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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5.08 여배우 김청의 결혼과 이혼사유, 젊은 리즈시절의 미모,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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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김청의 결혼과 이혼, 이혼사유, 젊은시절의 미모와 프로필

 

- 김청 프로필 -

 

본명 - 안청희

1962년 6월 1일

키 - 162cm, 몸무게 42kg,

혈액형 B형

출신학교 - 경희대학교 무용학과 중퇴

가족 - 어머니 김도이

데뷔 - 1981년 미스 mbc 선발대회 2위 입상

종교 - 개신교

 

80년대의 우리 연예계를 대표하는 청순미인이 한명 있는데, 바로 김청을 꼽을 수 있답니다.

80년대에는 우리나라 연예계는 여배우들이 대거 등장해서  다중구도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여배우들이 군웅할거를 하던 시대였답니다.

 

70년~80년대 신트로이카체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 새로운 미녀여배우들이 등장해서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요.

 

80년대의 대표적인 여배우로는 이미숙과 원미경을 꼽을 수 있고, 그녀들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 대중들의 인기를 끌면서, 서로 치열한 인기경쟁을 벌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신선하고 청순한 마스크를 지닌 김청이라는 여배우가 등장해, 이미숙과 원미경 못지않은 큰 인기를 끌면서, 활발한 연기활동을 전개해나갔습니다.

 

그러니까, 80년대의 우리나라 연예계는 원미경과 이미숙, 김청의 세명의 여배우들이 주름잡았던 3톱체제가 전개되었으니, 이를 제 3세대 트로이카라고 부른답니다.

 

80년대에는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등 제2세대 트로이카의 인기가 서서히 식어가면서, 새롭게 등장한 이미숙, 원미경, 김청이 새로운 트로이카로 인기를 독식해나갔던 시대였답니다.

 

80년대에 원미경과 이미숙은 매우 인기가 높았고, 수많은 영화에 경쟁적으로 출연해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벌여나가고 있었지요.

그러니까, 1980년대에는 원미경과 이미숙이 우리 영화계를 양분하고 있었다고 할 정도로, 이미숙과 원미경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 반면, 김청은 영화보다는 TV드라마에서 꾸준히 출연하면서 인기를 끌었던 그시대의 대표적인 청순미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미숙은 동양적인 마스크에다 요염미가 강하게 풍겼고, 원미경은 완벽한 미모에 관능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반해,

김청은 청순가련형의 미모를 갖고 있는등, 세명 모두 각각 개성있는 미모로 강한 팬덤층을 형성하고 있었답니다.

 

지금은 김태희와 송혜교가 최고미인으로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80년대에는 원미경과 이미숙, 김청이 지금의 김태희와 송혜교 같은 존재감이었답니다.

 

커다랗고 초롱초롱한 눈, 오똑한 콧날, 수줍은 듯 살포시 다문 입술 등 유난히도 한국적인 정취를 짙게 풍기는 김청은 전형적인 동양미인이면서, 동시에 청순미인이랍니다.

 

그래서 80년대에 김청은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 청순한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하면서,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셀레이게 했던 장본인이랍니다.

 

원미경, 이미숙과 함께 8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미녀 여배우 3인방에 김청도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릴 수가 있답니다.

 

이렇게 김청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청순미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남성들은 더욱 김청에 대해 남성으로서의 보호본능을 느끼면서 그녀를 더욱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김청은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라는 연예인 리얼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요.

그래서 오늘은 80년대의 대표하는 청순미인 김청에 대해서 소개해보도록 하겠어요. 

 

80년대 제3세대 트로이카 삼인방 중에, 원미경은 주로 영화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이미숙은 영화와 드라마를 왔다갔다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그 반면 김청은 주로 드라마에 많이 출연해서 큰인기를 끌었답니다.

 

주로 드라마에 다작으로 출연해 높은 인기를 끌었던 김청을 두고, 80년대의 ‘드라마의 여왕’이라고 부른답니다.

 

김청이 80년대에만 출연했던 드라마만 해도 22편이나 되며, 90년대에는 더욱 늘어나 28편의 드라마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그녀는 TV분야에서 맹활약하면서 크게 각광을 받았답니다.

 

그러니까, 김청은 80~90년대에 해마다 2~3편의 드라마에 계속해서 출연하는 등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였는데, 아마도 김청은 80~90년대 TV드라마에 최다출연자가 아닐까 합니다.

 

김청은 청순한 미모와 함께 뛰어난 연기력을 지니고 있어서, 뭇감독과 PD들로부터 끊임없이 스카웃제의를 받았으며, 80~90년대에는 개인적인 사생활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드라마촬영 때문에 엄청 바쁘게 생활했다고 합니다.

 

김청의 전성시대는 50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눈부신 활동을 펼쳤던 80~90년대라고 할 수가 있지요.

김청의 드라마출연은 2000년대에 들어서도 왕성한 활동이 이어집니다. 김청은 2000년대에도 19편의 드라마에 출연할 정도로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갔답니다.

 

그런데 김청은 현재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김청이 이렇게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있는 이유는 무었일까요?

 

80~90년대에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그녀가, 정말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그시대를 주름잡았던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청의 어머니는 김청을 고등학생 시절인 17살 때에 임신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김청의 아버지는 김청 어머니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많은 직업군인이었지요.

 

그런데 양가 부모님의 반대가 매우 극심했기 때문에, 두사람의 결혼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청 어머니가 김청을 출산한 이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해서 함께 김청을 애지중지하면서 키워나갔습니다.

 

그런데 육군중사였던 김청의 아버지가 불행히도 김청을 낳자 마자,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습니다.

 

결국 김청은 홀어머니밑에서 어렵게 자라났습니다. 그렇지만 성격이 반듯했던 김청은 어머니의 무남독녀 외동딸로서 성실하게 모범생으로 곱게 자라났습니다.

 

김청은 1981년도 MBC가 주최한 미스MBC 선발대회에 출전해 당당히 미스MBC 2위로 뽑혔고, 그 특전으로 MBC공채 14기 탤런트가 되어서 연기자로서 데뷔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청은 1987년도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태수를 뒷바리지하는 지고지순한 여주인공역할을 훌륭히 연기해내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랑과 야망’의 인기를 높여 놓는 데에 견인차역할을 합니다.

 

이 당시 ‘사랑과 야망’의 시청률은 75%로 방송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의 중심에 김청이 있었답니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시청율이 폭발적으로 올라가면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히로인역할을 한 김청은 흥행력있는 연기자로 인정받으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답니다.

 

김청은 ‘사랑과 야망’에서 지고지순하고 가련한 청순연기를 펼치면서 그녀의 청순미가 크게 빛을 발했고, 이때부터 김청은 청순미인의 대명사가 된답니다.

 

지금 김청은 나이 60세가 되면서 기품있는 귀부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80년대만 해도 김청은 대단한 청순가련형의 미인으로 손꼽히는 미녀였습니다.

 

80년대 후반인 이 당시는 다소 보수적인 사회이어서, 많은 남성들이 섹시하고 관능적인 여배우보다는 청순한 미모의 여배우를 더 좋아하던 시절이었기에, 이 시기에 김청은 수많은 남성들의 로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수려한 미모와 뛰어난 연기, 재치있는 말솜씨 등 다양한 재능을 두루 갖추고있었던 김청은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서 열연을 펼쳤을 뿐만아니라,

8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MC로도 출연하는 등 명MC로도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광고모델로도 발탁되어서 CF광고를 7편이나 찍는 등, CF여왕으로도 명성이 떨쳤지요.

 

 

◆ 김청의 결혼과 이혼, 이혼사유

 

이렇게 드라마출연과 CF출연, 그리고 예능프로그램의 MC를 맡는 등 만능엔터테이너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높은 인기를 끌었던 김청은 지금까지도 결혼을 하지않고, 솔로로 지내오게 되었는데요.

 

원래 김청은 딱 한번 결혼을 한 적이 있었답니다. 김청은 나이 37세가 되던 1998년도에 전격 결혼을 발표했습니다.

 

김청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가, 아는 언니의 소개로 골프장사장인 배씨를 알게 되었고, 그 후 두사람은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김청이 만난 남성 배씨는 김청보다 13년이 더 많은 50세였다고 해요.

 

그런데 김청은 나이 많은 배씨에게서 아버지 같은 포근한 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에, 아버지 사랑을 제대로 못받고 자랐던 김청이기에 아버지같이 포근한 정을 느끼게 해주었던 배씨에게서, 더욱 끈끈한 친밀감과 부성애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없이 편모슬하에서 자랐던 여성들은, 종종 나이 많은 남성에게서 아버지같은 포근한 부성애를 느끼며, 더 깊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답니다.

 

이렇게 김청과 배씨가 자주 만나 데이트하면서 두사람간에 뜨거운 애정이 싹트게 되었고, 얼마 후에 배씨가 김청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결국 98년도 5월에 두사람은 전격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나게 됩니다. 김청은 배씨와 결혼한 지, 3일만에 곧바로 이혼하게 된답니다.

그런데, 김청의 주장에 의하면, 이것은 이혼이 아니라 파혼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의 전모는 이렇습니다. 김청은 배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필리핀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신혼여행지에서 남편 배씨는 오직 카지노에만 출입하면서 밤을 세워가며 도박에만 집중하였고,

그 때문에, 김청을 3일 동안 호텔에서 혼자 독수공방을 했다고 합니다.

 

신혼여행지에 가서 이렇게 예쁜 청순미인을 호텔방에 홀로 남겨두고 독수공방을 시켰다고 하니, 정말 배씨가 남자가 맞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신혼여행지가 필리핀이었는데, 그 곳에 있는 카지노에 틀어박혀서 오직 도박에만 빠져있던 배씨는 신부 김청을 3일동안 먹이지도 않고, 재우지도 않은채, 홀로 독수공방시키면서, 예쁜 신부 김청을 그냥 방치했다고 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김청은 곧바로 파경을 선언하고, 결혼 3일만에 짐가방을 싸서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김청이 결혼 후에, 신혼여행지에서 보낸 3일 결혼의 전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김청은 전남편 배씨와 한번도 잠자리도 하지않았고, 산림을 차려서 같이 동거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까지 갔지만, 김청은 배씨와 아무일도 없이, 파경을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인데요.

그러니까, 김청은 형식적인 결혼식만 올렸을 뿐이지, 사실상의 결혼생활은 단 하루도 하지 않았던 겁니다.

 

더욱이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청은 자신은 이혼한 것이 아니라, 약혼만 했다가 파혼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답니다.

지금까지도 김청은 자신은 이혼녀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단지 자신은 파혼녀일 뿐이라는 거지요.

 

김청은 신혼여행지에서 아무일도 없이, 그냥 3일동안 독수공방만 하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이혼녀’라고 불리우는 것은 너무나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랍니다.

 

그리고 배씨는 결혼전에 김청의 어머니에게 사업자금을 빌려달라는 부탁까지 했다고 합니다.

 

김청은 배씨를 사랑해서 결혼식을 올렸는지는 몰라도, 배씨는 김청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정략적 결혼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는 부분이랍니다.

 

결혼하기 전에, 신랑될 남자가 신부의 어머니에게 사업자금으로 거액의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아뭏튼 결혼 3일만에 파경을 맞은 김청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그 후 절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칩거생활을 하게 됩니다.

 

연예인으로서 큰 인기와 명성을 떨쳤던 김청이 뒤늦게 선택한 결혼이 완전한 실패작으로 끝나고야 말았답니다.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던 김청은 그 후 첩첩산속에 있는 절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게 된답니다.

 

자신이 처음한 결혼이 완전 실패하면서 큰 충격과 좌절을 겪은 김청은 결혼실패의 충격과 상실감을 잊기위해서, 절에서 삼배옷을 입고 밭을 갈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오랫동안 충격과 아픔에서 해어나오지 못했던 김청은 한동안 엄청나게 술을 먹었다고 합니다.

 

김청은 밤마다 술을 많이 마셨고, 그리고 마취제를 맞지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김청이 파혼 때문에 생긴 정신적인 충격과 상실감 때문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술을 먹고, 낮에는 식음을 전폐하고 생활하는 등, 결혼실패 후의 김청의 생활은 거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결혼실패의 충격으로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던 김청은 수년동안 방송활동을 접었고, 은둔생활을 한 끝에, 200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다시 연예계에 복귀해 연기활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김청이 독신으로 사는 이유

 

김청이 한번 결혼식을 올렸다가 곧바로 파경을 맞았던 가슴 아픈 전력이 있지만,

그녀의 출중한 미모와 인기로 볼 때에, 그 후에도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우리연예계의 대중적인 스타로서 큰 인기를 끌어왔던 김청이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데에는 몇가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김청이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였던 80년대에, 그녀의 어머니가 친구의 빛보증을 잘못섰다가 그만 30억원의 빚을 덜컥 떠안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청의 어머니에게 빚보증을 서게했던 그 친구는 곧바로 미국으로 달아나버렸고, 김청은 어머니가 졌던 친구의 모든 빚을 혼자서 다 떠안게 된 것이랍니다. 그때가 김청과 어머니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김청은 20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빚 30억원을 떠안은 상태에서, 그녀는 마침 MBC 탤런트에 당선되었는데,

그 후 무려 10년 동안 바쁘게 연기생활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어머니가 진 빚 30억원을 갚아나갔습니다.

 

김청은 연기자로 데뷔한 후 30살이 될 때까지의 10년 동안은 자기자신을 위해서 산 것이 아니라, 오직 어머니의 빚을 갚기위해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결국 김청은 10년만에 어머니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어머니빚을 다 갚은 후에,김청은 후련한 마음보다는 오히려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탤런트가 된 후, 김청은 10년 동안 억척같이 연기활동을 해오면서 큰 돈을 벌 수 있었는데, 그 많은 돈이 모두 어머니의 빚갚는 데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허탈했겠습니까?

 

김청이 가장 아름다웠을 20대의 10년의 세월을 어머니빚 갚는 데에 다 소모해버린 셈이랍니다.

이렇게 김청은 젊은시절에 어머니빚을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생활했기 때문에, 남자와 연애할만한 정신적인 여유를 전혀 가질 수 없었습니다.

 

김청은 어머니빚을 다 갚은 후에 나이는 이미 30세가 훌쩍 넘어섰고, 연기자로서의 높았던 인기는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었는데,

이 때에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우울증 때문에 또다시 큰 고통을 겪게되었고, 심지어 그녀는 자살까지 시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청은 가장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을 어머니의 빚을 갚는 데에 소모하는 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청춘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과 우울증 때문에,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나날이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그녀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던 겁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김청이 수면제를 먹고 잠자고있을 때, 마침 아는 언니가 찾아와서 그녀는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게만 보였던 김청이지만, 사실 그녀는 어머니로 인해서 심한 정신적고통과 갈등을 겪고있었던 겁니다.

 

그럼 김청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자는 없었을까요? 김청이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아왔지만, 과거 한 때에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자가 한명 있었다고 합니다. 그사람은 모델에이젠시를 하는 사람이었는데요.

 

김청보다 7년 연상의 광고모델 에이젠시를 하는 P씨라는 남자였는데, 김청은 그 P씨에게서 무척 포근한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결국 김청은 곧바로 P씨와 깊은 사랑에 빠졌는데, 김청의 어머니가 극심하게 두사람의 사랑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김청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대단히 컸습니다. 김청의 어머니는 오직 딸 김청만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왔기에, 김청에게는 어머니가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김청은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효심 때문에 어머니의 반대를 받아들여서, 어쩔 수 없이  P씨와 생이별을 했습니다.

 

1988년도에 김청이 방송활동 중에 갑자기 잠적해버리는 일이 일어났었는데요. 이당시 김청은 그 어떤 공식석상에도 나타나지 않고, 방송촬영까지 펑크내면서,  무려 2달 동안 잠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김청이 갑자기 잠적했던 이유는 그녀가 사랑했던 P씨와 헤어진 충격 때문이었는데, 그 이별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한적한 시골로 들어가서 혼자서 마음을 추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에 김청이 만났던 P씨가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였을 것이며, 그녀의 사랑은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 때문에, 안타깝게도  생이별로 끝나고 말았답니다.

 

김청은 1990년도에 또다시 한남자와 사랑의 스캔들을 겪게 됩니다.

한명의 남자를 놓고, 김청과 최수지가 얽힌 소위 ‘삼각스캔들’이 그것입니다.

 

대하드라마 ‘토지’로 큰 인기를 끌었던 최수지가 90년도에 미국 LA에서 윤씨와 결혼을 한다는 발표를 했는데요.

그런데 최수지의 결혼상대인 윤씨는 김청이 먼저 약혼했다가 파혼한 남자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당시 김청과 최수지의 삼각스캔들이 우리 연예계에 떠들썩하게 퍼져나갔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최수지가 선배연기자인 김청의 애인을 가로채버렸다는 기사까지 나오기도 했었답니다.

 

그 당시 한 중매쟁이가 잘생기고 재력있는 재미교토사업가 윤씨를 김청과 최수지 두사람에게 번갈아가면서 맞선을 주선했습니다.

 

먼저 맞선을 보았던 윤씨와 김청은 처음에는 서로 마음이 맞아 약혼까지 했었는데,

그 사이에 윤씨가 또다시 중매쟁이로부터 최수지를 소개받았고, 최수지에게 홀딱 반한 윤씨가 김청과는 파혼한 후, 새롭게 최수지와 약혼을 한 것이랍니다.

 

결론적으로 김청은 재미교포 사업가 윤씨에게 차이게 됐고, 김청을 매몰차게 찬 윤씨는 최수지와 약혼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런 사연이 신문과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나니까, 김청으로서는 대단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리고 최수지는 선배연기자의 남자를 가로채버린 나쁜 여자로 낙인찍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매스컴에서 선배인 김청의 남자를 가로챘다고 안좋은 비난이 가해지자, 최수지는 윤씨와는 파혼을 했고, 이미 헤어진 사이다 라고 주장했답니다.

 

그리고 최수지는 연기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가버렸답니다.

그런데 그 후 2달 뒤에 최수지는 자신이 파혼했다던 윤씨와 LA에서 비밀결혼식을 올리게 된답니다.

 

최수지는 국내의 비판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던 것이고, 그녀는 남몰래 윤씨와 결혼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김청의 약혼자를 가로채서 결혼식을 올렸던 최수지는 윤씨와 결혼한지 불과 6개월만에 이혼하고 말았답니다.

최수지는 윤씨에게 속아서 사기결혼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에서 이혼소송을 벌여서 이혼하고 말았지요.

 

이렇게 김청은 젊었을 시절, 어머니의 엄청난 빚을 떠안고 그 빚을 갚는 일 때문에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와 두번씩이나 이별을 겪었을 뿐아나라, 그녀의 유일한 결혼은 3일만에 파경을 겪는 등, 그녀가 좋아했던 남자들과는 이상하게도 파경과 이별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렇게 김청은 도화살이 끼었는지, 청순미모와 탁월한 연기력으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였음에도 불구하고 몇번이나 찾아온 결혼기회를 놓치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김청은 젊었을 때에 겪은 우울증이 다시 반복되어서 이제 그녀는 평생 우울증약을 먹고 산다고 하네요.

정말 안타깝고 가엾은 김청이 아닐 수 없네요!  젊었을 때에 그녀가 겪은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이렇게 그녀가 평생을 우울증약을 먹고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TV드라마의 여왕으로서, 많은 대중들로부터 크나 큰 사랑을 받을 정도로 연기자로서는 큰성공을 거두었지만, 현 여자로서 사랑을 쟁취하는데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김청은 1962년생으로서 이제 나이가 60세가 되어 장년의 여성이 되었지요.

 

그렇지만 김청은 지금도 괜찮은 남자와 만나서 멋진 데이트를 하는 꿈을 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성들은 자신에게 전혀 대쉬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지요.

나이 60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소녀처럼 멋진 왕자님을 만나는 꿈을 꾸고 사는 그녀를 보면, 정말 때묻지 않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김청은 신체 건강하고 배려심이 깊은 남자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꼽고있는데, 이러한 그녀의 소박한 소원이 하루빨리 이뤄져서, 그녀가 행복한 여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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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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