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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7대불가사의) 이집트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의 미스테리, 비밀의 방

 

문명이 많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그 실체를 풀어내지 못한 미스테리한 고대의 건축물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 어떤 과학적인 분석기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실체와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는 미스테리한 건조물들이 아직도 많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것을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부르기도 하며, 다른 말로 인간이 만든 가장 기적같은 건축물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바빌론의 공중정원과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과 로도스의 거상, 마우솔로스의 영묘,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그리고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건축물이 바로 대피라미드이다.

 

이집트의 기자지구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가 바로 대피라미드이다.

이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온통 미스테리에 둘러쌓인 건축물로 유명하다.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축조된 시기는 기원전 2560년이며, 이집트의 제4의 왕조인 쿠푸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쿠푸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 대피라미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큰 피라미드로 유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이 대피라미드는 그 건축기법과 사용용도, 그리고 비밀의 방 존재 등 아직까지도 학자들도 풀지못한 미스테리들이 많이 남아있다.

 

영화 미이라등 수많은 영화들의 소재로 등장해왔던 기자지구의 대피라마드는 과연 누가 무슨 용도로 만들었고, 또 이 거대한 크기의 피라미드를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가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일부 이집트학자들에 의해서, 이 대피라미드는 ‘’쿠푸왕의 무덤일 것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리고 대피라미드 옆에서 아들피라미드와 손자피라미드도 함께 세워져 있다고 한다.

 

또한 이 대피라미드 곁에는 대피라미드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거대한 스핑크스가 세워져 있어서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대피라미드가 쿠푸왕의 무덤이라는 증거는 없다

 

과연 기자지구에 있는 대피라미드가 정말로 쿠푸왕의 무덤이 맞는 것일까?

 

 

기자지역의 대피라미드는 그 웅장한 모습과 거대한 크기에서부터 신비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대피라미드의 높이는 무려 147m나 되며, 밑변의 길이는 230m나 된다.

그리고 대피라미드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사각뿔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밑바닥의 네변의 방향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항하고 있다.

 

나침반이 전혀 없었던 기원전 2560년도의 시기에,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동서남북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는지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기원전 2560년도의 시기에 어떻게 높이 147m나 되는 이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 수가 있었는지, 정말로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19세기 파리의 에펠탑이 세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대피라미드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대피라미드 내부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피라미드의 내부에는 원래 3개의 방이 존재하고 있다.

 

대피라미드의 입구를 통해서 들어가면, 지면에서부터 21m 높이에 왕비의 방이 나오며, ‘왕비의 방앞에서 대회랑이 연결되어 있으며, 47m 길이의 대회랑의 끝부분에는 왕의 방이 나온다.

 

왕의 방은 지표면으로부터 42m 높이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대피라미드에 처음 입구에서 들어갔을 때에, 위로 올라가면 왕비의 방이 나오지만,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지표면으로부터 30m 아래부분에 장례의 방이 하나 존재한다.

 

이렇게 대피라미드에는v ‘왕의 방왕비의 방’, 그리고 장례의 방등 모두 3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피라미드의 미스테리

 

첫째 미스테리, 대피라미드 축조에 사용되었다는 수많은 돌들을 어떻게 먼 지역에서 운반해왔을까?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피라미드에 사용된 수백만개의 돌들을 50km 떨어진 지역과 900km 떨어진 지역에서 운반해왔다고 한다.

 

 

한 두 개의 돌도 아니고, 수톤씩 나가는 이렇게 무겁고 많은 돌들을 수십킬로에서 수백킬로의 거리에서 어떤 수단을 통해서 운반해왔는지가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대피라미드 외부의 돌들은 석회석인데, 이 석회석은 50떨어진 남쪽지역에서 운반해왔다고 하며, 대피라미드의 내부에 사용된 석재는 화강석인데, 이 화강석은 무려 900km 떨어진 아스완지역에서 운반해왔다고 한다.

 

지금처럼 열차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거대한 탱크롤리차량이 있는 것도 아닌, 아주 미개한 시기인 기원전 2,500년 경의 시대에 어떤 운반수단을 사용해서 2백만개가 넘는 돌들을 900km나 떨어진 먼지역에서 운반해왔는지가 의문점이다.

 

대피라미드를 짓는 데에 사용된 돌이 몇십개나 몇백개 정도라면, 아무리 거리가 멀다고 하더라도 해볼만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대피라미드 축조에 사용된 돌들은 무려 230만개나 되는데, 230만개나 되는 돌들을 원거리에서 어떻게 운반해왔는지가 수수께끼인데,

그 시대에는 사실상 이렇게 많은 돌들을 수백킬로의 거리에서 운반해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혹자는 대피라미드에 사용되는 돌들은 나일강의 배를 통해서 운반해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수백만개나 되는 돌들을 운반선을 사용해서 나일강으로 운반해왔다고 치자, 그렇지만 이 돌들을 나일강에서 현장까지 또다시 몇십km를 운반해야 하는데, 돌 하나의 무게가 평균 2.5톤이나 될 정도로 무거운데,

지금같이 열차나 거대한 화물차가 없었던 청동기시대에 어떤 운반수단을 써서 운반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만약 2.5톤이나 되는 돌 2백만개를 낙타나 말을 이용해서 옮겼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평균 80kg 몸무게의 사람을 태우고 운반하는 낙타도 힘이 무척 든다고 하며, 만약 100kg 정도의 사람이 낙타나 말에 올라탈 경우, 그 낙타나 말은 몸이 무척 약해지고 힘들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2.5톤이나 되는 돌을 200만개 넘게 나르게 한다면, 그 낙타나 말들은 몇 번 날라보지 못하고 모두 탈진해서 죽을 것이다.

 

둘째 미스테리, 200만개가 넘는 돌들을 어떤 방법으로 147m의 높이까지 올려놓을 수 있었을까?

 

대피라미드를 축조했다고 알려진 시기는 기원전 2.560년도라고 한다. 기원전 2.560년도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나 동아시아지역은 철기나 청동기가 발견되기 전인 원시적인 신석기시대였다.

 

우리보다 조금 문명이 앞섰던 이집트지역도 이시기는 청동기 초기시대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철기문화가 태동하기 훨씬 전의 시기였기 때문에, 철기도구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대피라미드가 건설된 기원전 2.560년도는 분명 청동기초기의 시대였는데, 대피라미드에 사용된 돌의 무게는 평균 2.5톤이며, 230만개의 돌이 사용됐다.

 

지금처럼 철제 타워크레인이 없던 청동기시대에 어떻게 수백만 개의 돌들을 147m의 높이까지 올려놓을 수 있었을까?

 

대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데에, 230만개의 돌들이 사용되었고, 100m 이상의 높이에 수십만개의 돌들이 사용되었을 것을 판단할 수 있다.

 

철제기구도 전혀 없던 시기에, 타워크레인도 없던 시대에, 어떻게 수십만개의 돌들을 100m 이상의 높은 곳에 올려놓았는지가 의문점이라고 하겠다.

 

그 당시는 청동기시대이기 때문에, 청동기로 거중기를 만들어서 2.5톤 무게의 돌 수십만개를 100m 이상의 높이까지 끌어올려야만 했는데, 이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청동으로 만든 기구는 무척 연하고 약하기 때문에, 2.5톤의 돌을 거중기로 끌어올린다면, 그 청동제 거중기는 금방 휘어져 버리거나, 부러져버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원화성을 건축하는 데에 정약용이 거중기를 이용해서 돌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수원화성에서 거중기가 1톤이하의 돌을 들어올렸지만,

그 높이는 고작 5m에 불과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거중기는 청동이 아닌 철기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기자지구의 대피라미드의 높이는 5m가 아닌 최고 147m나 되기 때문에, 철기가 아닌 청동제 거중기로는 사용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만약 지금처럼 철제로 된 타워크레인이 있었다고 해도, 200만개가 넘은 2.5톤의 돌들을 147m의 높이까지 끌어올려놓는 것은 무척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 될것이다.

 

그렇지만 대피라미드를 축조했던 시기는 청동기 초기의 시대인 기원전 2.560년도이기 때문에, 결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셋째 미스테리, 대피라미드는 쿠푸왕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과연 쿠푸왕의 무덤이 맞는 것인가?

 

이집트의 일부학자들은 기자지구의 대피라미드가 쿠푸왕의 무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피라미드에 있는 왕이 방이 바로 쿠푸왕의 묘실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것이 오랫동안 정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대피라미드가 쿠푸왕의 무덤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물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대피라미드 내부에 있는 묘실에는 쿠푸왕과 관련된 그 어떤 유물이나 흔적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다른 이집트무덤들에서는 값나가는 보석이나 장식품, 제기도구들, 금은보화등 왕의 무덤을 상징하는 부장품들이 수없이 많이 나오고 있고, 왕의 미이라도 함께 출토되고 있다. 원래 왕의 무덤에서는 이런 미이라와 부장품들이 함께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지만 대피라미드의 그 어떤 방에서도 쿠푸왕의 무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그 어떤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미이라나 부장품은 고사하고, 천조각 하나, 깨진그릇 하나 나오지 않았다고 하며, 다른 이집트유적에서 흔히 발견되는 벽면에 기록된 상형문자나 벽화도 이곳에서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 기자지구의 대피라미드에서는 쿠푸왕의 무덤이라는 그 어떤 흔적도 전혀 나오지 않았던 것이며, 이 대피라미드가 쿠푸왕의 무덤이라는 것은 소수의 이집트학자들의 추정에 불과한 것이다.

 

대피라미드 안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왕의 무덤안에 있는 뚜껑없는 석관이 유일한 부장물이다.

이 석관에는 아무런 장식이나 벽화, 상형문자 표시가 전혀 없기 않았기 때문에, 이 석관이 쿠푸왕의 석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피라미드 안에는 왕의 방안에 그냥 텅빈 석관 하나가 뚜껑도 없이 덩그렇게 놓여있는 것이 전부이다.

 

이렇게 아무런 증거도 흔적도 없는데, 이 대피라미드를 쿠푸왕의 무덤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가자 지구의 대 피라미드가 정말 쿠푸왕의 무덤이라면, 거기서 황금이나 보석 등 왕을 상징하는 부장품과 왕의 미이라가 분명 나왔어야 한다.

그렇지만 대피라미드에서 왕을 상징하는 그 어떤 부장품과 상징물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도굴꾼들이 대피라마드에 몰래 들어와서, 왕의 미이라와 부장품들을 도굴해간 것은 아닌가?

 

그런데 9세가 초반경 이집트의 압바스왕조의 칼리프였던 알 마아문이 대피라미드안에 들어가서 탐사를 했었다고 알려졌다.

 

 

칼리프는 당시 이집트의 이라는 칭호로 사용되었는데, 9세기경 이집트 의 왕 알 마아문은 대피라마드의 속에 혹시 보물이 숨겨져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대피라미드 속으로 들어가서 탐사활동을 벌였지만, 왕의 미이라나 보물, 부장품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9세기경, 왕 알 마아문이 기자지구의 대피라미드에 최초로 내부진입에 성공한 사례라고 한다.

, 이집트의 왕 알 마아문이 최초로 대피라미드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했다고 하므로, 그가 대피라미드 내부에 최초로 들어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그 누구도 대피라미드의 입구를 찾지못한 상태에서, 9세기경에 왕 알 마아문이 최초로 대피라미드 내부의 통로로 들어가기 위해서 입구를 막고있는 두꺼운 화강암석을 뚫었고, 그 때에 비로서 대피라미드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왕 알 마아문 이전까지는 대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두꺼운 화강암으로 막혀있어서, 그 어떤 누구도, 심지어 그 어떤 도굴꾼들도 대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 왕 알 마아문이 대피라미드에 최초로 들어갔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최초로 입구를 뚫고서 대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갔던 왕 알 마아문은 그 어떤 보물이나 부장품들도 발견하지 못했고, 왕의 시체나 미이라도 전혀 찾지못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나왔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피라미드에는 애초부터 보물이나 부장품들이 없었다고 볼 수 있으며, 왕의 미이라도 없었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다.

 

 

대피라미드 내부형태는 네가지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대회랑, 왕의 방, 왕비의 방, 지하의 방으로 되어 있다.

 

대피라미드의 입구와 통로를 처음으로 뚫었던 왕 알 마아문은 그속에 엄청난 황금과 보물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들어갔지만, 왕의 묘실이나 왕비의 묘실,

그리고 지하의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텅 비어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실망이 컸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대피라미드 속에 유일하게 존재했었던 것이 왕의 방안에 놓여져 있는 뚜껑이 없는 석관 뿐이었다.

 

왕의 방은 길이 10.5m, 높이 6m로 되어 있으며, 남쪽과 북쪽에 두 개의 환기통이 나있으며, 왕의 방안에는 텅빈 석관 하나만 있었는데, 이 방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방인지, 그 용도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이다.

 

만일 이 곳이 진짜로 왕의 무덤이었다면, 그 벽면에 상형문자나 벽화로 왕의 무덤을 설명하는 문구나 왕의 치적을 기록해놓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렇지만, 대피라미드의 그 어떤 방에도 벽화나 기록이 전혀 없었다고 하며, 단 한 개의 부장품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학자들은 대피라미드의 왕의 방은 쿠푸왕의 진짜 묘실을 보호하기 위해서, 위장용으로 지어진 가짜묘실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쿠푸왕의 진짜 묘실은 다른 곳에 만들어져 있고, 왕의 방은 도굴꾼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위장용으로 만들어진 가짜 묘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쿠푸왕의 진짜묘실은 대피라미드 바로 앞에 있는 스핑크스의 지하에 있는 비밀의 방이라고 한다.

 

관광객들이 기자지역의 대피라미드 앞으로 가서 보면, 마치 대피라미드를 보호하기 위해서 바로 앞에 앉아있는 거대한 스핑크스를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스핑크스를 대피라미드를 보호하기 위한 수호신의 상징물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이 스핑크스에서 내부로 통하는 구멍이 하나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학자들이 이 구멍으로 들어가서 조사활동을 벌이길 원했지만, 이집트정부가 이 곳을 원천봉쇄하고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막아놓았다고 한다.

 

일련의 고고학자들은 이 스핑크스 지하에 있는 비밀의 방이야말로 진짜 쿠푸왕의 무덤이며, 이곳에 막대한 양의 금은보화가 숨겨져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집트정부가 엄격하게 출입을 차단하고 있어서, 아무도 그 미스테리를 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집트정부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스핑크스의 비밀의 방을 봉쇄하고 있는지, 젼혀 알 길이 없으나, 그 비밀의 방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이집트가 이같은 특별한 관광포인트를 공개해서 더많은 관광수입을 올리는 것이 정상인데도, 오히려 관광포인트를 봉쇄한다는 것은,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세상사람들에게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충격적인 내용의 그 무언가가 그 비밀의 방에 숨겨져 있을 것으로 판돤된다.

 

한 예언가는 이 스핑크스 내부에 피라미드의 미스테리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숨겨져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예언가의 말에 의하면, 만일 스핑크스의 비밀의 방이 열리게 되면, 세상사람들에게 엄청난 재앙이 닥친다고 한다.

 

내 주관적인 생각에 의하면, 그 비밀의 방에서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라, 인류의 기원의 비밀이나 인류생성의 비밀이 담겨있는 특별한 문서가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판단된다.

 

그곳 스핑크스 지하의 비밀의 방에는 최초로 인류가 지구에 출현해서 정착하게 된 계기나 인류가 어디서 왔는지를 밝혀주는 외계인의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사실 여러명의 채널러와 초현상연구가들이 기자지구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지역이 외계인들이 다른 외계의 세상과 교신하는 교신장소라고 언급했던 적이 있고,

한 외계인들이 이 대피라미드지역을 지구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기원전 2500년의 시기에 기자지구의 거대한 대피라미드는 그 당시 인간의 능력이나 기술력으로는 결코 만들 수가 없는 구조물이며, 오직 인류보다 한차원 높은 외계인들의 우월한 기술력만으로 건설할 수 있는 구조물이라고 판단된다.

 

기원전 2500년은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조선이 탄생하기도 전인 아주 미개한 신석기시대였고, 동양보다 조금 문명이 앞섰던 이집트지역도 청동기시대 초기였기 때문에,

이렇게 문명이 낙후되었던 원시적인 시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대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구조물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렇게 낙후된 시기에 저렇게 거대한 대피라미드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외계인의 선진문물에 의해서만 가능했다고 보여진다.

 

우리가 믿고 싶든, 믿기 싫든 지금으로부터 4,579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대피라미드는 외계인의 개입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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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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