬스를 맞게 된다.

자신의 두명의 동생들이 우미관골목에서 신마적에게 두들겨 맞고 돌아온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김두한은 명분이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사람이다. 주먹계의 선배와 싸울 때에는, 그럴만한 적당한 이유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김두한은 우미관골목의 거물 구마적을 쓰러뜨린 후에 신마적이 먼저 자신에게 싸움을 걸어올 줄 알았다. 하지만 왠일인지 신마적이 자신에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고, 김두한은 계속 신마적의 도전을 기다려왔다.

 

그렇지만 신마적은 말로만 김두한을 손보겠다고 말했을 뿐, 2년이 지나도록 김두한을 전혀 찾지않았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렀고, 김두한은 자신의 주먹조직을 크게 확장시켜 나갔지만, 신마적을 꺾지 않고서는 자신이 종로 뒷골목의 진정한 오야붕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신마적과의 대결을 기다리다가, 자신의 두동생들이 신마적에게 얻어맞는 일이 일어나자, 김두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곧바로 신마적이 있는 맥주집으로 찾아갔다.

 

사실 신마적은 먹물을 먹은 사람이지만, 성격이 엄청 급하고 한번 화가 나면 끝장을 보고마는 아주 다혈질적인 성미를 지녔다.

 

우미관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김두한의 두명의 동생들이 신마적을 보고도 인사도 하지 않고 비웃는 듯한 웃음을 보내자, 화가 치밀어 오른 신마적이 김두한의 동생들을 손을 본 것이다.

그리고 김두한의 두동생들은 이같은 사실을 김두한에게 곧바로 일러바친 것이다.

 

우미관 골목에 있는 신마적이 즐겨 찾는 술집인 엔젤맥주집에는 신마적과 10여명의 동생들이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김두한이 자신의 동생 10여명과 함께 이 엔젤맥주집으로 들이닥쳤고, 신마적일행의 테이블을 빙 둘러 포위해버렸다.

 

김두한은 신마적 앞으로 다가가서 형님이 오늘 제 동생들을 때렸다고 하지요! 형은 동생들을 따뜻하게 사랑해야 하는 것이 도리인데, 형이 동생들을 사랑하지 않으니, 저도 형님을 존경할 수가 없습니다.

신마적형님, 오늘 제가 형님을 좀 때려야겠습니다, 밖으로 나가시지요!’라고 말하면서 도전장을 내밀었다.

 

성미가 급한 신마적은 김두한의 이 당돌한 도전에 대단히 노했고, 두 주먹으로 테이블을 세차게 내리쳤다.

 

김두한과 신마적은 맥주집 밖으로 나가서, 양쪽 부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일대일 맞싸움을 벌이게 됐다.

 

신마적은 그 당시에는 거구의 덩치에다 육척장신으로 알려졌는데, 키가 180cm 정도이고, 김두한은 176cm로 신마적 보다는 약간 작지만, 어깨가 딱 벌어진 기골이 장대한 덩치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싸움은 덩치나 힘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 민첩한 스피드와 싸움기술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된다.

힘만으로 따진다면, 신마적이 더 위일 수 있으나, 김두한은 남들이 갖지못한 뛰어난 스피드를 갖고 있었고, 싸움기술은 당시 최고의 수준급이었다.

 

당시 김두한의 친구였던 김동회의 증언에 따르면, 김두한이 싸움을 할 때에는 훨훨 날아다녔고, 몸동작이 무척 빠르고 엄청나게 대단했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호평을 했다.

 

김두한이 종로2가 술집 앞에서 일본야쿠자들 7명의 패거리를 혼자서 상대했는데, 김두한이 앞으로 뛰쳐나가면서 앞에 있던 두명 야쿠자들의 어깨를 두손으로 집으면서, 동시에 두발로 날려쳐서 앞에 있는 두명의 상대방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다시 김두한은 적진으로 뛰어들어가서, 오른발과 왼발로 두명의 상대방의 턱을 연속적으로 가격해 쓰러뜨렸고,

적진의 한가운데어서 좌충우돌하면서 발차기로 7명의 야쿠자들을 모두 순식간에 쓰러뜨렸다고 한다.

 

김두한의 이같은 공격이 얼마나 빨랐던지, 김두한이 야쿠자 7명을 모두 쓰러뜨리는 데에 채 5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김두한이 자신의 발차기기술을 동시에 연속적으로 사용해서, 7명을 모두 혼자서 쓰러뜨렸다고 한다.

 

김두한은 그만큼 엄청나게 빨랐으며, 발차기기술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가 이소룡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김두한이 공중으로 붕 날아서 상대방의 안면에 날라차기 하는 일은 그당시에 김두한에게는 아주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이소룡은 영화에서 싸우는 흉내만 내지만, 김두한은 그런 비슷한 모습으로 실제로 싸웠다고 한다.

 

이처럼 김두한은 자신의 공중부양과 발차기기술로 상대방을 쓰러뜨려나갔는데, 한방이나 두방이면 상대방을 KO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김두한의 별명이 한방(잇뽕)’ ‘원펀치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김두한이 싸우는 장면을 보면, 너무 빠르고 화려해서 싸움으로 이골이 난 김동회도 김두한에게 홀딱 반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사람은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가라데의 고수 최배달이 생전에 한 말이 있는데, 자신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200명의 세계 강자들과 싸워서 모두 이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배달 자신이 싸워서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 사람이 단 한사람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김두한이라고 한다. 이것은 최배달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실제로 한 말이다.

 

, 최배달은 김두한 만큼은 자신이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유일한 강자라고 인정을 한 것이다.

최배달도 두려워했던 조선의 최강자는 바로 김두한이었던 것이다.

 

신마적의 주특기는 바로 엄청난 괴력을 사용하는 유도의 기술이며, 신마적에게 한번 붙잡히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신마적의 꺾기기술에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마적이 집어던질 경우에는 2m 정도를 공중으로 날아갔다가 떨어져서, 허리병신이 되기 일쑤라고 한다.

 

신마적에게 붙잡히면 단순히 싸움에서 지는 정도가 아니라, 허리병신이 되어서 평생 불구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있는 김두한은 최대한 신마적과의 거리를 벌리면서 싸우려고 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자 마자,

느닷없이 분노한 신마적이 달려들어서 김두한의 왼팔을 붙잡았고, 김두한이 팔을 빼내려고 하자, 신마적은 반바퀴 회전하면서 김두한을 오른쪽으로 그대로 던져버렸다.

 

그렇게 오른쪽으로 튕겨나갔던 김두한은 왼발로 담장을 밝으면서 다시 자세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신마적은 김두한을 잡으려고 두팔을 벌리면서 다가왔다. 이순간 김두한은 순식간에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떨어지는 중력을 이용해서 두발로 신마적의 안면을 차버렸다.

 

 

바로 김두한의 주특기인 공중 이단옆차기 공격이 신마적에게 가해진 것이고, 안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신마적은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워낙 체력과 멧집이 뛰어났던 신마적은 곧바로 일어나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러자 김두한이 앞으로 달려가면서 또다시 공중으로 뛰어오르면서, 자신의 오른발로 신마적의 가슴팍을 걷어찼고, 그 충격으로 신마적이 뒤쪽 담장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김두한은 또다시 자신의 왼발로 신마적의 안면을 가격했고, 충격을 받고 신마적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 이번에는 김두한이 오른발로 신마적의 복부를 걷어차 버렸다.

 

연속적으로 김두한의 세번의 발차기공격을 받은 신마적은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고목나무 쓰러지듯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김두한이 종로 최고의 주먹 신마적을 한 대도 얻어맞지 않고서, 네 번의 공격으로 KO시키는 순간이었다.

 

김두한은 괴력의 장사꾼 신마적을 단 네 번의 발차기공격만으로 쓰러뜨렸고, 김두한 공격으로 큰 충격을 받고 쓰러진 신마적으로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김두한에게 대패했던 신마적은 동생들의 등에 업혀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갈비뼈 4대가 부러지고 턱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3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김두한의 노변야화에도 언급된 내용이며, 또한 그 당시 신마적의 부하였던 이모씨라는 사람이 90년대 후반에 기자에게 실제로 얘기해주었던 증언내용이다.

 

엔젤맥주집 앞에서 김두한과 신마적이 싸울 때에 그 옆에서 두사람의 싸움을 구경했던 신마적의 부하였던 이모씨가 자신이 실제로 목격했던 내용을 기자에게 증언했던 내용이다.

 

만일 신마적의 부하인 이씨가 거짓으로 꾸며내었다면, 자신의 두목인 신마적이 김두한에게 이겼다고 꾸며대는 것이 정상이지, 이처럼 자신이 모시는 신마적이 제대로 공격 한번 해보지 못하고 망신스러운 패배를 당했다고 꾸며댈 이유가 있겠는가?

 

또한 증언자 이모씨는 당시 신마적이 김두한에게 KO패당해 쓰러지고 난 뒤, 자신이 직접 신마적을 등에 엎고 병원까지 데려갔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신마적이 김두한과 싸워서 패배한 것은, 김두한의 동생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인 것이다.

 

 

이처럼 구마적을 쓰러뜨린 뒤에, 2년 만에 신마적마저도 완벽하게 꺾어버린 김두한은 명실상부한 종로 뒷골목의 최고 오야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1930년대 중반인 그당시 종로와 우미관일대에는 총 네명의 큰오야붕들이 있었는데, 구마적과 신마적 외에도 제비뭉치같은 장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제비는 발차기의 명수이며 싸움의 달인이라는 주먹인데, 그는 전봇대에 걸린 전등을 공중으로 날아서 발차기 한방으로 깨뜨릴 만큰 발차기를 잘하는 무술의 고수였다.

 

구마적과 신마적을 깨뜨린 김두한은 종로뒷골목에서 설치고 다니는 제비에게 도전했고, 오히려 김두한이 날아차기 공격을 이용해서 발차기의 명인인 제비를 쓰러뜨렸다고 한다.

 

그리고 힘이 천하장사인 뭉치에게 도전한 김두한은 뭉치의 안면을 걷어차고, 복부를 걷어차서 뭉치에게 항복을 받아냈다고 한다.

 

이렇게 김두한은 구마적과 신마적 뿐만아니라, 종로통에서 활개를 치고다니던 강자들을 모조리 제압하고 난 뒤, 마침내 종로의 최고오야붕으로 인정받을 수가 있었다.

 

김두한이 구마적과 신마적, 제비, 뭉치 등 종로의 최고실력자들을 모두 물리쳤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두한 밑으로 많은 부하들이 몰려들게 되었고,

김두한은 명실상부한 종로 우미관의 최고 오야붕으로 우뚝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김두한부하들과 시라소니의 충돌

 

이렇게 경성(서울)의 금싸래기땅인 종로를 휘어잡았던 김두한은 서울의 또다른 지역인 서대문과 왕십리, 광화문 그리고 마포와 영등포 등으로 진출해서,

그 지역의 주먹들을 모조리 쓰러뜨려나갔고, 얼마 지나지않아 서울의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하면서, 경성 최고의 오야붕으로 우뚝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경성 최고의 주먹조직으로 성장한 김두한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는데, 그가 평소에 꿈꾸었던 조선최고의 주먹이 되겠다는 그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지방으로까지 자신의 주먹조직 세력을 계속 확장시켜 나갔다,

 

 

또한 김두한은 인천을 필두로 해서 용인과 대전을 정복해갔고, 또한 전주, 광주, 목포 그리고 대구와 부산까지 진출해서 이 모든 지역들을 장악해버렸으며,

김두한은 나이 20살이 넘기 전에 이미 남한의 대부분의 지역을 자기조직의 휘하로 복속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김두한은 경성(서울) 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전국구 주먹조직의 오야붕으로 등극하게된 것이다.

 

김두한은 20세 때에 자신이 그토록 꿈꾸워왔던 조선 전체의 주먹 오야붕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런데 김두한이 조선의 대부분 지역들을 순조롭게 장악해나갈 수 있었지만, 딱 한군데 손에 넣지 못한 지역이 있었다.

 

김두한의 부하들은 서울을 찍고, 대전과 광주, 대구, 목포 뿐만 아니라, 최남단 부산까지 장악할 수 있었는데, 한반도의 북쪽부분이 문제였다.

 

김두한의 부하들은 북쪽인 평양에까지 진출해서, 평양의 보스 이화룡으로부터도 복종을 받아내어서, 평양을 김두한의 우미관패의 하부조직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그런데 한반도의 최고 북쪽인 신의주가 문제였는데, 산의주는 김두한의 하부조직으로 들어오는 것에 강렬하게 저항했다.

 

당시 신의주에는 명목상으로 정팔이 오야붕으로 군림하고 있었는데, 정팔이 김두한부하들의 복속압박에 대해 거부했던 것은, 자신의 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뒤에 있는 또다른 실력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정팔의 뒷배경에는 시라소니 라고 하는 최고의 거물급 주먹이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정팔은 시라소니라는 뒷배경을 믿고서, 김두한부하들의 복속압력에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김두한부하들과 시라소니가 한판 전쟁을 펼치게 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면이 너무 길어져서, 이 이야기는 다음 게시글에서 속편으로 이어가도록 할 계획입니다. 다음 게시글에서 뵙도록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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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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