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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와 대화를 나누는 기계, 조지 믹의 스피리콤 개발과 영혼의 목소리

 

미국인 조지 믹이라는 기업가는 에어컨을 개발해 판매하는 자신의 기업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미국에서는 꽤나 성공한 기업가이자, 존경받는 경제인이었다.

그런데, 기업가 조지 믹은 지금으로부터 40년전인 1982년도에 억대의 돈을 들여 10년 동안 연구개발을 벌인 끝에,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또한 조지 믹은 영혼과 소통하는 기계뿐만 아니라, 영혼의 모습을 사진촬영할 수 있는 영혼촬영기계도 함께 개발했다고 한다.

 

오늘은 ‘서프라이즈’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는 죽은자와 소통할 수 있는 기계 ‘스피리콤’을 개발한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다!

 

1971년 조지 믹은 부인과 함께 세계 여러나라로 여행을 떠나면서 유람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조지 믹과 부인은 유럽의 한 시골마을에 도착해서 관광을 하던 중에,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 마을의 길가에 한 젊은여성이 쓰러져있었고, 그 옆에는 나이든 여성이 주술을 외우면서 그녀를 치료하고 있었다.

 

영매가 쓰러진 여자환자에 대해 영적치료를 하고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조지 믹은 그 모습이 너무도 신기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자신이 갖고있는 사진기로 그 장면을 찍었다.

 

자동차와 충돌사고로 얼굴에 큰 부상을 당한 채 기절한 젊은여성을 나이든 영매는 주술과 영적에너지만을 이용해서 그녀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중상을 입고 기절했던 그 젊은여성은 영매의 주술치료를 받은 지, 10분만에 곧바로 일어나서 완치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조지 믹은 그 영매가 여성을 치료하는 모습을 자신의 사진기로 찍었고, 그 때 찍은 사진을 집에 돌아와 현상해보았더니, 그 사진속에는 놀랍게도 영적에너지 같은 주황색섬광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자신이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전혀 없었던 주황색섬광이 사진속에는 뚜렷하고 선명하게 찍혀있었는데, 이 모습을 본 조지 믹은 엄청 놀랐을 뿐아니라, 뭔가 자신이 모르는 영혼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되었다.

 

그 때부터 기업가 조지 믹은 초자연현상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되었고, 초자연현상과 영적현상에 대한 연구조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초자연현상에 관심이 꽂힌 조지 믹은 여러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영적활동을 벌이는 다양한 영적치료사와 주술사등을 만나는 등 영적현상에 대한 심도깊은 조사활동을 벌여나갔다.

 

 조지 믹, 영혼과 소통할 수 있는 기계 ‘스피리콤’ 개발

 

조지 믹은 수년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영매와 영적치료사들을 만나면서 영적현상을 탐구하는 일에 매달렸다.

 

조지 믹은 초자연현상 연구가 윌리엄 오닐을 만났고, 그로부터 영적현상에 대한 여러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의 도움을 받아서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영혼은 그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단 우리 눈에만 안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특정한 주파수가 영혼과 맞는다면, 간혹 영혼은 우리 눈에 보이거나, 나타날 수도 있다.

 

즉, 일반적으로 영혼의 모습은 우리눈에 안보이지만, 특정한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영혼의 모습이 사진에 찍힐 수 있고, 우리가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조지 믹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즉, 영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그 ‘특정한 조건’을 만드는 일 말이다.

 

‘특정한 조건’을 갖출 수만 있다면, 사람은 얼마든지 영혼을 볼 수 있게 되고, 영혼과 교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지 믹은 곧바로 영혼이 나타날 수 있는 그 특정한 조건에 맞는 기계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오랜 여행 끝에 미국으로 돌아온 조지 믹은 메타사이언스재단을 설립했고, 그 곳에 여러 유능한 초자연현상 전문가들을 영입해서, 영혼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한 심도깊은 연구에 몰두했다.

 

이 당시 조지 믹은 자신이 평생 기업활동을 하면서 벌어들인 재산의 거의 대부분을 투입할 정도로 영혼 규명연구에 집중적으로 매달렸다.

 

이렇게 수년간 연구활동을 벌인 결과, 조지 믹은 영혼을 찍을 수 있는 특수 암실촬영기술을 개발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재로 조지 믹이 개발한 촬영기계로 영혼의 존재를 포착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조지 믹은 영혼촬영기계로 첫 번째로 찍은 영혼사진은 바로 ‘자신의 영혼’에 대한 사진이었고, 실재로 조지 믹은 영혼에 대한 촬영에 성공했다고 한다.

 

조지 믹 영혼에 대한 사진속에는 조지 믹 앞에 길다란 줄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 줄이 영혼과 육신을 이어주는 줄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지 믹은 신통력 있는 영매들의 도움을 받아서 매우 특이한 영혼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자신의 육체와 분리된 자신의 영혼을 사진촬영하는데 성공했고, 그 사진에는 분명 뚜렷하게 조지 믹 자신의 영혼이 찍혀있었다.

 

즉, 조지 믹은 자신의 유체이탈한 영혼 사진을 찍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같이 조지 믹은 영혼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하는데 성공한 후, 그는 또다시 영혼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계개발에 착수했다.

 

조지 믹은 10년 동안 치밀한 연구작업을 거친 끝에, 10년만에 영혼과 소통할 수 있는 기계 ‘스피리콤’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스피리콤’은 라디오 주파수를 이용한 기계인데, 주파수의 여러 진폭과 범위를 13가지로 분류하고 그 사이에 있는 다른 차원의 소리를 포착해 분석하는 방법으로 영혼의 소리를 찾아내는 장치이다.

 

전파를 이용해서 영혼의 영혼의 음성을 포착하는 것을 EVP라고 하는데, 조지 믹은 ‘스피리콤’을 통해서 EVP를 적용해 영혼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1979년도에 조지 믹은 영혼의 목소리를 포착하는데 성공했다.

 

그 장치로 메타사이언스재단의 수석연구가  윌리엄 오닐은 12년 전에 사망한 한 영혼의 목소리를 포착했을 뿐만아니라, 그 영혼과 대화까지 나누었다고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윌리엄 오닐과 대화를 나눈 그 죽은 영혼은 77년도에 사망한 나사 물리학자 조지 제프리 뮬러박사였다고 한다.

 

영혼의 목소리를 포착하는데 성공한 윌리엄 오닐은 그 후 3년 동안 조지 제프리 뮬러의 영혼과 대화를 계속 나누었다고 한다.

 

윌리엄 오닐은 그 영혼과 여러 가지 주제로 대화를 계속 나누었는데, 그 영혼으로부터 영혼들이 사는 고차원세상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고, 스피리콤 기능향상을 위한 기술적인 자문을 얻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윌리엄 오닐은 조지 뮬러 영혼과 나눈 대화 전체를 녹음까지 해놓았는데, 그 대화녹음의 분량은 20시간이나 되었다고 한다.

 

1982년 조지 믹은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윌리엄 오닐과 조지 뮬러 영혼간의 나눈 대화의 녹음과 녹취록, 그리고 스피리콤까지 모두 공개해서 큰 화제가 되었다.

 

조지 믹은 세상의 모든사람들에게 영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이같이 영혼과의 대화녹음과 영혼과의 소통기계 스피리콤을 세상에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영혼과의 소통기계 스피리콤의 기술과 작동원리까지 모두 대중에 공개했다.

 

스피리콤에 의해서 영혼과의 소통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매우 높아졌고, 영혼찾기 신드롬현상까지 일어났다.

스피리콤은 수많은 영혼연구가나 영매들에게 심오한 영감을 주었고, 그 후 영혼탐구와 영혼추적 탐지기들을 개발해내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 후 미국인 프랭크 섬션이 스피리콤의 원리를 응용하고 주파수를 이용해 죽은자와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를 개발해내었다고 한다.

 

현재 조지 믹에 따르면, 영혼소통기계 ‘스피리콤’은 그 소유권이 미국정부로 넘어갔다고 하며, 미국정부 차원에서 ‘스피리콤’에 대한 후속 연구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조지 믹의 영혼연구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메시지가 있는데,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 세상은 우리 인간들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공간은 여러 차원의 세상과 공유되어 있고, 여러 다른 영혼들과 함께 살고있다고 한다.

단지, 그 영혼들과 우리들이 서로 주파수가 달라서 눈에 보이지않을 분이라고 하며, 그 영혼들에게 맞는 주파수를 맞춰준다면 그 영혼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한다.

 

영혼과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계 ‘스피리콤’이 진짜라면, 돌아가신 아버지나 어머니와 소통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러서, 세계의 많은사람들에게 이 기계는 엄청나게 인기를 끌 것 같다.

 

그런데, 미국정부가 스피리콤의 소유권을 가져갔기 때문에, 일반사람들이 이 영혼소통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져서 안타깝기만 하다.

스피리콤의 소유권을 독차지한 미국정부는 이 기계를 사용해서 다른차원의 존재들, 그리고 사후세계의 존재들과 접촉하는 실험을 계속 벌여나가고 있다고 한다.

 

미국정부는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영혼소통기계 스피리콤을 일반에 공개해서, 일반인들이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일찍 요절한 자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게 바람직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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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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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운 좋게하는 주방(부엌) 풍수인테리어, 식탁, 그림 배치법

 

옛날부터 집을 짓는데 가장 중요한 3가지 요인이 있는데, 이것을 ‘양택삼요’라고 합니다.

 

‘양택삼요’는 ‘문(門)’ ‘주(主)’ ‘조(竈)’의 세가지입니다.

‘문(門)’은 말 그대로 현관문을 뜻하고, ‘주(主)’는 안방을 의미하며, ‘조(竈)’는 주방(부엌)을 의마하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요소가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3요소인데, 그 중의 하나인 주방은 그 집안의 건강과 재물운을 좌우할 정도로 예로부터 대단히 중요한 장소로 여겼습니다.

 

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이 아침마다 부엌(주방)에서 깨끗한 정한수 한그릇을 떠놓고 부뚜막에 올려놓은 뒤,

절하며 빈 것도 부엌(주방)에는 한집안의 번창을 돕고 액운을 막아주는 조왕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풍수경전인 ‘양택삼요’에는 부엌(주방)의 중요성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부엌(주방)은 식록과 관계되는 곳이니, 안방, 대문과 함께 중요한 곳이다.

사람들은 이 이치를 가볍게 생각하나, 많은 집들이 방과 대문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부귀를 누리나, 다만 이상한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모두 부엌이 흉해서 그렇다'고 부엌(주방)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부엌(주방)에 해로운 물질을 놓거나, 가구배치를 잘못한다면, 나쁜 기운을 불러들여서 가족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지요.

 

주방은 한집안의 건강을 담당하는 중요한 곳이지요. 주방에서 어떤 요리를 만드느냐에 따라서 한집안 식구들의 건강이 좌우된답니다.

 

부엌(주방)은 한집안의 건강과 재물운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공간이므로, 주방에서 좋은 위치, 방향을 잘 고려하여 가구배치를 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 주방의 가구배치법

 

주방은 물과 불이 공존하는 곳이죠. 물과 불이라고 하는 서로 극단적인 물질이 함께 있는 곳이 주방인데요.

물은 불을 극하려는 성질이 강하고, 불은 물을 극하려는 성질이 강한데, 이렇게 서로를 극하려는 두 물질을 함께 두는 것은 풍수인테리어상 좋지 않습니다.

 

즉, 물은 음의 기운이 강하고, 불은 양의 기운이 강한데, 이 두가지 기운은 서로 상충하는 작용을 하게 되며, 이같이 두가지 기운이 서로 상충되면 한 집안의 기운이 쇠락하기 때문에 좋지않습니다.

 

주방에서 물을 상징하는 것은 냉장고이고, 불을 상징하는 것은 가스렌지입니다. 이 두가지 가구는 함께 붙어있으면 매우 안좋습니다.

 

또한 물을 상징하는 싱크대와 불을 상징하는 가스렌지도 함께 붙어있으면, 좋지않습니다.

 

이 두 가구는 서로를 극하려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상충작용에 의해서 나쁜 에너지가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물을 상징하는 가구와 불을 상징하는 가구는 서로 멀리 떨어뜨려놓는 것이 좋습니다.

 

멀리 떨어뜨려놓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 두성질의 가구 사이에 잎이 많은 관엽식물 화분을 놓으면, 서로 상쇄하는 기운을 막아주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기운을 불어 넣어주기 때문에, 나쁜 에너지를 좋은 에너지로 바꿀 수 있습니다.

 

냉장고와 싱크대는 둘 다 물(음)의 성질을 갖고있는 것들이 때문에, 옆에다 함께 놓아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밥을 먹는 식탁은 동쪽에 놓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왜냐하면, 동쪽은 생물이 살아나는 곳이고, 아울러 생기가 발생하는 곳이어서, 복된 기운과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쌀독도 동쪽에 놓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에 주방이 좁아서 동쪽에 놓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식탁은 주방의 중앙에 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식탁의 정중앙 부분에 노란색이나 밝고 은은한 빛깔의 등을 설치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주방의 식탁은 금속이나 대리석으로 된 것은 좋지않고, 나무로 된 것이 좋습니다.

금속이나 대리석으로 된 식탁은 생기를 쇠락하게 만들고, 나쁜 기운을 불러들이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식탁으로는 좋지 않습니다.

 

식탁은 안락한 느낌을 주는 나무나 원목으로 된 것이 좋은데, 나무는 생기를 돌게 하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가족 간의 인간관계가 좋아지고, 가족간의 화목을 북돋아주며,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준답니다.

 

보통 주방에는 그릇을 씻고난 다음에 물이 잘 빠지도록 엎어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그릇은 엎어놓는 것은 좋지않습니다. 그릇 안에 담긴 것들은 우리몸 안에 들어가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값진 것들이고, 돈보다 더 소중한 것들입니다.

 

만일 그릇을 엎어놓는다면, 그릇 안에 담길 재물을 쏟아버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집안의 재물이나 복록이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릇은 엎어놓지 않고, 반드시 반듯하게 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릇을 깨끗이 씻은 후, 키친타올로 그릇의 물기를 닦아준 다음에 그릇을 반듯하게 놓아줍니다.

 

그릇을 반듯하게 놓음으로써, 그릇안에 재물이나 복록이 들어와서 쌓일 수 있는 겁니다.

 

주방의 창문에는 커튼을 달아주는 것이 좋은데, 주방 창문에 커튼을 달아주면 재물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주방의 창문에 달아주는 커튼은 하얀색이나 밝고 은은한 색상의 커튼이 좋고, 햇빛이 잘 비출 수 있는 얇은 소재의 커튼이 좋습니다.

햇빛이 주방의 창문을 통해서 주방으로 잘 투사가 되어야만, 주방에 쌓인 불순물이나 습기, 세균, 음습한 기운들을 없애주는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주방은 물을 많이 사용하는 곳이므로, 항상 습기가 많고 음습한 기운이 가득차 있어서, 나쁜 세균과 음기가 많이 쌓이기 마련입니다.

주방의 창문을 통해서 햇빛이 잘 투사가 되면, 이런 음습한 기운과 나쁜 세균들을 박멸할 수 있어서, 항상 건강하고 복된 주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냉장고위에 전자랜지를 올려놓은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매우 안좋은 현상입니다.

냉장고는 물 즉 음의 기운이 강하지만, 전자랜지는 불 즉, 양의 기운이 강하므로 서로 붙어있으면, 서로 상극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나쁜 기운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답니다.

 

따라서, 냉장고 위에 두꺼운 판대기나 합판을 놓고, 그 위에 전자랜지를 얹어놓는 것이 좋습니다.

두꺼운 합판이 두 기구에서 나오는 상극하는 기운을 약화시켜서 상극을 막아주고, 조화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냉장고안에는 식품을 70%만 채워넣고, 30%의 공간은 비워놓는 게 좋습니다.

냉장고는 복록과 재물을 상징하는 매개체이므로, 냉장고 안을 100% 꽉 채워두면 더 이상의 재물이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작용을 한답니다.

 

그러므로 냉장고의 30% 정도를 비워놓으면, 복록과 재물을 더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유인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집안에 복과 재물을 더 많이 끌어올 수 있게된답니다.

 

냉장고에는 스티커나 전단지를 붙여놓는 것은 좋지않습니다.

우리 가족이 먹는 소중한 음식이 담긴 냉장고의 벽에다 스티커나 전단지를 붙여놓으면, 나쁜 기운을 쌓이게 하고 좋은 기운을 빠져나가게 만든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냉장고의 벽에는 스티커나 전단지를 절대 붙여놓으면 안되고,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방에서 칼과 가위같이 뾰죽한 물건은 눈에 보이도록 외부에 노출시켜서는 안되며, 항상 수납장 안에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칼과 가위는 살의 기운이 강한 물건이기 때문에, 외부에 노출시킬 경우에는 가족간의 관계가 나빠지고 화목이 깨지게 되며, 가족간에 서로 충돌하거나, 다툼이 잦아지게 됩니다.

이것은 칼과 가위에서 나오는 살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칼과 가위 같은 살의 기운이 강한 도구는 반드시 사람의 눈에 안보이도록 싱크대의 서랍이나 수납장 안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칼과 가위가 녹이 슬거나, 이가 빠지는 등 손상이 되었을 경우, 더 이상 사용하지 말고 곧바로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고장나거나 손상된 물건을 집안에 계속 보관해 둔다면, 그것들이 집안의 기운을 쇠락하시키고 나쁜 기운을 불러들이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가족들의 건강이 나빠지고 액운이 찾아와서 금전적인 손실을 입게됩니다.

 

칼이나 가위 뿐만아니라, 집안에 있는 전자제품, 시계, 컴퓨터, 지갑 등의 물품들이 고장이 나거나, 손상되었을 경우에는, 지체없이 그것들을 버려서 집안의 복록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 주방에 좋은 그림액자

 

주방에 걸어두면 좋은 그림은 식물 같은 자연그림이나 과일그림이 좋습니다.

특히 주방에는 꽃그림, 해바라기그림, 사과그림이 좋은데요.

 

꽃그림은 재물을 불러들이는 기운이 강한 행운의 그림이어서, 주방에 꽃그림액자를 걸어두면 좋습니다.

 

해바리기그림은 풍요와 번영을 상징할 뿐아니라, 금의 기운을 끌어모으는 성질이 강하게 때문에, 해바라기그림 액자를 주방에 걸어두면, 재물운이 상승하게 된답니다.

 

사과는 열매나 결실을 상징하는 매개체이어서, 사과그림은 좋은 결실을 맺게해주고, 재물운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답니다.

특히 녹색사과 그림이 더욱 좋은데, 녹색사과그림은 집안에 항상 활력과 생기 같은 좋은 에너지가 넘쳐흐르게 하고, 금전운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하게된답니다.

 

오늘은 주방에 관한 풍수인테리어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여러분, 주방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줄 수 있도록 가구인테리어 잘하셔서, 여러분 모두 항상 행운과 복록, 재물운이 넘쳐흐르는 가정을 일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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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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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예언가 쥬세리노박사의 지구 미래예언, 인류멸망, 지구종말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이 뛰어난 예언가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최고의 예언가를 꼽는다면, 일반사람들은 보통 노스트라다무스를 생각하게 마련이다.

16세기경 프랑스에 살았던 노스트라다무스는 제2차세계대전 발발과 핵무기의 사용 등 수백년 후에 일어날 중요한 사건들을 많이 예언해 적중시킨 예언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6세기에 살았던 예언가로서,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 살았던 중세인이다.

그런데, 현대에도 중세시기에 살았던 노스트라다무스 못지않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이 뛰어난 예언가가가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물론 20세기에도 예지력이 뛰어난 예언가로 명성을 날렸던 유명한 예언가들이 몇몇 존재하는데, 그 주인공은 에드가 케이시와 몽고메리여사 같은 분이다.

그런데, 한 때 탁월한 예언가로 명성을 날렸던 이들 예언가들은  나중에 그들이 예언한 중요한 예언들이 빚나가는 바람에, 높은 명성 못지않게 큰 실망감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의 시기에, 가장 주목을 받을 만큼 가장 예언적중률이 높은 탁월한 예언가가 또 한사람 있다.

20~21세기 가장 뛰어난 예언가로 불리우는 브라질의 쥬세리노박사이다.

 

브라질의 예언가 쥬세리노박사는 2010년도까지 예언적중률은 90%에 이를 정도로, 탁월한 예지력을 갖고있으며, 그의 예언들이 적중된 사례는 매우 많다는 특징이 있다.

 

오늘은 예언적중률이 뛰어나며,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해안을 지난 브라질의 예언가 쥬세리노박사의 예언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 쥬세리노박사의 실현된 예언

 

쥬세리노박사는 자신이 예언하기 전에, 자신의 예언내용을 미리 편지에 적어놓는 습관이 있다.

1989년경, 미국 백악관앞으로 누군가가 보낸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는데, 그 편지에는 미래에 미국사회에 아주 중요한 테러사건이 발생하여 세계를 경악시킨다는 내용이 있었다.

 

1989년 10월 26일날, 어떤 사람으로부터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앞으로 보내온 편지였는데,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이상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이슬람의 한 과격단체로부터 테러공격을 당할 것이고, 그로인해 수천명의 사람들이 사망할 것이다.

이러한 테러를 당하지 않도록 미리 경고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보내는 것이며, 귀국 당국은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어서 이같은 환란을 피해야 한다 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 편지가 온 것은 1989년에 발송된 것인데, 그로부터 12년 후에 일어날 9·11 테러사건을 미리 예언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당시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참모진들은 이 편지를 누군가가 재미삼아 보낸 장난편지일 것으로 생각하고, 그 누구도 전혀 주목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2년의 세월이 지난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비행기가 충돌하는 엄청난 테러사건이 발생했고, 3,000여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사망했다.

 

2001년 9월 11일날,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미국 팬타곤 건물이 동시에 4대의 비행기들이 들이박는 충돌공격을 받았고, 그로인해 2,996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25,000명의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는 테러참사가 발생했다.

 

미국 역사상 사상 최대의 비행기 공격테러사건이 발생한 것인데, 이같은 9·11테러사건은 이슬람테러단체가 4대의 민간항공기를 납치한 후,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펜타곤건물을 향해 고의적으로 비행기를 충돌시킴으로써, 두 건물을 화염에 휩쌓이게 만드는  엄청난 테러공격을 자행한 것이다.

 

이 들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펜타곤건물에 공격을 가한 테러범은 알카에다조직에 소속된 19명의 조직원들이었다.

 

쥬세리노박사는 이같은 테러사건이 발생하기 12년 전에,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게 이같은 테러사건이 발생할 것을 그 편지를 통해서 미리 예언하고 통보해준 것이다.

 

그러니까, 1989년도에 백악관으로 보내진 편지에 나온 예언은 9·11테러를 예언한 것이며, 그 예언은 실제로 정확하게 적중한 것이다.

 

그 '9·11테러'사건이 발생할 것을 편지로 예언한 사람은 바로 쥬세리노박사였다.

1989년도에 쥬세리노가 미국 백악관에 보내서 '9·11테러'를 경고했던 그 편지가 지금까지 미국의 한 등기소에 실물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이같이 3,000여명의 엄청난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9·11테러'를 예언했던 사람은 브라질에 살고있던 쥬세리노 노브레가 다루즈라는 인물이고,

그는 현재 브라질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영어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처자식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쥬세리노는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그만의 특별한 초능력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이었다.

 

쥬세리노가 2001년도에 일어난 9·11테러사건을 미리 예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난 후, 그때부터 쥬세리노박사는 세계적인 대예언가로 유명해지게 된다.

 

한 방송에 출연한 쥬세리노는 미래의 일들을 어떻게 미리 알 수가 있었느냐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는 '꿈'을 통해서 암시를 받는다고 말했다.

 

즉, 쥬세리노는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예지몽'을 통해서 미래의 사건들을 미리 알아낼 수 있었고, 예언을 하게된다는 것이다.

 

쥬세리노가 이같은 예지능력이 생기게 동기는 다음과 같다.

1969년도 나이 9살일 적에, 쥬세리노는  자신이 꾼 꿈에서 마을의 한 남자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쳐 죽는 꿈을 꾸었다.

 

꿈자리가 너무도 사나왔던 쥬세리노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말해줬는데, 어머니는 개꿈이라고 말하면서 전혀 신경을 쓰지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에, 자신이 꿈속에서 봤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며, 실제로 마을청년이 교통사고로 묵숨을 잃게되었다.

쥬세리노가 꿈속에서 보았던 그 일이 실제로 발생했고, 그 때부터 쥬세리노는 밤마다 꿈속에서 예지몽을 꾸기 시작했고,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이 생겼다고 한다.

 

이 때부터 쥬세리노는 거의 매일같이 예지몽을 꾸었고, 자신이 꿈속에서 꾼 내용들을 노트에 기록해서 보관해오고 있다.

 

주세리노가 밤에 꿈속에서 꾼 꿈들은 계속해서 적중해나갔고, 그리고 성인이 된 쥬세리노는 89년도의 어느날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테러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꿈으로 꾸고 난후,

곧바로 미국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그같은 대규모 테러사건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려줬던 것이다.

 

이처럼, 쥬세리노박사가 예언한 9·11테러사건이 정확히 적중되면서, 쥬세리노는 세계적인 예언가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쥬세리노는 두개의 거대한 전쟁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그는 꿈속에서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거대한 화염이 불을 뿜고 건물이 파괴되는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꿈을 통해서 쥬세리노박사는 아프칸전쟁과 이라크전쟁을 예언했다.

 

꿈을 꾸고 난 후, 쥬세리노박사는 곧바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는 편지에서 당신이 2001년도와 2003년도에 아프칸과 이라크에서 대규모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알려주며 상기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쥬세리노박사는 후세인대통령이 숨어있는 토굴의 위치까지 미국정부에 알려주었고, 그의 예언의 도움으로 미군은 토굴에 숨은 후세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쥬세리노박사는 또다른 예지몽꿈을 꾸게 된다. 1997년 3월의 어느날 쥬세리노는 꿈속에서 고귀한 신분의 한 여인이 자동차사고를 당해서 처참하게 사망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주세리노박사는 어떤 여인이 꿈속에서 교통사고로 죽는 것을 목격했는데, 그 여인은 바로 '다이애나' 왕세자비였다.

그는 곧바로 다이애나 스펜서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녀가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음을 미리 알려주면서, 몸조심하라는 각별한 당부를 했다. 

 

이렇게 쥬세리노박사가 그같은 예언을 하고난 후 5개월이 지난 1997년 8월 16일날, 실제로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프랑스 파리의 지하도에서 자동차를 몰고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처첨한 죽음을 당했다.

 

쥬세리노가 예언한 것이 또다시 적중한 것이며, 놀랍게도 영국 전 왕세자비인 다이애나 스팬서는 쥬세리노가 예언한 그대로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쥬세리노는 자신이 예언했던 내용들을 편지로 작성해서, 당사자들에게 그 편지를 보내서, 미리 알려주면서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911테러사건'이나 '다이애나왕세자비 사망사건' 등 모두 쥬세리노가 보낸 편지의 사본들을 모두 등기소에 보관해 두었고,

그 등기소에 보관된 문서로 인해 쥬세리노박사가 스스로 예언했던 일들이 모두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러니까, 쥬세리노박사가 예언했던 모든 사건들은 전부 그가 예언한 사실을 편지사본의 형태로 등기소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예언들이 결코 거짓이 아닌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쥬세리노박사는 또다시 꿈속에서 대형참사가 일어나는 예지몽을 꾸었는데,  인도네시아의 해안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나고, 그 지진으로 인한 해일로 3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게된다고 예언을 했다.

 

이같은 꿈을 꾸고난 후, 쥬세리노는 곧바로 인도네시아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해안가에서 엄청난 대지진이 일어나 30만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을 전달해주었고, 미리 완벽한 대비태세를 갖출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2004년 11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부근에서 진도 9,3의 대규모 지진과 강력한 해일이 일어나서, 그곳 주민 3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인도네시아 대지진은 200년 동안 역대 두번째로 규모가 큰 대형지진이었고,

30만명이 사망하고, 5만명이상 실종되는 등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역대급 환란이었다.

 

쥬세리노박사는 인도네시아지진이 발생하기 7년 전에 미리 인도네시아대통령에게 통보해주었던 것이고, 그의 예언은 놀랍게도 그대로 적중했다.

 

또한 쥬세리노박사는 중국 사천성에서 발생했던 대지진도 예언했고, 2009년도에 미국의 팝가수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는 것도 정확히 예언했다.

 

이렇게 쥬세리노는 20세기와 21세기에 발생했던 세계적인 중요한 사건들을 많이 예언했을 뿐아니라, 그가 예언한 예언들의 대부분이 적중함으로써, 뛰어난 예언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놀랍게도, 쥬세리노가 2010년도까지 예언했던 예언들의 적중률은 무려 90%나 된다고 하니, 이처럼 예언적중률이 높은 예언가도 세상에서 찾기 힘들 정도다.

 

다른 유명한 예언자들과 비교해볼 때, 노스트라다무스나 몽고메리여사, 에드거 케이시 등 세계적인 예언가들의 예언 적중률은 보통 60% 밖에 되지않는다고 하는데,

이들 예언가들과 비교할 때 쥬세리노의 2010년도까지의 예언적중률은 90%라고 하니, 정말 대단히 탁월한 예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쥬세리노는 자신이 예언한 내용들은 모두 그 사본을 만들어서 등기소에 별도로 보관해놓는다고 하며,

그 사본에는 그 등기소의 해당날짜와 날인까지 찍어서 보관해두기 때문에, 나중에 그가 예언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쥬세리노박사가 등기소에 보관해둔 그의 예언 사본은 총 1,000개가 넘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예언을 보관해오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쥬세리노박사가 또다른 예언을 한 사실이 밝혀져서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쥬세리노박사는 2016년 미국의 제 58대 대통령선거 당선자를 예언한 사실이 있는데, 이 대통령선거에는 힐러리후보와 트럼프후보가 출마해서 각축을 벌였는데, 쥬세리노박사는 트럼프후보가 당선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쥬세리노박사가 예언한 때는 대통령선거일 6개월전이었는데, 이 시기에는 트럼프후보보다 힐러리후보가 지지율이 더 높았고, 당선될 확률이 더 높았던 시기여서, 트럼프후보가 당선될 것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던 시기였다.

 

이렇게 당선될 확률이 낮은 트럼프후보가 당선된다고 쥬세리노박사는 전격 예언했고, 6개월 후 그의 예언은 정확히 적중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처럼 쥬세리노박사는 예지몽을 통해서 세계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예언을 많이 내놓았고, 그의 예언들은 적중률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쥬세리노박사의 2020년 이후의 지구미래 예언, 지구종말설

 

쥬세리노박사의 예언 중에서 실제로  도래한 예언들을 소개했는데, 지금부터는 아직까지 도래하지 않은 쥬세리노의 미래 예언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쥬세리노의 1920년대 이후의 미래예언들을 살펴보면, 미래에는 끔찍한 대재앙과 천재지변등이 많이 발생해서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한다는 끔찍한 내용이어서, 너무 암울하고 두려운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인류의 미래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바꿀 수도 있다고 하니, 다소 끔찍한 내용의 예언들이 나오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쥬세리노박사가 밝힌 미래예언들은 하나의 참고사항으로만 생각하시고, 너무 맹신하지는 말고, 재미삼아 보시길 바란다.

 

◆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태평양일대의 많은 섬들의 침몰, 일본열도 침몰설

 

2029년 경에 북극의 거대한 빙하들이 녹으면서, 해수면의 급격한 상승이 일어나서, 많은 섬들과 반도가 바닷물속에 가라앉게 된다.

 

그리고 2038~2040년 사이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지역과 일본열도가 지진발생과 화산의 분화, 해수면 상승 등으로 인해서, 많은 부분이 물속에 침몰하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연안의 섬들도 많이 바닷물속으로 침몰하게 된다.

 

이 당시 일본의 많은 지역들이 물속에 잠기는 등 대환란이 발생하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으로 대거 이동해온다고 하며, 한국의 인구가 크게 증가하게 된다.

 

2012년 - 검은 연기의 시대, 12월 6일부터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역병이 창궐하고 증가해서, 인류의 멸망의 주기가 시작된다

 

2023년 2월 9일 - 진도 8, 9도의 대지진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다.

 

2026년 7월 17일 - 진도 10.8도의 ‘더-빅 원’이라는 이름의 대지진이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나서, 수많은 건물과 도로를 파괴하고,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이것은 역대 미국에서의 최대의 지진으로 기록될 것이다,

 

2028년 - 급격한 해수면의 상승으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는 지도상으로 없어질 것이다.

 

2029년 4월 13일 - 아포피스 소행성이 지구와 근접한 거리를 아슬아슬헤게 지나갈 것이다.

 

2036년 11월 11일 - 7년전에 지구근처를 지나갔던 아포피스 소행성이 또다시 지구 근처로 접근해오며, 지구와의 충돌가능성은 80% 정도나 된다. 지구파멸의 절정기에 이름.

 

2038년 - 아프리카의 기온은 58도까지 상승할 것이다.

 

2040년 -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인간들의 지나친 개발로 대부분 소실될 것이다

 

2043년 - 지구인류의 80%가 사라지는 대재앙 발생. 열대우림의 파괴의 여파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환경파괴로 인해 인류의 70~80%가 사망하게 된다고 한다.

 

쥬세리노는 2043년도에 여러가지 대재앙으로 인해 인류의 80%가 사망하게 된다는 끔찍한 예언을 했다.

이 시기에 여러가지 재난이 동시에 발생하고 역병이 창궐해서, 세계인구의 8할이 없어진다고 하며, 거의 지구멸망의 수준까지 간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구종말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이며, 세계인구의 2할 이상은 살아남아서, 다시 지구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 쥬세리노 예언애 대한 결론

 

이같은 쥬세리노의 미래예언은 매우 암울하고 참담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그렇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쥬세리노의 말에 따르면, 이같은 미래의 상황은 불변적인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한다. 쥬세로노의 말에 따르면, 인류의 미래는 인간의 노력과 의지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하다고 한다.

 

주세리노의 설명에 의하면, 꿈속에서 신이 목소리를 통해서 자신에게 미래의 사실들을 얘기해준다고 한다.

이같은 인류의 재앙적인 미래는 신이 쥬세리노를 통해서 인간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지, 반드시 그대로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인간들이 지나친 환경파괴와 자연과 자원에 대한 지나친 남획, 그리고 무절제하고 부도덕한 삶에 대한 신의 경고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인류가 다시 선한 인간성을 회복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는 노력을 경주한다면, 인류의 미래의 모습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한다.

 

쥬세리노는 ‘신이 인류에게 선택을 주고 있다. 미래에 이러한 예언들이 실제로 진행되는지 여부는, 인간들의 행위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즉, 신이 ‘쥬세리노’라는 메신저를 통해 인류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따라서, 인류의 미래가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가지 첨가를 하자면, 쥬세리노의 2010년 이전까지의 예언들은 적중률이 높지만, 이상하게도 쥬세리노의 2010년 이후의 예언들은 적중률이 매우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쥬세리노의 인류멸종 예언도 적중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판단된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2010년도 이전까지의 예언들은 적중률이 높았지만, 그 이후의 예언들은 적중률이 매우 낮으므로, 쥬세리노의 인류멸망 예언은 믿지말고 그냥 재미로 보시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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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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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김청의 결혼과 이혼, 이혼사유, 젊은시절의 미모와 프로필

 

- 김청 프로필 -

 

본명 - 안청희

1962년 6월 1일

키 - 162cm, 몸무게 42kg,

혈액형 B형

출신학교 - 경희대학교 무용학과 중퇴

가족 - 어머니 김도이

데뷔 - 1981년 미스 mbc 선발대회 2위 입상

종교 - 개신교

 

80년대의 우리 연예계를 대표하는 청순미인이 한명 있는데, 바로 김청을 꼽을 수 있답니다.

80년대에는 우리나라 연예계는 여배우들이 대거 등장해서  다중구도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여배우들이 군웅할거를 하던 시대였답니다.

 

70년~80년대 신트로이카체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 새로운 미녀여배우들이 등장해서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요.

 

80년대의 대표적인 여배우로는 이미숙과 원미경을 꼽을 수 있고, 그녀들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 대중들의 인기를 끌면서, 서로 치열한 인기경쟁을 벌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신선하고 청순한 마스크를 지닌 김청이라는 여배우가 등장해, 이미숙과 원미경 못지않은 큰 인기를 끌면서, 활발한 연기활동을 전개해나갔습니다.

 

그러니까, 80년대의 우리나라 연예계는 원미경과 이미숙, 김청의 세명의 여배우들이 주름잡았던 3톱체제가 전개되었으니, 이를 제 3세대 트로이카라고 부른답니다.

 

80년대에는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등 제2세대 트로이카의 인기가 서서히 식어가면서, 새롭게 등장한 이미숙, 원미경, 김청이 새로운 트로이카로 인기를 독식해나갔던 시대였답니다.

 

80년대에 원미경과 이미숙은 매우 인기가 높았고, 수많은 영화에 경쟁적으로 출연해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벌여나가고 있었지요.

그러니까, 1980년대에는 원미경과 이미숙이 우리 영화계를 양분하고 있었다고 할 정도로, 이미숙과 원미경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 반면, 김청은 영화보다는 TV드라마에서 꾸준히 출연하면서 인기를 끌었던 그시대의 대표적인 청순미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미숙은 동양적인 마스크에다 요염미가 강하게 풍겼고, 원미경은 완벽한 미모에 관능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반해,

김청은 청순가련형의 미모를 갖고 있는등, 세명 모두 각각 개성있는 미모로 강한 팬덤층을 형성하고 있었답니다.

 

지금은 김태희와 송혜교가 최고미인으로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80년대에는 원미경과 이미숙, 김청이 지금의 김태희와 송혜교 같은 존재감이었답니다.

 

커다랗고 초롱초롱한 눈, 오똑한 콧날, 수줍은 듯 살포시 다문 입술 등 유난히도 한국적인 정취를 짙게 풍기는 김청은 전형적인 동양미인이면서, 동시에 청순미인이랍니다.

 

그래서 80년대에 김청은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 청순한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하면서,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셀레이게 했던 장본인이랍니다.

 

원미경, 이미숙과 함께 8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미녀 여배우 3인방에 김청도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릴 수가 있답니다.

 

이렇게 김청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청순미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남성들은 더욱 김청에 대해 남성으로서의 보호본능을 느끼면서 그녀를 더욱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김청은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라는 연예인 리얼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요.

그래서 오늘은 80년대의 대표하는 청순미인 김청에 대해서 소개해보도록 하겠어요. 

 

80년대 제3세대 트로이카 삼인방 중에, 원미경은 주로 영화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이미숙은 영화와 드라마를 왔다갔다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그 반면 김청은 주로 드라마에 많이 출연해서 큰인기를 끌었답니다.

 

주로 드라마에 다작으로 출연해 높은 인기를 끌었던 김청을 두고, 80년대의 ‘드라마의 여왕’이라고 부른답니다.

 

김청이 80년대에만 출연했던 드라마만 해도 22편이나 되며, 90년대에는 더욱 늘어나 28편의 드라마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그녀는 TV분야에서 맹활약하면서 크게 각광을 받았답니다.

 

그러니까, 김청은 80~90년대에 해마다 2~3편의 드라마에 계속해서 출연하는 등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였는데, 아마도 김청은 80~90년대 TV드라마에 최다출연자가 아닐까 합니다.

 

김청은 청순한 미모와 함께 뛰어난 연기력을 지니고 있어서, 뭇감독과 PD들로부터 끊임없이 스카웃제의를 받았으며, 80~90년대에는 개인적인 사생활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드라마촬영 때문에 엄청 바쁘게 생활했다고 합니다.

 

김청의 전성시대는 50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눈부신 활동을 펼쳤던 80~90년대라고 할 수가 있지요.

김청의 드라마출연은 2000년대에 들어서도 왕성한 활동이 이어집니다. 김청은 2000년대에도 19편의 드라마에 출연할 정도로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갔답니다.

 

그런데 김청은 현재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김청이 이렇게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있는 이유는 무었일까요?

 

80~90년대에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그녀가, 정말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그시대를 주름잡았던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청의 어머니는 김청을 고등학생 시절인 17살 때에 임신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김청의 아버지는 김청 어머니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많은 직업군인이었지요.

 

그런데 양가 부모님의 반대가 매우 극심했기 때문에, 두사람의 결혼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청 어머니가 김청을 출산한 이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해서 함께 김청을 애지중지하면서 키워나갔습니다.

 

그런데 육군중사였던 김청의 아버지가 불행히도 김청을 낳자 마자,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습니다.

 

결국 김청은 홀어머니밑에서 어렵게 자라났습니다. 그렇지만 성격이 반듯했던 김청은 어머니의 무남독녀 외동딸로서 성실하게 모범생으로 곱게 자라났습니다.

 

김청은 1981년도 MBC가 주최한 미스MBC 선발대회에 출전해 당당히 미스MBC 2위로 뽑혔고, 그 특전으로 MBC공채 14기 탤런트가 되어서 연기자로서 데뷔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청은 1987년도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태수를 뒷바리지하는 지고지순한 여주인공역할을 훌륭히 연기해내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랑과 야망’의 인기를 높여 놓는 데에 견인차역할을 합니다.

 

이 당시 ‘사랑과 야망’의 시청률은 75%로 방송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의 중심에 김청이 있었답니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시청율이 폭발적으로 올라가면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히로인역할을 한 김청은 흥행력있는 연기자로 인정받으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답니다.

 

김청은 ‘사랑과 야망’에서 지고지순하고 가련한 청순연기를 펼치면서 그녀의 청순미가 크게 빛을 발했고, 이때부터 김청은 청순미인의 대명사가 된답니다.

 

지금 김청은 나이 60세가 되면서 기품있는 귀부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80년대만 해도 김청은 대단한 청순가련형의 미인으로 손꼽히는 미녀였습니다.

 

80년대 후반인 이 당시는 다소 보수적인 사회이어서, 많은 남성들이 섹시하고 관능적인 여배우보다는 청순한 미모의 여배우를 더 좋아하던 시절이었기에, 이 시기에 김청은 수많은 남성들의 로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수려한 미모와 뛰어난 연기, 재치있는 말솜씨 등 다양한 재능을 두루 갖추고있었던 김청은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서 열연을 펼쳤을 뿐만아니라,

8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MC로도 출연하는 등 명MC로도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광고모델로도 발탁되어서 CF광고를 7편이나 찍는 등, CF여왕으로도 명성이 떨쳤지요.

 

 

◆ 김청의 결혼과 이혼, 이혼사유

 

이렇게 드라마출연과 CF출연, 그리고 예능프로그램의 MC를 맡는 등 만능엔터테이너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높은 인기를 끌었던 김청은 지금까지도 결혼을 하지않고, 솔로로 지내오게 되었는데요.

 

원래 김청은 딱 한번 결혼을 한 적이 있었답니다. 김청은 나이 37세가 되던 1998년도에 전격 결혼을 발표했습니다.

 

김청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가, 아는 언니의 소개로 골프장사장인 배씨를 알게 되었고, 그 후 두사람은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김청이 만난 남성 배씨는 김청보다 13년이 더 많은 50세였다고 해요.

 

그런데 김청은 나이 많은 배씨에게서 아버지 같은 포근한 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에, 아버지 사랑을 제대로 못받고 자랐던 김청이기에 아버지같이 포근한 정을 느끼게 해주었던 배씨에게서, 더욱 끈끈한 친밀감과 부성애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없이 편모슬하에서 자랐던 여성들은, 종종 나이 많은 남성에게서 아버지같은 포근한 부성애를 느끼며, 더 깊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답니다.

 

이렇게 김청과 배씨가 자주 만나 데이트하면서 두사람간에 뜨거운 애정이 싹트게 되었고, 얼마 후에 배씨가 김청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결국 98년도 5월에 두사람은 전격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나게 됩니다. 김청은 배씨와 결혼한 지, 3일만에 곧바로 이혼하게 된답니다.

그런데, 김청의 주장에 의하면, 이것은 이혼이 아니라 파혼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의 전모는 이렇습니다. 김청은 배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필리핀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신혼여행지에서 남편 배씨는 오직 카지노에만 출입하면서 밤을 세워가며 도박에만 집중하였고,

그 때문에, 김청을 3일 동안 호텔에서 혼자 독수공방을 했다고 합니다.

 

신혼여행지에 가서 이렇게 예쁜 청순미인을 호텔방에 홀로 남겨두고 독수공방을 시켰다고 하니, 정말 배씨가 남자가 맞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신혼여행지가 필리핀이었는데, 그 곳에 있는 카지노에 틀어박혀서 오직 도박에만 빠져있던 배씨는 신부 김청을 3일동안 먹이지도 않고, 재우지도 않은채, 홀로 독수공방시키면서, 예쁜 신부 김청을 그냥 방치했다고 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김청은 곧바로 파경을 선언하고, 결혼 3일만에 짐가방을 싸서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김청이 결혼 후에, 신혼여행지에서 보낸 3일 결혼의 전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김청은 전남편 배씨와 한번도 잠자리도 하지않았고, 산림을 차려서 같이 동거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까지 갔지만, 김청은 배씨와 아무일도 없이, 파경을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인데요.

그러니까, 김청은 형식적인 결혼식만 올렸을 뿐이지, 사실상의 결혼생활은 단 하루도 하지 않았던 겁니다.

 

더욱이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청은 자신은 이혼한 것이 아니라, 약혼만 했다가 파혼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답니다.

지금까지도 김청은 자신은 이혼녀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단지 자신은 파혼녀일 뿐이라는 거지요.

 

김청은 신혼여행지에서 아무일도 없이, 그냥 3일동안 독수공방만 하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이혼녀’라고 불리우는 것은 너무나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랍니다.

 

그리고 배씨는 결혼전에 김청의 어머니에게 사업자금을 빌려달라는 부탁까지 했다고 합니다.

 

김청은 배씨를 사랑해서 결혼식을 올렸는지는 몰라도, 배씨는 김청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정략적 결혼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는 부분이랍니다.

 

결혼하기 전에, 신랑될 남자가 신부의 어머니에게 사업자금으로 거액의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아뭏튼 결혼 3일만에 파경을 맞은 김청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그 후 절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칩거생활을 하게 됩니다.

 

연예인으로서 큰 인기와 명성을 떨쳤던 김청이 뒤늦게 선택한 결혼이 완전한 실패작으로 끝나고야 말았답니다.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던 김청은 그 후 첩첩산속에 있는 절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게 된답니다.

 

자신이 처음한 결혼이 완전 실패하면서 큰 충격과 좌절을 겪은 김청은 결혼실패의 충격과 상실감을 잊기위해서, 절에서 삼배옷을 입고 밭을 갈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오랫동안 충격과 아픔에서 해어나오지 못했던 김청은 한동안 엄청나게 술을 먹었다고 합니다.

 

김청은 밤마다 술을 많이 마셨고, 그리고 마취제를 맞지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김청이 파혼 때문에 생긴 정신적인 충격과 상실감 때문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술을 먹고, 낮에는 식음을 전폐하고 생활하는 등, 결혼실패 후의 김청의 생활은 거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결혼실패의 충격으로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던 김청은 수년동안 방송활동을 접었고, 은둔생활을 한 끝에, 200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다시 연예계에 복귀해 연기활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김청이 독신으로 사는 이유

 

김청이 한번 결혼식을 올렸다가 곧바로 파경을 맞았던 가슴 아픈 전력이 있지만,

그녀의 출중한 미모와 인기로 볼 때에, 그 후에도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우리연예계의 대중적인 스타로서 큰 인기를 끌어왔던 김청이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데에는 몇가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김청이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였던 80년대에, 그녀의 어머니가 친구의 빛보증을 잘못섰다가 그만 30억원의 빚을 덜컥 떠안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청의 어머니에게 빚보증을 서게했던 그 친구는 곧바로 미국으로 달아나버렸고, 김청은 어머니가 졌던 친구의 모든 빚을 혼자서 다 떠안게 된 것이랍니다. 그때가 김청과 어머니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김청은 20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빚 30억원을 떠안은 상태에서, 그녀는 마침 MBC 탤런트에 당선되었는데,

그 후 무려 10년 동안 바쁘게 연기생활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어머니가 진 빚 30억원을 갚아나갔습니다.

 

김청은 연기자로 데뷔한 후 30살이 될 때까지의 10년 동안은 자기자신을 위해서 산 것이 아니라, 오직 어머니의 빚을 갚기위해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결국 김청은 10년만에 어머니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어머니빚을 다 갚은 후에,김청은 후련한 마음보다는 오히려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탤런트가 된 후, 김청은 10년 동안 억척같이 연기활동을 해오면서 큰 돈을 벌 수 있었는데, 그 많은 돈이 모두 어머니의 빚갚는 데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허탈했겠습니까?

 

김청이 가장 아름다웠을 20대의 10년의 세월을 어머니빚 갚는 데에 다 소모해버린 셈이랍니다.

이렇게 김청은 젊은시절에 어머니빚을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생활했기 때문에, 남자와 연애할만한 정신적인 여유를 전혀 가질 수 없었습니다.

 

김청은 어머니빚을 다 갚은 후에 나이는 이미 30세가 훌쩍 넘어섰고, 연기자로서의 높았던 인기는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었는데,

이 때에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우울증 때문에 또다시 큰 고통을 겪게되었고, 심지어 그녀는 자살까지 시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청은 가장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을 어머니의 빚을 갚는 데에 소모하는 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청춘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과 우울증 때문에,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나날이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그녀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던 겁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김청이 수면제를 먹고 잠자고있을 때, 마침 아는 언니가 찾아와서 그녀는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게만 보였던 김청이지만, 사실 그녀는 어머니로 인해서 심한 정신적고통과 갈등을 겪고있었던 겁니다.

 

그럼 김청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자는 없었을까요? 김청이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아왔지만, 과거 한 때에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자가 한명 있었다고 합니다. 그사람은 모델에이젠시를 하는 사람이었는데요.

 

김청보다 7년 연상의 광고모델 에이젠시를 하는 P씨라는 남자였는데, 김청은 그 P씨에게서 무척 포근한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결국 김청은 곧바로 P씨와 깊은 사랑에 빠졌는데, 김청의 어머니가 극심하게 두사람의 사랑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김청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대단히 컸습니다. 김청의 어머니는 오직 딸 김청만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왔기에, 김청에게는 어머니가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김청은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효심 때문에 어머니의 반대를 받아들여서, 어쩔 수 없이  P씨와 생이별을 했습니다.

 

1988년도에 김청이 방송활동 중에 갑자기 잠적해버리는 일이 일어났었는데요. 이당시 김청은 그 어떤 공식석상에도 나타나지 않고, 방송촬영까지 펑크내면서,  무려 2달 동안 잠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김청이 갑자기 잠적했던 이유는 그녀가 사랑했던 P씨와 헤어진 충격 때문이었는데, 그 이별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한적한 시골로 들어가서 혼자서 마음을 추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에 김청이 만났던 P씨가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였을 것이며, 그녀의 사랑은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 때문에, 안타깝게도  생이별로 끝나고 말았답니다.

 

김청은 1990년도에 또다시 한남자와 사랑의 스캔들을 겪게 됩니다.

한명의 남자를 놓고, 김청과 최수지가 얽힌 소위 ‘삼각스캔들’이 그것입니다.

 

대하드라마 ‘토지’로 큰 인기를 끌었던 최수지가 90년도에 미국 LA에서 윤씨와 결혼을 한다는 발표를 했는데요.

그런데 최수지의 결혼상대인 윤씨는 김청이 먼저 약혼했다가 파혼한 남자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당시 김청과 최수지의 삼각스캔들이 우리 연예계에 떠들썩하게 퍼져나갔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최수지가 선배연기자인 김청의 애인을 가로채버렸다는 기사까지 나오기도 했었답니다.

 

그 당시 한 중매쟁이가 잘생기고 재력있는 재미교토사업가 윤씨를 김청과 최수지 두사람에게 번갈아가면서 맞선을 주선했습니다.

 

먼저 맞선을 보았던 윤씨와 김청은 처음에는 서로 마음이 맞아 약혼까지 했었는데,

그 사이에 윤씨가 또다시 중매쟁이로부터 최수지를 소개받았고, 최수지에게 홀딱 반한 윤씨가 김청과는 파혼한 후, 새롭게 최수지와 약혼을 한 것이랍니다.

 

결론적으로 김청은 재미교포 사업가 윤씨에게 차이게 됐고, 김청을 매몰차게 찬 윤씨는 최수지와 약혼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런 사연이 신문과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나니까, 김청으로서는 대단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리고 최수지는 선배연기자의 남자를 가로채버린 나쁜 여자로 낙인찍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매스컴에서 선배인 김청의 남자를 가로챘다고 안좋은 비난이 가해지자, 최수지는 윤씨와는 파혼을 했고, 이미 헤어진 사이다 라고 주장했답니다.

 

그리고 최수지는 연기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가버렸답니다.

그런데 그 후 2달 뒤에 최수지는 자신이 파혼했다던 윤씨와 LA에서 비밀결혼식을 올리게 된답니다.

 

최수지는 국내의 비판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던 것이고, 그녀는 남몰래 윤씨와 결혼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김청의 약혼자를 가로채서 결혼식을 올렸던 최수지는 윤씨와 결혼한지 불과 6개월만에 이혼하고 말았답니다.

최수지는 윤씨에게 속아서 사기결혼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에서 이혼소송을 벌여서 이혼하고 말았지요.

 

이렇게 김청은 젊었을 시절, 어머니의 엄청난 빚을 떠안고 그 빚을 갚는 일 때문에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와 두번씩이나 이별을 겪었을 뿐아나라, 그녀의 유일한 결혼은 3일만에 파경을 겪는 등, 그녀가 좋아했던 남자들과는 이상하게도 파경과 이별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렇게 김청은 도화살이 끼었는지, 청순미모와 탁월한 연기력으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였음에도 불구하고 몇번이나 찾아온 결혼기회를 놓치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김청은 젊었을 때에 겪은 우울증이 다시 반복되어서 이제 그녀는 평생 우울증약을 먹고 산다고 하네요.

정말 안타깝고 가엾은 김청이 아닐 수 없네요!  젊었을 때에 그녀가 겪은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이렇게 그녀가 평생을 우울증약을 먹고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TV드라마의 여왕으로서, 많은 대중들로부터 크나 큰 사랑을 받을 정도로 연기자로서는 큰성공을 거두었지만, 현 여자로서 사랑을 쟁취하는데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김청은 1962년생으로서 이제 나이가 60세가 되어 장년의 여성이 되었지요.

 

그렇지만 김청은 지금도 괜찮은 남자와 만나서 멋진 데이트를 하는 꿈을 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성들은 자신에게 전혀 대쉬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지요.

나이 60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소녀처럼 멋진 왕자님을 만나는 꿈을 꾸고 사는 그녀를 보면, 정말 때묻지 않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김청은 신체 건강하고 배려심이 깊은 남자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꼽고있는데, 이러한 그녀의 소박한 소원이 하루빨리 이뤄져서, 그녀가 행복한 여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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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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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 여입양아 정인이 학대 살인사건과 사망이유, 양부모 신상, 학대이유


우리나라에서 또다시 여아 학대사망사건이 발생해서 큰 충격을 주고있습니다.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할 우리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어른이들이 나약한 어린 아동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사건일 것입니다.

 

그런데, 202010월에 태어난 지 불과 16개월밖에 안된 옹알이하는 여자아이를 학대하고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해서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정인이 학대 살해사건그것이 알고싶다에도 방영되어서,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면서, 현재 끊이지않고 계속되는 아동학대사건이 우리사회에 가장 큰 화두가 있습니다.

 

정인이는 20196월달에 태어난 아주 귀엽고 앙증맞고 애교가 많은 2살베기 여자아이입니다.

 

정인이는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키울 입장이 못되는 친모에 의해서 불행히도 아동보호기관으로 보내졌고, 그 후 한 위탁가정에 맡겨져서 몇개월 동안 양육되어졌답니다.

 

, 정인이를 낳고난 후, 아이를 도저히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안되었던 정인이 친모가 출산 후 8일만에 정인이를 입양기관에 맡겨서 새로운 가정으로 입양을 추진했던 겁니다.

정인이라는 이름도 정인이의 친모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고 하네요.

 

그렇게해서, 정인이는 태어난 지 8개월만인 20202월경에 한 가정에 수양딸로 입양되게 됩니다.



정인이를 입양한 양부와 양모 모두 외형상으로 인상도 참 좋고, 교양있고 친절해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양부 안씨는 방송국에 근무하는 직장인이었고, 양모 장씨는 활달한 성격을 가진 유학파출신으로서 통역사의 일을 하고 있었답니다.

 

양부모 모두 독실한 기독교신자로서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고, 특히 양모 장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에 해외입양을 돕는 기관에서 일했던 경력도 갖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양부모는 마침 한명의 딸도 키우고 있는 등 여러가지 좋은 경력을 갖고 있었기에, 당시 주변사람들은 양부모가 2달된 정인이를 잘 키울 것으로 큰 기대감을 갖고있었답니다.

 

특히 양모 장씨는 오래전부터 아이를 입양해 키우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양기관에서는 양부모가 아이를 잘 키울 것으로 전혀 의심하지않고, 이 양부모에게 정인이를 입양보냈다고 합니다.

 

20202월경, 그 양부모는 한 입양기관으로부터 예쁘고 앙증맞은 정인이를 입양했는데, 당시 정인이는 생후 8개월된 시점이었답니다.

 

주변사람들은 양부모 모두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자라온 기독교신자이고, 입양봉사활동을 한 경력을 갖고 있을 뿐만아니라, 입양을 절실히 희망해온 터라, 양부모가 정인이를 알뜰살뜰 잘 키울 것으로 큰 기대를 갖었답니다.

 


이렇게 생후 8개월된 여아 정인이는 새로운 양부모를 만나서 양부모님집에서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아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답니다.

 

또한 양부모는 자신들이 둘째딸을 입양한 사실을 회사와 주변사람들에게 알리고 엄청 자랑하면서, 아이를 잘 키워 훌륭한 사람을 만들겠다고 과시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정인이가 입양된 지 8개월이 지난 시점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하고 말았답니다.

 

정인이가 입양된 지 8개월이 되는 202010, 정인이는 온몸이 시퍼런 멍이 든체 처참한 몰골이 되어 사망한 채 병원에 실려왔습니다.

 

20201013일 오전 11시경 출생한지 16개월밖에 안된 정인이는 온몸에 타박상을 입은 상태로 병원에 실려왔는데, 이미 정인이는 심정지상태였고, 의료진이 아이를 소생시키기 위해 여러번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한없이 인자해보이던 양부모한테 입양되어 아주 행복하게 잘 살 것 같았던 정인이였는데, 그동안 도대체 무슨 끔찍한 일이 있었길래, 정인이는 이처럼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된 것일까요?

 

정인이의 사망원인, 사망 당시의 상황

 

16개월밖에 안된 정인이가 허망하게도 사망하고 말자, 경찰은 정인이의 양부모에 대한 수사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양부모 장씨는 정인이가 단순한 사고로 숨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양부모는 첫째와 둘째딸이 함께 집안에서 놀다가 정인이가 의자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서 그 충격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 입양아 정인이는 누군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단순한 놀이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인이가 숨졌을 당시에, 이해할 수 없는 여러가지 수상한 의문점들이 많이 존재하는데요.

 

첫째, 정인이가 사망하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진술이 양부모와 이웃사람들 간에 서로 다릅니다.

 

그 당시 정인이집의 아랫집에 살던 이웃사람의 증언은 전혀 달랐습니다. 아랫집 사람은 천정에서 쇠뭉치 같은 것이 여러번 쿵쿵하면서 천정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둘째, 정인이가 사고를 당했을 때에, 양모 장씨는 119구급차를 부르지않고, 콜택시를 불러서 정인이를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셋째, 양모는 정인이가 쓰러졌는데도, 아이를 그대로 방치한 채, 태연하게도 자신의 첫째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이렇게 첫째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후에야, 콜택스를 불러서 쓰러진 정인이를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이 때는 정인이가 쓰러진 지 1시간이 경과된 후였답니다.

 

이렇게 늦장을 부린 끝에 정인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정인이는 이미 심장이 정지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양모 장씨가 쓰러진 정인이를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고 1시간이나 질질 끌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만일 양부모가 신속하게 119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으로 이송했으면, 다친 정인이를 차안에서 치료하면서 병원에 이송할 수 있었고, 또한 더 빠른 시간내에 병원에 이송해서 정인를 살릴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정인이 양모 장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인이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고 늦장을 부렸다는 점이 큰 의문점으로 남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후, 잠시 정인이의 심장이 다시 박동을 시작하기도 했는데, 이 때에 병원료진이 정인이의 몸을 CT촬영을 시도한 결과, 정인의 온몸은 시퍼런 멍이 든 상태였고, 뱃속에 피가 꽉 차있었다고 합니다.

 

진단 결과, 정인이는 무언가 외부로부터 큰 충격이 가해져서 체내의 장기가 파열되고, 과다출혈이 일어나면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CT촬영 결과, 정인이의 몸에서 11군데가 넘는 뼈가 골절된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이 중에서도 6군데의 뼈는 두 번이상 골절되었것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 16개월밖에 안된 정인이는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설고, 수많은 뼈가 부러지도록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병원으로 실려온 겁니다.

 

정인이의 공식적인 사망원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손상이었습니다.

 


, 정인이는 누군가에게 여러차례 심하게 얻어맞아 몸의 뼈가 부러지고, 복부의 장기가 파열되는 충격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정인이의 몸은 뱃속에 있던 췌장과 장간막 등 모든 장기가 파열되었고, 두개골도 파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모 장씨는 병원에서 아이의 죽음이 확인되자, 의료진들 앞에서 무척 슬픈 듯이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의료진들은 울고있는 양모 장씨를 보면서, 마치 악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CT촬영 결과, 아이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구타 같은 외력의 충격에 의해서 사망했다는 것을 의료진들이 모두 알고있었기 때문이지요.

 

경찰은 정인이의 죽음이 외력에 의한 충격에 의한 것이 밝혀지자, 정인이가 죽는 날 아이와 함께 있었던 양모 장씨를 긴급 구속했습니다.

 

경찰은 양모 장씨를 아동학대 치사죄로 구속해서 수사를 벌였습니다.

경찰은 양모 장씨가 정인이를 때리는 과정에서 예기치않게 정인이가 사망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인권단체에서는 정인이의 죽음은 양모 장씨의 고의적인 구타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하면서, 양모에게 아동학대 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크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치사죄의 형량 - 4년이상 7년 이하 징역

살인죄 형량 - 10년 또는 무기징역, 사형

 

아동학대 치사죄는 아이를 죽일 고의성은 없었고, 그냥 때리기만 했는데, 때리는 과정에서 실수로 아이를 죽게한 경우라서 형량은 매우 낮은편이지만, 살인죄는 처음부터 아이를 죽일 고의성이 있거나, 이렇게 때리면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인식을 하면서 때린 경우라서 형량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 아동살인죄와 아동학대 치사죄는 살인의 고의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판가름나며, 그 처벌의 형량도 달라지게 된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아이의 몸에 오래전부터 계속 구타를 당한 타박상과 골절상의 흔적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모 장씨가 정인이를 상습적으로 계속해 구타했다고 보는 것이며, 이것은 양모가 살해의 고의성을 갖고있다고 보기 때문에, 양모 장씨를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지난해 11월 양모 장씨를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 치사죄로 기소했답니다.

 

이에 대해 여러 아동단체에서는 양모 장씨가 16개월밖에 안된 정인이를 8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학대한 끝에 죽였기때문에, 형량이 낮은 학대치사죄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은 양모 장씨가 어리디 어린 정인이를 8개월간 상습적인 고문과 학대 끝에 의도적으로 죽였기 때문에, 반드시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청와대 민원게시판에 청원까지 올렸고, 이 청원은 한달동안 23만명의 동의를 받았다고 합니다.

 

새하얀 피부와 통통한 볼살 때문에 복숭아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로 너무도 귀엽고 예뻤던 정인이였는데, 16개월밖에 안된 아이가 대체 무슨 잘못이 있었길래, 이토록 처참하게 구타를 당하고 죽게되었는지, 정말 무척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양부모의 구체적인 범죄혐의점과 정인이를 학대한 많은 증거들

 

그런데, 경찰조사에서 양부모는 정인이가 죽은 것은 고의가 아닌 단순한 사고 내지는 실수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양부모는 자신들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고 있는데요.

 

경찰조사에서 양모 장씨는 정인이의 사고와 관련해서 양부 안씨의 주장과 전혀 다른 증언을 해서 눈길을 끌고있습니다.

 

정인이 얼굴에 난 시퍼런 멍자국 두개


경찰조사에서 양모 장씨는 정인이를 들고 흔들다가 아이를 실수로 떨어뜨려서 아이의 복부가 다쳤다고 진술을 했습니다. 이 증언은 정인이가 큰딸과 놀이하다가 떨어져서 다쳤다고 하는 양부의 증언과 전혀 다른 진술인데요.

 

첫진술에서 양부가 거짓진술을 한 것입니다.

 

양모의 진술은 이렇습니다.

사망 당일, 양모가 정인이에게 밥을 먹이려고 하는데, 아이가 밥을 안먹길래 화가 난 양모 장씨가 아이를 두손으로 들어올려 흔들다가 실수로 아이를 떨어지면서 아이의 배가 의자에 부딪쳐서 사고가 났다는 것입니다.

 

양모가 실수로 아이를 흔들다가 떨어져서 사고가 났다는 것인데요. 아이를 실수로 떨어뜨렸다는 양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점이 많습니다.

 

양모가 진짜로 아이를 두손으로 잡고 흔들다가 놓쳐서 떨어졌다면, 쿵소리가 한번만 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아랫집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천장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쿵소리가 여러번 반복해서 났다고 합니다.

 

이것은 양모가 아이를 실수로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아이를 바닥으로 여러번 내동댕이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모가 고의적으로 아이를 바닥으로 떨어뜨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병원에서 찍은 CT촬영의 결과에 의하면, 정인이의 몸에는 수많은 타박상과 골절상이 나 있었는데, 이런 골절흔적들은 최근에 다친 것뿐만아니라, 이미 두 달전이나 세 달전에도 충격이 가해져서 골절된 흔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인이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누군가로부터 지속적으로 심한 구타를 당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수많은 상처들은 어떻게해서 생긴 것일까요? 1살 정도밖에 안되는 정인이가 스스로에게 자해를 해서 상처를 냈을까요?

정인이게 수많은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은 장본인은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던 양모의 소행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모가 정인이를 학대한 정황증거들

 

양모 장씨는 정인이를 종종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자신의 볼 일을 보곤했는데요.

 

작년 6월경, 어린이집에서 정인이의 생일기념으로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정인이의 양어깨에 팔자붕대를 감은 모습이 노출되었는데, 이것은 정인의 양쪽 쇄골이 골절되었기 때문이랍니다.

 

또한 정인이의 얼굴에는 꼬집힌 자국도 있었고, 온 몸 여러곳에 멍자국들이 넓게 퍼져있었습니다.

 

아니, 생후 2년도 안된 아이에게 얼마나 심한 폭행을 가했길래, 아이의 양어깨가 이처럼 골절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얼굴과 온몸에 난 시퍼런 멍자국도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한 흔적이었습니다.

 

양모 장씨가 아이를 맡긴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들은 양모가 정인이를 학대한 흔적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하며, 이미 보육교사들은 정인이가 양부모로부터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양모 장씨가 정인이를 직접 때리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목격담과 증언에 따르면, 양모 장씨는 정인이를 입양한 지 한달후부터 정인이를 학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생후 12개월 때에는, 양모가 정인이의 두다리를 강제로 벌려서 넘어뜨리고, 울고있는 아이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까지 했다고 합니다.

 

한 목격자는 정인이가 우니까, 양모가 아이가 탄 유모차를 뒤집어엎어버리는 장면까지 목격했다고 합니다.

 

또한 양모는 정인이가 탄 유모차를 일부러 세게 밀쳐서 벽에 부딪치게 했습니다.

 

양모는 아기를 재우는 것이 아니라, 저녁 7시에 아이를 어두운 방에 혼자 가둬놓고, 아이가 혼자 울다가 지쳐서 잠들도록 했습니다. 

 

또한 양부모가 작년 8월달에 EBS어느 특별한 가족에 입양가족의 자격으로 출연했는데, 이 때에 양부모는 입양한 아이를 정성껏 키우는 천사엄마, 천사아빠인 것처럼 코스프레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송에 함께 출연한 정인이의 몸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는데, 정인이의 이마에는 찍힌 상처가 있었고, 어깨에는 시퍼런 멍자국이 나 있었지요. 또한 정인의 피부색이 거멓게 변해있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들, 정인이 학대흔적 발견과 경찰 신고

 

정인이는 작년 3월경부터 어린이집에 등원했는데, 이 당시 며칠 간격으로 어린이집에 왔던 정인이의 얼굴과 배, 허벅지에서 시퍼런 멍자국이 나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정인이의 몸에난 상처를 카메라로 찍어서 사진으로 남겨두었고, 그 이후에도 아이의 몸에 이런 멍자국들이 계속해서 나타나자, 아동학대를 의심하고, 아동보호기관을 통해 경찰서에 아동 학대신고를 했습니다.

  

그 후, 정인이가 몇 달동안 어린이집에 오지않고 있다가, 양모는 2개월만에 정인이를 다시 어린이집에 데려왔는데, 2개월 전보다 정인이의 몸무게가 1kg이 줄어있었다고 합니다.



 성장기의 어린이는 하루가 다르게 몸무게가 쑥쑥 늘어나는 게 정상입니다.

당시 정인이는 기아상태에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삐쩍 말라있었고, 다리에 힘이 없어서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린이집 관계자는 또다시 경찰에 아동학대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양부모는 경찰조사에서 아이가 입병이 나서 제대로 이유식과 물을 먹지못해서 살이 빠졌다고 주장을 했고, 경찰은 양부모를 혐의없다고 판단하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정인이는 어린이집에 올 때마다 몸에 시퍼런 멍자국과 상처를 입고 있었고, 아동학대를 의삼한 교사들은 무려 세 번에 걸쳐서 양부모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경찰조사를 받은 양부모는 그 때마다 이런 저런 변명을 대며 빠져나갔고, 경찰의 무성의한 조사와 방임으로 세 번 모두 무혐의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양부모가 정인이를 입양한 지 8개월이 되던 작년 10월에 정인이가 양부모의 학대 끝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맙니다.

  

그리고 양모 장씨는 아동학대 치사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수사를 받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정인이의 부검결과와 경찰의 수사결과가 나왔는데요정인이의 공식적인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파열로 판명이 났습니다.


정인이의 온몸에 난 무수히 많은 멍자국들


정인이는 두개골 골절과 복부장기 파열, 갈비뼈골절로 인한 충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정인이가 죽을 당시의 몸상태는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에 받는 강한 외력에 의한 충격이 가해졌다고 합니다.

 

양모 장씨는 6차례 이상 정인이에게 폭행을 가했고, 16차례나 정인이를 방임했다고 합니다.

  

정인이는 그 누군가로부터 상습적이고 지속적으로 심한 구타를 당한 끝에 죽고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망 당일, 정인이가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을 때, 양모 장씨는 시간을 질질 끌면서 정인이가 쓰러진 지 1시간 30분이 지난 후에야 정인이를 병원으로 데려왔습니다.

 

만약, 양모가 즉시 119에 신고해서, 정인이를 좀 더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해서 치료를 했더라면, 정인이는 살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양모가 정인이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아이가 죽기를 바라는 고의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위탁모에 따르면, 원래 정인이는 잘 웃고, 밥도 잘먹고, 성격이 밝아서 엄마가 키우기에 아주 좋은 아이라고 합니다.

 

항상 밝고 명랑했던 정인이였는데, 양부모에게 맡겨진 후에는 온몸에 시퍼런 멍투성이를 한 채로 나타나, 전혀 웃지도 않고, 항상 시무룩하고 무뚝뚝한 아이로 변해있었답니다.

 

이렇게 착하고 밝았던 정인이의 미소를 빼앗간 사람은 누구일까요?

  

양부모 신상과 성격

 

정인이 양부모인 남편 안씨와 부인 장씨 모두 경북지역의 목사자녀들로서, 경북 포항에 있는 미션스쿨인 XX대학교의 컴퍼스커플로 만나서 결혼한 사이라고 합니다.


 

목회자의 자녀들로서, 평소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신자들인 양부모가 어린 아이를 상습적으로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한 아동살해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점이 참 씁쓸하고,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주변사람들의 설명에 의하면, 양모 장씨는 평소에 자신을 과시하기를 좋아하고 매우 충동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합니다.

 

양모 장씨의 과시욕이 얼마나 심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데요.

 

양모 장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자신의 남편은 방송국의 PD이고, 동생은 변호사라고 자랑질을 하고다녔는데, 실제로 장씨의 남편은 기독교방송국의 행정실에서 일하는 직원이고, 양모의 동생은 단지 대학에서 법학과를 졸업했을 뿐 변호사는 아니라고 합니다.

  

양모 장씨는 딸을 하나 낳아서 길렀는데, 그 첫째딸을 키우기 힘들어해서 베이비시터를 고용해서 그녀가 대신 그 딸을 키웠다고 합니다.


또한 양모 장씨는 평소에 분노조절을 잘 못하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자신 스스로 밝히기까지 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친딸에게도 종종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대하곤 했습니다.


또한 양모 장씨가 평소 밥하는 것을 싫어해서, 종종 식사를 배달시켜 먹었다고 합니다.

평소에 가정주부로서 가사일에 성실하게 임해야할 사람이 밥하는 것도 싫어했을 정도라면,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얼마나 귀찮아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실제로 양모 장씨는 정인이를 입양한 후에, 주변 지인들에게 정인이를 입양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답니다.

 


정인이를 입양한 후에, 양모 장씨는 지인들에게 아이와 정이 안붙어서 걱정이다’ ‘입양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불만스러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주변지인들의 증언처럼, 양모 장씨는 정인이를 입양한 후에, 입양아를 키우는 것이 힘들고 귀찮아지자, 그녀는 정인이를 입양한 것을 많이 후회했을 것이고,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한 불만과 그 스트레스를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하는 것으로 풀었던 것 같습니다. 

 

양모는 성격적으로 아이를 입양해서 키울만한 자질이나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충동적인 성격에다,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욕망이나 엉뚱한 과시욕을 채우기 위해서, 충동적으로 아이를 입양해서 키운 자체가 큰 문제라고 보여지며, 괜히 죄없는 불쌍한 아이 한명을 잃게되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이제 세상에 태어난 지 16개월밖에 안된 가엾은 아이가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학대와 고통을 당한 끝에 세상을 떠나게 되어, 너무나도 애절하고 가슴이 아파옵니다.

 

관계자들이 세 번이나 신고를 했는데도, 경찰은 왜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양모로부터 8개월 동안 지속적인 학대와 구타를 당해온 정인이는 그동안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렇지만 말을 할 줄 모르는 가엾은 정인이는 아프다는 말한마디 조차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어른으로서 정인이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나도 미안하고 괴롭기만 합니다.

  

정인이의 양부모, 아동학대 치사죄로 재판에 회부, 재판 진행중

 

작년 12월초, 검찰은 입양아 정인이를 죽음에 이르게한 양모 장씨는 아동학대 치사죄로 입건하였고, 양부는 아동학대 방임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습니다.

 

현재 정인이를 죽음에 이르게한 양부모는 아동학대 치사죄로 법원에 송치되어 재판을 받을 예정인데, 두사람에 대한 재판은 금년 113일에 시작된다고 합니다.

 

정인이의 양쪽 팔과 손, 다리에 난 검은 멍자국들


양부모는 자신들의 주장대로 단순한 실수로 정인이를 죽음에 이르게한 것일까요? 아니면, 양모가 키우기가 귀찮아진 정인이를 고의적으로 구타해서 살해한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것은 양모에 의한 학대치사죄인가, 아니면 고의에 의한 살인죄인가 하는 문제로 직결됩니다.

 

얼마전에 경찰은 부검전문의 3명에게 정인이에 대한 부검을 다시 실시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정인이의 장기파열이 얼마의 힘에 의해서 일어났는지를 부검전문의에 의해 다시 부검을 실시하는 것이지요,

 

이 재부검에서 숨진 정인이의 장기에 가해진 외력이 살인을 가능케하는 외력이였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양모에 대한 혐의는 학대치사에서 살인죄로 변경될 수 있다고 합니다.

 

16개월밖에 안된 어리디 어린 정인이를 지속적인 학대와 구타 끝에 죽음에 이르게한 살해범은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반드시 엄중한 형벌을 가해서 살인의 댓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정인이의 양부모에 대한 재판은 우리들이 두눈 부릅 뜨고 끝까지 관심을 갖고지켜봐야 합니다. 과연 법원에서 그들의 파렴치한 범죄에 대한 합당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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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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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갈호랑이 대 악어의 싸움 동영상, 호랑이와 악어가 싸울 경우 승자는?

 


동물들의 싸움중에서 가장 재미난 싸움이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자 호랑이싸움 못지않게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무시무시한 싸움은 바로 호랑이 대 악어의 싸움일 것이다..

 

육지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호랑이와 민물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악어가 만일 싸운다면, 누가 이길 것인지 그 결과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육지 맹수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최강의 파이터로 알려진 호랑이와 민물동물의 최강의 맹수인 크로커다일악어가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정말 흥미를 끄는 최고의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수컷 뱅갈호랑이 - 길이 3m 몸무게 220kg

수컷 크로커다일 악어 크기 - 길이 3,.5~4m 몸무게 300~400kg

 

아프리카에서는 종종 사자와 민물의 악어가 먹이를 사이에 두고, 자주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 싸움의 결과는 두 맹수가 서로를 견제만 하다가, 실제로는 싸우지도 않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자와 크로커다일악어는 서로가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며, 그리고 간혹 사자와 크로커다일악어가 실제로 싸운다고 하더라도,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지는 않고,

 

그냥 서로간 포효를 하면서 위협을 하는 수준에서 끝나며, 두 맹수가 실제 싸움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정말 드문 현상이다.


 

아프리카의 사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겁이 좀 많은 맹수라고 한다.

 

또한 사자는 지독하리 만큼 물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사자가 물속에 뛰어들어가서, 악어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기 보다는, 차라리 악어를 피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또한 육지에서 악어와 만나는 경우에도, 사자는 유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악어와 목숨을 걸고 싸우려고 들지 않고, 그냥 포효를 하거나, 소극적인 공격만 하다가 싸움을 회피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다.

 

사자의 뇌리속에는 악어는 함부로 싸울 수 없는 굉장히 무서운 강적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듯하다.

 

300~400kg의 엄청난 덩치와 무시무시한 톱니형 잇빨을 갖고있는 악어를 사자는 이기기힘든 무서운 강적이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싸우려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아시아의 호랑이, 뱅갈호랑이는 아프리카의 사자와는 그 성향이나 행동이 전혀 다르다.

 

일반적으로 사자는 악어를 강적이라고 회피하는데 반해, 사자보다 더 성질이 포악하고 용맹한 뱅갈호랑이는 무시무시한 톱니이빨을 갖고있는 악어와의 싸움을 전혀 회피하지 않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 무조건 돌진해서 싸우는 경향이 강하다.


 

호랑이는 사자와 덩치나 체구 등 신체조건이 비슷하기 때문에, 두 맹수가 힘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두 맹수가 다른 점이 몇가지 있다.

 

호랑이와 사자간의 다른점은 싸움기술과 용맹성과 공격성이다.

 

사자는 싸우기 전에 상대방의 덩치나 스타일을 보고 쎄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에게는 이해관계가 얽여있다고 하더라도, 싸움을 회피하는 등 겁이 많고 소심한 동물이다.

 

얼마전에 유튜브 동영상에서 본 것인데, 성체 아프리카 암컷사자가 혼자서 누우를 사냥해 잡았고, 그 암컷사자는 자신이 잡은 누우를 먹으려고 한 순간,

사자가 누우사냥을 눈치챈 하이에나 한마리가 그곳으로 다가왔고, 그 하이에나는 누우를 잡은 암사자를 지켜보며 두맹수가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됐다.

 

그 암사자는 자신이 사냥한 누우를 사이에 두고 한마리의 하이에나와 10여분 동안 눈싸움을 펼쳤다.

 

그 암사자의 체중은 약 140kg이고, 하이에나의 체중은 90kg 정도 나갔고, 그곳에는 암사자 한마리와 하이에나 한 마리밖에 없었다.

 

서로가 각각 한 마리씩이까, 암사자로서는 충분히 하이에나와 싸워볼만 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사냥해서 죽은 누우를 사이에 두고, 암사자 한마리와 하이에나 한마리가 서로 치열한 눈싸움을 펼치다가, 10분 정도 지난 후에 그 암사자는 겁을 먹었던지, 자신이 샤냥한 누우를 그냥 두고, 그 자리를 떠나가버렸다.

 

그리고 암사자가 떠난 후, 그 하이에나는 그 암사자가 버리고간 커다란 누우를 혼자서 게걸스럽게 먹을 수 있었다.

 

덩치가 더 작은 하이에나가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암사자를 싸우지도 않고, 그냥 눈싸움만으로 쫒아버리고, 사자의 먹이감을 빼앗아버리는 놀라운 장면이 노출된 것이다.

 

하이에나가 여러마리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한마리밖에 없었는데도, 암사자는 그 하이에나와의 눈싸움에서 기가 꺾였고,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자신이 힘들여서 잡았던 170kg의 누우를 그냥 버리고, 비겁하게 도망가고 말았던 것이다.

 

자신보다 덩치가 50kg이나 더 작은 하이에나 한마리가 두려워서, 자신이 힘들여서 잡은 누우를 그냥 버리고 달아나는 암사자를 보고, 참으로 한심스러운 사자라는 생각과 사자가 덩치와는 다르게 엄청 겁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일 암사자가 아니라 암호랑이었으면, 어땠을까? 만일 암호랑이었더라면, 그 호랑이는 자신이 잡은 먹이를 탐을 내는 그 하이에나를 즉각적으로 공격해서 물어죽였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면, 그와 비슷한 현상이 인도에서도 벌어졌기 때문이다인도에서는 하이에나와 비슷한 덩치를 갖고있는 동물이 있는데, 바로 아사아반달곰이다.

 

아시아반달곰은 곰 중에서도 덩치가 매우 작은 곰에 속하는데, 보통 아시아반달곰의 평균몸무게가 110kg 정도 나가므로아프리카의 하이에나와 비슷한 덩치를 가진 동물이며, 하이에나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있고, 성질이 비교적 사나운 맹수이다.

 

인도에 서식하는 뱅갈암호랑이는 자신이 사슴 한마리를 잡았는데, 그 때에 근처에 있던 아시아반달곰이 냄새를 맡고, 달려와서 자신의 먹이를 노리는 것을 본 

그 암컷호랑이는 곧바로 아시아 반달곰에게 달려들어 맹렬하게 그 곰을 공격했고, 결국 분노한 그 암호랑이는 한입에 110kg의 그 아시아반달곰의 묵줄을 물어서 죽여버렸다.

 

바로 이게 정상이다. 이정도의 용맹성이 있어야 동물의 제왕 호랑이, 그리고 백수의 제왕 사자라고 할 수 있지않겠는가?

 

아시아반달곰이 자신의 먹이감을 탐내는 데에 대한 보복으로 암호랑이가 그 반달곰을 쫒아가 죽여버린 것이며, 죽인 후에 그 암호랑이는 그 아시아반달곰의 시신을 털만 남겨놓고 흔적도 없이 먹기까찌 했다.

이처럼 뱅갈호랑이는 성질이 사납고 용맹스러워서 자신의 먹이감을 탐내는 동물은 결코 살려두지않고, 그자리에서 공격해 죽여벌 정도로 호전성이 강하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아프리카의 암사자가 자신이 사냥한 먹이감을 90kg밖에 안되는 하이에나 한마리를 두려워해서자신이 사냥한 먹이감을 버리고,달아나버리는 것과 너무도 비교되지 않는가?

 


이와같은 사례에서 볼때, 사자와 호랑이는 같은 고양이과 동움이고, 덩치나 힘은 비슷하지만, 용맹성과 호전성, 담력과 근성 같은 정신적인 면에서 호랑이가 사자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고,

 

스피드나 싸움기술에서도 호랑이가 사자보다 한 수 위에 있기 때문에, 두맹수가 싸운다면 호랑이가 이긴다는 것이 대체적인 정설로 되어있다.



뱅갈호랑이 대 크로커다일 악어의 싸움

 

호랑이의 용맹성과 근성을 잘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가 있는데, 바로 인도의 뱅갈호랑이 대 크로커다일악어의 싸움이다.

 

인도에는 뱅갈호랑이와 크로커다일악어가 비슷한 지역에서 함께 서식하고 있다. 그런데 두맹수간에 먹이감을 두고 종종 치열한 먹이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자는 물을 무서워해서 왠만하면 물에 잘 안들어가지만, 뱅갈호랑이는 전혀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수영을 아주 잘 할뿐만 아니라

호수나 강같은 물속에 자주 들어가서, 물속에서도 사냥까지 하는 신출귀몰한 능력을 갖고있다.

 

, 뱅갈호랑이는 사자처럼 육지에서만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육지와 물속의 양쪽을 오고가면서 사냥을 하는 전천후 사냥꾼인데그렇기 때문에 인도의 습지에서는 물에 사는 악어와 뱅갈호랑이간에는 종종 크고작은 다툼이 벌어진다.

 사자같으면, 물속에서 악어를 만난다면, 곧바로 도망가버리겠지만, 인도에 사는 벵갈호랑이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맨 하단에 있는 동영상1이 호수물속에서 만난 뱅갈호랑이와 크로커다일악어간의 대결상황이다.

 

동영상1에 나오는 상황은 호수물속에서 뱅갈호랑이와 크로커다일악어가 서로 먹이감을 사이에두고, 치열한 탐색전을 벌이다가

포악스러운 뱅갈호랑이가 사슴을 물고가는 악어를 끝까지 쫒아가서, 마침내 악어의 먹이감을 빼앗아버리는 내용이다.

 


호숫가를 배회하고 있던 뱅갈호랑이가 그 호수속에서 크로커다일악어가 사슴을 사냥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악어가 사슴사냥에 성공해서 그 사슴을 호수중앙으로 끌고가는 것을 본 그 뱅갈호랑이는 곧바로 호수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사실 물속에서 호랑이와 악어가 싸운다면, 호랑이가 훨씬 더 불리하고 악어가 더욱 유리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무모하리만큼 용맹한 그 수컷뱅갈호랑이는 몸무게가 300kg이상 나가는 거대한 크로커다일악어의 뒤를 쫒아서 호수중심부로 헤엄쳐갔다. 그 수컷호랑이의 몸무게는 210kg 정도 내외다.

 

그 뱅갈호랑이가 악어의 뒤를 쫒아 수영해간 이유는 그 악어가 물고가는 사슴을 빼앗기 위해서이다.

 

악어는 사냥한 사슴을 물고서 호수중심부로 계속 끌고가고, 호랑이는 악어의 뒤를 계속 따라 헤엄쳐가는 긴장되는 상황이 계속 펼쳐졌다.

 

악어는 물깊이가 10m나 되는 호수중심부로 가면 호랑이가 더이상 안쫒아올 줄 알고, 호수중심부로 먹이감을 물고갔는데포악스러운 뱅갈호랑이가 포기하지 않고, 호수중심부로 계속해서 악어를 쫒아왔다.

 

그러자, 호수물속에 먹이감을 포기한 쪽은 호랑이가 아니라 300kg급의 그 크로카다일악어였다.

 


악어는 자신에게 유리한 물속인데도, 호랑이가 계속 자신의 뒤를 쫒아오자그만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자신이 물고있던 사슴고기를 물위에다 버리고, 그곳으로부터 신속하게 달아나버렸다.

 

호수의 물속에서 자신에게 훨씬 유리한 지점인데도, 악어는 호랑이에게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자신이 사냥한 먹이감을 버리고, 다른곳으로 달아나고 만 것이다.

 

결국 호숫물 중심부로 헤엄쳐왔던 그 뱅갈호랑이는 악어가 먹이감을 버리고 달아나는 바람에, 

싸우지도 않고, 공짜로 악어가 잡은 사슴고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악어는 평소에 뱅갈호랑이가 포악하고 싸움을 잘하는 것을 잘 알고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물속인데도, 겁을 먹고 호랑이에게 자신의 먹이감을 양보하고 만 것이다.

 

악어는 물속에서 무려 15분 동안 숨을 쉬지않고 잠수를 할 수 있지만, 호랑이같은 포유류는 물속에서 숨을 쉬지않고, 잠수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5분 이내이다.

 

따라서 두맹수가 물속에서 싸움을 벌일 경우, 악어가 호랑이의 팔이나 다리를 물고 호수의 깊은 물속으로 끌고들어가면제아무리 용맹한 호랑이라고 하더라도, 물속으로 끌려들어갔을 경우엔 5분만 넘기면, 그대로 질식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m 깊이가 되는 호수의 한복판까지 쫒아간 그 뱅갈호랑이의 용맹성과 근성 때문에, 그호숫가의 주인인 거대한 악어는 먹이감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며, 

호랑이는 무서운 포효 한마디로 호숫가의 제왕인 크로커다일악어를 내쫒고는 공짜로 먹이감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만일 똑같은 상황에서 사자라고 하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사자였다면, 그 사자는 절대로 300kg가 나가는 악어를 뒤쫒아 호숫물로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거꾸로 호숫물속에서 악어를 만났다면, 사자는 자신이 잡은 먹이를 버리고 도망갔을 것이다.

 

아프리카암사자가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더 작은 하이에나 한마리가 두려워서 자신이 사냥한 누우를 버리고 달아났을 정도인데, 물속에서 거대한 악어와 맞딱뜨렸다면, 결코 싸우지않고 그대로 도망가버렸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호랑이와 사자간의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자와 호랑이는 덩치와 힘은 서로간 비슷하지만,

 용맹성과 담력, 근성에서 호랑이가 사자보다 한 수 위에 있기 때문에, 또한 싸움기술도 호랑이가 한 수 위이기 때문에,

 호랑이와 사자가 싸울 경우, 호랑이가 이길 확률이 높다고 많은 동물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동영상2는 호랑이와 거대한 악어가 물속이 아닌, 육지에서 만나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다.

 

육지위에서 호랑이와 악어가 서로 만나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악어는 300kg급의 커다란 덩치를 갖고있고, 무시무시한 톱니이빨을 갖고 있지만, 

용맹스럽고 스피드가 뛰어난 호랑이가 악어의 등위로 잽싸게 올라타서, 악어의 등목줄을 세차게 물어서 결국 악어를 죽여버렸다.

 

육지위에서는 악어는 호랑이에게 전혀 싸움상대가 되질않는다. 호랑이보다도 더 덩치가 큰 거대한 악어였지만

싸움기술이 뛰어난 호랑이의 스피드한 기습공격을 당해 목덜미를 물려서, 거대한 악어도 호랑이의 한입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뱅갈호랑이 대 크로\커다일 악어의 싸움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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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전모와 용의자, 사망원인


가랑비가 많이 내리던 2009년 제주도에서 젊은 여성이 갑자기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렇게 실종됐던 그녀는 일주일이 지난 28일 집에서 4km 떨어진 도로가 배수로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키가 자그맣고 단발머리에 예쁘게 생긴, 한창 활기차고 꿈많던 27살의 제주도 보육교사 A씨는 왜 실종되었으며, 또 누구에 의해서 살해를 당하고, 싸늘한 시신으로 남게되었을까?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난 2018년 뒤늦게 경찰은 과학적 수사기법을 사용해서, 확실한 단서를 포착하였고, 유력한 용의자 박씨를 검거하고, 살인혐의로 재판에 회부해 재판을 진행해왔다.


그렇지만, 경찰이 유죄판결을 확신했던 제주보육교사살인사건의 재판에서, 1심과 2심 모두 용의자에 대한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검경이 과학적 수사기법을 총동원해 유력한 단서를 포착했고, 용의자를 확보했던 이 사건에서, 용의자 박씨는 왜 무죄판결을 받았던 것일까?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에 대해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범인의 흔적을 추적했다.

 

제주도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전모

 

200828일날,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제주도의 애월읍 고내봉 인근 농업용 배수로에서 한 젊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 시신의 주인공은 보육교사인 양수정으로, 그녀는 시신으로 발견되기 일주일 전인 21일날, 친구들과 술모임을 가진 후에 실종되었던 여성이었다.

 

양수정은 제주도에서 보육교사로 일하고있던 27살의 미혼의 여성으로, 일주일 전인 21일날 동창생들과 만나서 유쾌하게 수다를 떨면서 즐겁게 술자리모임을 가졌는데, 새벽 230분경 술자리를 파한 후, 친구들과 헤어졌다.

 

술자리에서 갑자기 남자친구가 보고싶다던 양수정은 술자리를 파하고 남자친구집으로 갔고, 남자친구를 만나 담배문제로 심한 말다툼을 벌였던 그녀는 새벽 3시경 남자친구집에서 혼자 나왔다.

 

남자친구집에서 나온 양수정은 새벽 3시경에 콜택시를 불렀고, 콜택시가 오지않자 남자친구에서 실망했다라는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며, 새벽 38분경에 114에 전화를 건 것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실종되었다.

 


이렇게 실종된 양수정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28, 집에서 4km 떨어진 애월읍 고내봉 부근의 배수로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점은 바로 양수정의 사망시간이었다.

  

초기에 경찰은 양수정이 실종되었던 날인 21일날 새벽에 사망했을 것으로 판단했고, 그녀가 남자친구의 집에서 나왔던 3시경부터 휴대폰전원이 꺼진 43분 사이에 사망했을 것으로 보고

그 시간대에 남자친구집으로부터 그녀의 집에 이르는 도로를 지나갔던 31대의 택시들을 모두 조사했다.

 

그리고 그 택시들 중 행적이 수상한 택시기사 박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택시기사 박씨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고, 말을 이리저리 바꾸는 등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였으며, 그의 증언들이 거짓말탐지기에 거짓으로 판명나는 등 의심스러운 단서들이 많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초기 경찰조사에서 택시기사 박씨가 거의 용의자로 확정되는 듯 했고, 이번 사건은 쉽사리 해결될 듯이 보였다.

 

그런데, 국과수의 검사결과가 나오면서, 경찰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되었다.

 

양수정은 누군가에 의해서 경부압박(목졸림)에 의한 질식사를 당했고, 딱히 성폭행한 흔적은 없었지만 치마는 벗겨져 있었다.

국과수는 양수정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양수정은 시신발견 당일인 28일날 새벽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시신 발견 당시, 양수정의 시신은 전혀 부패가 이뤄지지않고 깨끗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는 시신 발견 당일날 살해당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 배수로에서 양수정의 시신이 발견된 당일인 28일날에 양수정이 살해되었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이것은 경찰의 초기 수사를 완전 뒤엎는 것으로, 그동안 경찰은 양수정이 21일 새벽에 살해당했을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택시기사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부검단의 부검결과는 박씨가 21일이 아닌, 28일날에 사망한 것으로 결론을 내림으로써, 커다란 혼선이 일어났다.

  

경찰이 사망일로 봤던 21일날에 알리바이를 증명해내지 못한 택시기사 박씨가 용의자로 지목되었지만

부검반이 사망일로 판단한 28일날에 택시기사 박씨의 알리바이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박씨는 용의선상에서 배제될 수 있었다.

 

이처럼, 보육교사 양수정의 사망일이 21일인가 또는 28일인가에 따라서 용의자가 바뀌는 엄청난 혼선을 겪게 됐다.

 

아뭏튼 2009년 수사초기에는 시체가 전혀 부패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서, 그녀는 28일 사망했던 것으로 판단을 했고, 28일날 알리바이가 확인된 택시기사 박씨는 용의선상에서 배제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렇게,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은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장기간 미궁속에서 빠진 채, 9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지 9년이 지난 20185월 경찰은 첫번째 용의자였던 택시기사 박씨를 다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검거했고, 다시 그를 수사한 후, 재판에 회부했다. 



검찰이 9년전에 용의자에서 배제했던 택시기사 박씨를 다시 용의자로 검거한 이유는 과학수사의 기법으로 드러난 새로운 증거 때문이었다.

 

경찰은 법의학자등을 동원해서 여러차례에 걸쳐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 배수로에서 동물실험을 실시했다.

 

양수정의 시신이 발견된 배수로가 햇빛이 쐬지않는 응달이라는 점과 그 배수로에 차가운 제주바람이 계속 불어와서 시신이 썩지않는 건조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준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고

실제로 이와같은 자연적 조건으로 인해서 냉장효과가 발생해서 죽은 동물사체가 일주일 이상 전혀 부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 양수정은 실종된 당일인 81일날 새벽에 사망했고,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난 88일날에 발견된 시신은 그지역의 자연적인 냉장효과 때문에 전혀 부패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2009년도에 양수정의 사망일을 88일로 잘못 판단했기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배제된 택시기사 박씨가 이제는 다시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다시 검거될 수 있었다.

 

박씨는 81일날에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성립되었지만, 88일날에는 알리바이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수정의 사망일이 81일날에서 88일날로 다시 변경된 2018년의 수사에서는, 택시기사 박씨가 다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9년만에 반전이 일어났지만, 재판에서 또다시 대반전이 일어났다.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재판을 담당한 제1심에서 재판부는 유력한 용의자였던 박씨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또한 제2심에서도 택시기사 박씨는 또다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나게 되었다.

 

택시기사 박씨가 제1심과 제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이유는 증거불충분이었다.

 

그렇지만 경찰은 지금도 택시기사 박씨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하고, 1심과 2심의 무죄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를 했고, 이제 8월달에 대법원의 마지막 판결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이 사건을 수사해왔던 경찰은 마지막 대법원 판결에서 유죄판결이 날 것을 고대하고 있다


◆ 경찰이 용의자 박씨를 살해범으로 판단한 이유


경찰이 박씨를 유력한 양수정살해범으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경찰이 그동안 1차수사와 2차수사를 계속해온 결과, 몇가지 유력한 증거들을 확보해놓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택시기사인 박씨의 차안에서 양수정의 옷과 유사한 섬유질의 미세한 가닥을 발견했다.

 

경찰은 양수정이 박씨의 택시를 탄 후, 박씨로부터 강압적인 성폭행을 당할 상황이었고, 이를 거부하는 몸싸움과정에서 양수정의 섬유질 옷가닥이 차안에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택시기사 박씨는 양수정을 태우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는데, 어떻게 박씨의 택시안에서 양수정의 옷과 똑같은 섬유질가닥이 나올 수가 있겠는가?

 

또 하나의 유사증거가 있는데, 배수로에 쓰러져있던 피해자의 시신에서 박씨옷의 면섬유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피해자의 옷섬유와 택시기사 박씨의 옷섬유가 서로의 양쪽공간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피해자 양수정과 택시기사 박씨간의 강력한 몸접촉이나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을 밝혀주는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가지 증거들은 제1심과 제2심 재판에서는 증거로서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택시기사 박씨는 무죄를 선고받게 된다.

 

재판에서, 용의자 박씨측이 주장한 항변은 다음과 같다.


불특정 다수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택시안에서는 무수히 많은 미세섬유들이 발견될 수 있는 것이고, 피해자의 옷섬유와 비슷한 섬유가닥도 다른 택시이용자의 것일 수도 있다고 항변한다.

 

재판부에서는 이같은 택시기사 박씨의 주장을 이유있다고 받아들였고, 검찰측이 제시한 증거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용의자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량생산된 섬유가닥 중에서 한 두가닥만으로 두사람이 접촉했다는 단정할만 한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 재판부는 섬유 한두 가닥 외에 좀 더 확실한 증거를 가져오라는 주문인 것이다.


 

경찰은 범행이 일어난 당일날, 박씨가 자신이 택시를 타고 지나갔다고 주장한 운행경로가 그 지역 CCTV에 찍히지 않았고

박씨의 진술내용이 자주 번복되고 내용이 자주 달라졌다는 점을 들어서, 박씨가 주장하는 알리바이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한 경찰은 범행이 일어났던 당일날 범행경로상에 있는 CCTV영상에 박씨의 자동차와 매우 유사한 차량이 찍혔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런데, CCTV영상에 찍힌 그 자동차는 용의자 박씨의 차량과 유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량의 번호가 보이지않고 있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 경찰이 증거로서 제시한 CCTV 영상에 찍힌 자동차는 박씨의 자동차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차량번호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경찰이 제시한 이 증거 또한 재판부에서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은 이처럼 택시기사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여러가지 증거들을 제시했지만, 이들 증거들은 간접증거는 될 수 있지만

박씨를 범인으로 단정할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되지못했기 때문에, 재판부에서는 무죄판결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택시기사 박씨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볼 수도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지금의 시점에서 박씨가 범인일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제주 보육교사 양수정을 살해할만한 또다른 용의자로서 그녀의 남자친구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왜냐하면, 피해자 양수정이 죽기 직전에 만났던 인물이 남자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경찰은 피해자가 실종된 직후, 제일 먼저 그녀의 남자친구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펼쳐나갔지만, 뚜렷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고

사건 당일날 남자친구의 차량이 시신발견 장소로 이동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의 초기 수사결과, 피해자의 남자친구는 증거물이나 용의점을 거의 발견해내지 못해서, 용의선상에서 배제되었던 것이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택시기사 박씨는 끊임없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중이다.

 

만일 박씨의 무죄주장이 시살이라면, 제주보육교사 살인사건은 박씨나 남자친구도 아닌, 또다른 제3의 용의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대법원 판결의 결과는?


이번 제주 보육교사살인사건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였던 박씨는 무죄판결을 받았고, 그동안의 경찰수사로 확보해놓은 용의점들은 원심력을 잃고, 원점에서 다시 수사해야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제,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8월달에 마지막 대법원의 판결만 남겨놓고 있는데, 과연 대법원에서는 그동안의 검경의 수사결과를 받아들일지, 피의자 박씨의 무죄주장을 받아들일지 그 결과가 자뭇 궁금해진다.

 

제 생각으로는, 대법원에서는 재1심과 제2심의 무죄판결을 거부하고, 파기환송을 해서 2심재판부로 하여금 다시 재판을 하도록 조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둘 중 하나라고 본다. 검경이 다시 치밀한 수사를 벌여서, 용의자 박씨에 대한 더욱 강력한 증거를 확보해서 그의 범죄를 직접적으로 소명하던가, 박씨가 아닌 제3의 또다른 용의자를 찾아내든가 하는 것이다.

  

이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없어졌기 때문에, 경찰이 시간적 여유를 갖고 좀 더 과학적인 수사를 벌여나간다면, 언젠가는 범인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보다 더 치밀하고 과학적인 수사를 벌여나간다면, 또다른 확실한 증거물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경찰이 인내심을 갖고 꾸준하게 다시 원점에서 치밀한 수사를 벌여나간다면, 진짜범인을 찾아내는 대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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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무안 가볼만한곳, 관광명소, 홀통해수욕장 유원지캠핑장과 회산백련지, 월두마을 조개잡이체험

 

점점 날씨가 더워지면서, 시원한 해변가가 그리워지는 계절로 접어들고 있어요! 오늘은 전라남도의 유명한 관광지를 소개하겠어요.

 

전남에 가면, 꼭 무안을 들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안은 전남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목표 바로 위쪽에 있는 아름다운 천혜의 해변관광지입니다.

 

무안을 관광하는데 있어서, 인기가 좋은 관광코스는 아름다운 백련꽃으로 둘러쌓인 화산백련지가 있는데, 이곳은 경치가 좋고 한적한 곳이라 조용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서 눈호강을 시킬 수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천혜의 아름다운 해변가 유명한 홀통해수욕장이 있는데, 이 홀통해변가는 무안관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인기좋은 관광명소이지요.

특히 조개잡이나 갯벌체험을 하고 싶은 분들은 월두마을에서, 마음껏 다양한 조개들을 잡는 쏠쏠한 조개잡이체험도 할 수가 있지요.

 

또한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홀통해변가에서 바다낚시를 즐기면서 관광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전남 무안에는 여러가지 즐거운 여행체험과 놀이체험을 즐길 수 있는 복합적인 관광타운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무안의 관광코스 명소

 

회산백련지

 

주소 - 전남 무안군 일로읍 복룡리

 

회산백련지는 동양 최대의 백련서식지로 유명한 곳으로, 온통 백련으로 뒤덮인 10만평의 거대한 저수지가 있는 곳으로, 온통 백련으로 뒤덮인 이곳은 눈부시게 황홀한 엄청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입니다.

 

회산백련지는 전남 무안군 일로읍 복용리에 위치하고 있고, 온통 백련으로 뒤덮인 그 모습이 장관을 이루는 곳인데, 이 백련지 연못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축조해놓은 곳이지요.

 

회산백련지의 연못을 가득 채운 백련꽃은 해마다 7월부터 9월에 걸쳐 피고 지기를 거듭하며, 특히 7월달에 가장 많은 연꽃을 볼 수 있는 곳이며, 7월달에는 연꽃축제가 열리고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이랍니다.

 

 

회산백련지는 우리나라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연못으로 유명한 명소이며, 홍련을 비롯해 왜연, 가시연, 수련, 어리연, 순채 등 수많은 수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어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랍니다.

 

회산백련지 근처에는 2300m2 규모의 수생식물 자연생태학습장이 조성되어 있어,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다양한 수생식물들을 함께 감상하는 즐거움을 맛볼수가 있습니다.

 

이 회산백련지에는 몇천원의 요금을 받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이 회산백련지는 무안군청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서 남쪽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목표가기전 좌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회산백련지에도 오토캠핑장이 근처에 있지요.

 

월두마을의 바지락조개 갯벌체험, 홀통해수욕장

 

주소 - 전남 무안군 현경면 용정리 35

 

전남 무안에서 서해안 바닷쪽으로 길게 뻗은 반도가 나오고, 그 반도안에는 월두마을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월두마을이 서해바다로 길게 돌출되어 있는 섬으로, 사방이 서해바다로 둘러쌓인 천혜의 섬입니다.

 

이 월두마을은 10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아주 조그마한 어촌으로, 해안가의 절경과 고즈넉한 소나무가 아름다운 운치를 자랑하는 곳이지요.

이 월두마을은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바다를 구경할 수 있고, 해마다 바지락조개캐기 갯벌체험행사가 열려서 재미있는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섬입니다.

 

월두마을 해안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월두마을 해안가는 낚시포인트로 유명하다

 

무안에 가시면, 꼭 현경면 용정리에 월두마을에 들러서 이곳에서 가장 인기좋은 갯벌조개잡이 체험에 참여해서, 여행의 재미를 톡톡히 맛보시기 바래요!

월두마을에는 서울같은 도시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꼬막과 키조개, 바지락, 감태 같은 다양한 종류의 조개류와 해산물을 캐낼 수 있는 천혜의 해변가입니다.

 

이 월두마을에는 해변가로 광할한 청정갯벌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어서, 갯벌체험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곳이지요.

이 월두마을 해변가에서도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텐트를 치고 캠핑할 수가 있지요. , 전기가 안되니, 자체 전기파워뱅크 같은 걸 가져가는게 좋습니다.

 

 

무안 홀통해수욕장과 홀통유원지 오토캠핑장

 

주소 - 전남 무안군 현경면 홀통길 198-1

 

월두마을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6km 정도 내려가면, 무안군이 자랑하는 천혜의 아름다운 해변가가 나온답니다.

바로 이곳이 홀통해수욕장인데, 이곳에서 신나고 재미있는 해수욕을 즐길 수가 있지요.

 

천혜의 널다란 백사장과 애메랄드빛 바닷가가 아름답게 펼쳐진 이곳 홀통해수욕장은 수심이 깊지않고,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랍니다.

 

 

널직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수심이 얕아서 안전한 해수욕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해수욕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지요.

 

홀콩해변가에서는 일반캠핑도 할 수 있고, 오토캠핑도 할 수 있는데요.

 

홀통해수욕장의 뒷면에는 소나무숲이 조성되어 있어서, 송림숲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가 있고, 또한 소나무들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답니다.

 

홀통해수욕장은 울창한 소나무숲과 기다란 백사장이 장관을 이루는 천혜의 아름다운 해변가랍니다.

 

홀통해변가의 소나무숲에다 텐트를 치고, 널다란 백사장과 푸르른 바닷물을 보면서, 캠핑을 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면, 여름철 가마솥무더위를 한방에 날려보낼 수 있습니다.

 

 

홀통해수욕장에서는 수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낚시도 함께 즐길 수 있고, 윈드서핑 같은 다양한 해양스포츠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어서, , 여름, 가을철 피서지로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홀통해수욕장은 무안군 현경면에 있으며, 무안군청에서 서해안 바닷쪽으로 도로를 따라서 쭉 가면, 서해바닷가쪽으로 길게 뻗은 반도가 나오고, 그 반도의 중간부분에 위치하고 있는데, 위에서 설명한 월두마을의 남서쪽 6km 지점에 있는 해변가입니다.

 

따라서, 전남 무안에 관광을 가신다면, 월두마을과 홀통해변가를 함께 연계해서 관광을 즐기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 홀통유원지 캠핑장 -

 

만약에 홀통해변가에서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한 캠핑을 원하신다면, 홀통유원지 캠핑장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홀통유원지 캠핑장은 홀통해변가 바로 근처에 있는 오토캠핑장이고요.

 

 

이 홀통유원지 캠핑장은 소나무가 많아서 해먹을 치기에도 좋고, 특히 시원한 바람에 부는 소나무숲 사이로 텐트를 치기에도 아주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이지요.

텐트가 없을 경우, 이 홀통유원지 캠핑장에서 텐트를 대여할 수 있고, 개수대와 샤워장, 화장실등 각종 편의시설이 두루 갖춰져 있어서, 좀 더 쾌적한 캠핑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홀통유원지 캠핑장에는 매점도 있어서, 각종 먹거리와 삼겹살도 구입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답니다.

또한 아메리카노커피를 파는 커피숍도 있고, 식당도 있어서, 편리하지요.

   

저는 홀통유원지 캠핑장에 4년 전에 갔는데, 제 기억으로는 탠트 1박에 3만원 정도 하는 것으로 기억되며, 무박일 경우는 그 절반의 요금을 받는 것 같습니다.

 

 

또한 홀통유원지 캠핑장에는 몽골식평상과 일반평상도 대여하고 있는데, 이 평상위에는 천막이 쳐져있어서,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답니다.

 

이 평상위에서 삼겹살도 구워먹고 요리도 해먹을 수가 있지요. 물론 평상들을 이용할 때는 요금을 지불해야 한답니다.

   

무안의 맛집·식당 정보

 

녹향가든 - 몽탄면 사창리. 짚불 삼겹살과 사슴요리가 특히 일품인 고기요리 전문점. 삼겹살을 석쇠에 가지런히 깐 다음 볏짚을 태워가며 고기를 익히는데 그 향이 일품이다.

 

볏짚 특유의 향이 고기에 진하게 배어 맛이 좋고, 노린내를 없애주며 기름기가 쫙 빠져서 쫄깃쫄깃한 고기의 연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짚불 삼겹살, 사슴전골, 사슴육회 등이 녹향가든의 특급요리이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위치 - 무안역 바로 옆에 위치함.

전남 무안군 몽탄면 우명길 79

  

내고향뻘낙지 - 무안읍 성남리. 무안 갯뻘에서 바로 잡은 싱싱한 뻘낙지를 재료로해서 맛깔스러운 다양한 낙지요리를 메뉴로 하는 무안 뻘낙지 전문점이다. 맛도 아주 좋은데, 가격이 조금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주소 - 전남 무안군 무안읍 성남1156-1

   

무안 관광 교통코스

 

서해안고속도로 무안 IC - 1번 국도(무안 방면) - 811번 지방도(성동리 삼거리 좌회전) - 신기리 사거리 좌회전 - 회산백련지 - 811번 지방도(무안 방면) - 60번 지방도(용산 삼거리 우회전) - 24번 국도 평산 삼거리 - 봉오재 삼거리 우회전 - 월두마을 - 홀통해수욕장 - 봉오재 삼거리 우회전 - 77번 국도(토치 삼거리 우회전) - 도리포 유원지 - 24번 국도(무안 방면) - 서해안고속도로 무안 IC

 

연계 코스 - 무안에서 회산백련지와 월두마을, 그리고 홀통해변가를 함께 연계해서 23일 정도 일정으로 관광하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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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해안여행지추천, 청포대해수욕장과 청포아일랜드 오토캠핑장, 조개잡이 갯벌체험

 

오늘을 충청남도 태안에 위치한 서해안관광코스로 유명한 청포대해수욕장과 오토캠핑장에 대한 소개를 해드릴까 합니다.

 

점점 여름이 다가오면서, 날씨도 계속 더워지는 추세라서, 한적한 휴양지나 바닷가가 그리워지는 계절이 되었답니다.

 

요즘 같은 계절에, 주말을 이용해서 잠깐 서해안해안가를 다녀오는 주말 해안가여행을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특히 서울이나 경기도권에서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12일 또는 23일 코스로 간단하게 다녀올 수 있는 바닷가로는 서해안 태안반도가 가장 적합한 곳으로 추천할 수 있답니다.

 

서울이나 경기도권에서 차로 2~3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태안반도이기 때문에, 차만 있으면 별 부담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이지요.

 

청포대해수욕장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서해안관광지인 태안반도에 있는 널다랗고 쾌적한 해수욕장이랍니다.

 

충남 태안군에서 도로를 따라 죽 내려오다 보면, 팜카밀레 허브농원과 청산수목원을 지나서, 몽산포해욕장과 달산포해수욕장을 지나면, 나오는 곳이 청포대해변가입니다.


 

청포대해변가는 드넓은 해변가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널따랗게 펼쳐져있는 아늑한 해변가로, 아주 편안하고 조용한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특히 청포대라는 명칭그대로 백사장 뒤쪽으로 아주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둘러쌓여 있는 천혜의 아름다운 해안가이지요.

 

서해안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해변가인 청포대해변가는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숲과 짙푸른 바다, 그리고 드넓은 모래밭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하고 쾌적한 느낌이 드는 곳으로,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관광하기에 부담없이 좋은 곳이랍니다.

 

해변의 경사도가 완만하고 수온이 높은편이라서, 어린이들과 함께 해수욕을 즐기기에도 적합한 곳이며, 곳곳에 펼쳐진 송림숲은 야영하기에도 적합한 곳이랍니다.

  

저도 작년 여름이 가족과 함께 23일 일정으로 청포대해변가로 피서를 가서, 진한 추억을 남겼던 곳으로 또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랍니다.

 

청포대해수욕장은 위로는 몽산포해수욕장과 달산포해수욕장이 있고, 아래로는 마검포항구가 위치하고 있어서, 볼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습니다.

 


위쪽으로 몽산포해변가와 달산포해변가, 그리고 청포대해변가의 백사장과 송림숲이 계속 이어져있어서, 연인들의 트레킹코스로도 인기가 좋은 곳이지요.


물론 모래숲이 완만하게 이어져있어서,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랍니다청포대해변가의 백사장길이는 무려 1,000m나 될 정도로 아주 크고 널찍하답니다.

 

해변가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먹는 즐거움이랍니다.

청포대해변가의 아래쪽에는 마검포 포구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싱싱한 다양한 해산물과 활어회를 즉석에서 구입해서 해먹을 수 있답니다.


이곳 마검포 포구는 서울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싱싱한 활어들이 즐비해있기 때문에, 멀리 가지 않고도 손쉽게 술안주로 먹을 수 있는 매운탕감과 횟감을 마련할 수 있는 곳입니다.

  

청포대해수욕장 주소 - 충남 태안군 남면 원청리 512-78

  

청포대해수욕장의 조개잡이 갯벌체험

 

청포대해수욕장은 천혜의 조개잡이 갯벌체험이 가능한 곳이랍니다. 서해안해변가에서도 해수욕과 갯벌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몇안되는 곳이 청포대해변가이지요.


 

그래서 청포대해변가에 갈 때에는 조그마한 모종삽과 호미와 양동이를 함께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갯벌속에 있는 각종 조개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청포대해수욕장에서는 마음껏 조개잡이를 할 수 있는 곳인데요.


오전에 밀려왔던 밀물이 점심 때쯤 다시 밀려나가고 난 뒤, 오후 1시부터 4시경까지는 널다란 갯벌이 펼쳐지는데, 바닷물이 밀려난 이 갯벌에 다양한 조개류와 게들을 많이 산재해있어서, 마음껏 신나게 조개잡이를 할 수 있답니다.

 

갯벌진흙속을 조금만 파내면, 심심찮게 각종 조개들을 캐낼 수 있고, 심심찮게 게도 잡을 수 있지요.

좀 열심히 조개잡이를 한다면, 한 바가지 가득할 정도로 조개들을 캐낼 수도 있답니다.

 

이렇게 잡은 조개들과 게로 백사장 뒤편에 있는 송림숲에 가서, 매운탕을 만들어서 소주와 함께 먹으면, 더욱 좋습니다.

  

아뭏튼 청포대해수욕장은 가족여행족이나 커플여행족에게 가장 인기좋은 갯벌체험장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러니, 청포대해수욕장 갈 때에는 꼭 모종삽과 호미를 함께 갖고가야한답니다.



특히 청포대해변에서는 맛조개잡이가 인기가 무척 좋아서, 서울이나 경기도권 등 비교적 가까운 수도권 관광객들이 이 맛조개를 잡기 위해 많이들 찾아오기도 한답니다. 

 

이처럼 태안 청포도해변가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가 바로 재미가 쏠쏠한 조개잡이 갯벌체험이랍니다.

 

청포대해변가 뒤편에는 캠핑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야영도 할 수 있는 곳이어서, 텐트를 갖고가는 것도 좋습니다


청포대해변가의 뒷쪽에는 울창한 송림숲이 우거져있어서 낮에는 뜨거운 햇빚을 피할 수 있고, 밤에는 서늘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쾌적하고 시원한 여름철 휴양지로서 안성맞춤인 곳이랍니다.



 

 

청포도오토캠핑장, 청포아일랜드

 

, 좀 더 고급지고 고상한 캠핑을 원하신다면, 청포대해변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청포대오토캠핑장을 이용하시는 것이 좋답니다.

 


청포대해변의 오토캠핑장으로는 청포대해변가의 바로 위쪽에 있는 청포아일랜드 캠핑장이 있습니다.

 

청포아일랜드 캠핑장은 청포해수욕장과 근접거리에 있는 언덕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캠핑장으로서, 전망이 좋고, 주변에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둘러쳐져 있는 쾌적하고 아늑한 캠핑장이랍니다.

 

청포아일랜드 오토캠핑장은 샤워실과 개수대, 그리고 취사장과 화장실 등 캠핑하기에 편리한 편의시설이 다 구비되어 있는 캠핑장입니다.

 

캠핑장은 총 8구역으로 되어 있고, 구역마다 특징이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알맞은 구역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청포아일랜드 캠핑장은 A,B,C,D, K,H,T의 구역으로 나눠지는데, A,B,C,D구역은 바닷가와 인접한 지역이고, K,H,T구역은 뒤쪽의 송림숲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지요.

겨울철에는 C,D,K,H구역만 개방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C구역은 해변가와 송림숲이 함께 있는 곳으로 인기가 좋은 곳이고, D구역은 항상 텐트가 쳐져있어서, 빈손으로 텐트없이 온 사람도 손쉽게 캠핑할 수 있는 곳입니다.

 

청포아일랜드 오토캠핑장은 여름 성수기철에는 텐트 300동까지 칠 수가 있고, 겨울철에는 텐트 50동 정도 칠 수가 있지요.

청포대오토캠핑장인 청포아일랜드의 이용료는 비수기에는 주중 20,000, 주말 25,000원이며, 여름휴가철에는 1박에 3만원 정도입니다.

 

이 청포아일랜드 캠핑장에서는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바비큐그릴도 대여할 수가 있고요. 캠핑장아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도구나 모포, 텐트, 등유난로도 대여할 수 있답니다.

 

또한 캠핑장에는 매점도 있어서 라면 등 각종 필요한 물품을 살 수도 있고, 식당과 주차시설도 있답니다.

텐트도 대여할 수 있는데, 1박 대여료가 3만원이랍니다.



  

청포아일랜드(청포대해수욕장) 위치

 

주소 - 충남 태안군 남면 양잠리 1230 - 56


연계관광코스 - 팜카밀레 자연농원과 청산수목원, 안면도쥬라기박물관, 해변길

 

청포대해변가와 연계해서 함께 관광할 수 있는 연계관광코스로는 가까운 곳에 있는 팜카밀레 자연농원과 청산수목원, 그리고 안면도쥬라기박물관, 해변길이 있습니다.

 

청포대해변가에서 팜카밀레 자연농원과 청산수목원까지의 거리는 5km 정도 되며, 안면도쥬라기박물관까지의 거리는 3km 정도 되므, 별로 멀지않은 거리이어서

청포대해수욕장에 가시면, 이곳들을 함께 연계해서 관광하신다면, 금상첨화랍니다.

 

또한 다양하고 싱싱한 해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마검포 포구는 청포대해변가에서 3km 거리여서, 백사장을 따라 남쪽으로 40분 정도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여서,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청포대해수욕장(청포아일랜드) 찾아오는 교통코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가 홍성IC에서 빠져나온 후 - 안면도 방향으로 진행 - A지구방조제, B지구방조제를 건넌 후 - 원청삼거리에서 태안(남면)방면으로 우회전하고 - 청포대입구로 들어와서 - ‘청포대하와이팬션에서 우회전하면 청포아일랜드안내데스크가 있고, 그 앞쪽에 청포대해변가가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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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성그룹 아바(Abba)의 불멸의 히트곡 댄싱 퀸(Dancing Queen)’ ‘훼르난도동영상, 노래듣기, 아그네사 팰트스코그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혼성그룹 '아바'를 아시나요? 오늘은 70년대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아바(Abba)'를 소개해드리겠어요!

 

유럽의 팝스타, 추억의 팝스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룹이 바로 '아바'라고 할 수 있지요.

 

'아바'4인조 혼성그룹으로서, 비요른 울바에우스(보컬, 기타),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보컬), 베니 앤더슨(보컬, 키보드), 애니프리드 링스타드(보컬) 등 네명의 혼성멤버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아바를 구성하는 두커플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관계로 두커플이 결혼을 해서, 아바는 두개의 부부그룹이라고 할 수 있지요.

 

원래 아바의 4명의 멤버들은 서로 의기투합해서 함께 모여서 가요활동을 하다가, 비요른 울바에우스와 아그네사 팰트스코그가 결혼을 해서 부부관계가 되고

곧이어 또다른 커플 베니 앤더슨와 애니프리드 링스타드 커플이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된 상태에서 계속 그룹활동을 이어나갔고,

 아바는 70년대에 '훼르난도''댄싱퀸' 등 여러곡들의 명곡들을 히트시키면서, 유럽을 넘어, 미국 그리고 아시아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70년대 최고의 아이돌그룹이었습니다.



 2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멤버 등 총 4명의 혼성으로 구성된 아바인데, 노래는 주로 두명의 여성멤버들이 불렀고

남성들은 주로 코러스를 넣던가 연주를 담당했기에, 남성멤버들이 병풍같은 존재감으로 느껴지기도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아바의 두명의 남성멤버들은 결코 병풍같은 존재감은 아니었고, 그룹 아바를 이끌어가는 핵심멤버들이습니다.

 

두 남성멤버들은 아바가 불러서 히트시킨 히트곡들을 직접 작곡했던 위대한 작곡가들이었고, 아바가 스타덤에 오르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 남성멤버는 뛰어난 작곡실력으로 아바의 히트곡들의 대부분을 작곡했고, 아그네사 팰트스코그와 애니프리드 링스타드 등 두명의 여성멤버는 꾀꼬리같은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노래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히트시키는 일을 담당했었답니다!

 

특히 아바에서 메인보컬을 담당했던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환성적이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녀서 아바노래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던 인물이었고,

또다른 여성멤버 애니프리드 링스타드도 차분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외모로 아바가 대중들의 인기를 끄는데, 큰 견인차역할을 했죠!

 

아그네사 팰트스코그와 애니프리드 링스타드


두명의 여성멤버 중 아그네사 펠트스코그는 가창력이 매우 뛰어났는데, 그녀는 노래 뿐만아니라, 멋진 금발과 아름다운 히프로도 유명했답니다. 또한 애니프리드 링스타드는 예쁜 얼굴로 유명했었지요.

 

굳이 포인트를 잡자면, 아그네사 펠트스코그는 노래담당이라고 할 수 있고, 애니프리드 링스타드는 얼굴마담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인조 혼성그룹 아바(Abba)1974년도에 '워털루'라는 노래로 유러비존 콘테스트에 참가해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면서, 유명해진답니다.

 

'워털루'는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서, 70년대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아바는 일약 한국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우뚝 서게 된답니다.

 

그리고 아바는 74년도에 'SOS'를 발표해서 또다시 빅히트를 치게 되었고, 77년도에 발표한 '댄싱퀸'은 유럽을 넘어서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아바는 '댄싱퀸'으로 최초로 미국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면서, 팝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톱스타로 인정을 받게 된답니다.

 

아바는 이외에도 '맘마미아' '훼르난도' 'SOS' 'I Do, I Do, I Do, I Do' 등의 히트곡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바의 히트곡 '맘마미아'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져서, 세계의 여러나라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펼침으로서, 아바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답니다.

 

이렇게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바가 인기절정의 시기인 1981년도에 돌연 해체됨으로써, 수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는데요.

 

아바가 이처럼 인기의 절정에서 해체하게 된 이유는 아바의 두커플 중 아그네사와 비요른커플이 이혼을 했기 때문이랍니다.

 

아바의 두커플 모두 금슬이 좋기로 소문났었는데, 그토록 서로 사랑했었던 비요른과 아그네사가 이혼하게된 이유는 아그네사의 자녀에 대한 사랑때문이었답니다.

 

아바가 너무 유명해지자, 당연히 아바는 해외공연이 계속 늘어났고, 아바는 북아메리카로 가서 공연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아그네사는 어린 두 자녀에 대한 양육걱정 때문에, 해외공연활동을 하면서 몹시 괴로와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돈과 명예때문에, 어린 자녀 특히 이제막 테어난 막내 크리스티앙을 제대로 돌보지못하는 것에 대한 심한 죄책감을 갖고있었다고 합니다.

  




해외공연으로 유명세를 계속 이어가려고 하는 남편 비욘세와 유명세보다는 자녀에 대한 사랑과 양육에 더욱 관심이 많았던 아그네사 사이에 갈등과 균열이 생기게 되었고., 

세계적인 그룹 아바의 일원보다는 엄마의 역할을 더욱 중요시했던 아그네사는 결국 남편 비욘세와의 이혼을 결정하게 된답니다.

 

아바라는 세계적인 그룹의 명예와 부 보다는 자녀양육을 선택했던 모성애가 극진한 아그네사와 비욘세의 이혼으로 인해서, 아바는 1981년도에 해체되고 말았답니다.

 

아바의 헤체와 이혼은 세계의 수많은 팬들에게는 커다란 아쉬움을 주었지만, 대신 그녀의 어린자녀들은 엄마를 다시 찾은 셈이라고 할 수 있구요.

 그만큼 아그네사는 모성애가 굉장히 강한 훌륭한 엄마라는 것을 증명해보였답니다.

 

그리고 아그네사와 비요른이 이혼한 후, 아바의 또다른 커플 베니와 프리다 사이도 금이 가기시작했고, 결국 베니와 프라다도 이혼하고 말았답니다. 이로써 아바는 완전 해체되고 말았지요.

  

아바는 히트곡이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들지만, 아바의 최고의 히트곡은 뭐니뭐니해도 '댄싱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그네사 펠트스코그와 비요른

 

77년도에 발표된 '댄싱퀸'은 유럽과 아시아를 넘서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70년대의 최고의 명곡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유럽의 스타인 아바를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곡이 바로 '댄싱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바에게 최초로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겨준 곡이 바로 '댄싱퀸'입니다.

 

'댄싱퀸'은 그 경쾌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70년대 후반 당시 FM라디오의 단골음악으로 많이 흘러나왔고, 음악다방이나 레코드점의 스피커를 온통 점령하다시피한 곡이랍니다.

 

그런데, 아바가 해체된지, 35년이 지난 2016년도에 아바가 다시 재결합을 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바는 2016년도에 다시 재결합해서, 4명이 모여 함께 성황리에 공연을 펼쳤으며, 2019년도에는 재결합한 아바의 신곡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35년만에 다시 재결합해서 발표하는 신곡이라고 하니, 정말 큰 기대감을 갖게하고 있습니다.

 

혼성그룹으로 가장 대중적인 흥겨운 노래들을 히트시켰고, 세계적으로 37천만장이라고 하는 엄청난 음반판매고를 올린 전설적인 그룳 아바의 대표곡인 '댄싱퀸(Dancing Queen)'을 오랫만에 감상해보도록 하겠어요!

 

 

아바의 대표곡 '댄싱퀸(Dancing Queen)' 노래 동영상

 





 

아바의 훼르난도(Fernando) 노래 동영상











Dancing Queen / 가사와 해석

 

You can dance, you can jive,

(당신은 춤출 수 있어요 자이브 출 수 있어요)

 

having the time of your life.

(당신의 인생에서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See that girl, watch that scene,

(저 소녀를 봐요 저 모습을..)

 

dig in the Dancing Queen.

(댄싱 퀸에 몰두해 보세요)

 

Friday night and the lights are low.

(금요일 밤이고 불빛은 낮은데)

 

Looking out for the place to go.

(갈 곳을 찾아요)

 

Where they play the right music,

(신나는 음악을 틀고

 

getting in the swing

스윙을 추는 (그런 곳))

 

You come in to look for a king

(당신은 왕을 찾기 위해 들어옵니다.)

 

Anybody could be that guy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어요)

 

Night is young and the music's high

(밤은 깊지 않고 음악은 높죠)

 

With a bit of rock music, everything is fine.

(록뮤직만 좀 있으면 모든게 좋아요)

 

you're in the mood for dance.

(당신은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죠)

 

And when you get the chance...

(그리고당신이 기회를 잡으면)

 

you are the Dancing Queen,

(당신은 춤의 여왕)

 

young and sweet , only seventeen.

(젊고 예쁘고 17살 밖에 안됐죠)

 

Dancing Queen, feel the beat from the tambourine

(댄싱 퀸, 탬버린의 비트를 느껴요)

 

You can dance, you can jive,

having the time of your life.

See that girl, watch that scene,

dig in the Dancing Queen.

 

You're a teaser, you turn'em on

(당신은 애태우는 사람, 그들을 들뜨게 하죠)

 

Leave them burning and then You're gone

(그들을 불타게 두고는 당신은 떠납니다)

 

Looking out for another, anyone will do

(다른 사람을 찾아서, 누구라도 괜찮아요)

 

you're in the mood for dance.

(당신은 춤출 기분이죠)

 

And when you get the chance...

(그리고 기회가 되면)

 

you are the Dancing Queen,

(당신은 댄싱 퀸)

 

young and sweet, only seventeen.

(젊고 예쁘고 17살 밖에 안됐어요)

 

Dancing Queen, feel the beat from the tambourine

(댄싱 퀸 탬버린의 비트를 느껴요)

 

You can dance, you can jive,

having the time of your life.

See that girl, watch that scene,

dig in the Dancing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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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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