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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최고 미녀여배우 정윤희의 미모와 영화, 남편 조규영

 

우리나라 여배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는 누구일까요?

얼마전에 김수로가 한국의 3대미인을 언급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그는 손예진, 김성령, 그리고 정윤희를 3대미인으로 꼽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왕년의 미녀스타 정윤희가 또다시 실검에 오르면서 집중 조명을 받게되었는데요.

많은 영화관계자들이 역대 우리나라 최고의 미인으로 정윤희를 꼽는다고 합니다.

 

왕년의 손꼽히는 미녀스타 정윤희가 은퇴한 지 34년이 지났는데도, 또다시 대중들로부터 집중적인 관심과 조명을 받게 되었답니다.

 

몇 년 전에도 정윤희의 미모가 크게 회자되면서, 다시 조명을 받기도 했으며, 또한 몇 년 전에는 정윤희 남편의 파산이 알려지면서 정윤희가 또다시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기도 했답니다.

 

이처럼 정윤희가 은퇴한지 3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회자되는 것은 그녀만이 갖고있는 독보적인 미모와 그녀가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로서 큰 역할을 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윤희는 1975년도 욕망이라는 영화로 데뷔한 이래, 40여편의 영화들에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11편의 인기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70~80년대에 최고의 인기여배우로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전설의 여배우입니다.

 

 

정윤희는 데뷔초부터 해태제과의 CF모델로 활동할 당시부터 그녀의 뛰어난 미모가 큰 주목을 받았었는데요.

 

당시 정윤희가 연예계에 처음으로 얼굴을 알렸을 때인데, TV광고에서 정윤희를 보았던 많은 사람들은 저렇게 빼어나게 예쁜 여자연예인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는가?’하고

말할 정도로 한국의 많은 대중들이 정윤희의 뛰어난 미모에 놀라면서 극찬을 보냈다고 합니다.

 

정윤희는 데뷔할 때부터 그녀의 빼어난 미모가 큰 화제가 되었고, 다른 여배우들보다도 미모에서 훨씬 더 부각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연예계에 데뷔한 정윤희는 77년도에 드라마 청실홍실에 장미희와 함께 출연하면서, 커다란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78년도에는 영화 나는 77번 아가씨에 출연해서 청순하고 가련한 연기를 선보이면서, 큰 인기를 끌면서 대중스타로 우뚝 올라서게 되었답니다.

 

70년대에는 호스티스영화들이 큰 붐을 일으키면서 우후죽순 많이 만들어졌던 시대였어요. 그러니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호스티스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좀 영화의 품격이 떨어졌던 시대였는데요.

 

 

정윤희도 호스티스영화인 나는 77번 아가씨등 몇편의 그런영화에 출연하게 되었지만, 워낙 고품격의 미모와 고상한 이미지를 지닌 정윤희의 품격높은 연기로 인해서,

그녀가 출연한 호스티스영화들은 오히려 예술성이 높은 영화로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답니다.

 

이처럼 호스티스영화도 누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가에 따라서 영화의 품격이 완전 달라지게 된답니다.

 

정윤희는 드라마 청실홍실에서 연적으로 나온 장미희와 미모경쟁과 연기대결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 드라마로 두 여배우가 모두 대중적으로 큰 주목과 관심을 끌었답니다.

 

장미희는 정윤희의 약혼자를 빼앗아가는 사랑의 훼방꾼으로 나오고, 정윤희는 자신의 약혼자 하나만을 믿고 사랑하는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영혼의 여주인공으로 분해서,

두 여배우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경쟁과 애증을 벌이는 명장면들이 많이 노정되면서, 드라마 청실홍실은 역대 최고의 높은 시청률을 올리게 되었지요.

 

77년 당시 드라마 청실홍실의 시청률은 70%나 되었다고 하는데,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이 최고의 시청률은 지금까지도 전혀 깨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드라마 청실홍실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서, 두명의 여주인공이었던 정윤희와 장미희도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는데요.

당시 또다른 여배우인 유지인과 더불어 정윤희와 장미희 세명의 여배우들은 70년대 후반 가장 높은 인기를 끌면서, 소위 신트로이카의 전성시대를 열어나가게 되었답니다.

 

 

정윤희와 장미희가 청실홍실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면, 유지인은 또다른 드라마 서울야곡에서 그 청순가련한 이미지와 외모로 역시 큰 인기를 끌게 되었지요.

 

이렇게 70년대 후반은 신트로이카인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가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우리나라의 방송영화계를 거의 장악해나가게 되었답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세명의 신트로이카들의 미모가 서로 비교되면서 대중들로부터 관심을 끌었는데요.

 

장미희는 동양적인 미모와 고전적인 단아한 미모로 관심을 받았고, 유지인은 세련되고 도화적인 미모로, 그리고 준서구적인 미모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당시 세명의 여배우들이 미모와 인기면에서 각각 나름대로 독자적인 커다란 팬덤을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트로이카들은 미모와 연기를 놓고 서로 경쟁하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왕성한 연기활동과 경쟁을 펼쳐나갔답니다.

 

당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세명의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누가 가장 예쁜가가 많이 회자되고 있었는데요.

 

일각에서는 도시적인 세련된 미모를 가진 유지인이 가장 예뻤다고 평가하는 반면, 다른 일각에서는 뚜렷한 이목구비와 균형잡힌 미모를 갖춘 정윤희가 제일 예쁘다는 평가를 내리는 등 특히 유지인과 정윤희간의 미모경쟁이 큰 주목을 받았답니다.

 

그 당시 정윤희의 미모와 유지인의 미모평가는 거의 반반으로 나눠었다는 것이 정설인데요.

 

커다랗고 아름다운 사슴눈과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완벽한 미인으로 평가를 받았던 정윤희가 세명의 트로이카 여배우 중에서 제일 예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 그 당시의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당시 카메라감독의 평가에 의하면, 정윤희는 어떤 각도로 카메라를 찍어도 완벽한 비율이 나오는 완벽한 미모였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답니다.

 

드라마 '청실홍실'의 장미희와 정윤희

 

정윤희는 조각 같은 미모에 동양적인 순수함과 관능적인 섹시함까지 함께 모두 갖추고 있어서, 그 당시 많은 남성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70~80년대에는 한국 남성들의 로망 제1순위가 정윤희였다고 해도, 과연이 아닙니다.

 

그 당시 정윤희의 미모는 한국을 너머서 일본과 대만에까지 큰 명성을 떨쳤답니다.

 

정윤희는 일본에 초청을 받아서 일본에 갔던 적이 있는데, 당시 일본의 유명한 감독이 정윤희의 미모는 일본여배우 100명을 합친 것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적윤희의 미모를 극찬했답니다.

 

또한 정윤희의 미모는 홍콩에까지도 알려져서 홍콩의 매스컴에서도 극찬을 했는데요.

당시 홍콩의 매체는 정윤희는 양귀비의 환생이라고 표현하면서, 정윤희를 동양 최고의 미인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70년대 중후반부터 80년대 전반까지 정윤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인으로 평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을 넘어 일본과 홍콩에서도 그녀는 아시아 최고의 미녀로 평가받았답니다.

 

당시 정윤희의 미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잘 일깨워주는 대목이랍니다.

 

 

지금 활동하는 우리나라 여배우들도 정윤희의 미모에는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윤희는 성형을 전혀 하지 않은 완전 원형그대로의 자연미인이지만, 지금의 여배우들의 대부분은 성형으로 만들어진 인공미인이기 때문에 비교자체가 안된다고 합니다.

 

70년대 당시 유명한 홍콩스타 성룡도 정윤희의 미모에 홀딱 반했다고 하며, 실제로 그녀를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성룡은 7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활동했던 당시에 정윤희를 많이 좋아했었다고 하며, 성룡은 정윤희를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의 절세의 미인이라고 평가를 하면서,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종종 말했다고 합니다.

 

성룡이 한국에 많이 왔었던 이유 중 하나가, 정윤희를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룡이 한 때에 정윤희에게 구애를 했었는데, 정윤희가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70~80년대 미모면에서 끝판왕이라고 할만한 정윤희는 그 후 죽음보다 깊은 잠’ ‘도시의 사냥꾼’ ‘꽃순이를 아시나요’ ‘사랑하는 사람아등의 여러편의 명작품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인기와 명성을 계속 이어나가게 됩니다.

 

사실 정윤희는 초창기에는 연기력이 떨어지는, 그저 얼굴만 예쁜 목석같은 여배우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정윤희는 데뷔 초반부 시절에는, 연기력 보다는 그녀의 빼어난 미모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는데요.

 

그렇지만 정윤희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간의 연기의 부진을 씻고, 고감도의 높은 연기력을 선보여 주면서 그녀의 연기력이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80년도에 접어들면서 연기력이 급성장한 정윤희는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에 힘입어서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앵무새 몸으로 울었다2년 연속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이 수상을 계기로 정윤희는 미모와 연기력의 두가지를 모두 갖춘 완벽한 연기자로 인정받게 되었답니다.

 

 

미모와 인기, 그리고 연기력 등 스타가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70~80년대에 최고의 미녀스타로서 주름잡았던 정윤희였지만, 그녀의 높은 명성을 시기했기 때문인지, 그녀에 대한 여러가지 안좋은 루머들이 나돌기도 했답니다.

 

정윤희는 과거에 호스티스 출신이었다 라는 루머와 정윤희에게 아기가 있다는 등 이상한 소문들이 퍼져나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확인되지도 않은 거짓 루머들이 많이 나돌았던 것은 아마도 정윤희가 그 당시 유행했던 호스티스영화들에 많이 출연했던 것 때문에, 그녀를 시기한 누군가가 지어낸 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도 톱스타들은 엄청난 악플에 시달리고 있는데, 70, 80년대에도 특히 여성톱스타들에게 부정적인 악플과 루머들이 많이 생겨나기도 했답니다.

 

그 후에도 정윤희는 아벤고공수군단’ ‘동반자’ ‘사랑하는 사람아같은 명작품에 출연하는 등 계속 연기활동을 해나갔고,

80년대에도 연기와 인기면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정윤희는 1984년도에 돌연 결혼과 함께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정윤희, 조규영회장과 결혼, 연예계 은퇴와 스캔들

 

정윤희는 1984년도에 1년 동안 사귀어왔던 중앙건설의 조규영회장과 결혼을 하면서, 10년간 활동했던 연예계에서 완전 은퇴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윤희는 결혼 전에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켜서, 대중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답니다.

정윤희의 남편이된 조규영은 원래 부인이 있었던 유부남이었답니다. 정윤희가 조규영회장을 만나 데이트를 할 당시에, 조규영은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있지요.

 

 

 

그리고 정윤희와 조규영이 만나는 것을 인지한 조규영의 부인이 두사람이 정윤희아파트에서 만나는 장면을 포착하고 들이닥쳐서, 두사람을 간통죄롤 고소하게 됩니다.

 

결국 정윤희와 조규영은 간통죄로 입건이 되었고, 유치장에 감금까지 되었답니다.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최고의 인기여배우가 유부남과의 불륜 때문에 유치장에 감금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당시 매스컴에서 엄청난 화제거리로 조명되었습니다.

 

지금은 간통죄가 폐지되었지만, 간통죄가 있었던 80년대 당시는 정조를 엄청 중시했던 상당히 보수적이었던 시대이기 때문에, 불륜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었지요.

 

아뭏튼 이 스캔들로 정윤희는 자신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었고, 그녀의 팬들도 그녀에게 큰 충격을 받고 실망감에 휩쌓이게 되었지요.

 

결국 정윤희와 조규영회장은 부인에게 1억원을 배상하면서 화해를 했고, 5일만에 유치장에서 풀려난 후, 198412월 두사람은 결혼식을 올리면서 정윤희는 연예계를 완전 은퇴하게 됩니다.

 

 

정윤희는 결혼후 조규영과 전처 사이의 11녀를 직접 키우면서, 오직 주부로서 가사에만 전념을 해왔답니다.

 

그러다가 정윤희가 자신이 직접 낳았던 막내아들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 다니던 2011년도에 약물중독으로 인한 심정지로 돌연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낳았던 아들이 미국에서 사망함으로써, 정윤희는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받게됩니다.

 

그리고 정윤희는 또다시 악재가 겹치는데요. 2014년 정윤희의 남편 조규영이 운영하는 중앙건설의 경영사정이 어려워져서, 정윤희의 집과 중앙건설의 토지가 압류되어 경매로 나오게 됩니다.

 

이 당시 중앙건설의 압류된 토지는 감정가가 485억원이었고, 압류된 정윤희의 집은 시가가 25억원이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정윤희의 근황소식이 알려지고 있는데요.

 

정윤희는 남편과 함께 오랫동안 압구정도의 현대아파트에서 거주해왔었는데, 이 압구정 아파트가 경매입찰로 넘어갔고, 그 후 정윤희와 조규영부부는 미국으로 이민갈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정윤희는 미국 이민계획이 어떤 이유로 해서 틀어지고, 지금은 경기도의 모처에서 살고있다고 합니다.

 

 

주변사람들에 의해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정윤희는 자신에게 불어닥친 여러 가지 불행들에 대해 굳건한 신앙생활로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모두 극복해왔다고 합니다.

 

정윤희는 독실한 기독교신자로서, 결혼 후에도 열심히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계속해오고 있으며, 지금도 시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등 흔들림 없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정윤희는 자신에게 여러가지 역경과 불행이 닥쳐왔지만, 모두 극복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굳건한 신앙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최근까지도 정윤희는 성당에 열심히 나가면서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으며, 아울러 성당에서 주최하는 봉사활동에도 매우 열심히 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윤희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각종 봉사활동에 빠짐없이 참여할 뿐만아니라 매우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합니다.

 

봉사활동 현장에서 정윤희는 얼굴과 마음씨가 모두 예쁜 신자님으로 주윗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정윤희가 여러차례에 걸쳐서 여러가지 안좋은 일을 당했지만, 이렇게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몇 년 전에도 정윤희는 길거리를 걷고있는 그녀의 생얼모습이 사진에 찍힌 적이 있었고, 그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온 적이 있답니다.

가장 최근의 사진으로 알려진 그녀의 모습은 화장을 전혀 하지않은 화장기 하나 없는 평범하고 수수한 아줌마의 모습이었답니다.

 

정윤희는 1954년생으로 지금 나이가 65세가 되었는데, 최근 사진에서 정윤희는 편안해보이고 소탈해 보이는 수수한 아줌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그녀의 왕년의 미모가 최근의 사진에서도 여전히 풍겨나오고 있었답니다.

 

1970~80년대에 우리나라의 최고의 미녀이자, 최고의 인기스타로 그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미녀여배우 정윤희는 7080세대들의 마음속의 영원한 로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녀가 은퇴한 지 34년이 넘었지만, 그녀의 미모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회자되고 있으며, 동양최고의 미인이라는 타이틀을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70.80년대의 최고의 미녀스타로 군림했던 그녀가 세월이 지난 후에 이렇게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다고 하니, 정말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답니다.

 

 

왕년의 아시아의 미녀스타 정윤희가 이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주는 봉사활동에 열심히 임하고 있다는 따끈따끈한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얼굴이 최고로 예쁜 은막의 스타에서, 이제는 마음씨가 최고로 예쁜 천사아줌마로 다시 제2의 인생의 서막을 열어나가고 있는 그녀를 열성적으로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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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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