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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녀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의 감동적인 탈북이야기와 나이

 

 북한을 탈출해서 남한으로 귀환해서 살고있는 탈북미녀 신은하의 탈북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답니다.

방송 이만갑에서 항상 고상하고 단아한 미모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있는 탈북녀가 신은하입니다.

 

이제 만나러 갑시다에 가장 오랫동안 출연하고 있는 장수출연자인 신은하는 김아라, 한송이와 함께 방송 이만갑의 미녀 3총사로 큰 인기를 끌고있는 이만갑의 마스코트랍니다.

 

귀여우면서도 차분한 성격에다 뚜렷한 이목구비로 북한미인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신은하는 단아한 미모와 재치있고 깨알 같은 입담으로 방송 이만갑의 인기를 높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탈북미녀랍니다.

 

신은하는 항상 방송 이만갑에 맨 앞줄에 앉아서 스튜디오를 환하게 비춰주는 천사 같은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은하를 탈북미녀들 중에서 가장 예쁘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을 정도로, 신은하는 탈북미녀 중에서도 넘버원이라고 평가할 만큼 대단한 청순미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곱고 예쁜 신은하가 실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해서 험한 산속에서 수년 동안 살아왔을 정도로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해서, 놀라움을 주고 있답니다.

 

 

또한 신은하는 중국에서 숨어있는 있을 때에, 공안당국에 붙잡혀서 다시 북한으로 압송되어서 북한수용소에서 수년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엄청난 핍박과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항상 부모의 사랑을 듬뿍받고 부잣집에서 귀염둥이로 살아왔을 것 같은 공주같은 이미지의 신은하이지만, 그녀는 북한과 중국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엄청난 고통과 역경속에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오늘은 방송 이만갑에서 대중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듬뿍 받고있는 탈북녀 신은하의 탈북스토리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어요!

 

신은하의 신상과 탈북스토리

 

신은하는 현재 나이가 31살로, 북한을 탈북한 후 남한으로 건너와서 중앙대학교 간호학과를 이수했고, 한때 간호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신은하는 2003년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북한을 탈북해서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신은하는 현재는 자유로운 한국에서 잘 정착해 살고 있지만, 북한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생과사를 넘나드는 엄청난 고생을 많이 했으며,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다고 하네요.

 

 

저렇게 귀엽고 예쁜 신은하가 북한에서 죽음직전까지 갈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은하는 부모님과 언니 등 전가족이 함께 북한을 탈북한 케이스라서, 그 험난하고 긴박한 탈북스토리가 엄청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신은하는 원래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함경북도 무산에서 살고 있었답니다.

 

신은하가족이 살고있는 지역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에 있는 국경도시라서, 신은하의 어머니는 중국과 북한을 오고가면서 장사를 하는 보따리상이었지요.

 

어머니가 국경도시에서 무역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신은하가족에게 뜻하지 않은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어느날 신은하 어머니가 중국무역상의 꾐에 넘어가서 기독교를 홍보하는 녹음테이프를 북한에서 유통시켰는데, 그것이 그만 북한 보위부의 정보망에 딱 걸리게 되었지요.

 

신은하가족 전체가 당장 잡혀 들어갈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신은하가족은 함께 밤에 몰래 야간도주를 하게 되었고,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땅으로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북한을 탈북할 때에 너무 급하게 도망쳐나오는 바람에, 신은하가족은 거의 빈손으로 중국에 건너왔습니다.

 

신은하가족이 북한을 탈북할 때에, 신은하의 나이는 고작 12살이었고, 언니 신은희는 15살이었다고 합니다.

 

중국 만주땅으로 건너간 신은하는 처음에는 중국에 있는 힌 지인의 집에 머물러서 살았었다고 합니다. 신은하 어머니가 중국을 오가면서 밀무역을 했을 때에 잘 알고지내던 중국 조선족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두명도 아니고, 가족전체가 남의 집에 얹혀서 살아가는 상황에서, 좋아할 집주인은 아무도 없지요!

 

처음에는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그 중국인집주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은하가족을 박대하고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신은하가족은 중국인집주인의 천대를 견디다 못하고, 무작정 그 집에서 나왔고, 그리고 신은하가족 전체가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움집을 짖고 짐승같은 비참한 생활을 해나가게 됩니다.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 부모님 이렇게 네 식구는 중국 만주의 깊은 산속에서, 나무로 얽기설기로 이어만든 임시움막집에서, 수년 동안을 북한보다 못한 참담하고 비참한 생활을 해나가게 됩니다.

 

 

신은하가족은 이렇게 만주의 험한 산속에서 무려 4년 동안이나 험난한 산속생활을 해나갔는데요.

신은하가족이 굳이 험한 산속에서 생활한 이유는 바로 중국 공안당국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서랍니다.

 

신은하가족의 중국 산속생활은 북한에 있을 때보다도 훨씬 더 못한 처참하고 궁핍한 생활이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탈출해 나올 때에 너무 급하게 도망쳐나왔기 때문에, 신은하가족은 돈 한푼 가져나올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산속으로 올라간 신은하가족은 처음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어서, 쥐의 식량창고구덩이를 찾아내어서, 쥐가 비축해놓은 곡식알갱이를 훔쳐다가 식량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후 신은하가족은 나무뿌리와 칡뿌리, 각종 산나물을 캐먹으면서 근근히 생계를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은하가족은 죽을 고생을 해가면서 산속 움막집생활을 이어나갔는데, 산속생활 4년이 되었을 무렵에, 갑자기 중국 공안경찰이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탈북자인 신은하가족을 밀고를 하였고, 급기야 중국 공안경찰들이 출두한 것입니다.

 

부모님이 외출한 사이라,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자매만 중국 공안경찰에 체포되었다고 하며,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는 중국 공안경찰에 의해서, 북한지역으로 강제로 압송되었답니다.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는 북한의 청진에 있는 수용소에 수용되어 중국생활보다 더욱 비참한 수용소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신은하와 신은희자매의 북한 수용소생활은 인권이 박탈당한 매우 비참하고 고된생활이었다고 해요. 두자매는 청진수용소에서 2년여 동안 강제노동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이 수용소에서는 신은하와 신은희는 매일같이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고, 또 매일같이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답니다.

 

영양가 하나없는 소금을 뿌린 국수죽을 밥 대신에 먹어야했고, 또한 신은하와 신은희는 매일같이 남자들도 하기 힘든 고된 중노동에 동원되어 일해야만 했습니다.

 

나이가 고작 십대 중반과 십대 후반인 두소녀가 수십키로나 나가는 무거운 벽돌과 시멘트포대를 매일같이 계속해서 날라야했다고 하니, 수용소의 노동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당시 나이가 고작 15살이었던 신은하는 3살 많은 언니 덕분에, 간신히 수용소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은하가 수용소 노동현장에서 수십킬로의 시멘트포대를 나르다가 엎어지는 일이 잦았는데, 그 때마다 언니 신은희가 동생의 시멘트를 대신 날라다주었답니다.

 

3살 많은 언니가 동생 신은희의 고된 노동일을 대신 짊어지었고, 그 덕분에 나이가 어리고 힘없는 동생 신은하는 힘든 노동일을 간신히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은하언니 신은희

 

처음에 수용소에 끌려와서 심문을 받을 때에도, 북한 조사원이 육중한 자물통을 신은하에게 던졌을 때에도, 언니 신은희가 팔을 뻗어서 대신 자물통에 맞았다고 합니다.

 

언니 덕분에 신은하는 얼굴부상을 면할 수 있었고, 대신 맞은 언니 신은희는 팔에 보기흉한 흉터가 남게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중국에서 공안경찰에 체포당했을 때에는, 처음에 신은하 혼자만 공안경찰에 붙잡혔었다고 합니다.

 

중국공안경찰이 신은하의 움막집에 들어닥쳤을 때에는, 집에 신은하 혼자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 밖의 숲속에 숨어있던 언니 신은희는 동생 신은하가 혼자서만 끌려가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공안경찰에 다가가서 체포당했다고 합니다.

 

나이 어린 신은하가 혼자서 수용소생활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언니 신은희는 스스로 중국경찰 앞으로 다가와서, 스스로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체포를 면할 수 있었던 언니 신은희는 자발적으로 공안경찰에 체포됨으로써, 동생 신은하와 함께 북한의 수용소로 끌려갔던 것이지요.

 

이처럼 언니 신은희의 끔찍한 동생사랑 덕분에, 나이가 어렸던 신은하는 끔찍한 수용소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언니 신은희의 뜨거운 동생사랑과 자기희생 정신이 너무나도 감동스럽습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수용소생활을 함께 해왔던 두자매는 언니 신은하가 20세가 되던 시기에, 서로 다른 수용소에 분리수용되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언니 신은희가 20세가 되었기 때문에, 성인들이 수용되는 단련대로 가게 되었고, 17세의 동생 신은하는 꽃제비수용소로 가게 되었지요.

 

동생과 헤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언니 신은희는 소장실을 찾아가서 눈물로 읍소하며 하소연했습니다.

 

부모님도 없는 북한수용소에서 두자매가 서로 의지하면서 간신히 버텨올 수 있었는데, 이제와서 서로 헤어지게 되면 영영 다시 못만나게 될 것으로 생각한 신은희는 눈물로 애원한 끝에, 두자매는 함께 꽃제비수용소로 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북한에서 꽃제비수용소는 한마디로 거지수용소로서, 나이 어린 거지아이들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간부들이 수용자들에게 식량을 제대로 배급해주지 않기 때문에, 굶주림이 더욱 심한 곳이랍니다. 간부들이 식량의 대부분을 빼돌리고 있어서, 어린 꽃제비들은 식량배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답니다.

 

그렇지만 이 꽃제비수용소는 굶주림은 심한 대신에 감시는 별로 심하지 않은 곳이랍니다.

이 꽃제비수용소에서는 비록 배는 고프지만, 감시나 통제가 심하지 않아서 강제수용소보다는 탈출이 훨씬 용이한 곳이랍니다.

 

신은하와 신은희자매는 이 꽃제비수용소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어느날 함께 이 꽃제비수용소를 극적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이렇게 꽃제비수용소 탈출에 성공한 신은하와 신은희자매는 길거리를 배회하는 걸인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날 중국의 어머니가 보내온 브로커를 만나게 되었고, 그 브로커를 따라서 두번째로 북한 탈북을 시도하게 되었지요.

 

어머니가 보낸 브로커의 도움으로, 신은하와 신은희자매는 또다시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건너간 두자매는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아버지는 이미 북한으로 압송되어버리고 어머니 혼자만 있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 언니 신은희는 날마다 교회에 가서 눈물로 기도를 했습니다. 북한으로 끌려가신 아버지의 귀환을 도와달라고 매일같이 하나님께 애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서 북한으로 끌려갔던 아버지가 기적같이 가족곁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북한으로 끌려갔던 아버지가 극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신은희의 눈물어린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결과가 아니었을까요?

 

중국에서 다시 신은하의 네식구가 모두 상봉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신은하가족은 그때서야 깨닫게 됩니다. 공안경찰들의 감시가 삼엄한 중국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신은하가족이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오직 남한땅 뿐이라는 것을!

 

이윽고 한국행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한 신은하의 네가족은 곧바로 한국으로 입국해 들어오게 되었답니다.

 

북한을 두 번이나 탈출해서, 천신만고 끝에 한국땅에 들어올 수 있었던 신은하가족의 탈북스토리는 정말 감동 그자체랍니다.

 

 

신은하가 험악한 수용소생활을 버텨내고, 여러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북한을 두번씩이나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정말 기적처럼 북한을 탈출해서, 이렇게 남한 정착에 성공한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가 너무나도 장하고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끈끈한 동지애와 사랑으로 서로를 위해주고 의지하면서, 악몽과도 같은 북한 수용소생활을 극복하고,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건너온 두 자매에게 무한한 감동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렇게 가족이 함께 남한으로 입국한 신은하가족은 정부로부터 가족이 살 수 있는 주택을 제공받아서 가족이 함께 안락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신은하는 중앙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해서 수학한 끝에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언니 신은희는 서강대학교 법학과를 이수하고 나와서 지금은 통일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동생과 언니가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사회생활도 잘 해나가고 있다니, 정말 두자매가 모두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성실하게 살고 있어서 너무 대견스럽습니다.

 

신은하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 병원에 취업해서 간호사로 근무하기도 했는데, 몇 년 전부터 예쁜 얼굴 덕분에 방송 이만갑에 출연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신은하 이만갑에 고정게스트로 발탁되어 고정출연하면서 예쁜 미모와 재치있는 입담으로 이만갑의 인기를 높여주는 마스코트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답니다.

 

최근 신은하는 독도의 영웅이라는 다큐멘타리영화에도 출연해서 열연을 펼치는 등, 방송과 연기 양쪽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나이가 31살이 된 신은하는 더욱 완숙한 미모를 자랑하고 있는데, 여전히 신은하의 미모는 청순하면서도 서구적인 느낌으로 많은 남성들을 셀레이게 하고 있습니다.

 

방송 이만갑에서는 김아라와 신은하, 한송이를 이만갑을 대표하는 미녀 3인방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이들 세명의 미인 중에 북한의 심은하라는 별명을 갖고있는 신은하가 제일 예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모도 제일 낫고, 말하는 입담도 제일 뛰어난 신은하가 앞으로 방송활동의 폭을 더욱 넓혀나가서, 드라마와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해서 대중들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신은하는 예쁘면서도 매우 곧고 반듯한 이미지를 가졌는데, 신은하가 한국판 애수같은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해서 비련의 여주인공의 애절한 연기를 펼친다면 아주 멋진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유능한 감독이 신은하의 재능을 빨리 발견해서 신은하가 영화에도 진출해서 큰 인기를 끌었으면 좋겠습니다.

 

두터운 동지애와 꺾이지 않는 굳센 의지로 수없이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북한의 수용소를 탈출해서, 한국 입국과 적응에 성공한 모범적인 신은하, 신은희자매의 북한탈출 성공담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앞으로 신은하, 신은희 두자매를 많이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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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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