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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김청의 결혼과 이혼, 이혼사유, 젊은시절의 미모와 프로필

 

- 김청 프로필 -

 

본명 - 안청희

1962년 6월 1일

키 - 162cm, 몸무게 42kg,

혈액형 B형

출신학교 - 경희대학교 무용학과 중퇴

가족 - 어머니 김도이

데뷔 - 1981년 미스 mbc 선발대회 2위 입상

종교 - 개신교

 

80년대의 우리 연예계를 대표하는 청순미인이 한명 있는데, 바로 김청을 꼽을 수 있답니다.

80년대에는 우리나라 연예계는 여배우들이 대거 등장해서  다중구도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여배우들이 군웅할거를 하던 시대였답니다.

 

70년~80년대 신트로이카체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 새로운 미녀여배우들이 등장해서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요.

 

80년대의 대표적인 여배우로는 이미숙과 원미경을 꼽을 수 있고, 그녀들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 대중들의 인기를 끌면서, 서로 치열한 인기경쟁을 벌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신선하고 청순한 마스크를 지닌 김청이라는 여배우가 등장해, 이미숙과 원미경 못지않은 큰 인기를 끌면서, 활발한 연기활동을 전개해나갔습니다.

 

그러니까, 80년대의 우리나라 연예계는 원미경과 이미숙, 김청의 세명의 여배우들이 주름잡았던 3톱체제가 전개되었으니, 이를 제 3세대 트로이카라고 부른답니다.

 

80년대에는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등 제2세대 트로이카의 인기가 서서히 식어가면서, 새롭게 등장한 이미숙, 원미경, 김청이 새로운 트로이카로 인기를 독식해나갔던 시대였답니다.

 

80년대에 원미경과 이미숙은 매우 인기가 높았고, 수많은 영화에 경쟁적으로 출연해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벌여나가고 있었지요.

그러니까, 1980년대에는 원미경과 이미숙이 우리 영화계를 양분하고 있었다고 할 정도로, 이미숙과 원미경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 반면, 김청은 영화보다는 TV드라마에서 꾸준히 출연하면서 인기를 끌었던 그시대의 대표적인 청순미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미숙은 동양적인 마스크에다 요염미가 강하게 풍겼고, 원미경은 완벽한 미모에 관능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반해,

김청은 청순가련형의 미모를 갖고 있는등, 세명 모두 각각 개성있는 미모로 강한 팬덤층을 형성하고 있었답니다.

 

지금은 김태희와 송혜교가 최고미인으로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80년대에는 원미경과 이미숙, 김청이 지금의 김태희와 송혜교 같은 존재감이었답니다.

 

커다랗고 초롱초롱한 눈, 오똑한 콧날, 수줍은 듯 살포시 다문 입술 등 유난히도 한국적인 정취를 짙게 풍기는 김청은 전형적인 동양미인이면서, 동시에 청순미인이랍니다.

 

그래서 80년대에 김청은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 청순한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하면서,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셀레이게 했던 장본인이랍니다.

 

원미경, 이미숙과 함께 8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미녀 여배우 3인방에 김청도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릴 수가 있답니다.

 

이렇게 김청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청순미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남성들은 더욱 김청에 대해 남성으로서의 보호본능을 느끼면서 그녀를 더욱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김청은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라는 연예인 리얼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요.

그래서 오늘은 80년대의 대표하는 청순미인 김청에 대해서 소개해보도록 하겠어요. 

 

80년대 제3세대 트로이카 삼인방 중에, 원미경은 주로 영화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이미숙은 영화와 드라마를 왔다갔다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그 반면 김청은 주로 드라마에 많이 출연해서 큰인기를 끌었답니다.

 

주로 드라마에 다작으로 출연해 높은 인기를 끌었던 김청을 두고, 80년대의 ‘드라마의 여왕’이라고 부른답니다.

 

김청이 80년대에만 출연했던 드라마만 해도 22편이나 되며, 90년대에는 더욱 늘어나 28편의 드라마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그녀는 TV분야에서 맹활약하면서 크게 각광을 받았답니다.

 

그러니까, 김청은 80~90년대에 해마다 2~3편의 드라마에 계속해서 출연하는 등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였는데, 아마도 김청은 80~90년대 TV드라마에 최다출연자가 아닐까 합니다.

 

김청은 청순한 미모와 함께 뛰어난 연기력을 지니고 있어서, 뭇감독과 PD들로부터 끊임없이 스카웃제의를 받았으며, 80~90년대에는 개인적인 사생활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드라마촬영 때문에 엄청 바쁘게 생활했다고 합니다.

 

김청의 전성시대는 50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눈부신 활동을 펼쳤던 80~90년대라고 할 수가 있지요.

김청의 드라마출연은 2000년대에 들어서도 왕성한 활동이 이어집니다. 김청은 2000년대에도 19편의 드라마에 출연할 정도로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갔답니다.

 

그런데 김청은 현재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김청이 이렇게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있는 이유는 무었일까요?

 

80~90년대에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그녀가, 정말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그시대를 주름잡았던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청의 어머니는 김청을 고등학생 시절인 17살 때에 임신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김청의 아버지는 김청 어머니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많은 직업군인이었지요.

 

그런데 양가 부모님의 반대가 매우 극심했기 때문에, 두사람의 결혼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청 어머니가 김청을 출산한 이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해서 함께 김청을 애지중지하면서 키워나갔습니다.

 

그런데 육군중사였던 김청의 아버지가 불행히도 김청을 낳자 마자,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습니다.

 

결국 김청은 홀어머니밑에서 어렵게 자라났습니다. 그렇지만 성격이 반듯했던 김청은 어머니의 무남독녀 외동딸로서 성실하게 모범생으로 곱게 자라났습니다.

 

김청은 1981년도 MBC가 주최한 미스MBC 선발대회에 출전해 당당히 미스MBC 2위로 뽑혔고, 그 특전으로 MBC공채 14기 탤런트가 되어서 연기자로서 데뷔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청은 1987년도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태수를 뒷바리지하는 지고지순한 여주인공역할을 훌륭히 연기해내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랑과 야망’의 인기를 높여 놓는 데에 견인차역할을 합니다.

 

이 당시 ‘사랑과 야망’의 시청률은 75%로 방송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의 중심에 김청이 있었답니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시청율이 폭발적으로 올라가면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히로인역할을 한 김청은 흥행력있는 연기자로 인정받으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답니다.

 

김청은 ‘사랑과 야망’에서 지고지순하고 가련한 청순연기를 펼치면서 그녀의 청순미가 크게 빛을 발했고, 이때부터 김청은 청순미인의 대명사가 된답니다.

 

지금 김청은 나이 60세가 되면서 기품있는 귀부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80년대만 해도 김청은 대단한 청순가련형의 미인으로 손꼽히는 미녀였습니다.

 

80년대 후반인 이 당시는 다소 보수적인 사회이어서, 많은 남성들이 섹시하고 관능적인 여배우보다는 청순한 미모의 여배우를 더 좋아하던 시절이었기에, 이 시기에 김청은 수많은 남성들의 로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수려한 미모와 뛰어난 연기, 재치있는 말솜씨 등 다양한 재능을 두루 갖추고있었던 김청은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서 열연을 펼쳤을 뿐만아니라,

8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MC로도 출연하는 등 명MC로도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광고모델로도 발탁되어서 CF광고를 7편이나 찍는 등, CF여왕으로도 명성이 떨쳤지요.

 

 

◆ 김청의 결혼과 이혼, 이혼사유

 

이렇게 드라마출연과 CF출연, 그리고 예능프로그램의 MC를 맡는 등 만능엔터테이너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높은 인기를 끌었던 김청은 지금까지도 결혼을 하지않고, 솔로로 지내오게 되었는데요.

 

원래 김청은 딱 한번 결혼을 한 적이 있었답니다. 김청은 나이 37세가 되던 1998년도에 전격 결혼을 발표했습니다.

 

김청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가, 아는 언니의 소개로 골프장사장인 배씨를 알게 되었고, 그 후 두사람은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김청이 만난 남성 배씨는 김청보다 13년이 더 많은 50세였다고 해요.

 

그런데 김청은 나이 많은 배씨에게서 아버지 같은 포근한 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에, 아버지 사랑을 제대로 못받고 자랐던 김청이기에 아버지같이 포근한 정을 느끼게 해주었던 배씨에게서, 더욱 끈끈한 친밀감과 부성애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없이 편모슬하에서 자랐던 여성들은, 종종 나이 많은 남성에게서 아버지같은 포근한 부성애를 느끼며, 더 깊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답니다.

 

이렇게 김청과 배씨가 자주 만나 데이트하면서 두사람간에 뜨거운 애정이 싹트게 되었고, 얼마 후에 배씨가 김청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결국 98년도 5월에 두사람은 전격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나게 됩니다. 김청은 배씨와 결혼한 지, 3일만에 곧바로 이혼하게 된답니다.

그런데, 김청의 주장에 의하면, 이것은 이혼이 아니라 파혼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의 전모는 이렇습니다. 김청은 배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필리핀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신혼여행지에서 남편 배씨는 오직 카지노에만 출입하면서 밤을 세워가며 도박에만 집중하였고,

그 때문에, 김청을 3일 동안 호텔에서 혼자 독수공방을 했다고 합니다.

 

신혼여행지에 가서 이렇게 예쁜 청순미인을 호텔방에 홀로 남겨두고 독수공방을 시켰다고 하니, 정말 배씨가 남자가 맞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신혼여행지가 필리핀이었는데, 그 곳에 있는 카지노에 틀어박혀서 오직 도박에만 빠져있던 배씨는 신부 김청을 3일동안 먹이지도 않고, 재우지도 않은채, 홀로 독수공방시키면서, 예쁜 신부 김청을 그냥 방치했다고 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김청은 곧바로 파경을 선언하고, 결혼 3일만에 짐가방을 싸서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김청이 결혼 후에, 신혼여행지에서 보낸 3일 결혼의 전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김청은 전남편 배씨와 한번도 잠자리도 하지않았고, 산림을 차려서 같이 동거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까지 갔지만, 김청은 배씨와 아무일도 없이, 파경을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인데요.

그러니까, 김청은 형식적인 결혼식만 올렸을 뿐이지, 사실상의 결혼생활은 단 하루도 하지 않았던 겁니다.

 

더욱이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청은 자신은 이혼한 것이 아니라, 약혼만 했다가 파혼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답니다.

지금까지도 김청은 자신은 이혼녀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단지 자신은 파혼녀일 뿐이라는 거지요.

 

김청은 신혼여행지에서 아무일도 없이, 그냥 3일동안 독수공방만 하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이혼녀’라고 불리우는 것은 너무나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랍니다.

 

그리고 배씨는 결혼전에 김청의 어머니에게 사업자금을 빌려달라는 부탁까지 했다고 합니다.

 

김청은 배씨를 사랑해서 결혼식을 올렸는지는 몰라도, 배씨는 김청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정략적 결혼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는 부분이랍니다.

 

결혼하기 전에, 신랑될 남자가 신부의 어머니에게 사업자금으로 거액의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아뭏튼 결혼 3일만에 파경을 맞은 김청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그 후 절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칩거생활을 하게 됩니다.

 

연예인으로서 큰 인기와 명성을 떨쳤던 김청이 뒤늦게 선택한 결혼이 완전한 실패작으로 끝나고야 말았답니다.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던 김청은 그 후 첩첩산속에 있는 절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게 된답니다.

 

자신이 처음한 결혼이 완전 실패하면서 큰 충격과 좌절을 겪은 김청은 결혼실패의 충격과 상실감을 잊기위해서, 절에서 삼배옷을 입고 밭을 갈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오랫동안 충격과 아픔에서 해어나오지 못했던 김청은 한동안 엄청나게 술을 먹었다고 합니다.

 

김청은 밤마다 술을 많이 마셨고, 그리고 마취제를 맞지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김청이 파혼 때문에 생긴 정신적인 충격과 상실감 때문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술을 먹고, 낮에는 식음을 전폐하고 생활하는 등, 결혼실패 후의 김청의 생활은 거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결혼실패의 충격으로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던 김청은 수년동안 방송활동을 접었고, 은둔생활을 한 끝에, 200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다시 연예계에 복귀해 연기활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김청이 독신으로 사는 이유

 

김청이 한번 결혼식을 올렸다가 곧바로 파경을 맞았던 가슴 아픈 전력이 있지만,

그녀의 출중한 미모와 인기로 볼 때에, 그 후에도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우리연예계의 대중적인 스타로서 큰 인기를 끌어왔던 김청이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데에는 몇가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김청이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였던 80년대에, 그녀의 어머니가 친구의 빛보증을 잘못섰다가 그만 30억원의 빚을 덜컥 떠안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청의 어머니에게 빚보증을 서게했던 그 친구는 곧바로 미국으로 달아나버렸고, 김청은 어머니가 졌던 친구의 모든 빚을 혼자서 다 떠안게 된 것이랍니다. 그때가 김청과 어머니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김청은 20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빚 30억원을 떠안은 상태에서, 그녀는 마침 MBC 탤런트에 당선되었는데,

그 후 무려 10년 동안 바쁘게 연기생활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어머니가 진 빚 30억원을 갚아나갔습니다.

 

김청은 연기자로 데뷔한 후 30살이 될 때까지의 10년 동안은 자기자신을 위해서 산 것이 아니라, 오직 어머니의 빚을 갚기위해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결국 김청은 10년만에 어머니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어머니빚을 다 갚은 후에,김청은 후련한 마음보다는 오히려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탤런트가 된 후, 김청은 10년 동안 억척같이 연기활동을 해오면서 큰 돈을 벌 수 있었는데, 그 많은 돈이 모두 어머니의 빚갚는 데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허탈했겠습니까?

 

김청이 가장 아름다웠을 20대의 10년의 세월을 어머니빚 갚는 데에 다 소모해버린 셈이랍니다.

이렇게 김청은 젊은시절에 어머니빚을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생활했기 때문에, 남자와 연애할만한 정신적인 여유를 전혀 가질 수 없었습니다.

 

김청은 어머니빚을 다 갚은 후에 나이는 이미 30세가 훌쩍 넘어섰고, 연기자로서의 높았던 인기는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었는데,

이 때에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우울증 때문에 또다시 큰 고통을 겪게되었고, 심지어 그녀는 자살까지 시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청은 가장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을 어머니의 빚을 갚는 데에 소모하는 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청춘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과 우울증 때문에,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나날이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그녀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던 겁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김청이 수면제를 먹고 잠자고있을 때, 마침 아는 언니가 찾아와서 그녀는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게만 보였던 김청이지만, 사실 그녀는 어머니로 인해서 심한 정신적고통과 갈등을 겪고있었던 겁니다.

 

그럼 김청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자는 없었을까요? 김청이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아왔지만, 과거 한 때에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자가 한명 있었다고 합니다. 그사람은 모델에이젠시를 하는 사람이었는데요.

 

김청보다 7년 연상의 광고모델 에이젠시를 하는 P씨라는 남자였는데, 김청은 그 P씨에게서 무척 포근한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결국 김청은 곧바로 P씨와 깊은 사랑에 빠졌는데, 김청의 어머니가 극심하게 두사람의 사랑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김청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대단히 컸습니다. 김청의 어머니는 오직 딸 김청만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왔기에, 김청에게는 어머니가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김청은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효심 때문에 어머니의 반대를 받아들여서, 어쩔 수 없이  P씨와 생이별을 했습니다.

 

1988년도에 김청이 방송활동 중에 갑자기 잠적해버리는 일이 일어났었는데요. 이당시 김청은 그 어떤 공식석상에도 나타나지 않고, 방송촬영까지 펑크내면서,  무려 2달 동안 잠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김청이 갑자기 잠적했던 이유는 그녀가 사랑했던 P씨와 헤어진 충격 때문이었는데, 그 이별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한적한 시골로 들어가서 혼자서 마음을 추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에 김청이 만났던 P씨가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였을 것이며, 그녀의 사랑은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 때문에, 안타깝게도  생이별로 끝나고 말았답니다.

 

김청은 1990년도에 또다시 한남자와 사랑의 스캔들을 겪게 됩니다.

한명의 남자를 놓고, 김청과 최수지가 얽힌 소위 ‘삼각스캔들’이 그것입니다.

 

대하드라마 ‘토지’로 큰 인기를 끌었던 최수지가 90년도에 미국 LA에서 윤씨와 결혼을 한다는 발표를 했는데요.

그런데 최수지의 결혼상대인 윤씨는 김청이 먼저 약혼했다가 파혼한 남자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당시 김청과 최수지의 삼각스캔들이 우리 연예계에 떠들썩하게 퍼져나갔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최수지가 선배연기자인 김청의 애인을 가로채버렸다는 기사까지 나오기도 했었답니다.

 

그 당시 한 중매쟁이가 잘생기고 재력있는 재미교토사업가 윤씨를 김청과 최수지 두사람에게 번갈아가면서 맞선을 주선했습니다.

 

먼저 맞선을 보았던 윤씨와 김청은 처음에는 서로 마음이 맞아 약혼까지 했었는데,

그 사이에 윤씨가 또다시 중매쟁이로부터 최수지를 소개받았고, 최수지에게 홀딱 반한 윤씨가 김청과는 파혼한 후, 새롭게 최수지와 약혼을 한 것이랍니다.

 

결론적으로 김청은 재미교포 사업가 윤씨에게 차이게 됐고, 김청을 매몰차게 찬 윤씨는 최수지와 약혼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런 사연이 신문과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나니까, 김청으로서는 대단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리고 최수지는 선배연기자의 남자를 가로채버린 나쁜 여자로 낙인찍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매스컴에서 선배인 김청의 남자를 가로챘다고 안좋은 비난이 가해지자, 최수지는 윤씨와는 파혼을 했고, 이미 헤어진 사이다 라고 주장했답니다.

 

그리고 최수지는 연기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가버렸답니다.

그런데 그 후 2달 뒤에 최수지는 자신이 파혼했다던 윤씨와 LA에서 비밀결혼식을 올리게 된답니다.

 

최수지는 국내의 비판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던 것이고, 그녀는 남몰래 윤씨와 결혼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김청의 약혼자를 가로채서 결혼식을 올렸던 최수지는 윤씨와 결혼한지 불과 6개월만에 이혼하고 말았답니다.

최수지는 윤씨에게 속아서 사기결혼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에서 이혼소송을 벌여서 이혼하고 말았지요.

 

이렇게 김청은 젊었을 시절, 어머니의 엄청난 빚을 떠안고 그 빚을 갚는 일 때문에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와 두번씩이나 이별을 겪었을 뿐아나라, 그녀의 유일한 결혼은 3일만에 파경을 겪는 등, 그녀가 좋아했던 남자들과는 이상하게도 파경과 이별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렇게 김청은 도화살이 끼었는지, 청순미모와 탁월한 연기력으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였음에도 불구하고 몇번이나 찾아온 결혼기회를 놓치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김청은 젊었을 때에 겪은 우울증이 다시 반복되어서 이제 그녀는 평생 우울증약을 먹고 산다고 하네요.

정말 안타깝고 가엾은 김청이 아닐 수 없네요!  젊었을 때에 그녀가 겪은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이렇게 그녀가 평생을 우울증약을 먹고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TV드라마의 여왕으로서, 많은 대중들로부터 크나 큰 사랑을 받을 정도로 연기자로서는 큰성공을 거두었지만, 현 여자로서 사랑을 쟁취하는데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김청은 1962년생으로서 이제 나이가 60세가 되어 장년의 여성이 되었지요.

 

그렇지만 김청은 지금도 괜찮은 남자와 만나서 멋진 데이트를 하는 꿈을 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성들은 자신에게 전혀 대쉬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지요.

나이 60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소녀처럼 멋진 왕자님을 만나는 꿈을 꾸고 사는 그녀를 보면, 정말 때묻지 않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김청은 신체 건강하고 배려심이 깊은 남자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꼽고있는데, 이러한 그녀의 소박한 소원이 하루빨리 이뤄져서, 그녀가 행복한 여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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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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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 여입양아 정인이 학대 살인사건과 사망이유, 양부모 신상, 학대이유


우리나라에서 또다시 여아 학대사망사건이 발생해서 큰 충격을 주고있습니다.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할 우리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어른이들이 나약한 어린 아동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사건일 것입니다.

 

그런데, 202010월에 태어난 지 불과 16개월밖에 안된 옹알이하는 여자아이를 학대하고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해서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정인이 학대 살해사건그것이 알고싶다에도 방영되어서,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면서, 현재 끊이지않고 계속되는 아동학대사건이 우리사회에 가장 큰 화두가 있습니다.

 

정인이는 20196월달에 태어난 아주 귀엽고 앙증맞고 애교가 많은 2살베기 여자아이입니다.

 

정인이는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키울 입장이 못되는 친모에 의해서 불행히도 아동보호기관으로 보내졌고, 그 후 한 위탁가정에 맡겨져서 몇개월 동안 양육되어졌답니다.

 

, 정인이를 낳고난 후, 아이를 도저히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안되었던 정인이 친모가 출산 후 8일만에 정인이를 입양기관에 맡겨서 새로운 가정으로 입양을 추진했던 겁니다.

정인이라는 이름도 정인이의 친모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고 하네요.

 

그렇게해서, 정인이는 태어난 지 8개월만인 20202월경에 한 가정에 수양딸로 입양되게 됩니다.



정인이를 입양한 양부와 양모 모두 외형상으로 인상도 참 좋고, 교양있고 친절해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양부 안씨는 방송국에 근무하는 직장인이었고, 양모 장씨는 활달한 성격을 가진 유학파출신으로서 통역사의 일을 하고 있었답니다.

 

양부모 모두 독실한 기독교신자로서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고, 특히 양모 장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에 해외입양을 돕는 기관에서 일했던 경력도 갖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양부모는 마침 한명의 딸도 키우고 있는 등 여러가지 좋은 경력을 갖고 있었기에, 당시 주변사람들은 양부모가 2달된 정인이를 잘 키울 것으로 큰 기대감을 갖고있었답니다.

 

특히 양모 장씨는 오래전부터 아이를 입양해 키우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양기관에서는 양부모가 아이를 잘 키울 것으로 전혀 의심하지않고, 이 양부모에게 정인이를 입양보냈다고 합니다.

 

20202월경, 그 양부모는 한 입양기관으로부터 예쁘고 앙증맞은 정인이를 입양했는데, 당시 정인이는 생후 8개월된 시점이었답니다.

 

주변사람들은 양부모 모두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자라온 기독교신자이고, 입양봉사활동을 한 경력을 갖고 있을 뿐만아니라, 입양을 절실히 희망해온 터라, 양부모가 정인이를 알뜰살뜰 잘 키울 것으로 큰 기대를 갖었답니다.

 


이렇게 생후 8개월된 여아 정인이는 새로운 양부모를 만나서 양부모님집에서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아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답니다.

 

또한 양부모는 자신들이 둘째딸을 입양한 사실을 회사와 주변사람들에게 알리고 엄청 자랑하면서, 아이를 잘 키워 훌륭한 사람을 만들겠다고 과시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정인이가 입양된 지 8개월이 지난 시점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하고 말았답니다.

 

정인이가 입양된 지 8개월이 되는 202010, 정인이는 온몸이 시퍼런 멍이 든체 처참한 몰골이 되어 사망한 채 병원에 실려왔습니다.

 

20201013일 오전 11시경 출생한지 16개월밖에 안된 정인이는 온몸에 타박상을 입은 상태로 병원에 실려왔는데, 이미 정인이는 심정지상태였고, 의료진이 아이를 소생시키기 위해 여러번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한없이 인자해보이던 양부모한테 입양되어 아주 행복하게 잘 살 것 같았던 정인이였는데, 그동안 도대체 무슨 끔찍한 일이 있었길래, 정인이는 이처럼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된 것일까요?

 

정인이의 사망원인, 사망 당시의 상황

 

16개월밖에 안된 정인이가 허망하게도 사망하고 말자, 경찰은 정인이의 양부모에 대한 수사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양부모 장씨는 정인이가 단순한 사고로 숨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양부모는 첫째와 둘째딸이 함께 집안에서 놀다가 정인이가 의자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서 그 충격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 입양아 정인이는 누군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단순한 놀이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인이가 숨졌을 당시에, 이해할 수 없는 여러가지 수상한 의문점들이 많이 존재하는데요.

 

첫째, 정인이가 사망하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진술이 양부모와 이웃사람들 간에 서로 다릅니다.

 

그 당시 정인이집의 아랫집에 살던 이웃사람의 증언은 전혀 달랐습니다. 아랫집 사람은 천정에서 쇠뭉치 같은 것이 여러번 쿵쿵하면서 천정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둘째, 정인이가 사고를 당했을 때에, 양모 장씨는 119구급차를 부르지않고, 콜택시를 불러서 정인이를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셋째, 양모는 정인이가 쓰러졌는데도, 아이를 그대로 방치한 채, 태연하게도 자신의 첫째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이렇게 첫째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후에야, 콜택스를 불러서 쓰러진 정인이를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이 때는 정인이가 쓰러진 지 1시간이 경과된 후였답니다.

 

이렇게 늦장을 부린 끝에 정인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정인이는 이미 심장이 정지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양모 장씨가 쓰러진 정인이를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고 1시간이나 질질 끌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만일 양부모가 신속하게 119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으로 이송했으면, 다친 정인이를 차안에서 치료하면서 병원에 이송할 수 있었고, 또한 더 빠른 시간내에 병원에 이송해서 정인를 살릴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정인이 양모 장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인이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고 늦장을 부렸다는 점이 큰 의문점으로 남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후, 잠시 정인이의 심장이 다시 박동을 시작하기도 했는데, 이 때에 병원료진이 정인이의 몸을 CT촬영을 시도한 결과, 정인의 온몸은 시퍼런 멍이 든 상태였고, 뱃속에 피가 꽉 차있었다고 합니다.

 

진단 결과, 정인이는 무언가 외부로부터 큰 충격이 가해져서 체내의 장기가 파열되고, 과다출혈이 일어나면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CT촬영 결과, 정인이의 몸에서 11군데가 넘는 뼈가 골절된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이 중에서도 6군데의 뼈는 두 번이상 골절되었것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 16개월밖에 안된 정인이는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설고, 수많은 뼈가 부러지도록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병원으로 실려온 겁니다.

 

정인이의 공식적인 사망원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손상이었습니다.

 


, 정인이는 누군가에게 여러차례 심하게 얻어맞아 몸의 뼈가 부러지고, 복부의 장기가 파열되는 충격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정인이의 몸은 뱃속에 있던 췌장과 장간막 등 모든 장기가 파열되었고, 두개골도 파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모 장씨는 병원에서 아이의 죽음이 확인되자, 의료진들 앞에서 무척 슬픈 듯이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의료진들은 울고있는 양모 장씨를 보면서, 마치 악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CT촬영 결과, 아이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구타 같은 외력의 충격에 의해서 사망했다는 것을 의료진들이 모두 알고있었기 때문이지요.

 

경찰은 정인이의 죽음이 외력에 의한 충격에 의한 것이 밝혀지자, 정인이가 죽는 날 아이와 함께 있었던 양모 장씨를 긴급 구속했습니다.

 

경찰은 양모 장씨를 아동학대 치사죄로 구속해서 수사를 벌였습니다.

경찰은 양모 장씨가 정인이를 때리는 과정에서 예기치않게 정인이가 사망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인권단체에서는 정인이의 죽음은 양모 장씨의 고의적인 구타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하면서, 양모에게 아동학대 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크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치사죄의 형량 - 4년이상 7년 이하 징역

살인죄 형량 - 10년 또는 무기징역, 사형

 

아동학대 치사죄는 아이를 죽일 고의성은 없었고, 그냥 때리기만 했는데, 때리는 과정에서 실수로 아이를 죽게한 경우라서 형량은 매우 낮은편이지만, 살인죄는 처음부터 아이를 죽일 고의성이 있거나, 이렇게 때리면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인식을 하면서 때린 경우라서 형량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 아동살인죄와 아동학대 치사죄는 살인의 고의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판가름나며, 그 처벌의 형량도 달라지게 된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아이의 몸에 오래전부터 계속 구타를 당한 타박상과 골절상의 흔적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모 장씨가 정인이를 상습적으로 계속해 구타했다고 보는 것이며, 이것은 양모가 살해의 고의성을 갖고있다고 보기 때문에, 양모 장씨를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지난해 11월 양모 장씨를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 치사죄로 기소했답니다.

 

이에 대해 여러 아동단체에서는 양모 장씨가 16개월밖에 안된 정인이를 8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학대한 끝에 죽였기때문에, 형량이 낮은 학대치사죄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은 양모 장씨가 어리디 어린 정인이를 8개월간 상습적인 고문과 학대 끝에 의도적으로 죽였기 때문에, 반드시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청와대 민원게시판에 청원까지 올렸고, 이 청원은 한달동안 23만명의 동의를 받았다고 합니다.

 

새하얀 피부와 통통한 볼살 때문에 복숭아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로 너무도 귀엽고 예뻤던 정인이였는데, 16개월밖에 안된 아이가 대체 무슨 잘못이 있었길래, 이토록 처참하게 구타를 당하고 죽게되었는지, 정말 무척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양부모의 구체적인 범죄혐의점과 정인이를 학대한 많은 증거들

 

그런데, 경찰조사에서 양부모는 정인이가 죽은 것은 고의가 아닌 단순한 사고 내지는 실수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양부모는 자신들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고 있는데요.

 

경찰조사에서 양모 장씨는 정인이의 사고와 관련해서 양부 안씨의 주장과 전혀 다른 증언을 해서 눈길을 끌고있습니다.

 

정인이 얼굴에 난 시퍼런 멍자국 두개


경찰조사에서 양모 장씨는 정인이를 들고 흔들다가 아이를 실수로 떨어뜨려서 아이의 복부가 다쳤다고 진술을 했습니다. 이 증언은 정인이가 큰딸과 놀이하다가 떨어져서 다쳤다고 하는 양부의 증언과 전혀 다른 진술인데요.

 

첫진술에서 양부가 거짓진술을 한 것입니다.

 

양모의 진술은 이렇습니다.

사망 당일, 양모가 정인이에게 밥을 먹이려고 하는데, 아이가 밥을 안먹길래 화가 난 양모 장씨가 아이를 두손으로 들어올려 흔들다가 실수로 아이를 떨어지면서 아이의 배가 의자에 부딪쳐서 사고가 났다는 것입니다.

 

양모가 실수로 아이를 흔들다가 떨어져서 사고가 났다는 것인데요. 아이를 실수로 떨어뜨렸다는 양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점이 많습니다.

 

양모가 진짜로 아이를 두손으로 잡고 흔들다가 놓쳐서 떨어졌다면, 쿵소리가 한번만 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아랫집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천장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쿵소리가 여러번 반복해서 났다고 합니다.

 

이것은 양모가 아이를 실수로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아이를 바닥으로 여러번 내동댕이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모가 고의적으로 아이를 바닥으로 떨어뜨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병원에서 찍은 CT촬영의 결과에 의하면, 정인이의 몸에는 수많은 타박상과 골절상이 나 있었는데, 이런 골절흔적들은 최근에 다친 것뿐만아니라, 이미 두 달전이나 세 달전에도 충격이 가해져서 골절된 흔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인이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누군가로부터 지속적으로 심한 구타를 당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수많은 상처들은 어떻게해서 생긴 것일까요? 1살 정도밖에 안되는 정인이가 스스로에게 자해를 해서 상처를 냈을까요?

정인이게 수많은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은 장본인은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던 양모의 소행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모가 정인이를 학대한 정황증거들

 

양모 장씨는 정인이를 종종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자신의 볼 일을 보곤했는데요.

 

작년 6월경, 어린이집에서 정인이의 생일기념으로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정인이의 양어깨에 팔자붕대를 감은 모습이 노출되었는데, 이것은 정인의 양쪽 쇄골이 골절되었기 때문이랍니다.

 

또한 정인이의 얼굴에는 꼬집힌 자국도 있었고, 온 몸 여러곳에 멍자국들이 넓게 퍼져있었습니다.

 

아니, 생후 2년도 안된 아이에게 얼마나 심한 폭행을 가했길래, 아이의 양어깨가 이처럼 골절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얼굴과 온몸에 난 시퍼런 멍자국도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한 흔적이었습니다.

 

양모 장씨가 아이를 맡긴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들은 양모가 정인이를 학대한 흔적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하며, 이미 보육교사들은 정인이가 양부모로부터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양모 장씨가 정인이를 직접 때리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목격담과 증언에 따르면, 양모 장씨는 정인이를 입양한 지 한달후부터 정인이를 학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생후 12개월 때에는, 양모가 정인이의 두다리를 강제로 벌려서 넘어뜨리고, 울고있는 아이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까지 했다고 합니다.

 

한 목격자는 정인이가 우니까, 양모가 아이가 탄 유모차를 뒤집어엎어버리는 장면까지 목격했다고 합니다.

 

또한 양모는 정인이가 탄 유모차를 일부러 세게 밀쳐서 벽에 부딪치게 했습니다.

 

양모는 아기를 재우는 것이 아니라, 저녁 7시에 아이를 어두운 방에 혼자 가둬놓고, 아이가 혼자 울다가 지쳐서 잠들도록 했습니다. 

 

또한 양부모가 작년 8월달에 EBS어느 특별한 가족에 입양가족의 자격으로 출연했는데, 이 때에 양부모는 입양한 아이를 정성껏 키우는 천사엄마, 천사아빠인 것처럼 코스프레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송에 함께 출연한 정인이의 몸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는데, 정인이의 이마에는 찍힌 상처가 있었고, 어깨에는 시퍼런 멍자국이 나 있었지요. 또한 정인의 피부색이 거멓게 변해있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들, 정인이 학대흔적 발견과 경찰 신고

 

정인이는 작년 3월경부터 어린이집에 등원했는데, 이 당시 며칠 간격으로 어린이집에 왔던 정인이의 얼굴과 배, 허벅지에서 시퍼런 멍자국이 나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정인이의 몸에난 상처를 카메라로 찍어서 사진으로 남겨두었고, 그 이후에도 아이의 몸에 이런 멍자국들이 계속해서 나타나자, 아동학대를 의심하고, 아동보호기관을 통해 경찰서에 아동 학대신고를 했습니다.

  

그 후, 정인이가 몇 달동안 어린이집에 오지않고 있다가, 양모는 2개월만에 정인이를 다시 어린이집에 데려왔는데, 2개월 전보다 정인이의 몸무게가 1kg이 줄어있었다고 합니다.



 성장기의 어린이는 하루가 다르게 몸무게가 쑥쑥 늘어나는 게 정상입니다.

당시 정인이는 기아상태에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삐쩍 말라있었고, 다리에 힘이 없어서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린이집 관계자는 또다시 경찰에 아동학대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양부모는 경찰조사에서 아이가 입병이 나서 제대로 이유식과 물을 먹지못해서 살이 빠졌다고 주장을 했고, 경찰은 양부모를 혐의없다고 판단하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정인이는 어린이집에 올 때마다 몸에 시퍼런 멍자국과 상처를 입고 있었고, 아동학대를 의삼한 교사들은 무려 세 번에 걸쳐서 양부모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경찰조사를 받은 양부모는 그 때마다 이런 저런 변명을 대며 빠져나갔고, 경찰의 무성의한 조사와 방임으로 세 번 모두 무혐의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양부모가 정인이를 입양한 지 8개월이 되던 작년 10월에 정인이가 양부모의 학대 끝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맙니다.

  

그리고 양모 장씨는 아동학대 치사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수사를 받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정인이의 부검결과와 경찰의 수사결과가 나왔는데요정인이의 공식적인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파열로 판명이 났습니다.


정인이의 온몸에 난 무수히 많은 멍자국들


정인이는 두개골 골절과 복부장기 파열, 갈비뼈골절로 인한 충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정인이가 죽을 당시의 몸상태는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에 받는 강한 외력에 의한 충격이 가해졌다고 합니다.

 

양모 장씨는 6차례 이상 정인이에게 폭행을 가했고, 16차례나 정인이를 방임했다고 합니다.

  

정인이는 그 누군가로부터 상습적이고 지속적으로 심한 구타를 당한 끝에 죽고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망 당일, 정인이가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을 때, 양모 장씨는 시간을 질질 끌면서 정인이가 쓰러진 지 1시간 30분이 지난 후에야 정인이를 병원으로 데려왔습니다.

 

만약, 양모가 즉시 119에 신고해서, 정인이를 좀 더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해서 치료를 했더라면, 정인이는 살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양모가 정인이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아이가 죽기를 바라는 고의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위탁모에 따르면, 원래 정인이는 잘 웃고, 밥도 잘먹고, 성격이 밝아서 엄마가 키우기에 아주 좋은 아이라고 합니다.

 

항상 밝고 명랑했던 정인이였는데, 양부모에게 맡겨진 후에는 온몸에 시퍼런 멍투성이를 한 채로 나타나, 전혀 웃지도 않고, 항상 시무룩하고 무뚝뚝한 아이로 변해있었답니다.

 

이렇게 착하고 밝았던 정인이의 미소를 빼앗간 사람은 누구일까요?

  

양부모 신상과 성격

 

정인이 양부모인 남편 안씨와 부인 장씨 모두 경북지역의 목사자녀들로서, 경북 포항에 있는 미션스쿨인 XX대학교의 컴퍼스커플로 만나서 결혼한 사이라고 합니다.


 

목회자의 자녀들로서, 평소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신자들인 양부모가 어린 아이를 상습적으로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한 아동살해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점이 참 씁쓸하고,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주변사람들의 설명에 의하면, 양모 장씨는 평소에 자신을 과시하기를 좋아하고 매우 충동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합니다.

 

양모 장씨의 과시욕이 얼마나 심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데요.

 

양모 장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자신의 남편은 방송국의 PD이고, 동생은 변호사라고 자랑질을 하고다녔는데, 실제로 장씨의 남편은 기독교방송국의 행정실에서 일하는 직원이고, 양모의 동생은 단지 대학에서 법학과를 졸업했을 뿐 변호사는 아니라고 합니다.

  

양모 장씨는 딸을 하나 낳아서 길렀는데, 그 첫째딸을 키우기 힘들어해서 베이비시터를 고용해서 그녀가 대신 그 딸을 키웠다고 합니다.


또한 양모 장씨는 평소에 분노조절을 잘 못하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자신 스스로 밝히기까지 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친딸에게도 종종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대하곤 했습니다.


또한 양모 장씨가 평소 밥하는 것을 싫어해서, 종종 식사를 배달시켜 먹었다고 합니다.

평소에 가정주부로서 가사일에 성실하게 임해야할 사람이 밥하는 것도 싫어했을 정도라면,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얼마나 귀찮아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실제로 양모 장씨는 정인이를 입양한 후에, 주변 지인들에게 정인이를 입양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답니다.

 


정인이를 입양한 후에, 양모 장씨는 지인들에게 아이와 정이 안붙어서 걱정이다’ ‘입양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불만스러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주변지인들의 증언처럼, 양모 장씨는 정인이를 입양한 후에, 입양아를 키우는 것이 힘들고 귀찮아지자, 그녀는 정인이를 입양한 것을 많이 후회했을 것이고,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한 불만과 그 스트레스를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하는 것으로 풀었던 것 같습니다. 

 

양모는 성격적으로 아이를 입양해서 키울만한 자질이나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충동적인 성격에다,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욕망이나 엉뚱한 과시욕을 채우기 위해서, 충동적으로 아이를 입양해서 키운 자체가 큰 문제라고 보여지며, 괜히 죄없는 불쌍한 아이 한명을 잃게되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이제 세상에 태어난 지 16개월밖에 안된 가엾은 아이가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학대와 고통을 당한 끝에 세상을 떠나게 되어, 너무나도 애절하고 가슴이 아파옵니다.

 

관계자들이 세 번이나 신고를 했는데도, 경찰은 왜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양모로부터 8개월 동안 지속적인 학대와 구타를 당해온 정인이는 그동안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렇지만 말을 할 줄 모르는 가엾은 정인이는 아프다는 말한마디 조차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어른으로서 정인이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나도 미안하고 괴롭기만 합니다.

  

정인이의 양부모, 아동학대 치사죄로 재판에 회부, 재판 진행중

 

작년 12월초, 검찰은 입양아 정인이를 죽음에 이르게한 양모 장씨는 아동학대 치사죄로 입건하였고, 양부는 아동학대 방임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습니다.

 

현재 정인이를 죽음에 이르게한 양부모는 아동학대 치사죄로 법원에 송치되어 재판을 받을 예정인데, 두사람에 대한 재판은 금년 113일에 시작된다고 합니다.

 

정인이의 양쪽 팔과 손, 다리에 난 검은 멍자국들


양부모는 자신들의 주장대로 단순한 실수로 정인이를 죽음에 이르게한 것일까요? 아니면, 양모가 키우기가 귀찮아진 정인이를 고의적으로 구타해서 살해한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것은 양모에 의한 학대치사죄인가, 아니면 고의에 의한 살인죄인가 하는 문제로 직결됩니다.

 

얼마전에 경찰은 부검전문의 3명에게 정인이에 대한 부검을 다시 실시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정인이의 장기파열이 얼마의 힘에 의해서 일어났는지를 부검전문의에 의해 다시 부검을 실시하는 것이지요,

 

이 재부검에서 숨진 정인이의 장기에 가해진 외력이 살인을 가능케하는 외력이였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양모에 대한 혐의는 학대치사에서 살인죄로 변경될 수 있다고 합니다.

 

16개월밖에 안된 어리디 어린 정인이를 지속적인 학대와 구타 끝에 죽음에 이르게한 살해범은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반드시 엄중한 형벌을 가해서 살인의 댓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정인이의 양부모에 대한 재판은 우리들이 두눈 부릅 뜨고 끝까지 관심을 갖고지켜봐야 합니다. 과연 법원에서 그들의 파렴치한 범죄에 대한 합당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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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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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갈호랑이 대 악어의 싸움 동영상, 호랑이와 악어가 싸울 경우 승자는?

 


동물들의 싸움중에서 가장 재미난 싸움이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자 호랑이싸움 못지않게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무시무시한 싸움은 바로 호랑이 대 악어의 싸움일 것이다..

 

육지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호랑이와 민물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악어가 만일 싸운다면, 누가 이길 것인지 그 결과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육지 맹수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최강의 파이터로 알려진 호랑이와 민물동물의 최강의 맹수인 크로커다일악어가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정말 흥미를 끄는 최고의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수컷 뱅갈호랑이 - 길이 3m 몸무게 220kg

수컷 크로커다일 악어 크기 - 길이 3,.5~4m 몸무게 300~400kg

 

아프리카에서는 종종 사자와 민물의 악어가 먹이를 사이에 두고, 자주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 싸움의 결과는 두 맹수가 서로를 견제만 하다가, 실제로는 싸우지도 않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자와 크로커다일악어는 서로가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며, 그리고 간혹 사자와 크로커다일악어가 실제로 싸운다고 하더라도,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지는 않고,

 

그냥 서로간 포효를 하면서 위협을 하는 수준에서 끝나며, 두 맹수가 실제 싸움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정말 드문 현상이다.


 

아프리카의 사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겁이 좀 많은 맹수라고 한다.

 

또한 사자는 지독하리 만큼 물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사자가 물속에 뛰어들어가서, 악어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기 보다는, 차라리 악어를 피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또한 육지에서 악어와 만나는 경우에도, 사자는 유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악어와 목숨을 걸고 싸우려고 들지 않고, 그냥 포효를 하거나, 소극적인 공격만 하다가 싸움을 회피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다.

 

사자의 뇌리속에는 악어는 함부로 싸울 수 없는 굉장히 무서운 강적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듯하다.

 

300~400kg의 엄청난 덩치와 무시무시한 톱니형 잇빨을 갖고있는 악어를 사자는 이기기힘든 무서운 강적이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싸우려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아시아의 호랑이, 뱅갈호랑이는 아프리카의 사자와는 그 성향이나 행동이 전혀 다르다.

 

일반적으로 사자는 악어를 강적이라고 회피하는데 반해, 사자보다 더 성질이 포악하고 용맹한 뱅갈호랑이는 무시무시한 톱니이빨을 갖고있는 악어와의 싸움을 전혀 회피하지 않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 무조건 돌진해서 싸우는 경향이 강하다.


 

호랑이는 사자와 덩치나 체구 등 신체조건이 비슷하기 때문에, 두 맹수가 힘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두 맹수가 다른 점이 몇가지 있다.

 

호랑이와 사자간의 다른점은 싸움기술과 용맹성과 공격성이다.

 

사자는 싸우기 전에 상대방의 덩치나 스타일을 보고 쎄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에게는 이해관계가 얽여있다고 하더라도, 싸움을 회피하는 등 겁이 많고 소심한 동물이다.

 

얼마전에 유튜브 동영상에서 본 것인데, 성체 아프리카 암컷사자가 혼자서 누우를 사냥해 잡았고, 그 암컷사자는 자신이 잡은 누우를 먹으려고 한 순간,

사자가 누우사냥을 눈치챈 하이에나 한마리가 그곳으로 다가왔고, 그 하이에나는 누우를 잡은 암사자를 지켜보며 두맹수가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됐다.

 

그 암사자는 자신이 사냥한 누우를 사이에 두고 한마리의 하이에나와 10여분 동안 눈싸움을 펼쳤다.

 

그 암사자의 체중은 약 140kg이고, 하이에나의 체중은 90kg 정도 나갔고, 그곳에는 암사자 한마리와 하이에나 한 마리밖에 없었다.

 

서로가 각각 한 마리씩이까, 암사자로서는 충분히 하이에나와 싸워볼만 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사냥해서 죽은 누우를 사이에 두고, 암사자 한마리와 하이에나 한마리가 서로 치열한 눈싸움을 펼치다가, 10분 정도 지난 후에 그 암사자는 겁을 먹었던지, 자신이 샤냥한 누우를 그냥 두고, 그 자리를 떠나가버렸다.

 

그리고 암사자가 떠난 후, 그 하이에나는 그 암사자가 버리고간 커다란 누우를 혼자서 게걸스럽게 먹을 수 있었다.

 

덩치가 더 작은 하이에나가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암사자를 싸우지도 않고, 그냥 눈싸움만으로 쫒아버리고, 사자의 먹이감을 빼앗아버리는 놀라운 장면이 노출된 것이다.

 

하이에나가 여러마리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한마리밖에 없었는데도, 암사자는 그 하이에나와의 눈싸움에서 기가 꺾였고,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자신이 힘들여서 잡았던 170kg의 누우를 그냥 버리고, 비겁하게 도망가고 말았던 것이다.

 

자신보다 덩치가 50kg이나 더 작은 하이에나 한마리가 두려워서, 자신이 힘들여서 잡은 누우를 그냥 버리고 달아나는 암사자를 보고, 참으로 한심스러운 사자라는 생각과 사자가 덩치와는 다르게 엄청 겁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일 암사자가 아니라 암호랑이었으면, 어땠을까? 만일 암호랑이었더라면, 그 호랑이는 자신이 잡은 먹이를 탐을 내는 그 하이에나를 즉각적으로 공격해서 물어죽였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면, 그와 비슷한 현상이 인도에서도 벌어졌기 때문이다인도에서는 하이에나와 비슷한 덩치를 갖고있는 동물이 있는데, 바로 아사아반달곰이다.

 

아시아반달곰은 곰 중에서도 덩치가 매우 작은 곰에 속하는데, 보통 아시아반달곰의 평균몸무게가 110kg 정도 나가므로아프리카의 하이에나와 비슷한 덩치를 가진 동물이며, 하이에나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있고, 성질이 비교적 사나운 맹수이다.

 

인도에 서식하는 뱅갈암호랑이는 자신이 사슴 한마리를 잡았는데, 그 때에 근처에 있던 아시아반달곰이 냄새를 맡고, 달려와서 자신의 먹이를 노리는 것을 본 

그 암컷호랑이는 곧바로 아시아 반달곰에게 달려들어 맹렬하게 그 곰을 공격했고, 결국 분노한 그 암호랑이는 한입에 110kg의 그 아시아반달곰의 묵줄을 물어서 죽여버렸다.

 

바로 이게 정상이다. 이정도의 용맹성이 있어야 동물의 제왕 호랑이, 그리고 백수의 제왕 사자라고 할 수 있지않겠는가?

 

아시아반달곰이 자신의 먹이감을 탐내는 데에 대한 보복으로 암호랑이가 그 반달곰을 쫒아가 죽여버린 것이며, 죽인 후에 그 암호랑이는 그 아시아반달곰의 시신을 털만 남겨놓고 흔적도 없이 먹기까찌 했다.

이처럼 뱅갈호랑이는 성질이 사납고 용맹스러워서 자신의 먹이감을 탐내는 동물은 결코 살려두지않고, 그자리에서 공격해 죽여벌 정도로 호전성이 강하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아프리카의 암사자가 자신이 사냥한 먹이감을 90kg밖에 안되는 하이에나 한마리를 두려워해서자신이 사냥한 먹이감을 버리고,달아나버리는 것과 너무도 비교되지 않는가?

 


이와같은 사례에서 볼때, 사자와 호랑이는 같은 고양이과 동움이고, 덩치나 힘은 비슷하지만, 용맹성과 호전성, 담력과 근성 같은 정신적인 면에서 호랑이가 사자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고,

 

스피드나 싸움기술에서도 호랑이가 사자보다 한 수 위에 있기 때문에, 두맹수가 싸운다면 호랑이가 이긴다는 것이 대체적인 정설로 되어있다.



뱅갈호랑이 대 크로커다일 악어의 싸움

 

호랑이의 용맹성과 근성을 잘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가 있는데, 바로 인도의 뱅갈호랑이 대 크로커다일악어의 싸움이다.

 

인도에는 뱅갈호랑이와 크로커다일악어가 비슷한 지역에서 함께 서식하고 있다. 그런데 두맹수간에 먹이감을 두고 종종 치열한 먹이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자는 물을 무서워해서 왠만하면 물에 잘 안들어가지만, 뱅갈호랑이는 전혀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수영을 아주 잘 할뿐만 아니라

호수나 강같은 물속에 자주 들어가서, 물속에서도 사냥까지 하는 신출귀몰한 능력을 갖고있다.

 

, 뱅갈호랑이는 사자처럼 육지에서만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육지와 물속의 양쪽을 오고가면서 사냥을 하는 전천후 사냥꾼인데그렇기 때문에 인도의 습지에서는 물에 사는 악어와 뱅갈호랑이간에는 종종 크고작은 다툼이 벌어진다.

 사자같으면, 물속에서 악어를 만난다면, 곧바로 도망가버리겠지만, 인도에 사는 벵갈호랑이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맨 하단에 있는 동영상1이 호수물속에서 만난 뱅갈호랑이와 크로커다일악어간의 대결상황이다.

 

동영상1에 나오는 상황은 호수물속에서 뱅갈호랑이와 크로커다일악어가 서로 먹이감을 사이에두고, 치열한 탐색전을 벌이다가

포악스러운 뱅갈호랑이가 사슴을 물고가는 악어를 끝까지 쫒아가서, 마침내 악어의 먹이감을 빼앗아버리는 내용이다.

 


호숫가를 배회하고 있던 뱅갈호랑이가 그 호수속에서 크로커다일악어가 사슴을 사냥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악어가 사슴사냥에 성공해서 그 사슴을 호수중앙으로 끌고가는 것을 본 그 뱅갈호랑이는 곧바로 호수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사실 물속에서 호랑이와 악어가 싸운다면, 호랑이가 훨씬 더 불리하고 악어가 더욱 유리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무모하리만큼 용맹한 그 수컷뱅갈호랑이는 몸무게가 300kg이상 나가는 거대한 크로커다일악어의 뒤를 쫒아서 호수중심부로 헤엄쳐갔다. 그 수컷호랑이의 몸무게는 210kg 정도 내외다.

 

그 뱅갈호랑이가 악어의 뒤를 쫒아 수영해간 이유는 그 악어가 물고가는 사슴을 빼앗기 위해서이다.

 

악어는 사냥한 사슴을 물고서 호수중심부로 계속 끌고가고, 호랑이는 악어의 뒤를 계속 따라 헤엄쳐가는 긴장되는 상황이 계속 펼쳐졌다.

 

악어는 물깊이가 10m나 되는 호수중심부로 가면 호랑이가 더이상 안쫒아올 줄 알고, 호수중심부로 먹이감을 물고갔는데포악스러운 뱅갈호랑이가 포기하지 않고, 호수중심부로 계속해서 악어를 쫒아왔다.

 

그러자, 호수물속에 먹이감을 포기한 쪽은 호랑이가 아니라 300kg급의 그 크로카다일악어였다.

 


악어는 자신에게 유리한 물속인데도, 호랑이가 계속 자신의 뒤를 쫒아오자그만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자신이 물고있던 사슴고기를 물위에다 버리고, 그곳으로부터 신속하게 달아나버렸다.

 

호수의 물속에서 자신에게 훨씬 유리한 지점인데도, 악어는 호랑이에게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자신이 사냥한 먹이감을 버리고, 다른곳으로 달아나고 만 것이다.

 

결국 호숫물 중심부로 헤엄쳐왔던 그 뱅갈호랑이는 악어가 먹이감을 버리고 달아나는 바람에, 

싸우지도 않고, 공짜로 악어가 잡은 사슴고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악어는 평소에 뱅갈호랑이가 포악하고 싸움을 잘하는 것을 잘 알고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물속인데도, 겁을 먹고 호랑이에게 자신의 먹이감을 양보하고 만 것이다.

 

악어는 물속에서 무려 15분 동안 숨을 쉬지않고 잠수를 할 수 있지만, 호랑이같은 포유류는 물속에서 숨을 쉬지않고, 잠수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5분 이내이다.

 

따라서 두맹수가 물속에서 싸움을 벌일 경우, 악어가 호랑이의 팔이나 다리를 물고 호수의 깊은 물속으로 끌고들어가면제아무리 용맹한 호랑이라고 하더라도, 물속으로 끌려들어갔을 경우엔 5분만 넘기면, 그대로 질식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m 깊이가 되는 호수의 한복판까지 쫒아간 그 뱅갈호랑이의 용맹성과 근성 때문에, 그호숫가의 주인인 거대한 악어는 먹이감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며, 

호랑이는 무서운 포효 한마디로 호숫가의 제왕인 크로커다일악어를 내쫒고는 공짜로 먹이감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만일 똑같은 상황에서 사자라고 하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사자였다면, 그 사자는 절대로 300kg가 나가는 악어를 뒤쫒아 호숫물로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거꾸로 호숫물속에서 악어를 만났다면, 사자는 자신이 잡은 먹이를 버리고 도망갔을 것이다.

 

아프리카암사자가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더 작은 하이에나 한마리가 두려워서 자신이 사냥한 누우를 버리고 달아났을 정도인데, 물속에서 거대한 악어와 맞딱뜨렸다면, 결코 싸우지않고 그대로 도망가버렸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호랑이와 사자간의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자와 호랑이는 덩치와 힘은 서로간 비슷하지만,

 용맹성과 담력, 근성에서 호랑이가 사자보다 한 수 위에 있기 때문에, 또한 싸움기술도 호랑이가 한 수 위이기 때문에,

 호랑이와 사자가 싸울 경우, 호랑이가 이길 확률이 높다고 많은 동물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동영상2는 호랑이와 거대한 악어가 물속이 아닌, 육지에서 만나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다.

 

육지위에서 호랑이와 악어가 서로 만나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악어는 300kg급의 커다란 덩치를 갖고있고, 무시무시한 톱니이빨을 갖고 있지만, 

용맹스럽고 스피드가 뛰어난 호랑이가 악어의 등위로 잽싸게 올라타서, 악어의 등목줄을 세차게 물어서 결국 악어를 죽여버렸다.

 

육지위에서는 악어는 호랑이에게 전혀 싸움상대가 되질않는다. 호랑이보다도 더 덩치가 큰 거대한 악어였지만

싸움기술이 뛰어난 호랑이의 스피드한 기습공격을 당해 목덜미를 물려서, 거대한 악어도 호랑이의 한입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뱅갈호랑이 대 크로\커다일 악어의 싸움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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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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